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 지역에 있어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지주들의 수탈이 비교적 적었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비록 거대 지주들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중소 지주들이 진안군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1943년에 조선총독부는 진안군에 4개의 저수지[반월제·포강제·월포제·신기제]를 한꺼번에 축조하여, 전쟁 중에도 쌀 증산을 위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수립된 용담댐 건설계획은 용담면을 비롯한 진안군 7개 면의 현대사에 아픈 경험을 남겼다. 광복 이후에도 1914년에 개편된 행정구역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다가 1979년 5월 1일에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진안군의 행정구역은 1읍 10면이 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 대통령령에 의해 마령면 연장리가 진안읍으로, 정천면 구룡리는 상전면으로 편입되었다. 1987년에 상전면 운산리를 진안읍에, 정천면 용평리를 상전면에 편입시키는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1994년 12월 26일에는 동향면 신송리 백암마을 일부지역이 장수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11개의 읍과 면, 77개의 법정리, 303개의 행정리로 구성된 현재의 행정구역이 완성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이 진안군에 들어온 것은 7월 22일 무렵이었다. 북한군은 금강-대전-영동-무주를 거쳐서 진안군으로 들어왔는데, 약 2개월 동안 진안군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통치하였다. 북한군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행정을 통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우익세력이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한편 운장산을 중심으로 진안군의 청년들이 조직한 대한비밀결사대(←)는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까지 범위를 넓혀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9·28 수복 이후 군경과 협력하면서 팔공산·지리산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진안군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전쟁의 피해가 비교적 적었다. 전쟁 중 민간인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지주와 소작의 관계가 대립적이었거나, 해방 직후 이념갈등이 심했던 지역들이었다. 진안군은 신분제에 따른 차별이나 대지주의 수탈이 심하지 않았고, 산간지역이었으므로 이념분쟁에도 휘말리지 않아 전쟁에서 심각한 민간인 피해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복 이후 패잔 북한군 토벌과정에서 토벌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백운면 등 산촌지역에서 나타나기도 하였다. 진안군은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그다지 주목받은 지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 초기 미군 제24사단장인 ‘윌리엄 딘(William F. Dean)’ 소장이 상전면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는 미군 전쟁사에서 사단장급 장군이 적의 포로가 된 초유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 7월 20일 대전 전투에서 패하고 후퇴하던 딘 소장은 금산 부근에서 낙오하여 산속을 헤매다가,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살던 박종구 등의 도움을 받으며 1개월 이상 홀로 남하하여 진안군 안천면에 이르렀다. 그러나 딘 소장은 도움을 청하였던 한두규의 밀고로 8월 25일에 진안군 상전면 운산리[지금의 진안읍]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한국의 근대화정책은 농업과 농촌사회 및 농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의 농업은 지속적으로 쇠퇴하였으며, 농촌인구의 대부분이 도시로 이주하였다. 진안군의 인구는 1966년에 약 10만 2500명에 달했으나 그 이후 계속 감소하여 1969년에는 10만 명 이하로 떨어졌고, 1980년 이후에는 7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1996년에는 4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2006년에는 2만 7천 명을 기록하였다. 40년 동안 진안군의 인구가 약 1/4로 줄어든 셈이다. 인구의 절대적인 감소만이 아니라 인구구조에서도 진안군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을 나타내는 인구 고령화율이 2008년에 26.8%를 기록함으로써, 진안군은 이미 초고령화 단계에 들어섰고 출산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현재 진안지역에서는 인구 감소와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농업 노동력의 절대부족으로 농업생산성이 하락하고 농업작물과 농사방식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출산율 저하로 인해 차세대 노동인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안군은 2000년대 이후 농촌 붕괴와 농업 해체 위기에 직면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촌사회의 재활성화를 위한 ‘귀농 정책’과 ‘마을간사’ 제도를 통한 ‘마을만들기’ 등의 지역활성화 정책뿐만 아니라, 홍삼·고추·버섯·흑돼지·한과 등의 특산물과 특화작물의 재배와 가공 및 시장 개장과 다양한 홍보 전략의 활용 등을 통해 지역 농업의 부활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