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만덕산 성지(훈련원)(圓佛敎萬德山聖地(訓鍊院)
관리자 23-12-28 09:26 64 hit
성수면 중길로 655-37「중길리 563-8」에 위치한 원불교 훈련원.
원불교 초창기에 교조 소태산 박중빈의 방문의 인연으로 1924년(원기9) 익산총부건설 이전에 12인의 제자와 더불어 처음으로 수선(修禪)했던 만덕산 일대. 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초선지(初禪地)와 만덕산 농원을 포함하여 성지로 보고 있다. 만덕산 성지는 1924년(원기9) 5월에 소태산이 친방하여 한 달 동안 수선했으며, 그 과정에서 원불교의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를 만나기도 했다. 만덕암에서는 소태산을 스승으로 성주의 송규(정산종사), 영광의 김광선ㆍ오창건, 임실과 진안의 최도화와 전삼삼ㆍ전음광 모자, 노덕송옥과 손자 대산, 전주의 이청춘, 경성의 박사시화ㆍ이동진화ㆍ김삼매화 등 12인이 김광선의 주관으로 1개월 선회(禪會)를 열고 총부건설도 준비했다.【만덕산훈련원】마령교당 송혜환 송일환 등 인재양성단 활동이 매우 활발하여, 1930년에 그들의 수시 지방양성금으로 성수면 중길리 상달의 너부실 산판 17만평을 매입하여 훗날 만덕산농원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또 이공주가 20원을 희사하여 만덕산에 임야 50정보를 매입하였다. 그리하여 이준경, 이보국, 정일지, 전구일, 이재문 등이 총부에서 파견되어 너부실에 집(洪谷堂)을 짓고 감나무 등을 심는 등 산전 개간을 하며 약초를 캐다 팔면서 간고한 생활을 하였다. 설립당시의 규모는 건물1동 5평, 부동산 임야 50정 59묘이었다. 1932년(원기17) 개간임야에 감나무 5,300주를 심었으며 1936년에는 15,000평을 개간하여 다시 감나무를 심었다. 원기29년 중길리 상달에 사는 최내선 교도가 홍곡당에서 간간히 법회를 보다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불법연구회 중길리 출장소」 간판을 걸었다. 6.25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교당도 없는 상태에서 농원을 팔자는 의견 등 많은 의견이 분분할 때 동전주교당 백낙천 교도회장(전주 박고약)이 만덕산 농원 개발의 서원을 가지고 1967년(원기52) 법당 겸 숙소를 지었다. 만덕산 전체가 참나무임을 보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만덕산은 표고버섯 재배가 적격이라 판단하고 1971년(원기56)부터 표고버섯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원기58) 양제승 교무가 부임하여 농원 운영을 영육쌍전에 바탕한 산업훈련 도량화 하였다. 동년 대산종법사 특별유시로 농장개발이 활성화되어 표고재배, 인삼재배, 사슴사육 등 고등농장으로 변모하였으며 전주교구의 훈련도량으로도 개발되었다. 이 해부터 만덕산 동선을 시작하였다. 1976년(원기61)에 식당을 건축하고 1978년(원기63) 전기를 가설하였다. 1981년(원기66) 3월 23일 상달까지 시외버스가 개통되었고, 1982년(원기67) 중길교당을 건축하고 전화를 가설하였다. 이 해에 훈련관을 신축하고, 규모는 법당 195㎡, 생활관 271㎡, 훈련관 232㎡, 수련관 198㎡이다. 1983년(원기68)에 훈련원의 면모를 갖추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후 예비교역자 전지훈련 등 동, 하선으로 만덕산 초선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1990년(원기75)에는 동선과 마찬가지로 하선 훈련을 시작하였다. 만덕산농원은 표고버섯을 비롯하여 각종 자연식품을 생산하여 오다가 최근 영농법인을 설립하여 만덕산 푸른생명 효소 등 많은 다양한 건강식품을 개발하여 시판하고 있다. 이와 연대하여 1999년부터 효소 크리닉센터(酵素禪院)를 열어 효소 단식을 통한 건강회복이 성공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 많은 수련생이 다녀갔다.
역대원장은 양제승(梁濟乘: 承鉉), 정도중(鄭道中), 김효명(金曉明), 이양신(李良信), 양태홍, 전흥진, 고원주 등이다. 만덕산훈련원에서 배출된 교역자는 김서학(金瑞鶴: 吉萬), 이성원(李聖圓: 建平), 윤상원(尹常原: 宗基), 이진도(李眞道: 敬淑) 등이 있다. →원불교
《참고문헌》원불교 전북교구(http://www.wonjb.or.kr/), 만덕산훈련원(http://cafe.daum.net/md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