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천면 금평1길 30-7(주양리 139)주자천변에 소재하는 사당이자 서원. 현재 서원의 기능은 없다. 사우는 홍살문, 외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천변에 홍살문이 있고, 그곳에서 20m 동쪽 산기슭 담장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솟을대문인 삼문에는 ‘월요문(月要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사당은 자연석 1단 쌓기를 하여 낮게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주좌가 있는 원형 초석을 놓았다. 앞면 3칸 옆면 1.5칸에 주심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에는 마루가 있고 뒷면에는 방이 있다. 1998. 11, 27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소유자는 광산 김씨 주천종중이다. 주자(朱子)를 주벽(主壁)으로 여대림(呂大臨)·주잠(朱潛)·이황(李滉)·이이(李珥)·김충립(金忠立)·김중정(金重鼎) 등 7인(人)을 배향하고 있다. 해마다 음력 9월 15일 제사지내고 있다. 1924년 김대현(金大鉉)과 이덕응(李德應)이 전국의 사우와 유림을 심방하여 협조를 구하고, 광산 김씨 문중에서 주도적으로 창건하여 ‘주천사(朱川祠)’라 하였다. 이후 1972년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5년 성균관장의 인증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배향위(配享位) 중 주잠은 주자의 증손으로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전해져 주자천(朱子川)이라는 지명의 근거가 되었고, 김충립과 김중정은 이 지역에 처음 내려온 광산 김씨들로 조손(祖孫)간이다. 김중정은 와룡암(臥龍庵)을 건립하여 주민 교육의 장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08년 근대식 학교인 화동학교(華東學校)가 주양리에 설립되기도 하였다.
    【향사축문(享祀祝文)】
    太師徽國朱文公 道大德隆 永樹風敎
    藍田呂先生 入鄕結約 永守準則
    淸溪先生 朱公 官志翰林 德高道淸
    退溪李先生 敎化法道 極天罔墜
    栗谷李先生 道德淵源 冠于萬邦
    梅谷金先生 文學顯明 刷新美風
    肯構堂金先生 雙高道德 大明日月
    玆値秋季 謹以 粢盛牲幣禮齊 敍品式薦 明禋儼列 配 尙 饗
    태사 휘국의 주(희)문공, 도덕이 크고 높으시니 길이 풍속을 교화하리.
    남전의 여(대림) 선생, 향약을 세워 길이 준칙을 만드시고,
    청계 주(잠)선생, 뜻은 유학에 두시고, 도덕은 높고도 맑았네.
    퇴계 이(황)선생, 교화법도가 하늘에 닿았네.
    율곡 이(이)선생, 도덕연원이 만방을 덮었네.
    매곡 김(충립)선생, 문학이 밝게 드러나 미풍을 쇄신했네.
    긍구당 김(중정)선생, 도와 덕이 더불어 높아 일원처럼 밝았네.
    가을을 맞이하여 삼가 예물을 갖추고 제수를 마련하여 제사 올리오니 부디 흠향하옵소서.

    【朱川祠重修記】 湖南山川佳麗中 龍潭縣 名勝古跡 山佳水麗之文鄕也 縣西朱子川 朱子曾孫 淸溪公 以中國亂 寓居九曲 淸溪上 白鹿洞 世人謂其村曰 朱子川也 隕日岩半日岩東 明道峰 華山峰下 龍蟠龜蹲澄潭上 有朱川祠 七賢妥精靈之所也 甲子年 朱嶠 金公大鉉 與諸族及 士林努力建祠而歲去年 深滲漏頹落 不可形言 莫可睹視也 然而尊賢隆師 國家之明倫 士林之正義矣 辛亥秋享時 金英鉉, 裵岐泳, 金仁鉉, 金東鉉 重修發議 衆議樂從也 總務 金勝鉉 鳩財募金進行中 道知事李春成 善政化民以文化財保護誠意 特別補修金 士林尊賢 衛道之誠 自願出義金 重修着工 會長 安桓吉 金永福 盡力監董之下 不過數個月而竣工完了 祠宇倍新矣 惟勤勸勉則庶斯祠之益新矣 補助金出義金 敍左永世不忘云耳 壬子年 十二月 日 朱川祠 院長 潘南 朴仲緖 謹識.
