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귀면 세동리 새터 남쪽에 있는 산. 말을 조련시켰다 함.
  • 진안읍 단양리와 마령면 동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진안읍 단양리 산127-1와 마령면 동촌리 산18 등 2필지에 있다. 바위산으로 서봉인 암마이봉(687.4m)과 동봉인 숫마이봉(681.1m)으로 되어 있으며, 산봉우리가 서 있는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고 하여 마이산으로 명명되었다. 1979년 10월 16일 권역 16.9㎢가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마이산탑은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10월 31일에는 마이산 권역 160,159㎡가 명승 제12호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 지정되었다. 진안군수가 관리한다.【위치】마이산은 동경 127°25′북위 35°45′에 위치하며 진안읍에서 남서쪽으로 4㎞, 전주에서는 동쪽으로 30㎞ 지점에 있다. 차량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북부진입로, 남부진입로의 두 곳이 있다. 북부진입로는 전주―진안간 국도와 바로 연결되고, 남부진입로는 북부진입로에서 진안―마령 간 국도를 따라 8㎞를 진입한 지점에 있다. 북부진입로로 들어가면 마이봉 두 봉우리 바로 아래 관광단지에서 차를 내려 도보로 분수령인 천왕문(←)을 올라 화엄굴(←), 은수사(←), 마이산탑(←)과 탑사(←), 금당사(←), 나옹암(←)의 순으로 펼쳐진다.【지형】마이산은 한반도 남서부로 뻗어 내린 커다란 두 산맥,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형성한 진안고원에 위치해 있는데, 진안에서는 아주 가까이 평행하며 고원을 이루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마이산은 계곡 같은 양 산맥이 마주칠 듯 접근하는 좁은 평원에서 양 산맥 사이에 홀로 돌출한 산괴(山塊)이다. 마이산 산대(山帶)는 마치 달걀을 옆으로 놓은 듯한 타원형 모양으로 동쪽에는 마이산이라 부르는 두 봉우리의 바위산이 있고, 서쪽에는 광대봉(←廣大峯, 608.7m)이 솟아 있다. 마이산과 광대봉을 동서의 주봉으로 하여 관암봉, 비룡대, 금당대, 나도산 등 크고 작은 기기묘묘한 봉우리가 동서 약 7㎞, 남북 약 3km의 타원형상의 마이산대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에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에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자연석 탑 무리가 있는 탑사(塔寺)를 비롯하여, 금당사(金塘寺), 은수사(銀水寺) 등의 사찰, 대한이산묘(大韓駬山廟) 등의 사당이 있다. 마이산대는 북으로 노령산맥의 부귀산 기슭과 닿아 있고, 남으로 소백산맥의 성수산 기슭과 닿아 있어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계곡을 차단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등산로】마이산의 분수령인 천왕문에서 암마이봉을 오르려면 대략 30분쯤 소요된다. 숫마이봉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오를 수 없다. 마이산을 동서로 잇는 연맥에 등산로가 개설되어 등산객이나 건강을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마이산 등산로는 코스가 다양하다. 입구(출구)는 북부단지 야영장에서 물탕골로 들어가는 곳이 있고, 마이산 안에서는 탑사, 탑영제 상류, 금당사, 고금당, 은선암골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서쪽은 원강정마을, 합미산성지, 덕천교 입구에서 광대봉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있고, 북쪽은 연장리 부곡마을에서 고금당으로 넘어오는 코스가 있다. 한편 진안읍 가림리 은천마을 뒤로 올라가면 탑사나 은수사, 또는 사양동으로 갈 수 있다.【지질】마이산 역암층(礫岩層)은 약 2㎞의 두께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중생대에는 크고 많은 호수가 한반도와 그 주변을 따라 분포해 있었다. 진안분지도 호수에 속한 곳이었다. 마이산이 속한 진안분지는 조산대의 남서쪽에 발달되어 있다. 진안분지는 길이 약 32㎞, 너비 약 18㎞로서 반사다리 꼴의 분지이며, 분지 내부는 육성 퇴적물로 구성된 진안층 군으로 채워져 있다. 마이산은 진안분지의 동변부를 이루는 마이산 역암층 내에 형성되어 있는 산이다. 