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향면 내금2길 69(능금리 산142-1)에 소재한 반남 박씨 사당. 본디 순조 12년(1812) 무주 오도산 아래에 창건되어 도산사(道山祠)라 하여 박힐(朴詰)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박린(朴麟)과 박희권(朴希權)을 배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훼철되자 지금의 위치로 몰래 옮겨 봉안하였고, 1959년 7월 사우를 지어 숭모사라 개칭하고 박지영(朴之英)을 추가하여 배향하였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매년 음력 3월 15일 반남 박씨 문중이 향사(享祀)하고 있다. 맞은편에는 역시 반남 박씨의 글방이던 지선당(止善堂)이 소재하고 있다.

    【배향위(配享位)】
    박힐(朴詰, 1336~) : 목은 이색의 문인이며, 고려가 멸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며 은거한 고려 말의 수절신(守節臣)이다.
    박린(朴麟) : 힐(詰)의 증손이다. 1455년 진산군수로 재임하던 중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금산 장평에 은거하였다.
    박희권(朴希權) : 린(麟)의 아들이다. 사헌부 감찰로 있던 중 단종이 폐위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박지영(朴之英) : 희권의 6세손이다. 원래는 금산에 세거하였으나 임진란을 피해 현재의 동향면 능금리 내금마을로 들어와 후손의 교육에 힘쓴 반남박씨의 입 동향조(入銅鄕祖)이다.

    【상향축문(尙饗祝文)】
    逃召齋 朴(詰)先生 一心秉義 賜第罔僕 伯夷淸風 仲連明月
    도소재 박(힐)선생께서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사한 집도 받지 아니하니 백이숙제의 청풍같고 노중련의 명월같습니다.

    擬栗齋 朴(麟)先生 投綏南遯 陶之靖節 扶我綱常 炳炳日月
    의율재 박(린)선생께서는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은둔하시어 도연명과 같은 정절로 강상을 북돋우셨으니 일월처럼 빛납니다.

    臨淮堂 朴(希權)先生 孝冠百行 淵源正學 潛跡江湖 志切君國 三世偉忠 千秋昭白 玆置小春 敬薦禋事 尙饗
    임회당 박(희권)선생은 효를 백행의 근본으로 삼으시고 바른 학문에 연원을 두셨으나 강호에 잠적하시어 임금과 나라만 걱정하셨습니다. 3세에 결친 큰 충성심은 천추에 빛날 것입니다. 소춘을 맞아 공경스럽게 제향을 받드오니 흠향하시옵소서.

    德隱堂 朴(之英)先生 伏以 隱德不仕 家傳淸白 道崇德博 垂範永世 玆置春季 謹以牲幣 庶品式陳 明薦 尙 饗
    덕은당 박(지영)선생은 은둔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시고 집안에 청백하고 도리를 숭상하며 덕을 베풀라는 가르침으로 영세에 수범을 보이셨습니다. 이에 봄철을 맞아 삼가 제수를 받들어 제향올리니 흠향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