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유인 능성구씨 기적비(孺人綾城具氏紀蹟碑)
운영자 23-12-22 14:20 86 hit
【위치】 백운면 노촌리 671. 영모정 서쪽 신의련효자각 옆.
【시기】 1968년
【형태】 높이 140cm, 너비 48cm, 두께 23cm.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愼公俊範의 配具氏之卓孝者著于家而鄕爲之褒나 然이나 其子鏞八이 恐或世久不傳之爲不孝하야 竪碑閭里하야 以表紀蹟할새 使貴泳之不文으로 文之어늘 乃不顧不文은 而同居一鄕塾世交而然耶아 辭不獲己하야 按孺狀也에 具氏籍은 綾城이요 三重大匡檢校諱存裕의 后요 宗仁의 女라 孺人이 自幼로 異凡하야 在家孝親而女工諸節을 無所不能하니 族戚鄰里莫不稱其善閨範이러니 及歸其嫁에 家貧親老하야 菽水難繼라 與夫君으로 共挽鹿車而或鋤或傭하고 桑麻爲業하니 自是로 一無供養之憂러라 舅氏平日所嗜者는 川魚而雖隆冬極寒이라도 叩永求魚하야 三供進饌에 川漁不絶하고 若有捐攝則致其憂하야 問何適口而進其食飮하고 竭誠用藥하고 夜禱星斗하야 見效以後에 己러라 畢天年終也에 哀毁過度하고 送終奉凡之節을 不顧家勢而極其誠하고 葬祭를 一遵禮制하야 使無憾焉하고 至於奉君子之道에 承順無違하야 一動一靜이 不下於古之賢媛淑女之懿行耳러라 嗚呼라 風潮日變하고 綱倫이 頹敗而子孝其親도 斯世罕聞이어늘 況婦孝其舅也리요 孝當旌褒而今無國典하니 可恨이로다 俊範은 居昌后人이니 襄烈公諱以衷美溪諱義連은 其顯祖也라 鏞八이 介吾友愼吉晟하야 要以刻碑之辭어늘 遂書如此云이로다
大韓光復戊申天中節東萊鄭貴泳述
【풀이】 신공(愼公) 준범(俊範)의 처 구씨(具氏)의 탁이한 효성은 집안에서 드러나고 고을에서 포상하였다. 그러나 그 아들 용팔(鏞八)이 혹시 세월이 오래되어 전해지지 못하면 불효가 될까 두려워하여 마을 앞에 비를 세우고 사적을 나 귀영(貴泳)으로 하여금 기록하여 달라고 하였다. 나는 문장이 아니지만 불고(不顧)하는 것은 같은 고향에 살면서 같이 배우고 세교가 있는 까닭에 사양치 못함이다. 유장(孺狀)을 살펴보니 구씨(具氏)의 본관은 능성(綾城)이요 삼중대광검교(三重大匡檢校) 휘(諱) 존유(存裕)의 후손 종인(宗仁)의 딸이다. 유인(孺人)이 어려서부터 평범하지 아니하여 집에서부터 효친하고 길쌈과 바느질 솜씨를 익혀 능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족척(族戚)과 마을 사람이 그 규범(閨範)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출가하여 보니 시집은 구차하고 시부모가 있으나 숙수(菽水 / 험한 음식)일망정 끼니를 대기가 어려웠다. 지아비와 더불어 조그마한 수레를 끌고 혹은 호미질, 혹은 품팔이하며 누에치고 삼베 짜며 가업에 힘쓰니 이로부터 음식을 올림에 조금도 걱정이 없었다. 시아비는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물고기라. 비록 엄동극한이라도 얼음을 깨어 물고기를 잡아 세끼 반찬으로 물고기가 떨어지지 않았고, 만일 자시지 않으면 그 연유를 물어 입맛에 맞도록 진지를 올렸다. 정성을 다하여 약을 끓여 올리고 밤에는 북두칠성에 기도하여 효험을 보았으나 결국 천수를 다하여 임종함에 슬퍼함이 법도를 넘고, 장례 절차는 가세를 돌아보지 않고 극진한 정성으로 하였으며, 예제를 지켜 유감이 없도록 하였다. 지아비 섬기는 도리에 따르고 거스름이 없어 일동 일정(一動一靜)이 옛적의 어진 숙녀의 아름다운 행실에 비하여 못하지 않았다. 오호(嗚呼)라! 세상의 풍조가 날로 변하고 강륜(綱倫)이 퇴폐하여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함도 이 세대에는 듣기 어렵거늘, 하물며 며느리의 시부에 대한 효성이리요. 한되도다. 준범(俊範)은 거창(居昌)이 본관이니 양렬공(襄烈公) 휘(諱) 이충(以衷), 미계(美溪) 휘(諱) 의련(義連)은 그의 저명한 선조이다. 용팔(鏞八)이 내 벗 신길성(愼吉晟)으로 하여금 비문을 부탁하거늘 이처럼 쓰노라. 대한광복(大韓光復) 무신( 戊申) 천중절(天中節) 동래(東萊) 정귀영(鄭貴泳) 술(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