호수부근에서 큰 홍수가 일면 역(礫 : 자갈)들이 둥글게 마모된다. 마모된 자갈과 모래, 점토질이 합쳐져 퇴적된다. 2,000m 이상의 두께를 갖는 마이산 역암층이 퇴적되기 위해서는 역이 퇴적되는 동안 분지의 지속적인 침강이 있어야 한다. 이런 침강을 통해 역은 지하에 매몰되며 열과 압력을 받아 고화(固化)되기 시작한다. 고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하의 온도이다. 마이산의 모암인 마이산 역암층은 대체로 1억년~9000만 년 전에 퇴적되어 고화된 암석으로 추정된다. 시기는 중기 백악기이며 육지에 생명체가 도달한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다. 이 때의 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약 8~10℃ 이상 높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이산의 형성과 진화는 마이산이 속하는 진안분지의 형성과 진화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마이산은 진안분지의 북동부 모서리에 위치한 진안분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진안분지 퇴적물은 마이산 퇴적물과 마찬가지로 깊이 매몰된 후 고화되었으며, 그 이후 조구조 운동에 의해 상응하여 현재와 같이 지표면에 노출되었다. 마이산의 형성 및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진안분지의 상승에 관해 알아보면, 진안분지는 깊이 매몰되어 고화된 후 조구조 운동에 의한 압축력을 받아 재상승하였다. 분지의 퇴적이 완료된 후 구조운동을 받은 결과 형성된 것일 것이다. 구조운동에 의한 선형구조의 방향은 압축을 받은 암반에서 형성되는 단층 발달의 방향에 해당된다. 이는 지질학적으로도 재래주기가 수천만년에 이르는 아주 드문 사건에 해당된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등반로 주변을 따라가면 역들이 예리하게 잘리는 단층면을 관찰할 수 있다. 단층면은 분지의 진화과정 중 구조적인 활동과 깊이 연관된다. 진안분지에 퇴적된 진안층군이 좌수전단이동에 따른 압축 구조운동을 받아 상승하면서 마이산 역암층도 더불어 상승한다. 특히 마이산 역암층은 분지의 모서리에 위치하여 단층의 이동에 따른 응력을 가장 많이 받았을 것이다. 진안분지의 상승 직후에는 비교적 평탄한 고원이 형성되었고, 암상의 강도나 풍화 특성 때문에 차별침식이 이루어져 고저 지형이 발생되었을 것이다. 마이산을 포함하는 마이산 역암층도 진안분지의 상승과 동반되어 현재의 표고보다 높은 고원을 형성하였으며, 다른 암상보다 침식력에 강한 특성 때문에 현재와 같은 높은 봉우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즉, 마이봉은 고원의 단층면을 따라 약대가 형성되면서 차별침식을 받아 주변이 침식되면서 현재와 같은 뾰족한 봉우리가 된 것이다.【타포니(Tafone】마이산의 단층면을 따라서는 절벽이 형성되어 있으며, 절벽면에는 타포니(tafone)가 형성되어 있다. 타포니는 벌집 모양의 자연동굴을 지칭하는 코르시카의 방언이다. 코르시카 지방의 타포니는 바닷가의 해안절벽을 따라 구혈이나 동굴을 형성하는 풍화 양상이며, 염기를 많이 포함한 다습한 해풍이 절벽면에서 염을 형성하는 것이 풍화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산 타포니의 초기 발달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의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역의 이탈이며, 다른 하나는 단층면에 따른 암반의 붕락이다. 마이산 역암층의 타포니 발달은 역암의 풍화 침식과정에 해당된다. 타포니가 점점 커지면 결국 암붕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타포니의 발달이 어느 정도의 빠르기로 진행되는가 하는 점은 마이산의 풍화 침식이 어느 정도의 빠르기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밝혀주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기후】마이산의 연평균 기온은 13.0℃, 최고 평균기온은 20.3℃, 최저 기온 5.4℃, 연평균 강수량은 1,305㎜로 비교적 많은 편이며 6~9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마이산 주봉은 686m의 높이지만 주변 평지의 평균고도가 300m 가량이므로 기복량(起伏量)은 360m에 불과하다. 또 마이산 내의 마을은 주변 평지와 표고차이가 없으므로 주변과 같이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하고 겨울이 빨리 오는 고원성 기후를 이룬다. 