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지역의 주요 체육단체로 진안군체육회가 있다. 진안군체육회는 1962년 2월 10일 군수 김영순을 초대 회장으로 창립하였다. 창립 이후 진안군에서 실시되는 각종 체육행사와 군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정부의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으로 진안군에서도 생활체육을 담당할 진안군 생활체육협의회를 2006년 6월 10일 양동식을 초대 회장으로 창립하였다. 진안군 체육진흥을 위해 두 기관이 활동하던 중 2007년 2월 27일 군수 송영선을 초대 회장으로 체육회와 생활체육회가 통합하여 지금의 진안군통합체육회가 만들어졌다. 진안군통합체육회 직원은 사무국장 1명, 체육팀장 1명, 지도자 6명으로 구성되었다. 지도자들은 테니스, 수영, 에어로빅, 요가, 배구, 게이트볼 등을 지도하고 있다. 통합체육회의 목적은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으로 군민들의 건강과 건전한 여가 생활, 명랑하고 풍요로운 진안군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진안군 각 읍면에 다양한 체육시설이 있다. 체육시설은 56개로 체육관 1개, 공설운동장 1개, 축구장 7개, 게이트볼장 17개, 탁구장 1개, 족구장 4개, 배구장 11개, 파크 골프장 1개, 골프장 1개, 야구장 1개, 농구장 1개. 당구장 3개, 수영장 1개, 헬스장 1개, 에어로빅장 1개, 테니스장 4개의 체육 시설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귀면에 위치한 동전주써미트 컨트리 클럽[대중제 27홀], 부귀면 체련공원[면적 7,091㎡], 상전면 체련공원[족구장, 축구장], 용담면 체련공원[실내 체육관 1동, 잔디구장], 성수면 체련공원, 성수면 용포리 야구장[90×90m 1면, 70×70m 1면] 안천면 스포츠 파크[전천후 게이트볼장, 잔디구장], 주천면 체련공원[도화동산, 잔디구장], 정천면 체련공원[잔디구장], 진안읍 공설운동장[400m 육상 트랙 8레인, 축구 인조 잔디,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국민체육센터[헬스장, 에어로빅, 수영장, 2013년 개관], 진안 문예체육회관[관람석 1,500석] 등 체육활동 및 대회개최에 필요한 체육시설이 있다. 진안군 통합체육회는 많은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체육 관련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진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체육행사로는 매년 10월 12일 개최되는 군민의 날이 대표적이다. 2013년 51회를 맞은 군민의 날은 읍면 대항 체육대회로 진안군에서 가장 큰 체육행사이다. 진안군에서 개최되는 대회로는 2,000명이 참가하는 진안홍삼배 전국남녀배구대회, 진안홍삼배 전국배드민턴대회[1,500명], 마이산컵 전국탁구대회[1,000명], 전북일보사 전국마라톤대회[2,000명], 전국시니어배구대회[500명], 진안홍삼배 전국파크골프대회[300명], 진안홍삼배 KBL총재 전국어린이농구대회 등이 있다. 진안군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 역도 선수 전병관의 출신지이다. 또 현역 선수로는 2016년 리우 패럴림픽 여자 육상 T36 200m 에서 31초06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한 전민재가 있다.
  • 진안의 고지도 鎭安-古地圖 이 누리집에는 광여도, 대동여지도, 비변사지도, 전라도지도. 해동지도 등이 표제항목으로 실려 있다.
    진안의 옛 행정단위 [鎭安古行政單位] 이 누리집에는 다음의 옛 행정단위들이 표제항목으로 실려 있다. 군내면1, 군내면2, 남면1, 남면2, 내면, 동면, 두미면, 북면, 삼북면, 상도면, 서면, 여면, 외면, 읍내면1, 읍내면2, 이남면, 이동면1, 이동면2, 이북면1, 이북면2, 이서면1, 이서면2, 일남면, 일동면1, 일동면2, 일북면1, 일북면2, 일서면1, 일서면2, 탄전면, 하도면,
    진안의 마을 이 누리집에는 군내 전 마을들이 [지명]에 실려 있고, 자세한 내용은 소속된 법정리(法定里)에 실려 있다.
    【진안의 산】 이 누리집에는 진안군내 모든 산들이 [산천·지명]에 실려 있다.
    【진안의 고개(재)】 이 누리집에는 진안군내 모든 고개(재)들이 [산천·지명에 실려 있다.
    진안의 하천 鎭安-河川 이 누리집에는 다음의 하천들이 표제항목으로 실려 있다. <하천대장> 구량천, 구신천, 금강, 내동천, 내오천, 달길천, 도통천, 마조천, 마치천, 무릉천, 방화천, 백운동천, 상노천, 상림천, 상표천, 섬진강, 세동천, 수침천, 신전천, 신지천, 안정천, 양악천, 외궁천, 용덕천, 우동천, 월포천, 은천, 정곡천, 정자천, 주자천, 진안천, 추동천, 하신천, 호암천, 화성천, 황금천, 회초천, 후사동천. <기타> 남양강, 동천, 머우내, 모둠내, 무예천, 백마천, 상촌천, 서천, 소연천, 소축천, 소탄, 수성천, 신정천, 안자천, 연장천, 예내, 예천, 오원천, 원천, 이천, 작은내, 적근천, 제룡강, 천천, 학선천, 학천, 합수내.
