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열부 창녕성씨 기적비(烈婦昌寧成氏紀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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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표】 烈婦孺人昌寧成氏紀蹟碑(열부유인창녕성씨기적비)

【위치】 백운면 노촌리 671. 영모정 서쪽 신의련효자각 옆.
【시기】 1955년
【형태】 비갓과 대석(臺石)이 있다. 비신(碑身) 높이 150cm, 너비 53cm, 두께 27cm.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有韓紀元丙寅에 孺人昌寧成氏-卒于鎭安之蘆村하니 鄕之知不知咸曰烈婦라하야 有爲褒狀者와 有爲立傳者-何其盛哉오 若其紀績碑-今焉始圖는 嗚呼其晩矣라 到此綱紀蔑如之秋에 使此貞節로 不有以紀하면 奸人淫婦之肝膽이 孰有以雷破이요 雖然이나 孺人은 果何修而至此오 年十八에 爲居昌愼公疇範再配하야 奉舅事夫에 孝敬이 備至하고 居無何에 喪夫하야 撫前室子를 如己出이러니 一日에 路上에 暴漢이 欲㥘이어늘 孺人이 慢罵矢拒하고 兼賴行商過救하야 得免歸하야 謂家人曰以婦女로 接他男子手하니 吾何忍生이리요 歸拜九天之良人하야 以訴吾心이라하고 遂三刃其項而死하니 修堂處士鄭鍾曄이 贊曰王凝之妻-爲人牽臂에 引斧斷臂러니 今成氏는 永殞其命하니 其節이 可與氷霜으로 同其皎潔이라하니 吾於此에 亦無異辭焉하노라 愼公은 襄烈公以衷의 后요 同敦寧鎰晟의 子也오 孺人은 文景公獨谷石磷之后也라 沒後에 鄕儒全載敏 梁基柱李炳淵吳基烈諸公의 特書烈婦而竪于通街하고 今爲之紀蹟者는 愼氏擧宗而來請文者亮晟景範은 愼門季士而宰哲이 亦與焉하니 於孺人에 孫也라 余爲遣宰哲하야 乞銘于裕齋宋公基冕하니 其銘에 曰 狂瀾이 滔天하고 邪說이 鴟張이라 掃廉蕩耻에 禮敬이 粃糠이라 嗟嗟烈婦-獨任綱常이라 突遇惡漢에 獲救行商이라 適耶偶耶아 鑑自彼蒼이라 猶抱羞惡-寔天之良이라 刃頸昭義-凜若秋霜이라 歸對吾夫에 夫曰吾婦로다 峙其碑之에 鄕士倡首로다 疇其尸之에 宗黨克終이로다 孰芳不彰이며 孰媺不崇이리요 屹彼片石이 日星萬歷이로다
西紀一九五五年 乙未二月上澣
全義 李炳殷 撰
【풀이】 1926년 병인에 유인 창녕 성씨가 진안 노촌에서 돌아가시니, 향리에서 모든 사람이 열부라 하여 포상을 위하여 서장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말로 전하는 사람도 있으니 어찌 성하지 않으리오. 그 기적비를 이제 비로소 세우고 전하니 슬프고, 늦은 감이 있도다. 기강이 없어져 가는 때에 굳은 절개로 하여금 기강을 세우지 아니하면, 간사한 사람과 음란한 여자의 속마음을 누가 깨뜨릴 것인가? 유인은 과연 어떻게 수신을 하여 이렇게 됐으리오. 나이 18세에 거창 신공 주범의 재배가 되어, 시아버지를 받들고 남편을 섬기어 효도하고 공경함이 갖추어져 있더니, 혼인한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의 상을 당하여 전실의 아들을 자기가 낳은 친아들과 같이 하였다. 어느 날 길가에서 흉악한 사람이 겁탈하고자 하거늘 유인이 엄하게 꾸짖어 똑바로 막고, 마침 지나가던 행인의 구원에 힘입어 화를 면하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부녀자로 다른 남자의 손을 잡으니 내가 어찌 참고 살으리오. 구천의 남편에게 돌아가 내 마음을 호소하리라 하고 드디어 그 목에 세 번 칼로 찔러 죽으니, 수당처사 정종엽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왕응지의 아내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팔을 끌어당김에 도끼로 자기의 팔을 끊어버리더니, 지금 성씨는 영원히 죽어버리니, 그 절개가 얼음과 서리 같으므로 그 희고 맑음이 같다. 내가 이에 또한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더라. 신공은 양렬공 이충의 후손이요, 동돈녕 익성의 아들이다. 유인은 문경공 독곡 석린의 후손이다. 돌아가신 후에 고향의 선비 전재민, 양기주, 이병연, 오기열 제공이 특별히 열부라 써서 큰길가에 세우고, 이제 기적을 위하는 자는 신씨의 여러 종친이요, 글을 청하러 오는 자는 양성 경범이니 신문중의 수재 선비이며, 재철이 또한 같으니 유인의 손이다. 내가 재철를 보내어 유재 송공 기면에게 명(銘)을 지어 주기를 청하니, 그 명에 이르기를 “사나운 물결이 하늘까지 창일하고 간악한 사람들이 말을 속이는지라 / 청렴도 쓸어서 버리고 치욕도 없애 버리니 예의와 경건이 빈쭉정이로 변하였다. / 슬프고 슬프다. 열부여 삼강과 오상을 홀로 맡았도다. / 뜻밖에 악한을 만났으나 행상이 구해주었도다. / 마침이랴, 우연이랴 스스로 저 하늘에 비치더라. / 오히려 자기의 나쁜 것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나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으니 / 이는 저 하늘의 남편 때문이라. / 목을 칼로 찌르고 의리를 밝게 하니 추상(秋霜) 같은 차가움이다. / 돌아가 나의 남편을 대함에 남편이 말하기를 과연 나의 부인이로다. / 그 고개에 비석을 세우니 고향 선비들이 인도하였도다. / 누가 그것을 주관했으리요. 종당(宗黨, 일가)이 마쳤도다. / 누가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아니하며 누가 그 착함을 높이지 않으리오. / 높은 저 비석이 해와 별처럼 만년을 지내리로다.” 서기 1955년 을미(乙未) 2월 상순 전의(全義) 이병은(李炳殷) 찬(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