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효열부 연안이씨 기적비(孝烈婦延安李氏紀蹟碑)
운영자 23-12-22 14:20 118 hit
【위치】 마령면 계서리 1312. 오동마을 진입로 좌측.
【시기】 1978년
【형태】 비 주변은 철제 담장으로 둘려 있다. 비신(碑身)은 석곽(石廓) 안에 들어 있다. 비신 높이 220cm, 너비 50cm.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鎭安治南梧桐里에 有一短碣이 兀然立乎洞口하니 卽故孝烈婦 孺人李氏紀蹟之碑也라. 按孺人은 延安氏니 文良公隱峯 諱元發後요 成均生員芝隱 諱龜彩五世孫이요 士人重琬女也니 生而天性이 溫淑하야 事親以孝하니 九族稱誦이러라 及笄에 爲延安金鍾植妻하니 公은 卽 文靖公逸溪諱自知後요 幼學元基子也라 孺人이 旣歸에 上有姑氏在堂하야 以老病委床이어늘 孺人이 晝夜侍側하여 衣不解帶하고 扶持調護十二載에 終始如一日하고 竟遭大故에 遑遑望望하야 致哀盡制하니 於是孝譽가 藉藉益播焉하니라 敬承君子하야 勤儉宜家러니 未幾에 夫子罹疾하야 百藥無靈이어늘 孺人이 致憂不已하야 每夜汲泉하야 祈斗願代하고 及其危谹에 斫脂注血하고 割股煮進하야 漸得回甦라 因欲生魚어늘 孺人이 躬往前川하야 將欲求之하야 方行石洑沙濱之際에 忽得躍鯷하야 持歸而供之하니 遂見夫病得差하야 和樂同居러니 厥後에 又患重病五年에 多方藥餌가 無有可救之術이라 惟願生雉어늘 孺人이 念念求之 當用藥材하야 適採竹葉이러니 忽有飛雉가 墜入於前이어늘 抱歸烹進하야 旋卽奏效하니 鄕里驚歎하야 以爲至誠所感致云이러라 嗚呼라 孺人은 可謂賢孝且烈矣로다 盡孝于姑하고 竭力于所天하야 只知有夫而不知有其身하야 行人所難行 而垂令譽於後世하니 如其躍鯷飛雉之徵이 苟非至誠之格天動地者면 其能致乎哉아 與故人氷鯉幕衝으로 可疋美矣니 豈不偉哉아 惜其行義가 宜蒙天褒이어늘 而只因時與古異하야 尙無綽楔之擧하니 添得士女之齎恨者-久矣라 一鄕章甫가 薦于五倫行實刊所하야 而得有褒狀하니 幸何如之리요 今其冑胤吉泳이 懼懿德泯沒하야 將伐石紀蹟일새 走其再從姪錫柱하야 介全永和甫하야 遠來謁文이어늘 余以不德으로 固辭未獲하고 則只據狀摭實如右而還之하야 刻諸碑陰하야 使後觀感而興起焉하노라 抑斯役也에 全壽南 安導遠甫 亦多賢勞云 垈地獻誠 全海(缺) 檀紀四三一一年 戊午 復月 下澣 奈城 嚴命涉 撰 延安 李湘寧 謹書
孫 海柱 良柱 垣柱 奉柱 萬柱 孫婿 羅州 林鍾允 曲阜 孔文洙
【풀이】 진안(鎭安) 치소(治所)의 남쪽 오동리(梧桐里)의 어귀에 단갈(短碣)이 하나 우뚝 서 있으니 고(故) 효열부(孝烈婦) 유인(孺人) 이씨(李氏)의 기적비이다. 상고하건대 유인은 연안씨(延安氏)이니 문양공(文良公) 은봉(隱峯) 휘 원발(元發)의 후예로 성균생원(成均生員) 지은(芝隱) 휘 구채(龜彩)의 5세손이오, 사인(士人) 중완(重琬)의 따님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천성이 온숙(溫淑)하여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니 온 종족들이 칭송하였다. 나이가 차자 연안(延安) 김종식(金鐘植)의 처가 되었는데 김공(金公)은 문정공(文靖公) 일계(逸溪) 휘 자지(自知)의 후예인 규학(糾學) 원기(元基)의 아들이다. 유인이 시집에 와 보니 위로 시어머니가 계셨는데 노병(老病)으로 병석에 있었다. 유인이 밤낮으로 곁을 떠나지 않았고 밤에도 허리띠를 풀지 않은 채 간호하기 12년을 하루와 같이 하였고 마침내 상(喪)을 당해서는 경황없이 슬퍼하고 치상(治喪)에 예제(禮制)를 다하였는데 그러자 칭찬이 자자하여 송성(頌聲)이 널리 퍼졌다. 