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원불교(圓佛敎)
관리자 23-12-28 09:26 59 hit
【개요】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창시한 종교. 박중빈은 그의 나이 26세에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하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개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2대 종법사 정산(鼎山) 송규(宋奎)는 원불교라는 교명에 대해 “원(圓)이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만유가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萬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가지로 말은 달리하나 그 실(實)에 있어서는 원(圓) 이외에는 다시 한 법(法)도 없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불(佛)은 곧 깨닫는다(覺)는 말씀이요 또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원의 진리」가 아무리 원만하여 만법을 다 포함하였다 할지라도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다만 이는 빈 이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圓佛) 두 글자는 각자 마음에서 근본적 진리를 깨친 바탕 위에서 나타낸 것이므로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가 있다”라고 말하였다.
【원불교와 불교】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이다. 그러나 외면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는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면에서도 종래의 사찰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나, 교단은 기존 불교의 분파적 입장이 아니다. 창조·모방·개혁을 시도하는 새로운 교단으로 볼 수 있다. 박중빈은 불법을 주체로 삼아 새 종교를 주창하였는데, 그가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 즉 법신불(法身佛)사상을 주체로 하고,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시대화란 어느 시대에 처하든지 불법을 그 시대에 맞게 구현하자는 것을 말한다. 시대적 변화에 잘 동화하면서도 높은 차원으로 사람들을 지도해나갈 수 있도록 불법을 응용하자는 뜻이다. 생활화란 생활 속에서 불법(佛法)을 찾고 깨달아서 그 불법으로 새 생활을 개척해 나가자는 것이다. 대중화란 민중화, 서민화 또는 시민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수한 계층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누구나 다 같이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국한 없이 불법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는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표방하고 있다. 다른 기성종교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 발생된 종교로서 후천개벽의 이념과 그 맥(脈)을 같이하고 있다.
【교조 박중빈(朴重彬)】박중빈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에 우주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일으켰고, 9세 되던 해에는 인간만사에까지 큰 의심을 일으켰다. 이를 해결해보려고 산신과 도사를 찾기도 하였으며, 극진한 공을 드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기도와 고행을 15년 동안 행하였다. 15세에 양씨(梁氏)와 혼인하여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계속하여 의문나는 일에 몰두하였다. 부모의 후원으로 가정을 겨우 지탱하여오다가 20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생활고는 더욱 심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장차 이 일을 어찌할고” 하는 탄식과 더불어 오직 의심뿐 모든 것을 갑자기 다 잊어버리는 지경(頓忘狀態)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중 1916년 4월 28일 이른 아침, 문득 생각이 밝아지면서 온몸이 상쾌하여지고 모든 의심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의 대각의 경지였다. 박중빈은 그때의 깨달음의 경지를 “만유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말하였다.
【원불교의 창교】박중빈은 그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지 아니하고 구도(求道)하였으며 그곳에서 도를 이루었다. 또한 그가 창교이념을 실현한 곳도 고향이었다. 그는 1917년 고향에서 뜻 있는 동지들을 모아 방언조합을 조직하여, 근검절약과 허례폐지, 금주·금연과 숯장사라는 제1차 시련으로 경제적 기초를 세우고, 1918년 3월에는 조상 대대로 버려 둔 해변의 갯벌에 자력으로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시작하여 제2차 시련을 감행하여 1년만에 2만 6,000평의 옥답을 개간하였다.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박중빈은 제2차 시련을 거친 제자들을 이끌고 새로운 회상(會上) 창립을 위하여 제3차 시련에 들어갔다. 박중빈은 8인의 제자들을 이끌고 산상기도에 들어갔다. 박중빈은 방언공사와 산상기도를 통하여 교단창립의 기초를 다진 것이었으며, 박중빈과 그의 제자들은 그의 탄생지인 길룡리를 토대로 또 다시 회상 공개의 준비에 들어갔다. 도와 학이 겸비된 수제자 송규(宋奎)를 얻은 후 교법의 틀을 짜 갔다. 한편 1924년 4월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원불교중앙총부)에 총부를 건설하려고, 「불법연구」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열었다. 1940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수계리에 대농장을 건설하였다. 이는 원불교 창립의 제5차 시련 작업이었다. 과수원과 축산업을 겸한 새로운 영농방식에 착수하여, 명실공히 산업종교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박중빈은 교단의 사업목표를 교화·교육·자선에 두고, 차츰 이를 추진해나갈 기관을 확장해나간 것이다. 「원불교」란 교명은 광복을 맞이하고 박중빈의 유시에 의하여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가 개칭한 것이었으며, 1947년 4월에 재단법인 원불교의 등록을 필한 후 공포되었다.