    【문화재·유물·유적】 진안지방에는 다음 <표>와 같은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고, 기타 유물·유적들이 있다. 각 항목과 소항목은 모두 이 누리집 [문화유산·인명]에 실려 있다.
    문화 유산
    문묘 文廟 진안향교, 용담향교.
    누정 樓亭 <현존>개안정, 경우정, 고무정, 관선당, 기우정, 만취정, 명마대, 모운정, 수선루, 쌍계정, 쌍벽루, 영모정, 영풍정, 와룡암, 우화정, 추양정, 충목정, 태고정, 하정각, 학남정, 형남정. <폐정>구은정, 군자정, 냉냉대, 능허각, 대선루, 만회정, 매산정, 명월당, 백운정, 삼우당, 성심정, 수각, 영파정, 구은정, 용호정, 이락정, 이수정, 주홀헌, 청풍각, 탁사당, 풍호정, 하추정, 환벽정.
    사우 祠宇 구산사, 내산사, 단군전, 숭모사, 영계사, 영산사, 오현사, 옥천사, 용계사, 이산묘, 주천서원, 지선당, 청덕사, 충렬사, 충절사, 충효사, 화산서원, 화천사.
    재실 齋室 경모재, 경모재, 광국재, 덕산재, 명덕재, 백운재, 봉서재, 사존재, 수승재, 숭조재, 승유재, 영모재, 영모재, 영사재, 영사재, 영성재, 원모재, 저존재, 지덕재.
    서당 書堂 관선당·도장각·와룡암·완월루, 이화당·지선당, 경수재, 문회당, 육영재, 일경재, 일신당, 저존재, 학륜당, 흥학당
    비 碑 강창오현비, 김영덕 순의비, 김용섭 기공비, 김정균 불망비, 김해김씨 열녀비, 대불 초등학교 비석군, 두곡 비석군, 류은장구 지소, 재인용 최양 선생 유허비, 먹고개 비석군, 백남호 불망비, 백세 공명기, 삼우동비, 서흥 김공 기적비, 시동 비석군, 신연 비석군, 십일 거사 기념비, 안자동 비석군, 안천 면사무소 앞 비석군, 우화정 비석군, 운암 비석군, 윤치호 시혜비, 윤치호 흥학비, 융희 황제 추모비, 장기호 불망비, 전참봉 기적비, 정병율 공덕비, 진등 비석군, 창촌 비석군, 태고정 비석군, 현감 이익응 선정비, 현감 이익응 영세 불망비, 현감 이중익 불망비, 현감 정기춘 불망비.
    【송덕비】 남계훈 영세 불망비, 이민항 영세 불망비, 유원규 영세 불망비, 이광덕 영세 불망비, 이복신 영세 불망비, 이익응 영세 불망비, 이중익 영세 불망비, 임정수 영세 불망비, 정기춘 휼민 불망비, 조병섭 영세 불망비, 홍원섭 영세 불망비, 서상정 영세 불망비, 민달용 영세 불망비, 정철모 선정비, 임희진 영세 불망비, 신태동 휼민 선정비, 윤추 선정비, 이승소 청백 선정비, 정한규 청덕 애민 선정비, 홍원섭 방폐 선정비.
    【유허비】 만륙 최양 선생 유허비, 영계사 유허비, 신영구 유허비, 양하룡 유허비, 정상호 유허비.
    【효자·열녀비】 김상현 정려비, 김학배·종관·봉배 정려비, 박리풍 정려비, 분성 김씨 정려비, 성석태·필원 효자문, 손동현 정려비, 수원 백공 효려, 신의련 효자각, 오성복·오빈 정려각, 이난향비, 장향풍 효자문, 정재효 정려비, 황민찬 정려비.
    【사적비】 삼천서원 묘정비, 대한광복기념비, 호남의병창의동맹단 결성지비, 대한의백비, 윤치호흥학비, 오기열기적비, 전영상 항일독립운동 기적비.
    절 [寺刹] <현존>고림사, 구암사, 금당사, 남암사, 마이사, 보흥사, 수신사, 심원사, 약수암, 옥천암, 은선암, 은수사, 천황사, 천황암, 탑사. <폐사>광덕암, 광명암, 나옹암, 내원사, 미적사, 반룡사, 봉선암, 상원사, 상원암, 쇄석암, 쇄암사, 수행굴, 숭암사, 심원사, 안장사, 정명암, 중대사, 혈암사.
    절터 [寺址] [문화유산·인명] ‘절터’ 참조.
    석탑 石塔 [문화유산·인명] ‘석탑’ 참조.
    산성 山城 [문화유산·인명] ‘산성’ 참조.
    봉수대 烽燧臺 [문화유산·인명] ‘봉수 제도’ 참조.
    고인돌 [支石墓] [문화유산·인명] ‘고인돌’ 참조.
    선돌 [立石] 갈룡리 새터 입석, 괴목정 입석, 괴정 입석, 구암리 입석, 대불리 새터입석, 머리실 입석, 모실입석, 상향 입석, 원노촌 입석, 원장리 입석, 지사 입석.
    역참 驛站 단령역, 달계역.
    도요지 陶窯址 [문화유산·인명] ‘도요지’ 참조.
    원 院 가정원, 구라원, 남원, 대벌원, 동원, 백암원, 삼기원, 송현원, 영천원, 요광원, 율현원, 이전원, 좌산원, 초천원.