또 돌출된 고산 주위에는 눈비가 많이 오는 등 기상이 평지와는 다르지만, 마이산은 주변이 워낙 높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 속에 자리잡은 비교적 낮은 산이기 때문에 기상상태는 부근의 진안지방과 별 다름이 없다. 그러나 마이봉에 올라본 사람이면 가끔 딱, 딱 하는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첨탑처럼 돌출된 두 마이봉에 기류가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현상은 비단 마이봉 정상뿐만 아니라 두 마이봉 사이 계곡에서도 일어난다. 여기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은 마이산의 사찰 등에서 정수(淨水)를 떠서 야외에 내놓으면 밤중에 얼면서 보통의 경우처럼 평면으로 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역(逆)고드름 현상으로 결빙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신령의 발로라고도 하지만 마이산의 특이한 기후현상 때문으로 보인다.【역 고드름 현상】기온이 영하로 내려 갈 때 그릇에 물을 떠놓으면 그릇 안에 있는 물이 어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역 고드름 모양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얼음이 얼어서 올라가는 현상은 특이한 현상으로 일반지역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렇게 역 고드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은 주변의 기온이 급격히 하강해야 하며, 해당 장소에 대기의 흐름 즉 바람이 없어야 한다. 또한 대기가 매우 건조하여 물로부터 대기로 수증기의 증발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조건들을 모두 만족해야만 할 것이다. 그릇에 물을 떠놓았을 때, 얼음은 물그릇의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하여 점차 물그릇의 중앙으로 얼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때 물로부터 증발되는 수증기 입자들이 얼음 가장자리에 붙기 시작하면서 얼음은 약간 높이 솟아오르며 얼게 된다. 이때 그릇의 중앙까지 거의 다 얼어들어 갈 시점에 다다르게되면 그릇의 중앙에는 얼음이 아직 얼지 못한 작은 구멍이 남게 될 것이다. 이때는 작은 수면으로부터 대기 중으로 수증기 입자들의 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수증기들이 얼음 가장자리에 달라붙어서 얼음 기둥을 키워 가게된다. 얼음 기둥은 점차 커가면서 굵기는 상대적으로 가늘어지게 되며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수증기의 증발되는 양이 적어지면서 순간적으로 모두 얼어붙으면서 자라나는 현상이 끝나게 된다. 이런 현상으로 나타나는 얼음의 모양이 마치 역 고드름처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마이산 일대의 식물상과 식생】마이산을 오르면서 살펴보면 암벽에 나는 식생이 특이함을 바로 알 수 있다. 줄사철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변산바람꽃, 자주꽃방망이, 합다리나무 등은 식물 분포상 특기할만하다. 마이산 도립공원 일대의 소산 관속식물은 109과 346속 481종 71변종 5품종으로 총 557종류로 나타났다. 소산식물은 우리나라 전체의 관속식물 4,191종류(Nakai, 1952)의 13.3%에 불과하나 국토면적에 대한 마이산 도립공원 면적 0.008%와 비교하면 높은 수치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마이산 남쪽 산록과 은수사 사이, 즉 탑사 근방의 줄사철나무 군락(→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락지이고 그 외에도 자주꽃방망이, 복수초, 구실사리 등이 분포하고 있다. 마이산은 식물구계로 보면 남부아구(이와 임, 1977)에 속하며, 식물군계로 보면 냉온대 남부에 속한다. 