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주천면 대불리 운일암반일암 동상주천로 길가 암벽
    【시기】 1931년 이후
    【형태】 암벽을 깎아내고 대리석 석판 5개를 끼움.
    【개요】 영귀대(詠歸臺)는 수당(守堂) 이덕응(李德應) 선생과 그 문하들의 소작이다. 이덕응 선생은 한말 이 지방의 유학자로 알려져 왔는데 <詠歸臺>의 기록에 쓰인 바를 보면 유학을 벗어나는 기록이 많아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 점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여기에서는 ‘영귀대’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친다. 이 기록에는 건축일과 중수문, 잠(箴), 명(銘), 시(詩), 사(詞), 기(記)가 실려 있다. 문장이 난삽하여 이해의 편의상 원문 뒤에 바로 풀이를 붙인다.

    湖南 龍潭縣 朱川面 華陽道院*
    配天光聖 44年* 壬子 南至日 建築
    호남 용담현 주천면 화양도원
    배천광성 44년 壬子(1912) 남지일[동지] 건축
    詠歸臺重修文
    孟子曰 言拒楊墨者 聖人之徒
    맹자 이르기를 말로나마 양자 묵자*를 배척한 사람들은 성인을 따르는 무리라 하였다.
    今六六*人 詠歸臺拒 不亦徒乎
    이제 36인의 영귀대를 배척함은 또한 그 무리가 아니겠는가.
    又坮(臺)圯堂拒 何等徒歟
    또한 이 대를 세우는 역사(役事)를 방해하는 자는 어떤 무리들인가?
    自本洞光倡玆告 齊臨竣役而坮
    이 마을에서 뜻을 발하여 널리 알려 모두 나서 역사하여 영귀대를 준공하였는데
    列中不起人 承訓法家 春秋設享
    그런 가운데 힘을 못보탠 사람이라도 전통을 이어받아 춘추로 제사에 참여하고,
    新詠者 名錄爲要
    새로 들어온 사람은 이름을 적어놓기 바란다.
    配天光聖 63년 辛未(1931) 流火(음7월) 日 金大鉉 南廷薰
    배천광성 63년 신미 7월 김대현 남정훈

    正詩執禮 守師斅則余小子輩 涵濡動息
    옳은 글 바른 예절, 스승님 가르침 지켜 우리 어린 학동 동정간에 체득했네.
    玄悟太淡 苦吟太繁
    그윽한 이치는 담담한데, 머리 짜내 지은 시는 오히려 번다(繁多) 하네.
    有懷沂風 新臺春闌
    기수(沂水)*에서의 옛 고사를 생각하니 새로 지은 누각에는 봄이 무르녹네.
    癸丑(1913) 上巳日(3월 3일) 惺庵 安容黙 謹箴
    계축년 3월 3일 성암 안용묵 삼가 잠하다.

    山蔥瓏 水抱流 石爲臺 我詠遊
    산은 푸르고, 물은 감아도는구나. 돌로 누각을 쌓았으니 내가 시를 읊으며 노니는구나.
    歸思定 靜思求 陪 守翁
    귀의할 곳이 어디메냐, 가만히 생각하니 수당선생을 따르는 일이로구나.
    講書樓 樂於前 遺後謀 風萬古 月千秋
    이 곳(樓)에서 글을 강함은 원모후려로 천추만고의 본을 보임일세.
    壬子(1912) 復陽(음11월) 日 春岡 趙炳順 銘
    임자년 11월 춘강 조병순은 명하다.

    臺上風常氣 水中月久輝
    영귀대 위에 부는 바람은 항상 같은 기운이고, 물빛에 어리는 달모습 오래도록 빛나는 도다.
    千年如昨日 我更詠而歸
    천년이 어제 오늘과 같은데, 나는 다시 영귀대로 귀의하는도다.
    癸丑 上巳日 道峰 李載陽 稿
    계축년 상사일에 도양 이재양 쓰다.

    石累累松森森 風乎詠而臺榭
    돌은 촉촉히 백혀 있고, 소나무는 빽빽하구나. 누대에서 풍류와 음영을 다해본다.
    今君心石 我操松
    그대의 각오는 돌처럼 굳고, 나의 지조는 소나무 같네.
    畢生同道 守翁從
    우리 평생 같은 길 걸으며 수당선생 좇으리.
    癸丑 上巳日 鶴川 閔重植 謹詞
    계축년 상사일에 학천 민중식은 삼가 짓다.

    臺以詠名何
    누각(臺)의 이름을 영(詠)이라 함은 무슨 뜻인가?
    始吾六六人受業 李守堂先生
    처음에 나와 더불어 36인이 이수당 선생으로부터 배웠네.
    道旣聞乃齊興 築臺於華陽 悉題名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 흥에 겨워 화양동에 대를 쌓고 모두들 이름을 새겼네.
    詠月信沂樂也 旣名箴曰正
    달을 읊으니 참으로 기수의 낙이라. 또 잠(箴)을 짓기를 그 뜻을 바루고,
    其道一其中 顧於斯保無窮
    그 요체를 천착하여 무궁토록 보존하리라.
    壬子 南至日 韶石 鄭冕燮 謹記
    임자년(1912) 동지일에 소석 정면섭은 삼가 쓰다.

