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군에서는 1930년 무렵에 진안병원이 개원하여 1950년대까지 군내의 유일한 병원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이후 민의원, 덕수의원, 해성의원, 진안의원 등이 개원하였다가 운영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는 구세의원, 박애의원, 제일의원, 동부병원, 문치과의원, 장생한의원, 최종관한의원 등이 개업하였다. 2024년 현재는 진안군의료원, 구세의원, 김홍기가정의학과 의원, 송외과의원, 평화의원, 마이정형외과의원, 진안의원, 우리가정의학과의원, 김진호내과의원, 진안연세안과의원, 마령가정의학과의원 등 병원 1개소, 의원 12개소, 치과의원 4개소, 한의원 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민간 의료기관은 모두 진안읍에 집중되어 있으며, 10개 면 중에서는 마령면에만 마령가정의학과의원과 한의원 한 곳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한편 2024년 현재 진안군 내에는 병의원 13개소에 의사 27명, 치과의원 4개소에 치과의사 5명, 한의원 4개소에 한의사 4명, 그리고 약국 8개소에 약사 9명이 의료업에 종사하고 있다. 

  • 진안문학의 대상 범위는 진안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문학활동을 했던 작가, 진안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진안을 배경으로 한 문학, 진안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진안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진안문학은 역사적으로 고려 이규보(李奎報, 1168~1241)에서 시작되었다. 이규보가 전주에서 지방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틈틈이 전라도 지방을 여행했는데, 마령, 진안을 여행하면서 마령 객사에 유숙할 때 지은 2편의 ‘진안 관련 시’(1199년)가 『동국이상국집』에 남아 있다. 이규보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안문학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대 한시문학】 먼저 고려 말엽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南行月日記’에 “마령, 진안은 산곡간의 옛 고을이라 그 백성들이 질박하고 미개하여”라는 구절에서 ‘진안’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동국이상국집』권 9에 진안 관련 시 2편을 남겼다. 한 편은 마령 객사에서 유숙할 때 중대당두(重臺堂頭)가 술을 가지고 와서 지어준 시이고, 다른 한 편은 금당사(金塘寺)의 당두고사(堂頭枯師)를 찾아가는 시이다. 이는 이규보가 1199년 6월에 전주목사록 겸 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로 부임하여 그해 11월 20일에 전주 속군인 진안을 여행하면서 쓴 것이다. 마령객사에서 유숙하면서 쓴 시는 아전을 ‘원숭이 모습’이라고 표현해서 아전을 폄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기록에 보이는 진안 관련 첫 시이다. 왕명에 의하여 이행(李荇), 윤은보(尹殷輔) 등이 펴낸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윤소종(尹紹宗), 김극기(金克己)를 비롯한 열 사람의 진안 관련 시가 실려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국을 도·군별로 조목에 따라 서술하고, 지방사회의 연혁, 성씨, 묘사(廟社), 풍속, 관부(官府), 토산, 인물 등 모든 면에 걸쳐 실은 백과사전식 서적인데, 이 책의 ‘진안현’이나 ‘용담현’조에 진안 관련 시가 실려 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궁벽한 땅, 순박한 백성, 마이산을 비롯한 진안의 아름다운 자연의 형상 등을 노래하고 있다. 이후 인조 때 문신 조찬한(趙纘韓, 1572~1631) 일가가 진안 형승을 노래한 시와 기(記)가 있고, 진안 용담 태고정(太古亭)에 대해서 쓴 기(記), 시, 서(序)가 있는데 우암 송시열의 ‘용담태고정기’를 비롯하여 이명한, 김창흡 등의 시가 『진안지』에 실려 있다. 이들은 모두 타 지역 출신으로 진안 관련 글을 남겼다. 한편 진안지역인의 진안 시로는 임타(林㙐, 1593~1664)와 그의 후손들의 시, 전동흘(全東屹)·김중정(金重鼎), 담락당(湛樂堂) 하립(河昱 )·삼의당(三宜堂) 김씨(金氏) 부부의 시가 있다. 임타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한양에서 벼슬을 그만두고 용담현 와은리(상전면 용평리 평은마을, 수몰)로 아들 4형제와 함께 이주하였다. 이후 아들 4형제 후손이 진안 조림리와 와은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면서 진안에 대한 시들을 읊었다. 긍구당 김중정(金重鼎, 1602~1689)은 1632년(인조 14) 조청(朝淸)전쟁이 일어나 왕이 항복하자 그 이듬해인 1637년 척화(斥和)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조부 김충립(金忠立)을 따라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버리고 진안군 주천면에 들어왔다. 이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긍구당유고』와 한시 114수를 남겼다. 가재 전동흘(全東屹, 1610~1705)은 조선후기의 무신으로 진안읍 가림리에서 태어났으며, 유명한 『장화홍련전』을 남겼다. 삼의당 김씨(1769~1823)는 조선 후기 여류 문학가로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삼의당 김씨 부부는 1801년 남원에서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마령면에서 여생을 마쳤는데, 부부가 서로 주고받은 시들과 삼의당의 시들이 전한다. 삼의당 김부인의 유고는 『삼의당 김부인 유고』(이월영 역, 2004)로 번역 출간되었다. 【근대 이후 현대의 한시와 가사문학 : 조선 말기~ 1950년】 이 시기의 한시 문학은 언어의 조탁(彫琢)이 두드러지고 국가의식이 짙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음독 자결한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진안 출신은 아니지만 진안군 마령면 원평지마을 앞에 있는 ‘쌍계정’에 대한 시를 남겼다. 이병항(李秉恒, 1861~1946)은 『정은집』 5권을 남겼는데 진안의 정자, 자연승경을 소재로 지은 시가 많다. 정종엽(鄭鐘燁, 1885~1940)은 『수당유고』를 남겼는데 이도복(李道復, 1862-1938)에 대한 시 2편을 포함하여 126수의 한시가 있다. 허명렬(許明烈, 1897~?), 김규태(金圭泰, 1905~1977)의 시도 진안문학에 주요한 바탕이 되었다. 이도복(李道復)의 ‘이산구곡가(駬山九曲歌)’는 진안 마령면 동촌리 이산정사(이산묘)에서 진안 마이산을 둘러싼 승경을 읊은 창작 가사이다. 마이산의 승경 속에서 우회적으로 우국충절을 노래한 가사로 유명하다. 그 외에 1924년 발행된 『진안지』에 지역 문인들의 시문이 다수 실려 있다. 


