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정천면 모정리 970-40 정천망향의 동산 내.
    【시기】 1934년
    【형태】 높이 92cm, 너비 34cm, 두께 11cm.
    【개요】 이 비석들은 본디 정천면 모정리 머리실 마을에 있었으나 용담댐담수로 인한 수몰로 2000년 이 자리에 이건된 것이다. 김오섭(金五燮)은 일제하 진안군수였다. 기록이 멸실되어 구체적 재임연대는 미상이나 1935년 이전에 재임하였다.
  • 【비표】 前參判高公奉柱捐義不忘碑

    【위치】 정천면 모정리 970-40 정천망향의 동산 내.
    【시기】 불명
    【형태】 높이 108cm, 너비 33cm, 두께 11cm.
    【개요】 이 비석은 본디 정천파출소 앞에 있었으나 용담댐담수로 인한 수몰로 2000년 이 자리에 이건된 것이다. 고봉주는 일명 고영일이라고도 하며 한약방을 하던 사람으로 공명첩(空名帖)으로 참판벼슬을 얻기도 하였다. 앵일(영일)탕이란 한약으로 만병을 통치하고 부자가 되었는데, 모실에 정천파출소가 세워지는 것과 망덕 앞으로 신작로를 내는 것을 반대하였고, 정천파출소를 지어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용담 향교의 직원(오늘날의 전교)을 지내기도 하였다고 하였는데, 늦게 얻은 아들 때문에 망했다고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