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유인 죽산안씨 효열비(孺人竹山安氏孝烈碑)
운영자 23-12-22 14:20 116 hit
【위치】 안천면 백화리 하배실마을 어귀
【시기】 1981년
【형태】 비신(碑身)은 석곽(石廓) 안에 들어 있다. 비신 높이 132cm, 너비 44cm, 두께 20cm.
【개요】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孝는 爲百行之源而人所難行이며 烈은 爲不二之謂而人所難事라 彰孝褒烈은 古今罕有之事나 然이니 孝當竭力하고 烈爲盡心이라 乃孝則孝요 烈則烈也라 故로 士人顔川面白華里金蘷欽妻竹山安氏는 竹城君文惠公諱元衡之后며 嘉善大夫鳳擧之女며 始祖監務樂安金公諱粹澄八世孫 贈右議政謚襄惠公諱贇吉之十七世孫이며 在忠之子也라 該妻가 天性이 柔仁端潔하고 行方而智圓하고 言溫而氣和하야 將有令持이러니 年纔十二에 父有奇疾하야 心憂色思하고 盡夜祈斗하고 百方救治하야 因得蘇快하고 及其婚期하야 謹受柱單而於焉歲月이 待秋成親之際에 聞其夫之病報沈重하야 卽歸夫家하니 幾至死境故로 嚼脂注血하여 因得回甦하니 實非格天之誠이면 何若是神感耶아 天命이 有限이라 纔過七日而逝去하니 痛哭奈何오 夫人時年이 十九歲라 烈烈其心이 卽欲追逝而惟恐尊堂之傷心故로 含痛止忍하고 送終以禮하고 事舅姑益誠하며 率養繼后하여 不墜家規하고 以終天年하니 前古後今에 孝烈炳炳하니 豈不褒揚之아 后孫爛商熟議하야 齊聲同起하고 修石表記하여 恭報一寸微誠하고 謹垂芳名千年焉하다
檀紀四千三百十四年 辛酉月 日
【풀이】 효는 백행의 근본이나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일이며, 열은 둘이 아니지만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바이다. 효를 표창하고 열을 포상함은 고금에 드문 일이나, 힘을 다하여 효하고 마음을 다하여 열을 행한 이가 있으니 효 중에 효요, 열 중에 열이라. 사인(士人) 안천면(顔川面) 백화리(白華里) 김기흠(金柏欽)의 처 죽산 안씨(竹山安氏)는 죽성군(竹城君) 문혜공(文惠公) 휘(諱) 원형(元衡)의 후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봉거(鳳擧)의 여(女)이며, 지아비는 시조(始祖) 감무(監務) 낙안 김공(樂安金公) 휘(諱) 수징(粹澄)의 8세손 증(贈) 우의정(右議政) 양혜공(襄惠公) 휘(諱) 빈길(贇吉)의 17세손인 재충(在忠)의 아들이다. 그 처의 천성이 유인단결(柔仁端潔)하고 품행이 방정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원만하고 말투가 정겹고 화애로운 기운이 있어 장래 기대할 만하더니, 나이 겨우 12살에 아비가 괴질에 걸리자, 마음에 근심이 있어 얼굴색이 변하여 밤새도록 북두칠성에 기도하며 백방으로 구환하여 쾌유토록 하였다. 혼기가 닥쳐 사주단자를 받아놓고 가을에 혼례를 치르기로 하였는데, 정혼자가 병이 들어 위중하다는 소식이 들리자 바로 정혼자 집에 가서 보니 사경에 이르렀는지라,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넣어주니 실로 하늘이 낸 지성이라 어찌 신명이 감복치 아니하리오. 그러나 천명이 유한이라 겨우 7일 후에 졸하고 마니 통곡한들 어쩌리오. 이때 부인(夫人)의 나이가 19세라 열렬(烈烈)한 그 마음이 바로 정혼자의 뒤를 따르고 싶었으나 어른들이 상심할까 염려하여 슬픔을 참고 장례 절차를 예를 다하여 마치고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고, 양자를 들여 집안을 잇게 하여 집안을 멸문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천수를 누리니, 어찌 포양(褒揚)하지 아니하리오. 후손이 난상토의하고 모두 의견을 같이하여 비석에 기록하여 조그마한 성의라도 올리자고 하니, 삼가 방명(芳名)은 천년을 드리우소서. 단기 4314(1981)년 신유(辛酉) 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