    【현대의 진안 문학】 1920년 한국 현대문학의 출발과 함께 본격적인 한글세대 문학이 주체가 되었는데 진안문학도 한글문학으로 바뀌고, 장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 시조, 소설, 수필, 문학평론, 아동문학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문인들은 다음과 같다. 시인으로 최민순, 허소라, 한승헌, 이운룡, 전승묵, 전덕기, 이세일, 전한상, 안현심, 이소주, 김이하, 김사강, 정상기, 임우성, 문학인, 구연배, 전병윤, 박인숙, 김성열, 김영하 등이 있다. 시조시인으로 박병순, 김환식, 박영우, 박부산, 김기석, 최정수, 전영주, 이용진, 정형기 등이 있고, 수필가로 송화영, 남궁선순, 신용일, 송영자, 송영수, 임억규 등이 있다. 소설가로는 김종록, 송준호, 김병용, 정연의 등이 있고, 아동문학가로는 허호석, 강만영, 손석배, 이지원, 전형무, 한일남, 최일걸 등이 있으며, 희곡작가로는 곽병창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진안지역 출신이지만 대부분 타 지역에 살면서 등단하여 활동하는 문인들이다. 시인 이운룡의 경우는 현재 전북문학관장이며 『산새의 집에는 창이 없다』(2006) 이후 최근 『어안을 읽다』(2013)를 출간하였다. 시조시인 구름재 박병순(朴炳淳, 1917~2008)은 부귀면 세동리 적내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최근에 박병순의 생가를 복원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소설가 김병용은 『길 위의 풍경』(2009)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의 데미샘’을 아름다운 필치로 소개하였고 희곡작가 곽병창은 용담 수몰지역을 배경으로 ‘꿈꾸는 슈퍼맨’(2008)이라는 작품을 공연하기도 했다. 아동문학가 허호석(1937~ )은 “동심으로 자연과 사물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은유 속에 우주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타 지역 문인이지만 진안의 아름다운 산수 자연을 시화한 문인으로는 1920년대의 김해강을 비롯하여 이은상, 이기반, 최종규, 권진희, 진병주, 송희철, 송기섭, 송희, 심옥남, 이재숙, 이우만, 김정웅, 문인수, 신화금 등도 주목할 만하다. 【문학단체 및 문학상】 1992년 5월 10일 창립되었던 ‘진안문학회’가 2000년 5월 12일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로 변경 인가되었다. 이 단체의 전신인 진안문학회는 1992년 5월 10일 최진성을 대표로 설립되었고, 이후 송화영, 문학인이 회장을 역임하였다.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로 변경된 후 전병윤이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김예성, 남궁선순, 송영수, 김재환, 전근표, 이병율, 신팔복을 거쳐 2024년 구연배가 회장직에 있다. 진안문학회 태동 이후 『진안문학』이 1년에 한 번씩 발행되는데, 진안문협 회원들의 시와 산문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진안문학상’을 제정하여 성실하게 문인의 길을 걷는 문학가에게 수여하고 있다. 진안문학상은 지난 2003년 문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고 최인순을 기리기 위해서 고인이 딸인 김영화에 의해 제정된 상이다

  • 진안지역의 주요 체육단체로 진안군체육회가 있다. 진안군체육회는 1962년 2월 10일 군수 김영순을 초대 회장으로 창립하였다. 창립 이후 진안군에서 실시되는 각종 체육행사와 군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정부의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으로 진안군에서도 생활체육을 담당할 진안군 생활체육협의회를 2006년 6월 10일 양동식을 초대 회장으로 창립하였다. 진안군 체육진흥을 위해 두 기관이 활동하던 중 2007년 2월 27일 군수 송영선을 초대 회장으로 체육회와 생활체육회가 통합하여 지금의 진안군통합체육회가 만들어졌다. 진안군통합체육회 직원은 사무국장 1명, 체육팀장 1명, 지도자 6명으로 구성되었다. 지도자들은 테니스, 수영, 에어로빅, 요가, 배구, 게이트볼 등을 지도하고 있다. 통합체육회의 목적은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으로 군민들의 건강과 건전한 여가 생활, 명랑하고 풍요로운 진안군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진안군 각 읍면에 다양한 체육시설이 있다. 