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진안군지회
운영자 24-02-24 17:04 100 hit
진안읍 군하리 81-11에 소재하는 사회단체.
1980년 8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진안군지부를 조직하였으며, 1984년 3월 새마을운동 중앙협의회 진안군지부로 개칭되었다. 회원단체로는 새마을지도자진안군협의회, 진안군새마을부녀회, 새마을문고중앙회진안군지부가 있다. 2024년 현재 지회장은 이상봉이다.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을 숙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지방장관회의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하여 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가꾸기운동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리동(行政里洞)에 시멘트 335포대씩 균일적으로 무상지원하여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였다. 이 결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정부가 무상공급한 시멘트로 부락민들이 자체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하여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낸 경우이고, 둘째는 시멘트의 무상공급을 받았지만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한 경우이다. 정부는 반응이 있는 1만 6600개 부락에 대하여 또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인 협동노력을 장려하였다. 이와 같은 경쟁적·선별적 방식으로 점화된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이 아니라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초기에는 단순한 농가의 소득배가운동이었지만 이것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면서부터는 도시·직장·공장에까지 확산되어 근면·자조·협동을 생활화하는 의식개혁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운동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선진국대열에 꼭 진입해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강하게 심어준 정부주도하의 국민적 근대화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은 1969년의 「3선개헌」, 1971년의 대통령선거와 비상사태선포, 그리고 1972년의 유신헌법 통과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형성과정에서 진행되었으며 새마을운동의 본격적 전개가 유신체제와 더불어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 디지털진안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jinan.grandculture.net/?local→jinan)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