    전설·설화 傳說說話 [문화유산·인명] ‘구비 전승’ 참조.
    민요 民謠 [문화유산·인명] ‘민요’ 참조.
    진안의 종교단체 鎭安-宗敎團體 다음 쪽 <표, 진안의 종교단체> 참조. 각 교파 및 사찰·교회·교당 등은 [문화유산·인명]에 실려 있다.
    【진안의 역대 현령·현감·군수·국회의원】 진안군은 본디 진안현과 용담현 지역이었으므로 진안현감과 용담현령을 두었다가 1895년(고종 32) 현이 군으로 되면서 군수가 되었다. 이후 1914년 용담군이 진안군으로 흡수 통합되므로 진안군수만 있게 되었다. 수령 명부는 선생안(先生案)이라 하여 읍지 또는 군지에 실려있는데 그간 오탈락이 심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동학 등 난리와 국정의 난맥으로 더욱 심하였다. 한편 일제 강점기 때의 군수들은 상당 부분 누락되고 그나마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진안현·용담현의 현감과 현령 그리고 군수, 국회의원 명단은 본항목 [문화유산·인명]편에 실려있다.
  • 진안군의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관련 시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수상 교통·항공 교통으로 나누어지고, 육상 교통은 다시 도로 교통·자동차 교통·철도 교통 등으로 나누어진다. 교통의 발달은 정치 중심지를 핵으로 하여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과 지세의 복잡성은 교통로 발달을 저해하였고, 교통로의 미발달은 지역 간 문화적 차이는 물론, 생활권·언어권 등의 폐쇄성을 낳아 오랫동안 전통적 유습을 지속시킨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진안 지역 역시 산간 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교통의 발달이 늦었다. 오래 전 역참(驛站)은 전통 시대에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으로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와 외국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이다. 진안현에는 단령역(丹岺驛)이 있었고, 용담현에는 달계역(達溪驛)이 있었다고 전한다. 원(院)은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관원들이 도중에 휴식을 하거나 숙식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설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요식·숙박업이 발달하지 못하였기에 원을 설치하여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였다. 진안 지역에서 전주 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곰티재 부근의 덕봉마을 앞에 요광원(要光院)이 있었고, 장수 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율현원(栗峴院)이 있었다. 진안 지역에서 용담 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대목재 너머의 초천원(草川院)과 정천 지역의 이전원(里田院)이 있었고, 용담 지역에서 금산 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솔치재 아래에 송현원(松峴院)이 있었다. 용담 지역에서 전주 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원월평 서쪽에 강유원(康乳院)이 있었고, 진안 지역에서 임실 지역으로 가는 길에는 지금의 마령면에 영천원(穎川院)과 삼기원(三岐院), 백운면에 백암원(白岩院), 성수면 좌산리에 좌산원(左山院), 주천면 대불리에는 대벌원(大伐院)이 있었고, 동향면에는 구라원(九羅院) 또는 행원(杏院)이 있었다. 진안읍에는 남원(南院)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원의 폐해가 심해지면서 점차 사라지고 주막 또는 주점이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나루 역시 교통수단이었다. 길을 가다 하천을 만나면 얕은 하천은 발을 걷고 건너거나 징검다리를 놓아 건넜고, 통행이 빈번한 하천에는 주민들이 협력하여 섶다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깊고 넓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해야 했으며 따라서 나루가 형성되었다. 진안 지역에는 월포강 나루·반룡강 나루·구곡진 나루·성남강 나루가 있었다. 근대 이전의 도로는 대로·중로·소로로 구별하여 나라에서 관리하였다. 도로를 훼손하는 경우는 국법으로 엄히 다스렸다. 옛 지도책을 보면 진안현에서는 전주 간 곰티[웅치]·장수 간 방골재[율치]·용담 간 대목재·임실 간 금당치가 대로로 분류되었고, 나머지 길은 소로였다. 용담현에서는 금산 간 솔재[송치]·무주 간 밤고개[율현]·진안 간 대목재가 대로에 속하였다. 주요 지역을 연결하던 옛길로는 곰티재와 적내재, 진안읍에서 서울로 가는 길과 황새목재, 진안읍에서 장수 지역으로 가는 길과 밤골재, 진안 지역에서 임실 지역으로 가는 길과 금당치, 백운·성수·마령 지역에서 전주로 가는 길, 백운·성수·마령 지역에서 임실로 가는 길, 백운·성수·마령 지역에서 장수로 가는 길, 용담현에서 전주·진안 지역으로 가는 길, 용담 지역에서 금산·서울로 가는 길, 용담 지역에서 무주 지역으로 가는 길, 주천 지역의 길 등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적으로 신작로가 개설되기 시작하였다. 진안군의 도로 개설에 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연도는 알기 어렵지만, 전주-진안 간 간선 도로는 전국적으로 신작로를 개설하기 시작한 1912년대에 착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에 전주-진안 간 대중 자동차의 운행은 1일 4회 이루어졌다. 이 중 전주-관촌-진안 간 노선이 하루 3편, 곰티재 구간을 통과하는 전주-화심-곰티재-진안은 하루 1편이 운행되었다. 