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지역의 철기시대 문화유적으로 와정리 유적, 운교리 유적, 신괴리 고분군, 황산리 고분군, 운봉리 고분군, 모정리 고분군, 월계리 와요지, 대불리 야철지 등이 있다. 와정리 유적 : 용담댐에서 상류 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용담면 월계리에 속한다. 이곳은 금강과 섬진강을 직접 연결하는 남북방향 교통로와 호남정맥과 소백산맥을 넘는 여러 갈래의 동서방향 교통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유적은 금강 유역의 반달 모양으로 생긴 산에 입지하였는데, 산의 외곽에는 판축법(板築法)으로 토성을 쌓았고, 내부에는 주거지와 저장용 구덩이 유적이 있다. 흙을 일정한 깊이로 파낸 다음 그 안에 생활공간을 마련했는데, 북벽 혹은 북서벽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든 온돌시설이 벽면을 따라 돌려져 있다. 유물은 세발토기·항아리·시루 등 백제 토기가 주종을 이루고 여기에 뚜껑 접시와 같은 가야 토기도 일부 섞여 있다. 이 유적을 통하여 철기시대 진안지역의 중심세력이 이곳에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운교리 고분군 : 백운면 운교리 일원에 적지 않은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은 섬진강 수계의 상류지역이며 금남호남정맥에 우뚝 솟은 고봉의 서쪽 기슭 말단부로 섬진강의 본류를 따라 충적지와 구릉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상원산마을 동쪽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 구덩식 돌널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폭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대부분 계단식 농경지나 대규모 민묘(民墓)구역으로 개발되어 적지 않은 고분이 유실 또는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유적을 통해 이 지역에 일단(一團)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괴리 고분군 : 안천면 신괴리 지사마을의 북쪽에 있다. 안천면과 상전면의 경계인 고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동쪽 기슭 하단부에 지사마을이 있다. 이 마을 북서쪽에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에 고분군이 있다. 이 일대는 용담면 월계리 성남마을에서 금강의 본류를 건너 육십령과 월성치로 직접 연결되는 동서방향 교통로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지사마을에서 남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도 동서방향 교통로가 통과하는 고개가 있어서 교통의 요충지에 일정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황산리 고분군 : 1997년 용담댐 수몰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진 곳으로, 용담면 월계리 황산마을 동쪽에 자리하여 황산리 고분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금강을 따라 동서방향으로 뻗은 산줄기의 정상부와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가’ 지구에서 12기와 ‘나’ 지구에서 5기 등 모두 17기의 구덩식 돌널무덤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토기류·철기류·방추차 등 97점이 출토되었는데, 토기류는 다양한 양식의 가야토기와 백제토기가 섞인 상태로 출토되어 가야세력과 백제와의 교역 및 교류 관계를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운봉리 고분군 : 주천면 운봉리 구암마을 북쪽에 있는 고분군으로 마을 북쪽 산봉우리의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과 여기에서 서쪽으로 2㎞ 가량 떨어진 산봉우리에 운봉리 봉수가 있다. 산성과 봉수의 중간에 탁고개가 있으며, 금남정맥의 싸리재와 주자천을 따라 선상으로 연결된 여러 갈래의 교통로가 여기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러한 교통의 요충지에 고분군이 위치한 것으로 보아 이곳을 중심으로 일정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정리 고분군 : 용담댐 수몰 지구 내 문화유적에 대한 구제 발굴 당시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 C 지구에서 1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조사되었다. 고분의 위치·벽석의 축조 방법·연도(羨道 : 고분의 입구에서 시체를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의 위치·장축 방향 등 유구(遺溝)는 백제고분의 속성을 강하게 담고 있어서 백제시대의 고분임을 알 수 있다. 월계리 와요지(瓦窯址) : 용담댐 수몰지구 내 문화유적에 대한 구제 발굴을 통해 알려진 곳으로 용담면 월계리에 속한다. 월계리 원월계마을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동쪽 기슭에서 지하식 등요(登窯) 2기와 반지하식 등요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이곳에서는 막새류가 한 점도 출토되지 않아 무단식 암·수 기와만을 생산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기와의 문양과 제작기법, 와요 형태, 출토 유물의 속성 등이 백제 기와 가마터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대불리 야철지 : 운장산에서 동쪽으로 3.5㎞ 정도 떨어진 복두봉 북서쪽 기슭 하단부의 주천면 대불리 학선동마을과 학산재 사이의 골짜기에 있다. 이를 통하여 철기시대에 이곳을 중심으로 철기 제작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 진안군의 모든 지역에 골고루 분포된 지석묘는 금강 상류지역인 정자천·안자천·주자천을 따라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정천면 모정리와 안천면 삼락리 일대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역시 하천을 따라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으면서 교통의 중심지인 마령면 일대에 본래 30여 기의 지석묘가 분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처럼 지석묘는 농경지의 개간과 경지정리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부분 없어져 아쉬움을 더해 준다. 백운면 일대에는 10여 개소에서 대략 40여 기의 지석묘가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석묘들은 백운면 노촌리·백암리·운교리·평장리 등 대부분 하천을 따라 들판이 펼쳐져 있거나 내륙 교통로가 통과하는 곳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종래에 지석묘에 대한 발굴조사는 용담댐 수몰지구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예컨대 안천면 삼락리, 정천면 모정리 등 에서 200여 기의 지석묘가 조사되었다. 그리고 섬진강 유역에 속한 마령면 평지리에서도 1기의 지석묘가 조사되었다. 특히 정천면 모정리 여의곡과 모실 유적에서는 지석묘와 석관묘가 함께 조사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지석묘들은 외곽에 타원형·장방형·방형의 묘역을 구획한 다음, 그 중앙에는 지하식 혹은 지상식의 매장주체부를 갖추어 놓았다. 종래에 이것과 유사한 형태의 지석묘가 백두대간 산줄기 동쪽인 거창군과 합천군 등 황강 유역에서 조사되었다. 이밖에도 안천면 삼락리 수좌동, 정천면 갈룡리 농산과 모정리 여의곡 유적에서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이 조사되었다. 이 시기의 집자리가 처음으로 조사된 수좌동에서는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어, 그 성격이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그리고 농산에서는 평면형태가 원형 혹은 장방형을 띠는 집자리와 수혈 유구, 여의곡에서도 송국리형 집자리와 함께 밭 유적이 조사되었다. 그리고 백운면 동촌리에서는 송국리형 토기가 수습된 장방형 집자리가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지석묘처럼 유구의 속성이 황강 혹은 남강 유역에서 조사된 것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주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정천면 여의곡에서 조사된 밭은 당시 생산경제체제를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