근대 교육(近代敎育)
관리자 23-12-28 09:24 162 hit
우리나라는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게 됨에 따라 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진안 지역에도 이러한 인식들과 함께 신교육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신교육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루어진 근대 교육은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갑오개혁과 조선 교육령 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교육은 예전 양반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우리글을 중심으로 한 교과목 교육과 관학에 못지않은 사학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진안에서 근대 학교의 시작은 1907년 4월 진안 향교에 설립된 사립 진안문명학교로서 1908년 6월 최초로 세워진 근대 학교였다. 교육 과목은 한문, 조선어, 작문, 습자(習字), 일본어 등이었다. 7, 8년간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학생들이 17, 18세에 입학하여 3년간 배우고 졸업하였다. 1908년 5월 용담 향교에 세워진 사립 용강학교는 1911년 7월 용담보통학교로 바뀌었다가 1912년 공립 보통학교에 인수되었다. 1908년 설립하여 1910년에 정식 인가를 받은 사립 화동학교는 배일사상과 도의정신(道義精神)의 함양, 향약(鄕約)의 실천에 힘썼다. 사립 화동학교의 이러한 배일사상 교육은 1919년 7월 주천 공립 보통학교에 폐합되기까지 진안 지역의 3·1 운동과 항일 운동의 바탕이 되었다. 이후 1910년 어은동 사립 보통학교, 1911년 진안 공립 보통학교, 1912년 용담 공립 보통학교, 1914년 진안 공립 소학교, 1919년 주천 공립 보통학교, 1920년 사립 마령 보통학교[1922년 마령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 1921년 사립 정천 동강학교[1923년 정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중 네 번에 걸친 교육 개정과 “1면 1교의 공립 보통학교 설립, ‘실업훈련 주의’로 돌아가 근로주의적 교육 강화, ‘황국신민’ 교육 강요”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 교육령’ 시대로 들어서면서 1920년에서 1930년대까지 영천 사립 보통학교[1925년 영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 동향 사립 동명의숙, 백운 공립 보통학교, 부귀 공립 보통학교, 동향 공립 보통학교, 한들 사립 해성학교, 외인 공립 보통학교, 상전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40년대에 들어 한들 사립 보통학교를 모체로 연장 공립 국민학교가 1943년에 설립되었고, 1944년 좌포 공립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어려운 경제 사정 등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역 근대화 교육에 앞장서 온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진안 지역의 근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 교육은 진안 지역의 3·1 운동과 항일 운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지역민의 결속과 단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