이로 보아 전주와 진안을 잇는 주요도로는 곰티재를 통과하는 노선이 아닌 전주-관촌-진안 노선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곰티재 노선이 경사와 굽이가 험하여 당시의 차량 성능으로 운행하기에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곰티재 노선보다는 전주-신리-관촌-마령-진안 노선이 더 많은 이용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운행 편수의 차이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동시에 도로를 개설하여 교량까지는 미처 개설되지 못하였다. 때문에 홍수기에는 자동차가 운행되지 못하였다. 교량은 1930년대 들어서야 집중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진안군의 도로망은 매우 잘 구축되어 있다. 익산-포항 간 고속 도로가 진안읍을 경유하고, 국도 26호선은 전주-진안-장수 간을, 국도 30호선은 임실-진안-무주를, 국도 13호선은 장수-동향-금산을 연결한다. 국가지원지방도 49호선은 임실-성수-마령-부귀-정천-상전-동향-무주 안성을 잇는 길이며, 국가지원지방도 55호선은 완주 동상-주천-금산을 잇는 길이다. 지방도 635호선은 장수 계북-동향-금산을 연결하고, 지방도 721호선은 임실 관촌-성수-완주 상관을 연결하고, 지방도 742호선은 임실 관촌-성수-백운-장수를 연결하고, 지방도 745호선은 임실 관촌-성수-부귀 신정을 연결하고, 지방도 725호선[정천-주천]과 지방도 726호선[백운-용담], 지방도 795호선[진안-송풍]은 군내를 연결한다. 2013년 현재 진안군 지역의 도로를 연결하는 교량은 농촌 도로, 시가지 도로를 제외하고 175곳이 있다. 익산-포항 고속 도로에 17곳, 국도 13호선에 4곳, 국도 26호선에 16곳, 국도 30호선에 12곳이 있다. 국가 지원 지방도 49호선에는 25곳,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에는 9곳이 있다. 지방도 635호선에 1곳, 지방도 721호선에 2곳, 지방도 725호선에 5곳, 지방도 726호선에 1곳, 지방도 742호선에 1곳, 지방도 745호선에 7곳, 지방도 795호선에 12곳이 있다. 군도에는 63곳이 있다. 진안군 관내의 터널은 2013년 현재 11곳이 있다. 익산-포항 간 고속 도로에는 곰티1터널·곰티2터널·부귀1터널·부귀2터널·진안1터널·진안2터널·진안3터널·방곡터널이 있다. 국도 30호선에는 수동터널·불로치터널이 있고, 지방도 745호선에는 좌포터널이 있으며, 군도 28호선에는 모래재터널이 있다. 그밖의 교통 시설로 익산-포항 간 고속 도로의 진안 나들목은 진안읍 반월리에 있다. 주차장은 2012년 기준으로 281곳으로, 총면적 8,182㎡가 확보되어 있다. 교통 수단으로서 자동차 보유 대수는 2016년 말 기준으로 총 13,090대로, 관용차 806대, 자가용 12,706대, 영업용 차 192대이다. 이 중 승용차가 7,858대[관용 61대·자가용 7,757대·영업용 40대]이고, 승합차는 592대[관용 46대·자가용 477대·영업용 69대]이다. 화물차는 총 4,598대[관용 79대·자가용 4,442대·영업용 77대]이고 특수차는 42대[관용 6대·자가용 30대·영업용 6대]이며 이륜 자동차는 1,609대[관용 49대·자가용 1,560대]이다. 자동차 업종별로는 시내버스가 40대, 택시가 42대, 전세 버스가 12대이고, 화물 영업차는 86대이다.
  • 우리나라는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고 문호를 개방하게 됨에 따라 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진안 지역에도 이러한 인식들과 함께 신교육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신교육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루어진 근대 교육은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갑오개혁과 조선 교육령 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교육은 예전 양반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우리글을 중심으로 한 교과목 교육과 관학에 못지않은 사학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진안에서 근대 학교의 시작은 1907년 4월 진안 향교에 설립된 사립 진안문명학교로서 1908년 6월 최초로 세워진 근대 학교였다. 교육 과목은 한문, 조선어, 작문, 습자(習字), 일본어 등이었다. 7, 8년간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학생들이 17, 18세에 입학하여 3년간 배우고 졸업하였다. 1908년 5월 용담 향교에 세워진 사립 용강학교는 1911년 7월 용담보통학교로 바뀌었다가 1912년 공립 보통학교에 인수되었다. 1908년 설립하여 1910년에 정식 인가를 받은 사립 화동학교는 배일사상과 도의정신(道義精神)의 함양, 향약(鄕約)의 실천에 힘썼다. 사립 화동학교의 이러한 배일사상 교육은 1919년 7월 주천 공립 보통학교에 폐합되기까지 진안 지역의 3·1 운동과 항일 운동의 바탕이 되었다. 이후 1910년 어은동 사립 보통학교, 1911년 진안 공립 보통학교, 1912년 용담 공립 보통학교, 1914년 진안 공립 소학교, 1919년 주천 공립 보통학교, 1920년 사립 마령 보통학교[1922년 마령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 1921년 사립 정천 동강학교[1923년 정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중 네 번에 걸친 교육 개정과 “1면 1교의 공립 보통학교 설립, ‘실업훈련 주의’로 돌아가 근로주의적 교육 강화, ‘황국신민’ 교육 강요”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 교육령’ 시대로 들어서면서 1920년에서 1930년대까지 영천 사립 보통학교[1925년 영천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 동향 사립 동명의숙, 백운 공립 보통학교, 부귀 공립 보통학교, 동향 공립 보통학교, 한들 사립 해성학교, 외인 공립 보통학교, 상전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40년대에 들어 한들 사립 보통학교를 모체로 연장 공립 국민학교가 1943년에 설립되었고, 1944년 좌포 공립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어려운 경제 사정 등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지역 근대화 교육에 앞장서 온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진안 지역의 근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 교육은 진안 지역의 3·1 운동과 항일 운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지역민의 결속과 단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진안군 주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 및 증진하기 위해 행하는 제반 활동. 