이 지역의 식물상을 보면, 산의 외곽은 소나무 군락과 다소나무 식재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는 소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이 주로 살고 있으나 계곡은 느티나무가 우점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교란 후에 형성된 2차림으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매우 심한 교란을 받아 안정된 삼림의 형성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진행정도에 따라 소나무→굴참나무→졸참나무→신갈나무로 천이(遷移)가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지역 식생의 전체적인 특징은 외곽지역의 소나무 군락 및 리기다소나무 식재림은 매우 심한 교란을 받아 군락구조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으나, 내부는 일부 굴참나무 군락, 졸참나무 군락, 느티나무 군락이 비교적 교란의 정도가 심하지 않으며, 감태나무, 사람주나무, 줄사철나무 등 이 지역 일대의 삼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중부이남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종들이 자라고 있다. 한편 암마이산 및 숫마이산 일부에서는 고산 지대에서 흔히 자라는 구실사리, 고본 등과 바위식생 구성종인 바위채송화 등이 자라고 있으며, 삼림의 노출이 심하지 않은 저지대의 식생과는 많은 종조성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즉, 노출이 심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의 종조성은 구실사리, 고본, 산조팝나무, 바위채송화, 바위구절초, 돌양지꽃, 개쑥부쟁이, 새, 잣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저지대 및 계곡에는 졸참나무, 느티나무, 사람주나무, 감태나무, 비목나무, 국수나무, 줄사철, 쥐똥나무, 작살나무, 밤나무, 때죽나무, 팽나무, 개맥문동 등이 분포한다. 따라서 마이산의 식생은 산의 외곽지대의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 식재림 내부의 졸참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군락과 군락의 구성종들, 암마이산 및 숫마이산의 노출이 심한 바위식생을 형성하는 구실사리, 바위채송화, 산조팝나무 등 3개 군으로 대별된다. 천이의 진행정도에 따라 산의 저지대는 졸참나무 및 신갈나무, 개서어나무 계곡은 느티나무, 암벽은 구실사리, 산조팝나무, 바위채송화의 바위 식생과, 암마이산 및 숫마이산의 토층이 비교적 깊은 곳은 산갈나무로 천이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마이산 일대 도립공원 식물 군락의 분류체계를 식물사회학적 방법에 따라 분류한 결과 졸참나무 군락, 굴참나무 군락, 느티나무 군락, 신갈나무 군락, 소나무 군락, 구실사리 군락, 그리고 밤나무 식재림으로 구분된다. 한편 마이산에 있는 은수사 경내에는 또 하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청실배나무(→진안 은수사의 청실배나무)가 있다.【정상에서의 전망】마이산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한가운데에 돌출한 산이므로 마이산 암마이봉에 올라보면 가까운 계곡 사이에 형성된 진안읍, 마령면 소재지 등 좁은 들을 제외하고는 사면이 모두 산이다. 산도 비교적 높은 산이며, 북쪽은 부귀산 너머에 운장산 연봉이 보이고, 동쪽은 향적봉(덕유산)과 남덕유산 그리고 적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성수산과 덕태산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서쪽은 만덕산과 모악산에 이어 멀리 남서쪽으로 내장산도 보인다. 남남서쪽으로는 호남의 웅봉 무등산이 있는데 마이산 바로 앞에 있는 내동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산만 보이는 가운데 북쪽 부귀산 연봉 너머로 익산과 군산 방면의 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맑은 날에는 군산 앞바다가 멀리 보인다고 한다.【전설】진안 지방에는 마이산에 관련하여 다음의 전설들이 구전되어오고 있다. ‘마이산은 예전에 남녀 산신이었다. 일정한 기간 수도를 한 뒤에 마침내 승천할 날이 되었다. 남신은 사람들이 승천장면을 보면 부정을 타서 안되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주장하였고, 여신은 새벽에 떠나자고 하였다. 여신의 주장대로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마침 새벽에 물 길으러 나왔던 동네 아낙네가 그 장면을 보고 “어머나, 산이 하늘로 올라가네” 하고 놀라는 바람에 부정을 타게 되어 두 산신의 승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남자 산신은 여자 산신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자기 곁에 두었고, 여자 산신은 토라져 뒤돌아 다소곳이 외면하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전설의 뒷부분은 “승천이 아니라 커 오르다가 좌절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서울로 가려다 좌절되었다”고도 달리 전하는 사람도 많다. 