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1872. 조선 후기 문신. 마령면 원동촌마을의 입향조. 자는 달문(達文), 호는 동강(東崗). 초명은 흠규(欽奎). 강회중(姜淮中)의 후손이다. 증조는 강우제(姜遇濟)이고 조부는 강주환(姜周煥)이며, 부친은 강재성(姜在成)이다. 아들은 통덕랑 강제한(濟漢)이며, 손자는 강인형(寅馨), 강봉형(鳳馨) 등이다. 1862년 3월 10일의 경과(慶科) 정시(廷試)의 문과에 급제한 후 이듬해 부정(副正)에 제수된 뒤로 저작(著作) 봉상시 참봉(奉常寺叅奉) 향실관(香室官)을 역임하였다. 1864년에 조봉대부 행 오수도 찰방이 되어 임기를 마친 후 1867년에 통훈대부 행 병조좌랑 어모장군(禦侮將軍) 겸 사헌부 장령 교서관 교리(校書館校理)를 지냈다. 헌종 때 전라북도 금산에서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원동촌마을에 와서 살았다. 성근묵(成近默)·성수묵(成遂默)·정시용(鄭始容)·정윤용(鄭允容)·정정현(鄭鼎鉉)·신석수(申錫壽)·김계수(金啓洙) 등과의 교분이 두터웠고, 친구의 자제 중에는 강문규에게 사사한 사람이 많았다. 경미한 병으로 갑자기 죽자 유림에서 애석하게 여겼다. 저술로는 『농려집(農廬集)』이 있다. 강봉형이 묘갈문을 짓고, 이도복(李道復)이 찬한 유허비명(遺墟碑銘)이 있다. 《참고문헌》『강문규 유허비명』,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진안군 향토문화백과사전』(진안문화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