【공중 보건 제도와 보건소우리나라에서 공중 보건에 관한 인식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미 군정기였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 오물 소제령’이 공포되었으나, 경찰의 관장 아래에서 조선 사회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4일 위생국이 생기고 이것이 1946년에 보건후생부로 전환되었다. 1962년 ‘보건소법’이 공포되고 ‘위생·공해·방역·모자보건·의료보험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체계화된 공중 보건 제도가 틀을 갖추게 되었다. 1956년 ‘시도립보건소법’이 제정되고, 1962년 9월 24일 보건소법 개정에 의하여 시도립보건소가 시군 보건소로 개편되어 군 단위에서 공중 보건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이를 기초로 1963년 진안군에 보건소가 설치되었다. 진안읍 군하리 136-6번지에 설립된 보건소의 정원은 5명이었는데, 의사 1명, 간호사 2명, 위생요원 1명, 사무직 1명이었다. 이후 각 면에 차례로 보건지소가 설치되어, 1986년에 용담, 백운, 정천, 주천면에 보건지소가 설치되면서 10개 면 모두에 보건지소가 설치되었다. 면 보건지소의 설치 연월일은 다음과 같다. 진안군 보건소[1963년], 성수면 보건지소[1971. 11. 24], 안천면 보건지소[1978. 3. 15], 부귀면 보건지소[1982. 6. 25], 마령면 보건지소[1984], 동향면 보건지소[1985], 상전면 보건지소[1985], 용담면 보건지소 [1986], 백운면 보건지소[1986], 정천면 보건지소[1986], 주천면 보건지소[1986]이다. 1980년대 들어와 벽지·오지에는 보건진료소가 설치되었는데, 1983년에는 동향면 능금리 등 4개소, 1984년에는 백운면 반송리 등 5개소, 1986년에는 용담면 송풍리 등 4개소, 1987년에는 상전면 용평리 등 2개소에 설치되었다. 이렇게 진안군에는 10개의 보건지소와 15개의 보건진료소가 갖추어졌다. 2013년 12월 현재는 진안읍 가막리, 용담면 송풍리, 정천면 모정리의 보건진료소가 운영을 중단하여, 12개의 보건진료소가 운영 중이다. 한편 1982년 12월 13일에 진안읍 군상리에 모자 보건센터가 개원하였고, 1985년 12월부터는 모자 보건센터에 분만실이 설치 운영되었다.
  • 진안군에서는 1930년 무렵에 진안병원이 개원하여 1950년대까지 군내의 유일한 병원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민의원, 덕수의원, 해성의원, 진안의원 등이 개원하였다가 운영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는 구세의원, 박애의원, 제일의원, 동부병원, 문치과의원, 장생한의원, 최종관한의원 등이 개업하였다. 2016년 현재는 진안군의료원, 구세의원, 김홍기가정의학과 의원, 송외과의원, 평화의원, 마이정형외과의원, 진안의원, 우리가정의학과의원, 김진호내과의원, 진안연세안과의원, 마령가정의학과의원 등 병원 1개소, 의원 12개소, 치과의원 4개소, 한의원 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민간 의료기관은 모두 진안읍에 집중되어 있으며, 10개 면 중에서는 마령면에만 마령가정의학과의원과 한의원 한 곳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한편 2016년 현재 진안군 내에는 병의원 13개소에 의사 27명, 치과의원 4개소에 치과의사 5명, 한의원 4개소에 한의사 4명, 그리고 약국 8개소에 약사 9명이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다. 2016년 현재 병의원의 총 병상 수는 293개이다.
  • 진안군의 중학교 교육은 해방 이후 3학급으로 개교한 진안중학교를 시작으로 지금의 중등 보통교육의 성격을 가지는 학교들이 인가 설립되었다. 사립학교는 없으며 공립학교만 10곳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 들어 학생 수의 감소와 지역의 특성에 따라 운영 학급의 감소와 초·중·고의 통합 운영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진안지역의 중학교 설립은 근명학원·진안중학원을 모체로 1949년 8월에 인가되어 9월에 개교한 진안중학교로부터 시작되었다. 1954년 5월 마령중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57년 5월 용담중학교가 3학급 인가로 개교하였다. 이후 1970년 3월에 진안여자중학교가 천주교 가교실에서 2학급 수업을 시작으로 개교하였으며, 1953년 설립된 주천고등공민학교[사립]를 모체로 하여 1970년 3월 주천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71년 3월 부귀중학교, 1972년 3월 진성중학교, 1973년 3월 백운중학교, 1973년 3월 동향중학교가 각기 설립되었다. 1999년 안천 초·중·고로 통합된 안천중학교는 1925년 9월 안천공립보통학교로 시작하였다. 2013년 3월 현재 진안군에는 남자 중학교인 진안중학교, 여자 중학교인 진안여자중학교, 남녀 공학 중학교인 동향중학교, 마령중학교, 백운중학교, 부귀중학교, 안천중학교, 용담중학교, 주천중학교, 진성중학교 등 총 10개의 공립 중학교가 있으며 사립 중학교는 없다. 총학급 수는 38개이며 총학생수는 542명에 이른다. 또한 104명의 교원과 25명의 일반·기능직 인원이 재직하고 있다.