이 전설이 생성된 주요 이유는 마이산의 형국 때문으로 여겨진다. 마이산을 진안읍 쪽에서 보면 동봉(숫마이봉)에 새끼처럼 보이는 작은 봉우리 2개가 붙어있고, 서봉(암마이봉)은 반대쪽으로 돌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마이산 남쪽 암벽에 부스러져나간 흔적이 많이 있는데 이것을 ‘옛날 이곳이 바다였을 때 고래가 파먹은 자국’이라고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마이산의 이칭】마이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삼국사기』32卷-志1-祭祀 小杞(小祀)편에 서다산(西多山)이 ‘<伯海郡><難知可縣>에 있다’고 기재되어 있는 바, 『高麗史』의 다음과 같은 기록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진안현은 본디 백제 때의 난진아현(難珍阿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장계군(長溪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중략) 마이산이 있다. 신라에서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으며 소사(小祀)에 실었다.’ 이로 볼 때 마이산의 옛 이름은 서다산(西多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다산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마이산이 솟아오른 형국이므로 ‘서다(立)산’ 또는 ‘솟다(聳)산’에서 한자음을 빌려 ‘西多山’으로 표기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흔히 마이산 이름을 조선 태종이 내린 이름이라 하는데 고려사에 이미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실려 있은 걸로 보아 태종 사명설(賜名說)은 후에 누군가에 의하여 조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안현> 산천조(山川條)에 마이산이 기재되어 있는데, ‘태종(太宗)이 남행(南幸)하여 산 아래에 이르러서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라는 기록에 의거, 다른 모든 전적(典籍)들이 무비판적으로 이에 따랐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산을 용출봉(湧出峯), 또는 용출산(聳出山)이라고도 한다. 이는 마이산의 형태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용출(湧出)은 ‘물이 솟아 나오다’를 뜻하고, 용출(聳出)은 ‘솟아오르다’를 의미하니 뜻에서의 차이는 없다. ‘용출봉(湧出峯)’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안현>에 실려 있고, ‘용출산(聳出山)’은 진안현감이었던 민인백(←閔仁伯 : 1578년 7월~1579년 2월 재임)의 문집인 ≪태천집(苔泉集)≫에 ‘태종대왕이 아직 등극하지 않았을 때, 이 고을을 지나다가 산 이름을 묻자, 사람들이 용출산(聳出山)이라 대답하니, 태종이 이름을 마이산(馬耳山)이라 고쳤다.’라고 실려 있다. 이 역시 항간에 흘러 다니는 말을 기록한 것일 뿐으로 신빙성이 없는 내용이다. 마이산을 예전에 이 지방사람들은 속금산(束金山)이라 곧잘 불렀다. 속금산이란 이름은 1925년에 발행된 『진안지』 형승조(形勝條) ‘마이봉’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태조가 속금산(束金山)이라 명명(命名)하였다고 하였다.(→몽금척) 속금산(束金山)은 오행(五行)에서의 금행(金行)을 묶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마이산탑) 한편 속금산이라고 불린 데에는 음운론적인 시각으로 보아 ‘솟았다’는 뜻인 ‘솟굼산’에서 유래하여 한자의 음을 빌려 ‘束金山’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혹자는 마이산을 두고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龍角峯), 가을에는 마이봉(馬耳峯), 겨울에는 문필봉(文筆峯)이라 한다” 했으나, 이는 문인들이 계절에 대비시킨 이름일 뿐 전거(典據)는 희박하다.【문학에 실린 마이산】마이산이 옛 문필가들에게 회자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조선 문신), 조위(曹偉, 1454~1503. 