체육시설은 56개로 체육관 1개, 공설운동장 1개, 축구장 7개, 게이트볼장 17개, 탁구장 1개, 족구장 4개, 배구장 11개, 파크 골프장 1개, 골프장 1개, 야구장 1개, 농구장 1개. 당구장 3개, 수영장 1개, 헬스장 1개, 에어로빅장 1개, 테니스장 4개의 체육 시설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귀면에 위치한 동전주써미트 컨트리 클럽[대중제 27홀], 부귀면 체련공원[면적 7,091㎡], 상전면 체련공원[족구장, 축구장], 용담면 체련공원[실내 체육관 1동, 잔디구장], 성수면 체련공원, 성수면 용포리 야구장[90×90m 1면, 70×70m 1면] 안천면 스포츠 파크[전천후 게이트볼장, 잔디구장], 주천면 체련공원[도화동산, 잔디구장], 정천면 체련공원[잔디구장], 진안읍 공설운동장[400m 육상 트랙 8레인, 축구 인조 잔디,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국민체육센터[헬스장, 에어로빅, 수영장, 2013년 개관], 진안 문예체육회관[관람석 1,500석] 등 체육활동 및 대회개최에 필요한 체육시설이 있다. 진안군 통합체육회는 많은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체육 관련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진안군에서 이루어지는 체육행사로는 매년 10월 12일 개최되는 군민의 날이 대표적이다. 2013년 51회를 맞은 군민의 날은 읍면 대항 체육대회로 진안군에서 가장 큰 체육행사이다. 진안군에서 개최되는 대회로는 2,000명이 참가하는 진안홍삼배 전국남녀배구대회, 진안홍삼배 전국배드민턴대회[1,500명], 마이산컵 전국탁구대회[1,000명], 전북일보사 전국마라톤대회[2,000명], 전국시니어배구대회[500명], 진안홍삼배 전국파크골프대회[300명], 진안홍삼배 KBL총재 전국어린이농구대회 등이 있다. 진안군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 역도 선수 전병관의 출신지이다. 또 현역 선수로는 2016년 리우 패럴림픽 여자 육상 T36 200m 에서 31초06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한 전민재가 있다.


  • 진안군 주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 및 증진하기 위해 행하는 제반 활동. 【공중 보건 제도와 보건소】 우리나라에서 공중 보건에 관한 인식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미 군정기였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 오물 소제령’이 공포되었으나, 경찰의 관장 아래에서 조선 사회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4일 위생국이 생기고 이것이 1946년에 보건후생부로 전환되었다. 1962년 ‘보건소법’이 공포되고 ‘위생·공해·방역·모자보건·의료보험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체계화된 공중 보건 제도가 틀을 갖추게 되었다. 1956년 ‘시도립보건소법’이 제정되고, 1962년 9월 24일 보건소법 개정에 의하여 시도립보건소가 시군 보건소로 개편되어 군 단위에서 공중 보건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이를 기초로 1963년 진안군에 보건소가 설치되었다. 진안읍 군하리 136-6번지에 설립된 보건소의 정원은 5명이었는데, 의사 1명, 간호사 2명, 위생요원 1명, 사무직 1명이었다. 이후 각 면에 차례로 보건지소가 설치되어, 1986년에 용담, 백운, 정천, 주천면에 보건지소가 설치되면서 10개 면 모두에 보건지소가 설치되었다. 면 보건지소의 설치 연월일은 다음과 같다. 진안군 보건소[1963년], 성수면 보건지소[1971. 11. 24], 안천면 보건지소[1978. 3. 15], 부귀면 보건지소[1982. 6. 25], 마령면 보건지소[1984], 동향면 보건지소[1985], 상전면 보건지소[1985], 용담면 보건지소 [1986], 백운면 보건지소[1986], 정천면 보건지소[1986], 주천면 보건지소[1986]이다. 1980년대 들어와 벽지·오지에는 보건진료소가 설치되었는데, 1983년에는 동향면 능금리 등 4개소, 1984년에는 백운면 반송리 등 5개소, 1986년에는 용담면 송풍리 등 4개소, 1987년에는 상전면 용평리 등 2개소에 설치되었다. 이렇게 진안군에는 10개의 보건지소와 15개의 보건진료소가 갖추어졌다. 2013년 12월 현재는 진안읍 가막리, 용담면 송풍리, 정천면 모정리의 보건진료소가 운영을 중단하여, 12개의 보건진료소가 운영 중이다. 한편 1982년 12월 13일에 진안읍 군상리에 모자 보건센터가 개원하였고, 1985년 12월부터는 모자 보건센터에 분만실이 설치 운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