  •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진안군은 남동쪽의 장수군, 북동쪽의 무주군, 서쪽의 완주군, 남서쪽의 임실군, 북쪽의 금산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면적 789.07㎢, 인구는 12,654세대 26,398명(2016년 현재)이다. 

    1개 읍 10면 77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진안읍 중앙로 67[군하리 97-4]이다. 

    군의 꽃은 ‘철쭉’,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비둘기’로 각각 지정되었다. 


  • 진안군의 이미지를 압축한 심볼 마크. 용담호 물을 배경으로 마이산과 마이산에서 발원하는 금강, 섬진강을 형상화하고 힘차게 그린 필력은 진안군의 진취적인 기상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 진안문학의 대상 범위는 진안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문학활동을 했던 작가, 진안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진안을 배경으로 한 문학, 진안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진안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진안문학은 역사적으로 고려 이규보(李奎報, 1168~1241)에서 시작되었다. 이규보가 전주에서 지방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틈틈이 전라도 지방을 여행했는데, 마령, 진안을 여행하면서 마령 객사에 유숙할 때 지은 2편의 ‘진안 관련 시’(1199년)가 『동국이상국집』에 남아 있다. 이규보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안문학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대 한시문학】 먼저 고려 말엽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南行月日記’에 “마령, 진안은 산곡간의 옛 고을이라 그 백성들이 질박하고 미개하여”라는 구절에서 ‘진안’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동국이상국집』권 9에 진안 관련 시 2편을 남겼다. 한 편은 마령 객사에서 유숙할 때 중대당두(重臺堂頭)가 술을 가지고 와서 지어준 시이고, 다른 한 편은 금당사(金塘寺)의 당두고사(堂頭枯師)를 찾아가는 시이다. 이는 이규보가 1199년 6월에 전주목사록 겸 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로 부임하여 그해 11월 20일에 전주 속군인 진안을 여행하면서 쓴 것이다. 마령객사에서 유숙하면서 쓴 시는 아전을 ‘원숭이 모습’이라고 표현해서 아전을 폄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기록에 보이는 진안 관련 첫 시이다. 왕명에 의하여 이행(李荇), 윤은보(尹殷輔) 등이 펴낸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윤소종(尹紹宗), 김극기(金克己)를 비롯한 열 사람의 진안 관련 시가 실려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국을 도·군별로 조목에 따라 서술하고, 지방사회의 연혁, 성씨, 묘사(廟社), 풍속, 관부(官府), 토산, 인물 등 모든 면에 걸쳐 실은 백과사전식 서적인데, 이 책의 ‘진안현’이나 ‘용담현’조에 진안 관련 시가 실려 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궁벽한 땅, 순박한 백성, 마이산을 비롯한 진안의 아름다운 자연의 형상 등을 노래하고 있다. 이후 인조 때 문신 조찬한(趙纘韓, 1572~1631) 일가가 진안 형승을 노래한 시와 기(記)가 있고, 진안 용담 태고정(太古亭)에 대해서 쓴 기(記), 시, 서(序)가 있는데 우암 송시열의 ‘용담태고정기’를 비롯하여 이명한, 김창흡 등의 시가 『진안지』에 실려 있다. 이들은 모두 타 지역 출신으로 진안 관련 글을 남겼다. 한편 진안지역인의 진안 시로는 임타(林㙐, 1593~1664)와 그의 후손들의 시, 전동흘(全東屹)·김중정(金重鼎), 담락당(湛樂堂) 하립(河昱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 부부의 시가 있다. 임타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한양에서 벼슬을 그만두고 용담현 와은리(상전면 용평리 평은마을, 수몰)로 아들 4형제와 함께 이주하였다. 이후 아들 4형제 후손이 진안 조림리와 와은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면서 진안에 대한 시들을 읊었다. 긍구당 김중정(金重鼎, 1602~1689)은 1632년(인조 14) 조청(朝淸)전쟁이 일어나 왕이 항복하자 그 이듬해인 1637년 척화(斥和)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조부 김충립(金忠立)을 따라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버리고 진안군 주천면에 들어왔다. 이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긍구당유고』와 한시 114수를 남겼다. 가재 전동흘(全東屹, 1610~1705)은 조선후기의 무신으로 진안읍 가림리에서 태어났으며, 유명한 『장화홍련전』을 남겼다. 삼의당 김씨(1769~1823)는 조선 후기 여류 문학가로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삼의당 김씨 부부는 1801년 남원에서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마령면에서 여생을 마쳤는데, 부부가 서로 주고받은 시들과 삼의당의 시들이 전한다. 삼의당 김부인의 유고는 『삼의당 김부인 유고』(이월영 역, 2004)로 번역 출간되었다. 【근대 이후 현대의 한시와 가사문학 : 조선 말기~ 1950년】 이 시기의 한시 문학은 언어의 조탁(彫琢)이 두드러지고 국가의식이 짙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음독 자결한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진안 출신은 아니지만 진안군 마령면 원평지마을 앞에 있는 ‘쌍계정’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병항(李秉恒, 1861~1946)은 『정은집』 5권을 남겼는데 진안의 정자, 자연승경을 소재로 지은 시가 많다. 