조선 문신), 김수동(金壽童, 1457~1512. 조선 문신) 등의 시가 실려 있고, 『진안지』에는 김시걸(金時傑, 1653~1701. 조선 후기의 문신)의 시가 실려 있다. 한편 조찬한(趙纘韓, 1572~1631 조선 문신)을 위시하여, 조구상(趙龜祥, 1645~1712 조선 문신) 등은 자신들의 문집에 마이산에 대하여 읊은 시를 실었다. 이 밖에도 『진안지』 제영(題詠)편 등 여러 곳에 마이산에 관한 한시가 많이 실려 있고, 현대문으로 된 마이산에 관한 시문도 많다. 특히 이도복(←李道復)의 〈마이산기(←馬耳山記)〉와 〈이산구곡가(←駬山九曲歌)〉가 주목된다.【마이산과 풍수론】마이산에 관련된 풍수론은 『택리지(擇里志)』와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 실려 있다. 이 풍수론들은 마이산탑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마이산탑)【마이산의 사찰】현재 마이산 경내에는 5개의 사찰이 있다. 마이산 남쪽 경내에는 금당사(←金塘寺), 탑사(←塔寺), 은수사(←銀水寺)가 있고, 북쪽 경내에는 마이사(←馬耳寺)가 있다. 또 마이산 남쪽에 위치한 광대봉 아래에는 보흥사(←寶興寺)가 있다. 마이산 사찰로 최고(最古)의 기록은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후기의 문신)의 저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날 금동사(金洞寺)에 당두고사(堂頭枯師, 주지)를 찾다.(是日金洞寺訪堂頭枯師)’라는 글이다. 전후 문맥으로 금동사(金洞寺)는 마령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찰로 보이므로 마이산 안에 있던 사찰로 금당사의 전신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금동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상원사(上院寺), 혈암사(穴巖寺), 쇄암사(碎巖寺)는 모두 마이산에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진안읍지』의 ‘불우(佛宇)’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혈암사, 쇄암사(穴巖寺 碎巖寺)는 모두 마이산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상원사, 중대사(上院寺 中臺寺)는 모두 중대산에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상원사가 마이산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잘못으로 보인다. 그 뒤 『진안지』의 [新增] 기록에는 고금당(古金堂), 수행굴(修行窟) 등이 등장한다. 한편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비로소 금당사(金塘寺)가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가람고(伽藍考)에 ‘금당사는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金塘寺, 在馬耳山縣南十里)’고 기재되어 있고, 1799년(정조 23) 왕명에 의해서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상원암(上院庵) 지금은 폐하였다. 혈암사(穴巖寺), 쇄암사(碎巖寺) 모두 마이산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 속(續) 금당사(金堂寺)는 마이산에 있다.(上院菴 今廢. 穴巖寺 今廢. 碎巖寺 俱在馬耳山 今廢· (續) 金堂寺 在馬耳山)’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앞부분은 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을 전재한 듯 하고 속(續)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금당사(金堂寺) 부분은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하여 판단하면 마이산에는 고려시대에는 금동사(金洞寺)가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없어졌거나, 혈암사(穴巖寺) 또는 쇄암사(碎巖寺)로 이름이 바뀌어졌던가, 둘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1924년에 발행된 『진안지』에 비로소 나옹암(←懶翁庵), 고금당(←古金塘), 광덕암(←廣德庵 : 현 보흥사), 정명암(←正明庵 : 현 은수사)이 나온다.《참고문헌》마이산학술연구(진안문화원, 2003)
  • 용담면 월계리 황산 서남쪽에 있는 산.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음.
