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송재 전봉호 부부효행비(松齋全奉鎬夫婦孝行碑)
운영자 23-12-22 14:20 87 hit
【비표】 松齋處士天安全公 孺人全州李氏 夫婦孝行碑(송재처사천안전공유인전주이씨부부효행비)

【위치】 백운면 남계리 오정마을 진입로 우측변
【시기】 1982년
【형태】 비 주변은 철제 담장으로 둘려 있다. 비갓과 대석(臺石)이 있다.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有子曰孝悌也者爲仁之本 仁本於孝忠本於孝百行萬善無一不本於孝 此一綱擧衆目張者也 所以一有其人則載之竹帛表之門閭以爲人柯則 嗟呼 世方異敎鴟張彛倫沮喪而長夜一燭群於燭陽者 百濟歡城君聶後 光國將軍嘉齋諱東屹八世孫 號麗山 諱基學子 天安全公 奉鎬是也 公風采秀麗 性行端雅 動靜云爲 暗合規矩 而夫人全州李氏 亦閨門女士也 産業苟艱夫耕婦織 容有菜色衣無完布於兩親怡愉洞屬味之甘衣之良 必備有餘父母常安樂稱父罹貞疾藥之供粥之奉 夫婦共之井花祈禱 夫於山 婦於壇 丁艱盡易戚而夫哭墓婦哭殯三燧一如 母氏八旬 老病呻吟數載 有聞則夫口于耳而聽之有味則婦手于口而啖之性 嗜川鮮雖刀風虐雪 夫叩氷婦携筌得之間 有妄言指幼兒 爲雞命烹而供 夫婦割雞進之尿屎之遺相扶滌之唾洟食餘 對共啜勿之棄擲 遭故葬祭如禮 有時興哀而淚下 夫人讓寧大君後士彦女 其陰訓有自來矣 噫 一鄕之一人難 况一家二孝乎 且兼董之廚 王之鯉 邕之哀 連之居果 叔世絶無之孝也 列郡之褒薦 是秉彛之極天罔墜而 其子泰成 亦以孝見重此所謂鳳無凡毛之理也 月浪士人 宋升煥 崔昶鉉 李聖麟 諸彦 以籲天無地竪一貞珉 以代箭門而世無韓子之筆 鎭安鄕校 典校安導遠 與全炯順 齎狀軸索 銘於余 余孤陋烏敢當辭不得則揚摧實德之梗槪以待外史氏繩正 銘曰 百行萬善 本之於孝 所以聖賢 垂之名敎 一鄕難一 一家有二 半夜聲雷 一世標幟 事生之董 居喪之連 河淸何時 欲問于天
壬戌如月上日 晉陽 河千秀 謹撰
【풀이】 유자(有子, 공자의 제자 유약[有若])가 말하기를 “효제(孝悌)는 인(仁)의 근본이다. 인(仁)은 효(孝)에 뿌리를 두고 충(忠)도 효에 뿌리를 두나니, 백행(百行)과 만선(萬善)이 효(孝)에 뿌리를 두지 않음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이 강령은 사람들의 눈을 틔게 하는 것이라, 이를 실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책에 그 이름을 올리고 정려를 내려 사람들의 모범이 되게 하는 것이다. 차호(嗟呼)라, 세상은 지금 이교(異敎)가 퍼져 이륜(彛倫)을 무너뜨리는데 긴긴 밤에 빛나는 촛불이 하나 있으니, 백제 환성군(百濟歡城君) 섭(褐)의 후손 광국장군(光國將軍) 가재(嘉齋) 동흘(東屹)의 8세손, 여산(麗山) 기학(基學)의 아들 천안(天安) 전공(全公) 봉호(奉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공은 풍채가 수려하고 성정과 행실이 단아하며 입이 무거워 본보기가 되었고,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 또한 규문(閨門)의 여사(女士)였다. 집안이 비록 가난하여 공은 밭 갈고 부인은 베를 짜며 얼굴은 마르고 옷은 기워 입었으나, 양친에게는 즐거이 좋은 음식과 옷으로 공양하였고, 반드시 여분을 준비하여 항상 부모를 안락하게 하였다. 부친이 병에 걸렸을 때는 부부가 같이 약시중을 들었는데, 부인은 단에서 공은 산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진정으로 슬퍼하였으며, 공은 묘에서 곡하고 부인은 집안에서 곡하기를 3년 동안 한결같이 하였다. 모친이 팔순으로 늙어 병에 신음하기를 수년 동안에,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공이 듣고 부인이 손수 만들어 공양하였다. 모친이 싱싱한 천어(川魚)를 좋아하므로 공은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도 얼음을 깨었으며, 부인은 통발을 들고 고기를 잡았다. 모친이 노망으로 어린애를 가리키며 저놈 잡아 달라 하니 예예하고 닭을 잡아 봉양하였고, 변이 묻은 빨래는 서로 도와 씻었으며, 모친의 침과 콧물이 들어간 음식도 버리지 않고 부부가 마주앉아 먹었다. 상을 당하매 장제를 예에 따라 치렀으며, 슬픔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부인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인 사언(士彦)의 따님으로 그 음훈(陰訓)을 따랐으니, 희(噫)라! 한 고을에 한 사람이 있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한 집안에 이효(二孝)이리오. 이는 동소남(董召南)의 부엌에 꿩이 날라 들어온 고사와 왕상(王祥)의 얼음 속의 잉어 고사와 채옹(邕)의 슬퍼함이나 대련과 소련 형제가 초상 치르는 고사에 비하여 말세에도 끊어지지 않을 효이다. 열군(列郡)에서 천거하였으니 이는 이륜(彛倫)의 지극함을 붙잡아 천도(天道)가 떨어지지 않게 함이다. 그 아들 태성(泰成) 역시 효성으로 추중함을 받았으니, 이는 소위 봉(鳳)에게는 평범한 터럭이 하나도 없는 이치이다. 진안의 선비 송승환(宋升煥)과 최창현(崔昶鉉)·이성린(李聖麟) 등 제 선비들이 하늘에 호소할 길 없어 하나의 비석을 세워 홍살문에 대신하려 하나, 세상에는 한창려(韓昌黎) 같은 문장이 없어 진안 향교의 전교(典校) 안도원(安導遠)과 전형순(全炯順)이 장축(狀軸)을 정리하여 내게 명(銘)을 부탁하였다. 나는 고루하여 감당하지 못 하노라고 사양하였지만, 부득이 하여 그 실덕(實德)의 대강을 천양(闡揚)하노니 이를 바루어 줄 사람을 기다리노라. 명(銘)하기를 “효는 백행(百行)과 만선(萬善)의 근본이라 / 성현께서도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라고 가르치는 까닭이네. / 한 고을에 하나도 어려우나 한 집안에 둘이 있었네. / 어두운 밤에 등촉이요, 사람을 경계하는 우렛소리이니 일세의 본보기일세 / 살아서 섬김이 동소남과 같았고, 상을 당하매 뜻이 연(連)형제와 같았네 / 황하수가 언제 맑아질까[황하가 맑아지면 태평성대가 된다고 함] 하늘에 묻고 싶네.” 임술(壬戌) 여월( 如月) 상일(上日) 진양(晉陽) 하천수 근찬(河千秀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