정종엽(鄭鐘燁, 1885~1940)은 『수당유고』를 남겼는데 이도복(李道復, 1862-1938)에 대한 시 2편을 포함하여 126수의 한시가 있다. 허명렬(許明烈, 1897~?), 김규태(金圭泰, 1905~1977)의 시도 진안문학에 주요한 바탕이 되었다. 이도복(李道復)의 ‘이산구곡가(←駬山九曲歌)’는 진안 마령면 동촌리 이산정사(이산묘)에서 진안 마이산을 둘러싼 승경을 읊은 창작 가사이다. 마이산의 승경 속에서 우회적으로 우국충절을 노래한 가사로 유명하다. 그 외에 1924년 발행된 『진안지』에 지역 문인들의 시문이 다수 실려 있다. 【현대의 진안 문학】 1920년 한국 현대문학의 출발과 함께 본격적인 한글세대 문학이 주체가 되었는데 진안문학도 한글문학으로 바뀌고, 장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 시조, 소설, 수필, 문학평론, 아동문학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문인들은 다음과 같다. 시인으로 최민순, 허소라, 한승헌, 이운룡, 전승묵, 전덕기, 이세일, 전한상, 안현심, 이소주, 김이하, 김사강, 정상기, 임우성, 문학인, 구연배, 전병윤, 박인숙, 김성열, 김영하 등이 있다. 시조시인으로 박병순, 김환식, 박영우, 박부산, 김기석, 최정수, 전영주, 이용진, 정형기 등이 있고, 수필가로 송화영, 남궁선순, 신용일, 송영자, 송영수, 임억규 등이 있다. 소설가로는 김종록, 송준호, 김병용, 정연의 등이 있고, 아동문학가로는 허호석, 강만영, 손석배, 이지원, 전형무, 한일남, 최일걸 등이 있으며, 희곡작가로는 곽병창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진안지역 출신이지만 대부분 타 지역에 살면서 등단하여 활동하는 문인들이다. 시인 이운룡의 경우는 현재 전북문학관장이며 『산새의 집에는 창이 없다』(2006) 이후 최근 『어안을 읽다』(2013)를 출간하였다. 시조시인 구름재 박병순(朴炳淳, 1917~2008)은 부귀면 세동리 적내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최근에 박병순의 생가를 복원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소설가 김병용은 『길 위의 풍경』(2009)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의 데미샘’을 아름다운 필치로 소개하였고 희곡작가 곽병창은 용담 수몰지역을 배경으로 ‘꿈꾸는 슈퍼맨’(2008)이라는 작품을 공연하기도 했다. 아동문학가 허호석(1937~ )은 “동심으로 자연과 사물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은유 속에 우주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타 지역 문인이지만 진안의 아름다운 산수 자연을 시화한 문인으로는 1920년대의 김해강을 비롯하여 이은상, 이기반, 최종규, 권진희, 진병주, 송희철, 송기섭, 송희, 심옥남, 이재숙, 이우만, 김정웅, 문인수, 신화금 등도 주목할 만하다. 【문학단체 및 문학상】 1992년 5월 10일 창립되었던 ‘진안문학회’가 2000년 5월 12일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로 변경 인가되었다. 이 단체의 전신인 진안문학회는 1992년 5월 10일 최진성을 대표로 설립되었고, 이후 송화영, 문학인이 회장을 역임하였다.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로 변경된 후 전병윤이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김예성, 남궁선순, 송영수, 김재환을 거쳐 2016년 전근표가 회장직에 있다. 진안문학회 태동 이후 『진안문학』이 1년에 한 번씩 발행되는데, 진안문협 회원들의 시와 산문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진안문학상’을 제정하여 성실하게 문인의 길을 걷는 문학가에게 수여하고 있다. 진안문학상은 지난 2003년 문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고 최인순을 기리기 위해서 고인이 딸인 김영화에 의해 제정된 상이다.
  • 진안 지역의 고등학교는 1956년 3월 진안농업고등학교가 진안중학교와 병설로 설립된 것이 시초이다. 1973년 3월 진안종합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81년 3월 진안중학교와 분리되어 9월 진안고등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91년 10월 진안공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1981년 9학급으로 설립 개교한 진안여자고등학교는 1992년 3월 학교를 진안여자중학교와 바꾸고 진안제일고등학교로 개편하였다. 1972년 3월 개교한 마령고등학교는 1988년 9월 마령중학교와 마령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1999년 안천초·중·고등학교로 통합된 안천고등학교는 1971년 1월 안천고등학교 6학급 남녀 공학으로 개교하였다. 진안군 유일한 사립 특성화 학교인 한국한방고등학교는 2009년 9월 특성화 지정 학교로 6학급 150명으로 개교하였다. 2013년 3월 현재 진안군에는 일반계 고등학교인 마령고등학교, 안천고등학교, 진안제일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인 진안공업고등학교, 특성화 지정 사립 고등학교인 한국한방고등학교 등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 진안군의 위도와 경도는 북위 35° 49′ 57″~35° 99′ 15″, 동경 127° 16′ 30″~127° 37′ 80″, 동서 길이는 27.3㎞, 남북 길이는 45.4㎞이고 면적은 789㎢이다. 한반도에서 서해안에 접한 전라북도 내륙에 있는 진안군은 기온의 연교차가 비교적 큰 대륙성 기후의 특색을 보인다. 진안군은 노령산맥이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진안고원에 위치하며 북류하는 금강과 남류하는 섬진강으로 수계가 나뉜다. 