  • →마치산.
  • 진안읍 가림리 선인동 동남쪽에 있는 산. 높이 537.5m. 백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음.
  • 완주군 상관면과 소양면, 임실군 관촌면, 진안군 성수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765.5m. 산의 북쪽 허리를 통하여 곰티재가 뚫려있다. 만덕산이라는 이름은 『대동지지』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성수면 중길리 쪽 만덕산 기슭에는 원불교 만덕산 훈련원이 있다. 이곳에 원불교 훈련원이 들어선 연유는 이곳이 원불교의 시창(始創) 4대 성지의 하나인 초선지(初禪地)이기 때문이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은 이곳에서 부근의 인연들과 선(禪)을 열었다고 한다. 초선지는 훈련원에서 만덕산을 향하여 2㎞쯤 올라간 곳에 있는데, 벽면과 같은 깎아지른 바위 앞에 100여명은 충분히 앉을만한 평탄한 마당이 형성되어 있다. 초선지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600여 미터쯤 오르면 오목한 능선이 나오는데, 여기가 오두재(오두치)이다. 풍수상 까마귀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여기에서 서쪽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북쪽으로 내려가면 옛 곰티 신작로에 이르고, 더 내려가면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신촌마을)에 이른다. 또는 오두재에서 좀 내려가다 서쪽으로 굽어가면 미륵사에 당도한다. 오두재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은 서쪽으로 10분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면 된다. 현재 만덕산 정상은 수풀이 우거져 전망이 막혀 있으므로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200미터쯤 더 나가야 완주군 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전망이 좋기로는, 오두재에서 정상에 오르기 전 오른쪽 바위봉우리에 오르면 동서남북의 전망이 좋다. 이곳에서 보면, 북으로 운장산과 연석산, 동쪽은 마이산과 덕유산을 모두 볼 수 있다. 만덕산 정상에는 세 개의 하산로가 있다. 직진하게 되어 있는 코스는 소양면 월상리로 직접 떨어지는 코스이고, 오른쪽(동쪽)으로 난 코스는 미륵사와 만덕폭포를 거쳐 월상리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정상에 오른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볼거리가 있는 미륵사 코스로 내려간다. 미륵사 코스로 내려선 지 5분 가량 되면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미륵사쪽으로 가는 길은 왼쪽(서쪽)길이다. 이 길로 들어서면 다시 너덜길이 나오고, 이 하산길로 접어들어 30분가량 가면 사거리가 나타난다. 사거리에서 미륵사로 가려면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또 하나는 되돌아 나와 성수면 중길리로 내려가는 길과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산에서 되돌아 나오다가 5분쯤이면 능선에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과 직진하는 길이 나오는데, 직진하는 길로 10여분 걸으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이 길로 내려가면 마치리에 이른다.《참고문헌》大東地志(김정호, 1863),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鎭安郡의 山川(진안문화원, 2010)
  •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장기리 죽전리, 공진리와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81.2m. 매 형국이라 함. 주봉은 무주군에 속한다.
  • 안천면 노성리 보한 북쪽에 있는 산.
  • 상전면 용평리 평은 서쪽에 있는 산.
  • 진안읍 가림리 안골(선인동) 뒤(동)쪽에 있는 산. 매처럼 생겼음.
  • 용담면 수천리 송림 뒤(남)쪽에 있는 산. 높이 490.3m. 전에 산봉우리에서 막을 지어 놓고, 매를 받았던 곳이라 함. 응봉낙조(鷹峰落照)라 하여 용담 8경의 하나임.
  • 부귀면 두남리 삼봉리 서쪽에 있는 산. 복치혈(伏雉穴)이 있다 함.
  • 주천면 신양리 하성암 동쪽에 있는 산.
  • 동향면 학선리와 대량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660m. 봉우리가 멍덕처럼 생겼음.
  • 부귀면 황금리 윗물목 동쪽에 있는 산.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이 있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