부군(夫君)을 경건하게 섬기고 근검절약하여 온 집안이 화목하게 지내더니 오래지 않아 부군이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하였다. 유인이 끝없이 걱정하여 밤마다 우물물을 새로 떠다가 놓고 북두칠성에 빌기를 자신이 대신하겠다하고 병이 더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받아 입에 드리우고 허벅지의 살을 발라 끓여서 올리니 병이 점차 회복이 되었다. 이윽고 생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여 유인이 몸소 앞 시내에 나가 잡아보려고 하여 막 돌보[石洑]의 모래 언저리로 가려고 할 즈음에 느닷없이 메기 한 마리가 뛰쳐나와 움켜쥐고 돌아와서 바치니 부군의 병이 차도가 있어 화락하게 잘 지냈다. 그 뒤에 부군이 또 5년간이나 중병을 앓아 다방으로 약을 구하여 썼으나 효험이 없고 오직 산 꿩만 먹고 싶다고 하였는데 유인이 그 생각을 하면서 우선 달리 약재로 쓰려고 대잎[竹葉]을 따고 있으려니 갑자기 꿩이 날아들어 유인의 앞에 거꾸러지거늘 안고 돌아와 다려서 올리니 곧바로 효과가 있자 인근 마을에서 놀라고 탄복하여 이르기를 지성에 감동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였다. 오호라! 유인은 가위 어질고 효성스럽고 정렬(貞烈)이 있다하겠다. 시어머니에게는 효성을 다하고 부군에게는 심력을 다하여 다만 부군이 있는 줄만 알고 자기 자신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여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바를 행하여 슬거운 명예를 후세에 전하였는데 이를테면 메기가 뛰쳐나오고 꿩이 날아든 것 같은 이징(異徵)은 진실로 지성이 하늘을 감동시키고 땅을 감명케 한 것이 아니면 될 법이나 한 일이던가 옛 사람의 얼음 속에서 잉어가 뛰어나오고 새가 저절로 날아들어 천막에 부딪친 일과 훌륭함이 필적(匹敵)하다 하겠으니 어찌 훌륭하지 아니한가 애석하게도 그 행의(行義)는 나라의 포장이 있어야 마땅하건만 세상이 옛날과는 다른 까닭으로 아직까지 정려(旌閭)의 거행이 없었으니 사녀(士女)의 억울해함이 더한지 오래였다. 그러던 차에 온 고을 장보(章甫:선비)가 오륜행실간행소(五倫行實刊行所)에 천거하여 포장(褒狀)을 얻었으니 그 다행함이 어떻다하겠는가 지금 그 맏아들 길영(吉泳)이 유인의 아름다운 덕이 민몰(泯沒)할가 두려워하여 돌을 다듬어 사적을 기록하려고 할 즈음 전영화보(全永和甫)의 소개로 그 재종길(再從姞) 석주(錫柱)를 멀리 나에게 보내서 글을 청하였다. 나는 부덕한 사람이라 굳이 사양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여 다만 가장(家狀)에 의거하여 위와 같이 사실만 간추려 돌려보내서 비의 뒷면에 각하여 후인(後人)으로 하여금 보고 느껴서 진작(振作)하게 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일에는 전수남(全壽南), 안도원(安導遠) 두 선비의 현로(賢勞)가 많았다 한다. 부지(敷地)를 희사한 사람은 전해■(全海[缺])이다. 단기 4311(1978)년 무오(戊午) 복월(復月) 하한(下澣) 나성(奈城) 엄명섭(嚴命涉) 찬하고, 연안(延安) 이상녕(李湘寧) 삼가 쓰다. 손(孫) 海柱 良柱 垣柱 奉柱 萬柱 손서(孫婿) 나주(羅州) 林鍾允 곡부(曲阜) 孔文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