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후 귀족들도 성을 사용하게 되다가, 전체 국민들이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성씨 집단과 지역의 관련을 토성, 망성(亡姓), 속성(續姓)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토착의 토성 외에 망성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버린 경우이고, 속성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경우였다. ��세종실록지리지�� 진안현조에는 "토성(土姓)으로 다섯이니, 이(李)·전(全)·백(白)·한(韓)·유(庾)요, 마령(馬靈)의 성이 넷이니, 한(韓)·송(宋)·장(張)·가(價)[어떤 본에는 가(賈)로 되었다.]요, 망성(亡姓)이 하나이니, 김(金)이요, 속성(續姓)이 둘이니, 전(全)·이(李)[향리(鄕吏)]이다."로 되어 있고, 용담현조에는 “토성(土姓)이 여섯이니, 고(高)·문(文)·임(林)·염(廉)·가(賈)·임(任)이요, 동향(銅鄕)의 성이 하나이니, 가(賈)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지금의 진안에 토성으로 가(價 또는 賈)·고(高)·문(文)·백(白)·송(宋)·염(廉)·유(庾)·이(李)·임(林)·임(任)·장(張)·전(全)·한(韓)으로 13개의 성을, 망성으로 김(金), 속성으로 전(全)·이(李)를 언급하고 있다. 이중 진안현의 속성인 이씨는 향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