    • 홍삼 캐릭터 빠망

    말은 마이산을 상징하며, 건강과 활력을 주는 요소로 진안홍삼의 우수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음.
    “말=마이산(진안)=홍삼=건강”이라는 키워드로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였음. - 출처 : 진안군청-

  • 진안의 대표적인 관광 자원으로 마이산 도립 공원·운일암 반일암·운장산 휴양림·용담호·운장산·구봉산·데미샘·풍혈냉천·백운동 계곡·진안 홍삼 스파·진안 에코 에듀 센터 등이 있다. 진안 지역에는 백두대간에서 금남 호남 정맥으로 갈라진 경계에 진안고원이 펼쳐져 있다. 또한 마이산을 비롯하여 운일암 반일암과 덕태산 및 팔공산의 웅산에 비경의 골짜기들은 관광 자원으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최근에 용담댐 건설로 용담호가 조성되면서 산과 물로 어우러진 연안의 풍광 등을 이용한 드라이브 코스가 만들어졌다. 운장산은 진안고원의 주봉으로 계곡마다 기암 절경을 이루고 사계절이 뚜렷하여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운장산 동쪽 줄기인 구봉산은 아홉 봉우리의 바위산으로 경치가 빼어나다. 구봉산 남쪽 복두봉 아래 갈거리 골짜기에는 산림청이 조성한 운장산 자연 휴양림이 있는데, 여름철 휴식처로 제격이다. 풍혈·냉천도 여름철에는 찾는 이가 많다.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인 마이산 벚꽃길·탑영제·마이산 탑사·부귀 메타세콰이어 길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진안 지역의 관광 자원 및 축제】 진안 지역은 계절별로 다양한 축제의 장이 마련되어, 외지의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축제는 3월의 진안 운장산 고로쇠 축제, 5월의 꽃잔디 축제, 8월의 동향 한여름 수박 축제와 마을 축제, 10월의 홍삼 축제와 마이 문화제 등이 있다. 4월의 홍삼 축제는 마이산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열려 군민과 벚꽃 상춘객이 어우러져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되고 있으며, 진안군의 역점 사업인 홍삼 산업 육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진안 지역의 관광 현황】 진안군에서는 몇몇 관광지를 지정하여 방문객 수를 집계하고 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운장산 자연 휴양림·구봉산·마이산 도립 공원·백운동 계곡·용담댐·운일암 반일암 관광지를 거점으로 관광객 수 현황을 집계하였는데, 2011년에는 140만 7883명, 2012년에는 111만 8791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3년에는 마이산 도립 공원·운장산 자연 휴양림·운일암 반일암 관광지·데미샘 자연 휴양림·진안 홍삼 스파의 5개 관광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방문객 현황을 조사하였다. 2013년에 방문한 관광객은 145만 2916명이며, 단일 관광지의 방문객수는 마이산 도립 공원이 가장 많으며 운일암 반일암 관광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공식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축제나 농촌 체험에 참여하는 관광객도 많으며, 등산객도 꾸준히 진안 지역을 찾고 있다.
  • 1910년대 ‘보통학교·소학교’ 등의 이름으로 시작된 초등교육은 일제강점기에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1995년부터는 ‘초등학교’로 개칭하여 설립과 개교가 이어졌다. 지역적인 한계와 학생 수 감소로 인해 1990년대 후반 이후 폐교와 통합이 이루어져 1990년대 초반에는 분교를 포함하여 34개교이던 것이 2016년 현재는 13개의 초등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진안지역 초등 교육기관의 최초 설립은 1911년 9월 4년제 2학급으로 진안공립보통학교 개교로 시작된 진안초등학교이다. 1919년 주천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주천초등학교는 1998년 구봉초등학교, 1999년 대불초등학교 통합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0년대에 들어 1994년에 덕안초등학교를 통합한 마령초등학교와 1999년 중·고등학교와 통합된 안천초등학교, 1992년 평장국민학교를 통합한 백운초등학교, 부귀초등학교가 공립·사립 보통학교로 개교하게 되었다. 1930년 동향공립학교로 시작한 동향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1999년 좌산초등학교와 2003년 좌포초등학교를 통합한 외궁초등학교가 1934년에 개교하였다. 1946년 부귀초등학교 분교장으로 개설된 장승초등학교는 1996년 분교에서 승격되었으며 1950년 오천초등학교 개교 이후 1960년대에 1998년 용담중학교로 이전한 송풍초등학교, 1998년 정천초등학교를 통합한 조림초등학교, 1996년 진안중앙초등학교로 교명을 개칭한 진안동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2016년 현재 진안지역의 초등학교는 동향초등학교, 마령초등학교, 백운초등학교, 부귀초등학교, 송풍초등학교, 안천초등학교, 오천초등학교, 외궁초등학교, 장승초등학교, 조림초등학교, 주천초등학교, 진안중앙초등학교, 진안초등학교 등 13개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총 학급의 수는 91개, 학생 수는 924명이다. 또한 159명의 교원과 111명의 일반·기능직의 인원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