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읍 반월리 원반월안길 39-9에 소재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소속의 교회.
    1980년 설립되었다. 2024년 현재 오동환 목사가 집무하고 있다. 교회전화 433-2194.
    《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전면 월포리 금지2길 3-4 금지마을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1901년 미국 남장로교 마로덕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정일도가 그의 초가집에서 시작하였고 마을 이름인 단밭을 따서 단밭교회라고 불렀다. 교회가 부흥하여 월포리 전역에 선교하게 되자 1945년 월포리교회라고 개명하였다. 그 후 월포리교회에서 학동교회, 수동교회, 상전교회, 월포교회, 용평교회 등 5개 교회로 분리되었다. 이후 개신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나뉘던 1959년, 통합 측을 따르는 일부 신도들이 월포리에 통합 측 교회를 세우자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금지교회라고 불렀다. 1991년 금지교회가 위치한 양지마을의 이름을 따서 금양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0년 용담댐 건설로 양지마을이 수몰되면서 교회를 금지마을 지역으로 이주하여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수몰 당시에 약화되었던 교세가 성장하였으며, 2012년 배넘실교회로 개명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로 교회가 폐쇄된 후 만주로 이주하였던 유영준이 광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교회에서 봉사하였다. 2024년 현재 이춘식 목사가 집무하고 있다. 전화 432-9892.
    《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백운면 백암리 임진로 1306-6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의 교회.
    1905년 8월 17일 진맹호, 한인섭, 진문백, 진호연 등이 백운면 메실마을 민가에서 메실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1900년대 대부분의 초기 교회가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던 것에 비해 백운교회는 마을 주민들이 설립한 것이 특징이다. 1910년 5월에는 신도 수가 총 40명이 되었다. 1912년 3월 화산교회로 개칭하였고, 1932년 9월에는 평장리로 이전하여 평장교회라 개칭하였다.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탄압으로 한동안 집회를 중단하였다. 1946년 다시 화산교회를 열었고, 1947년 화산마을에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집회가 중단되었다. 1973년 백운면 백암리 현 위치에 예배당을 건축하고 백운교회로 개칭하였다. 1974년 5월 20일 평장교회를 분립시키고, 1977년 5월에는 동창교회를 분립시켰다. 2000년 11월 김창국이 부임하여 지금에 이른다. 2003년부터 백운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담임 목사, 장로 3명, 집사 4명, 권사 11명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화 432-4520
    《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디지털진안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jinan.grandculture.net/?local→jinan) 재인용
  • 안천면 진무로 3082「백화리 875」 교동마을에 소재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소속의 교회.
    1980년 설립되었다. 2024년 현재 김병순 목사가 집무하고 있다. 교회전화 432-3970.
    《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동향면 계향로 412「학선리 307」 봉곡마을에 소재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소속의 교회.
    1956년 설립되었다. 2024년 현재 김명환 목사가 집무하고 있다. 교회전화 432-7850.
    《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부귀면 모래재로 1024-5「신정리 781」 장승마을에 소재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소속의 교회. 근래 부귀 동산교회로 개명하였다. 1959년 설립되었다. 2024년 현재 천종희 목사가 집무하고 있다. 교회전화 433-7738
  • 부귀면 부귀로 277-7「거석리 829」 신거석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1902년 거석리 주민 이원일이 거석리 428번지의 부지와 건축 자금을 기부하여 초가(草家) 교회를 건립하고 거석교회로 시작되었다. 1911년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강운림이 교회의 기틀을 잡았다.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예배가 중지되었고, 1942년에는 경제적인 이유와 일제의 핍박에 의해 교회당이 폐쇄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광복 후 교회는 복설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발전하여 1994년에 새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2000년에 100주년을 맞았다. 진안 지역은 1903년도부터 활동한 미국 남장로교 마로덕에 의해 대부분의 교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안지역 교회 설립 시기는 1903년 이후이다. 하지만 부귀중앙교회는 거석리에 거주하던 이원일의 가족이 가정교회를 세운 1900년을 설립년도로 보고 있다. 부귀중앙교회는 비록 산 속에 있는 작은 교회였지만 1910년대 드물게 2명의 당회원을 둔 조직 교회의 면모를 갖추었고, 1935년까지 계속 성장하였다. 1918년 통계에 의하면 주일학교 학생이 48명, 세례교인 40명을 포함하여 교인이 65명이었다. 많이 모일 때는 8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1945년 광복 후 교회는 다시 문을 열었다. 담임 교역자를 초빙하고 교회당 건물을 신축하였다. 교회가 부흥 되던 중 교단이 분열되면서 거석교회와 부귀교회로 분리되기도 했지만 1973년에 다시 통합하고 교회 이름을 부귀중앙교회로 하였다. 2000년 11월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2013년 11월 9일에는 113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일요일 예배 시간은 아동부 오후 2시, 중고등부 오전 9시, 장년부 오전 9시와 오후 4시이다. 2007년에는 예향공동체를 설립하였으며, 여전도회와 남선교회가 합동으로 전통 장류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으로 직판하고 있다. 역대 목회자로는 박순태, 박찬익, 김금동, 김문갑, 김현부, 한성덕, 전택복이 집무하였으며, 2024년 현재 박진호 목사가 집무하고 있다. 교회전화 432-8530.
    《참고문헌》부귀중앙교회100년사(부귀중앙교회, 2006), 디지털진안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jinan.grandculture.net/?local→jinan)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