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표】 士人文化柳英均之妻節婦兆陽林氏紀蹟碑(사인문화류영균지처절부조양임씨기적비)

    【위치】 백운면 운교리 산 114-2. 금동진입로 좌측.
    【시기】 1961년
    【형태】 비신(碑身)은 석곽(石廓) 안에 들어 있다. 비신 높이 98cm, 너비 40cm.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謹按列郡文通則鎭安之白雲有節婦林氏 貫兆陽士人明先女 文化柳英均妻 其夫委臥數載 祝天願代 竟至無効割股裂指 天命不助 遭其艱哀毁踰禮 有幼孤未得下從而未機乳孤夭折 節婦絶食數日旋自念曰宛之無益 春採夏鋤秋收冬織 無一時閒安而成其家定其嗣使其夫後無泉臺之憾 有士林之薦 親族伐珉紀蹟云
    歲辛丑仲秋 錦城吳大善謹書
    【풀이】 열군에서 보내온 통문을 살펴보니, 진안(鎭安)의 백운(白雲)면에 절부(節婦) 임씨(林氏)가 있으니, 조양인(兆陽人) 사인(士人) 명선(明先)의 여(女)요, 문화(文化) 유영균(柳英均)의 처(妻)이다. 지아비가 수년을 와병하니, 자신을 대신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고, 허벅지 살을 떼어 먹이고 손가락 피를 먹였으나 결국 천명은 어쩔 수 없어 지아비 상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슬퍼함이 예제를 벗어났다. 어린애가 있어 지아비를 뒤따라 죽지 못했으나 얼마 아니하여 아이가 요절함으로 음식 끊기를 수일간 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이것은 무익한 일이다”라 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뒤 봄이면 나물을 캐고 여름에는 호미질하며 가을에는 추수하고 겨울이면 베를 짜는 등 잠시도 한가하고 편안한 시간이 없이 일하였다. 그리하여 집안을 일으켰으며, 양자를 들여 지아비의 뒤를 잇게 하였으니, 어찌 감동됨이 없으리요. 사림에서 추천하고 친족이 비를 세우고자 하여 그 사실을 적는다. 세 신축(歲辛丑, 1961) 중추(仲秋) 금성(錦城) 오대선(吳大善) 근서(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