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안현에 있었다는 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상원사(上院寺)가 마이산(馬耳山)에 있다고 실려 있으나, 『진안지』에는 상원사(上院寺)와 중대사(中臺寺) 등이 모두 중대산에 있다고 실려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참고문헌》新增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 『여지도서』에 진안현 남쪽 10리 미재산(美哉山, 성수산) 아래에 있었던 사찰이라고 하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참고문헌》輿地圖書(전국읍지 1765)
  • 진안읍 반월길 원반월 남동쪽에 있는 대한사찰조계종 소속의 개인 사암.
    관리자는 최철이다.《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백운면 비사랑길 283에 있는 개인 사암. 비사랑마을 끝에서 동쪽으로 1.3km 지점에 위치한다. 2016년 현재 주지는 이광희이다. 사찰전화 432-0120.《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마이산 안에 있었다는 절. 김종직(金宗直)의 시에 등장한다. 쇄암사(碎巖寺) 또는 혈암사(穴巖寺)의 이칭(異稱)으로 보인다. →나옹암.《참고문헌》新增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 마이산 안에 있었다는 절. →나옹암.《참고문헌》新增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 백운면 은안길 156 은안마을 안골짜기에 있는 절.
    은안마을 동쪽 골짜기 300미터 지점에 있으며 ‘은안 절간’이라고도 한다. 1960년경에 지어진 비등록 사찰로 주로 무병을 앓는 이, 심신의 요양이 필요한 이들 중에 주로 여자 신도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승려는 없고, 무속적 요소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사찰로 전통 사찰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으며 문화재는 없다. 함석지붕의 법당, 산신각, 미륵불, 요사채 등이 있다. 절 입구에는 돌탑 2기, 산신각 쪽에 돌탑 2기 등이 있다. 신도 수는 대략 100여 명 정도라 한다. 관리자는 온예자이다. 전화 432-4701.
    《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
  • →천황사
  • 정천면 봉학리 마조마을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심원사는 573년(백제 위덕왕 20)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심원사의 원래 자리는 마조 마을 서북쪽 300여m 되는 추줄산 기슭에 있었다. 이곳에는 지금도 전나무, 돌담, 깨어진 기와 조각 등이 나온다고 하며 주춧돌을 비롯한 흔적이 완연하다. 수많은 큰스님들이 이 절에서 배출되었고, 전성기에는 식사 때 쌀을 씻은 물이 1㎞나 흘러갈 정도였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가 승병이 되어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하였고, 근세에는 갑오 동학농민전쟁의 피해를 입어 거의 폐허가 되었다. 또한 한말 이곳에서 이석용(李錫庸)과 김동신(金東臣) 의병 연합부대가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후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50년 6·25 전쟁 때 전소되었다. 그 뒤 비구니 김정임(金正任)이 중창하고 심원사라 하였다. 이후 김정임의 며느리 김화순이 이어 받아 운영하였으나 연로하여[88세] 더 이상은 불사를 행하지 않고 있다. 조계종 소속이지만 사찰의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일반 주택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법당은 집 뒤편에 있었는데 너무 오래 되고 낡아 허물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심원사를 ‘절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참고문헌》鎭安의 文化財(진안문화원, 2015)
  • 진안읍 마이산로 37-1[군하리 338-6]에 있는 사찰.
    2024년 현재 주지는 보경이다. 사찰전화 063-432-0880《참고문헌》종교시설대장(진안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