【교리 및 교서】박중빈은 그가 깨달은 진리를 「○」으로 그려 상징하고, 이는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우주만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밝혔다. 원불교의 교리는 이 일원상의 진리를 최고 종지로 하였다. 곧 일원상의 진리는 만사만리(萬事萬理)의 근원이요, 만령을 움직이는 생성력(生成力)이라고 본 것이다. 이 진리를 근거로 하여 박중빈은 사은사요(四恩四要)의 신앙문(信仰門)과 삼학팔조(三學八條)의 수행문(修行門)을 열게 된 것이다. 원불교 경전은 9종 교서 및 그 밖의 교서로 나누어져 있다. 9종 교서는 『정전(正典)』·『대종경(大宗經)』·『불조요경(佛祖要經)』·『원불교예전(圓佛敎禮典)』·『성가(聖歌)』·『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세전(世典)』·『원불교교사』·『원불교교헌』을 말한다.
【조직 및 체제】원불교는 교단을 총괄하기 위하여 중앙총부를 두고, 종법사와 수위단회(首位團會)·중앙교의회(中央敎義會)·교정원(敎政院) 및 감찰원(監察院)을 두고 있다. 그리고 각 지방별로 국내 15개의 교구와 500여 개의 교당이 있으며, 해외에는 미주동부교구·미주서부교구·유럽교구·일본교구 등 4개 교구와 40여 개의 교당이 있다. 아울러 교육기관·훈련기관·문화기관·복지기관·의료기관·산업기관 및 기타 관련 단체를 두고 있다. 신도는 약 100만으로 집계된다. 종법사는 교단을 주재하고 대표하며 수위단회의 회장이 된다. 수위단회는 교단의 최고의결기구일 뿐만 아니라 박중빈의 초기 교단조직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단치교」의 교단통치의 최고기구로서 역할되고 있다. 박중빈이 죽고 난 뒤, 종법사가 된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는 일제강점기 시절 임시로 내걸었던 「불법연구회」라는 간판을 내리고, 이미 내정되었던 「원불교」 교명을 붙였다. 1962년 2월에 정산종사의 종통을 이어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1914∼1998)가 종법사로 취임하였고, 1994년 11월 대산종사의 뒤를 이어 이광정(李廣淨, 호는 좌산 左山, 1936∼)이 종법사로 취임하였다. 2006년 11월 4일에는 경산종사가 종법사로 취임하고 좌산은 상사로 추대되었다.【진안지역 원불교 현황】진안지역에는 마령교당이 1929년 6월에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1938년 좌포교당, 1958년 진안교당, 1968년 백운교당, 1970년 중길리교당, 1971년 주천교당, 1978년 가수교당 등 7개의 교당이 설립되어 있다. 진안지역 원불교 교당 설립 초기에는 각 교당마다 100명 미만의 규모로 법회가 이루어지다가, 1987년에는 법회에 참여하는 교도 수가 1,300명으로 늘어났다. 2024년 현재 진안지역 법회에 참여하는 교도 수는 3,0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불교 전북교구 진안지구「진안군·무주군·장수군」에는 10개의 교당 중 7개 교당이 진안군에 설립되어 있고, 이를 총괄하는 전북교구청이 전주시 경원동에 있다. 진안군에는 2024년 현재 진안교당, 가수교당, 마령교당, 백운교당, 좌포교당, 주천교당, 중길리교당 등 7개의 교당과 만덕산 훈련원이 있다.
《참고문헌》원불교(http://www.w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