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긍구당 유적 석판(肯構堂 遺蹟 石板)
운영자 23-12-22 14:20 74 hit
【위치】 주천면 대불리 운일암반일암 동상주천로 길가 암벽
【시기】 1919년
【형태】 암벽을 깎아내고 대리석 석판 1개를 끼움.
【개요】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의 자손들이 긍구당의 소요지에 기념비를 설치한 것이다. 비문은 앞의 ‘雙高道德 大明日月(쌍고도덕대명일월)’의 의미와 통한다. 다음에 그 원문과 풀이를 싣는다.

【肯構堂金公遺蹟】 公諱重鼎 字子三 光山人 恭安公 諱謙光五世孫 學問醇正 文章簡古 爲世推重 崇禎末 絶意仕進及門 毅宗殉社 掛冠城門 隱於此■曰 明道明德兩峰雙高齋秀大明 日月可見于 此時登兩峰北望拜跪 終日痛哭 而歸 忠貫日月故 謹玆勒石以示後人 九世孫 泰鉉謹誌. 己未 八月 日立 箕宅 箕朳 在吉 在昌 在年 在豊 在春 在煥 在玉 在哲 在德 在華 在訓 元鉉 大鉉 重鉉 世鉉 夏 鉉 瑢鉉 吉鉉 永周 匡鉉 奎鉉 英鉉 周鉉.
【풀이】 공의 휘는 중정(重鼎)이며, 자는 자삼(子三), 광산인으로 공안공 휘 겸광(謙光)의 5세손이다. 학문이 순수하며 바르고 문장이 간고(簡古)하여 세상에서 추앙하고 존경하였다. 승정(崇禎) 말년에 관직에 나아갈 뜻을 끊고 의종(毅宗,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순사(殉社)의 문에 다다랐다. 갓(冠)을 성문에 걸고 이곳에 은거할 만하다 하고 말하기를, 명도(明道)․명덕(明德) 두 봉우리가 높고 뾰족하고 빼어나 명나라 해와 달을 가히 볼 수 있다 하여, 두 봉우리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고 무릎을 끊어 절을 한 뒤 하루종일 통곡하다가 돌아가니, 이 충성은 해와 달을 꿰었으므로, 이에 삼가 돌에 새겨 후인들에게 보인다. 9세손 태현(泰鉉)이 삼가 기록함. 기미(己未, 1919) 8월 일 세움. 기택 기팔 재길 재창 재년 재풍 재춘 재환 재옥 재철 재덕 재화 재훈 원현 대현 중현 세현 하현 용현 길현 영주 광현 규현 영현 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