    *주천면 대불리 화양산에 있는 도원이라는 뜻인데 유학(儒學)적 의미에서 도원(道院)이라고 쓰는 예는 없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의 도원(道院)은 특별한 종교의 결사단체를 의미한 듯 하다. 특별한 종교라면 당시까지 그 지방(주천면 대불리)을 풍미(風靡)하였던 남학(南學)과 관련이 있지 않나 추정된다.
    *配天光聖은 연호인데 현재로서는 詳考할 도리가 없다. 종교적 연호로 보이는데 당시 이 지방에서 유행했던 金光華의 南學系 結社의 연호가 아닌가 한다.
    *楊子, 墨子- 전국시대의 사상가 들. 유가들은 이 사람들을 이단이라 하여 배척하였음.
    *六六은 36(6, 두께 6)을 뜻함
    *沂水는 중국 산동성에서 발원하여 泗水(공자의 고향에 있는 강)로 들어가는 강 이름
  • 주양리와 신양리의 경계에 위치한 먹고개 일대에 4개의 비석이 있는데, 대한의백비, 김의순 휼빈시혜비, 양학래 송덕불망비, 김치원 휼궁시혜비 등이다.
  • 【위치】 주천면 신양리 진용로 도로변 먹고개 비석군 내.
    【시기】 1968년
    【형태】 개석(蓋石)과 대석(對石)이 있다. 높이 160cm, 너비 62cm, 두께 31cm.
    【개요】 6.25 전란 당시 공비들로부터 고향을 지키다가 산화한 33위의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이곳에서 매년 현충일 추념행사를 하고 있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비문】 애향의 혼
    여기 애향에 살고 애족에 숨진 33인의 의로운 넋이 잠들어 누우셨다.
    궁서설묘(窮鼠囓猫)의 발악으로 집요(執拗)하게 교착(膠着)하여 출몰하는 북괴의 패잔병들이 낮이면 산에서 숨어 지내다가 야음을 타고 동네에 내려와 살육(殺戮)과 약탈(掠奪)을 자행(恣行)하던 6·25동란의 종반(終盤), 벽추(僻陬)된 고장에서 원군(援軍)을 기대하기 어려움을 깨닫고 면민들은 스스로 뭉치고 궐기(蹶起)하여 몽둥이와 지팡이를 야차뢰(夜叉檑)삼고 돌덩이나 육신(肉身)을 포탄삼아 용감하게 싸우다. 의(義)의 십자군(十字軍)은 죽음 앞에 억세고 침탈(侵奪) 앞에 굳세었다. 귀한 생명을 간성구축(干城構築)에 바친 넋이여.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향리수복(鄕里收復)에 희생한 넋이여. 이제 악의 무리는 사라지고 평화의 아침해가 비치는 화산봉 기슭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속삭이며 흐르는 저 주자천의 유구(悠久)한 벽록(碧綠)을 듣는가?
    지금 태평연월(太平烟月)을 구가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그대들의 영상이 깊숙하게 아롱져 가시지 않으리니 거룩한지고 그대들의 이름이여.
    송필용(宋弼用)·홍복기(洪福基)·송인성(宋寅宬)·이찬주(李贊周)·박택서(朴澤緖)·이영실(李永實)·이덕귀(李德貴)·고당주(高塘柱)·서상구(徐相九)·이이봉(李二峰)·김윤태(金允泰)·고진용(高鎭龍)·서상수(徐相洙)·오두환(吳斗煥)·이인철(李寅喆)·이갑순(李甲順)·양해붕(梁海鵬)·안귀동(安貴童)·박광래(朴光來)·김채정(金寀征)·김영만(金永萬)·최대준(崔大準)·전인수(全仁守)·권익선(權益善)·송문식(宋文植)·오문화(吳文化)·전연봉(全年峯)·문석근(文錫根)·안복열(安福烈)·정해두(鄭海斗)·남판송(南判松)·소인섭(蘇仁燮)·김옥봉(金玉峯)
    1966년 10월 한갑수 짓고, 신하균 쓰다.
    [편집자 주] 비문을 지은 한갑수는 한글학자, 글씨를 쓴 신하균은 해공 신익희의 자제이다.
  • 【위치】 주천면 신양리 진용로 도로변 먹고개 비석군 내.
    【시기】 1931년 1월
    【형태】 높이 92cm, 너비 35cm, 두께 11cm.
    【개요】 비의 양 옆에는‘恤貧除瘼 以其不贍 富亦難能 施善如登’이라 새겨져 있는데, 풀이하면 “가난을 구휼하여 고통을 덜어주니, 부자라도 쉽지 않고 선행으로만 가능하다.”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