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운영자 24-02-20 14:18 1,576 hit

1910년 8월에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14년에는 행정구역을 대개편함에 따라 용담군이 진안군에 병합되어 진안·동향·마령·백운·부귀·상전·성수·안천·용담·정천·주천 등 11개 면1을 관할하는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진안지역에서도 일제의 가혹한 통치와 수탈에 대한 저항으로서 3·1운동이 전개되었고 이외에도 야학운동 등 농촌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진안지역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는 1911년 진안면에 설립된 진안공립보통학교를 필두로 1912년 용담면에 용담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일본인을 위해서 1914년 진안공립심상소학교가 진안면에 설립되었다. 이후 마령면(1918), 정천면(1922), 주천면(1923), 안천면(1925), 백운면(1927), 부귀면(1928), 동향면(1930)에도 각각 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외에도 부녀자를 위한 야학이 개설되었다. 진안지역에서는 1919년 3월 25일 진안읍 장날을 기하여 오전에 수백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자 장꾼이 여기에 합세하였다. 4월 3일에는 주천면 주양리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 때 주양리에는 사립 화동학교(현 주천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김주한 등은 이 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려고 계획하고 화동학교 학생들을 권유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하였다. 그 날 오후 4시경에 주민과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후 자진 해산하였는데 그날 밤 10시 경에 다시 주민과 학생 60여 명이 마을 앞에 모여서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6일에는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도 주민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는데 헌병의 출동으로 제지당하였다. 4월 12일에는 성수면 도통리에서, 다음날에는 마령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특히 13일은 마령 장날이었기 때문에 미리 운동을 계획하였던 오기열, 전영상 등에 의해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마령시장 만세운동 이후에도 진안군의 인사들은 기회 있는 대로 운동을 계획하며 또 산발적으로 만세를 부르고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4년 이후의 진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