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정부인 파주염씨 열녀비(貞夫人坡州廉氏烈女碑)
운영자 23-12-22 14:20 59 hit
【비표】 嘉善大夫折衝將軍龍驤衛右護軍晉州姜成寬妻貞夫人坡州廉氏烈女碑(가선대부절충장군용양위우호군진주강성관처정부인파주염씨열녀비)

【위치】 정천면 봉학리 544-1. 상조림 정천면사무소 옆
【시기】 1938년
【형태】 돌비각 안에 세운 비이다.
【개요】 정천면 봉학리 신촌 동네 안에 있었는데 용담댐 수몰로 이건하였다. 본디 비각이 있었으나 이건 시에 없어졌다. 비표(碑表)에 ‘嘉善大夫 折衝將軍龍驤衛右護軍 晉州 姜成寬 妻 貞夫人 坡州廉氏 烈女碑’, 우측에 ‘戊寅(1938) 四月 日’ 좌측에 ‘崇祿大夫 吏曹判書 原任奎章閣弘文學士 唐城 洪淳聲’ 뒤에 ‘歲丙子(1936) 仲冬(11월) 下浣 龍潭 文廟直員 韓鎭洙 撰’의 글이 새겨져 있다. 비(碑) 주인공의 신상(身上)과 사적(事績)은 비문(碑文)에 실려 있다.

【비문】 姜參奉明善 將立其先妣 貞夫人坡州廉氏烈女碑 一日持道郡儒狀來示曰 子居一鄕 詳知貞夫人美跡 今圖久遠不朽 舍子其誰 子須爲記 謝非 其人不獲 曰貞夫人 梅軒諱悌臣后 承範女 關西大將軍諱元老后 嘉善貫晉州姜成寬之妻 性姿柔婉 及于歸 孝事舅姑 禮相君子 年三十三 夫嬰齊疾 百方救護 誠無不到 竟遭崩城 矢以下從 顧念先祀無托 幼孤難保 强忍執喪 葬祭如禮 時値東亂 家燒産焚 托寄族戚 勤孜紡績 立門戶於艱危之日 扶綱常於頹敗之地 儒論自在 建閣竪碑 略具事實以記焉. 龍潭文廟直員 韓鎭洙 撰. 戊寅 四月 日. 【풀이】 강참봉(姜參奉) 명선(明善)이 장차 그의 선비(先妣: 돌아가신 어머니) 정부인 파주염씨의 열녀비를 세우려고 하면서 하루는 도군(道郡)의 유장(儒狀)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고 하는 말이 “자네는 한 고을에 사니까 정부인의 훌륭한 행적을 자세히 알고 있을걸세 지금 구원토록 전해질 일을 도모하려는데 자네를 두고 누구에게 청하겠는가 부디 자네가 기술해주게나” 하였다. 나는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사절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정부인은 매헌(梅軒) 휘 제신(悌臣)의 후예인 승범(承範)의 따님이오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휘 원로(元老)의 후예인 가선(嘉善) 진주(晉州) 강성관(姜成寬)의 처이다. 천성이 부드럽고 아리따웠는데 시집을 와서는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군자(君子: 남편을 경칭하는 말)을 예(禮)로써 도왔다. 나이 33세 때에 부군이 병에 걸려 백방으로 구토하여 정성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마침내 붕성(朋城)의 슬픔을 당하게 되어 따라 죽기로 작정하였으나 돌이켜보니 선대의 제사를 맡길 데가 없고 어린 고아(孤兒)를 보전하지 못하게 되겠기에 억지로 참고 초상을 치르고 장례와 제사도 예절대로 거행하였다. 그때에 동학란(東學亂)을 만나 집과 가산을 불태우고 족척(族戚)에게 의탁하고 지냈으나 부지런히 길쌈을 하여 위급한 때에 문호(門戶: 집안)를 세우고 탕패(蕩敗)한 처지에서 강상(綱常)을 부식(扶植)하였다. 능히 이와 같았으므로 유론(儒論)이 있어 비각(碑閣)을 짓고 비를 세우게 되어 간략히 그 사실을 갖추어 기술하는 바이다.
용담문묘직원(龍潭文廟直員) 한진수(韓鎭洙) 찬(撰). 무인(戊寅) 4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