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인 동래정씨 효열비(孺人東萊鄭氏孝烈碑)
운영자 23-12-22 14:20 123 hit
【비표】 學生天安全公辛權之 配孺人東萊鄭氏孝烈碑(학생천안전공신권지 배유인동래정씨효열비)

【위치】 마령면 계서리 388-8. 계남마을 진입로변.
【시기】 1979년
【형태】 비 주변은 철제 담장으로 둘려 있다. 비갓과 대석(臺石)이 있다. 비신(碑身) 높이 115cm, 너비 42cm, 두께 23cm.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古云孝爲百行之源이라하니 盖五典이 以之而敍하고 三綱이 以之而立이라 故로 孝親敬夫는 爲婦之道요 宜家之本이라 月浪縣二十里許馬靈溪南里故夫人鄭氏는 籍東萊니 翼惠公諱蘭宗后晩谷東朝女요 天安全氏文平公諱文軾后永璣子辛權妻也라 丰姿淑德이 出於天器하여 年十三에 母病이 急危하니 斫指注血하여 延壽七日하고 遭艱에 絶食三日하며 十七而適人하여 孝養舅姑하고 敬奉君子하되 極盡其誠이라 姑氏疚疾委席에 築壇祈天하고 揣摩心志하여 保護懇篤이나 竟終天年하니 含痛哭泣하며 哀毁逾制라 時丁島夷虐政故로 死卽葬魄이 世皆風靡라 夫人이 牢拒曰士之葬以踰月은 禮也라 豈可 畏彼而違禮乎아 하고 遵行古法하고 夫君이 以風靡로 若楚三載에 奉藥祈斗하고 喪葬禮節을 一如姑氏時하니 雖古之賢媛이라도 不是過也라 鄕誦其孝하고 比之曹孟하여 將擬闡揚하니 夫人이 聞卽拒之하고 桑麻業職하여 振其家門이라 吾族注容等諸甫가 抱其薦狀하고 昌炎遠訪曰朱夫子云先世有美에 不知는 不明이요 不傳은 不仁이라 하니 不肖輩不明不仁之尤者也라 幸奉士林指揮하여 謹竪片石하니 願惠之以文하여 俾伸微忱이며 感極幽明이니라 噫라 彰善闡美는 彛性所同이니 不可以耄耋로 辭하여 遂銘曰 風采端莊 玉潔氷淸 指血救母 幼年至誠 以事舅姑 志物備養 贍護病姑 孝莫可狀 竟至大化 痛禁俗尙 遵禮拒夷 踰月厚葬 奉夫風靡 殫竭誠敬 扶綱振紀 寔出天性 成均校宮 褒賞特行 一片穹碑 百歲輝映
大韓民國六十一年己未立秋 晉陽 河千秀 謹撰
【풀이】 옛말에 이르기를,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하니 오륜이 이것으로 순서를 정하고 삼강이 이로써 세워지게 되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지아비를 공경함은 부인의 도리요 가례의 근본이다. 마령면 계남리 고 부인 정씨는 본관이 동래이니, 익혜(공翼惠公) 휘(諱) 난종(蘭宗)의 후손 만곡(晩谷) 동조(東朝)의 딸이요,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평공(文平公) 휘(諱) 문식(文軾)의 후손 영기(永璣)의 아들 신권(辛權)의 처이다. 예쁜 자태와 정숙한 덕이 천품에서 나온 것이라, 13세에 어미의 병이 위급하니 손가락을 갈라 피를 넣어 수명을 7일간 연장케 하였고, 어미의 상을 당하매 3일을 절식하였다. 17세에 출가하여 시부모를 효로 섬기고, 지아비를 공경하고 받들매 극진 정성이었다. 시어미가 오랜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단을 쌓아 하늘에 기도하고 시어미의 심지를 헤아려 극진히 모셨으나, 결국 천명을 다하니 통탄 곡읍하며 슬퍼함이 예제를 넘었다. 때는 왜놈의 학정을 당하여 임종하면 곧바로 장사지내는 세태가 풍미하였으나 부인이 딱 잘라 거절하며, 양반의 장례에 달을 넘김은 종래의 예법이다. 어찌 저 사람들이 두려워 예법을 어길 것인가 하고 고법(古法)을 지켰다. 지아비가 중풍으로 3년간 고생하게 되자 약을 받들어 올리고 북두칠성에게 기도하며 상장(喪葬) 예절을 시어미 때와 같게 하니, 비록 옛날의 어진 여인이라도 이보다 낫지는 않을 것이다. 고을에서 그 효를 칭송하고 조맹(曹孟, 조휴[曹休]의 처[妻])에 비견하여 장차 천양하려 하니, 부인이 들은 즉 거절하고 누에치고 삼베 짜며 가업을 일으켜 가문을 떨쳤다. 나의 친족 하주용(河注容) 등 여러 선비가 그 천장(薦狀)을 품고 폭염하에 멀리 찾아왔다 그러면서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선대(先代)에 아름다운 행실이 있는데 알지 못함은 밝지 못함이요, 전하지 않음은 불인(不仁)이라 하니 불초(不肖) 자기들은 불명불인(不明不仁)이 심한 자”라 하더라. 다행히 사림이 받들어 지휘하여 삼가 편석을 세우고 비문을 원하거늘, 작은 정성이나마 펴서 저승과 이승을 감동시킬 일이다. 희(噫)라! 선을 표창하고 아름다운 행실을 드러내는 것은 불변의 도리인 바, 늙은이가 외람되게 사(辭)하여 명하기를 “풍채는 단장하여 옥처럼 깨끗하고 얼음처럼 맑았네 / 손가락 피를 어미에 먹여 어미를 구하는 등 유년부터 지성이었네 / 시부모를 섬김에 마음과 몸을 아울러 공궤했네 / 병든 시어미 편안하게 구환하니 그 효성 형용하기 어렵네. / 필경 운명하니 애통을 참고 전래의 풍속을 숭상하여 / 왜놈의 풍속 거부하고 달 넘겨 후히 장사지냈네. / 지아비 풍병 수발에도 정성과 공경을 다하고 / 기강을 세우고 떨침은 진실로 하늘이 낸 성품일세. / 성균관과 향교에서 특행을 포상하여 / 비 하나를 세우니 백세에 빛나리.” 대한민국 61년 기미(己未) 입추 진양 하천수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