    【풀이】 호남산천이 아름다운 가운데 용담현은 명승고적이 많고 산천이 수려한 문향(文鄕)이다. 현의 서쪽 주자천에 주자(朱子)의 증손(曾孫) 청계공(淸溪公, 朱潛)이 중국의 난리에 피란하여 구곡(九曲)의 청계(淸溪) 위 백록동(白鹿洞)에 우거(寓居)하니 세인이 이르기를 그 마을을 주자천이라 했다. 운일암반일암 동쪽 명도봉 화산봉아래 용이 서리는 듯 거북이 웅크린 듯 맑은 못 위에 주천사(朱川祠)가 있는데 칠현(七賢)의 정령(精靈)이 깃든 곳이다. 갑자년(1924) 주교(朱嶠) 김대현(金大鉉)이 여러 종족(宗族)과 사림(士林)과 더불어 노력하여 사당을 세운 뒤 여러 해가 지나 비가 새고 퇴락(頹落)하여 형언하기 어렵고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존현(尊賢) 융사(隆師)가 국가의 명륜(明倫)이고, 사림(士林)의 정의(正義)라 신해년(辛亥年, 1971) 추향(秋享)시 김영현(金英鉉), 배기영(裵岐泳), 김인현(金仁鉉), 김동현(金東鉉) 등이 중수(重修)를 발의(發議)하여 중론(衆論)이 즐겁게 따랐다. 총무 김승현(金勝鉉)이 모금을 진행중 도지사 이춘성(李春成)이 국민을 위하여 선정을 하고자 문화재 보호 성의로 특별보수금을 협찬하고 사림 존현들께서도 도리를 지키는 성금으로 자원(自願) 출재(出財)하여 중수 착공하여 회장 안환길(安桓吉) 김영복(金永福)이 진력(盡力) 감역(監役)하여 불과 몇 달만에 준공 완료하여 사우(祠宇)는 배로 새로워졌다. 오직 바라는 바는 후인(後人)이 오늘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세(世世)에 찬동하고 더 참여하기를 권면(勸勉)한다면 이 사당이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보조금(補助金) 출의금(出義金)을 좌(左)와 같이 기록하니 영세토록 잊지 않을 것이다. 임자(1972)년 12월 일 주천사(朱川祠) 원장(院長) 반남(潘南) 박중서(朴仲緖) 근지(謹識)(이하 성명생략)

    【朱川書院記】 述夫龍潭之陽 有一名區 焉曰朱川也 山秀明道峯之高 川流朱子川之長 峨峨洋洋 道德氣像 天慳而地秘 俗厚而民淳 檀祖舊彊 箕聖遺黎 賢良才智 代不之人 典章文物 世皆取法 燦然史 編垂至半萬年矣 曁我龍潭之儒林諸賢 建祠于此 朱夫子之主壁 藍田呂先生 淸溪朱先生 退栗兩先生 並亨梅谷肯搆堂金先生二位 追配焉 卽朱川祠也 故每嵗春秋 士林齊會 虔奉祠享 而霜星屢變 歲月攸久 祠祀奉亨 何忍黙視 於是僉議攸同 據金盡誠 以祠復院 卽朱川書院 噫 天地間 大倫大綱 終不墮廢 而典校 韓圭台 祠長 安桓吉 金英鉉 金萬鉉 金東鉉 總務 金勝鉉 諸氏之誠力 實爲至大 豈不欣感㦲 凢有秉彜之性者 孰無同感 興起之誠乎 嵗乙卯秋 精設院亨 庶幾尊靈 如臨其上 倍有色於前祠 又盡誠於斯院 若能以前祠 不忘之誠 鮮光 有終之戒 相互勸勉 千萬幸甚 鳶飛魚躍 道心之自然 光風霽月 賢思之燦然 則書院之誠至矣盡矣 伏願 院祀新亨之後 絃誦洋洋 鄒魯之士輩出 衣冠濟濟 伊洛之風不絶 則不亦悅乎 在鎬鄕中儒林 稀餘老軀 本以不文 然切有勵善獎義之心 畧記謹俟. 士林諸君子之後評 而継之一律 虔奉祠事幾星天 尊影降如獻俎豆 / 書院懸名在是年 靈神臨若告香烟 / 風光今日臥龍峀 洙泗淵源従此盡 / 月霽千秋朱子川 應知伊後講斯筵. 乙卯(1975) 秋九月 昌寧后人 南旅 成在鎬 謹記.
    【풀이】 용담의 남쪽에 이름난 한 지역이 있으니 주천이다. 빼어난 산으로는 높은 명도봉(明道峯)이 있고 흐르는 물로는 긴 주자천(朱子川)이 있다. 높고 높으며 넘실넘실 하여 도덕(道德)의 기상(氣像)이어서 하늘이 아끼고 땅이 숨긴 곳이며 풍속이 두텁고 사람이 순박한 곳이다. 단군 선조께서 옛날 사시고 기자(箕子) 성인(聖人)께서 남긴 백성들에 현량(賢良) 재지(才智)가 대대로 끊이지 않고 전장(典章) 문물(文物)을 대대로 본받으며 찬연한 역사가 반만 년 동안 이어왔다. 우리 용담의 유림 제현이 이곳에 사당을 건립할 때에 주자(朱子)를 주벽으로 하여, 남전(藍田) 여선생(呂先生)과 청계(淸溪) 주선생(朱先生), 퇴계(退溪) 율곡(栗谷) 두 선생이 모두 배향(配享)되었고 매곡(梅谷), 긍구당(肯構堂) 김선생(金先生) 2위를 여기에 추가로 배향하였는데 바로 주천사(朱川祠)였다. 그래서 해마다 봄 가을에 사림이 일제히 모여 경건히 사향(祠享)을 받들었다.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고 세월이 유구히 흘렀는데도 사사(祠祀)를 받드는 것을 어찌 차마 묵묵히 보고 있겠는가. 이에 여러 사람의 의론이 일치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정성을 다하여 사(祠)를 원(院)으로 부활시켰으니 바로 주천서원이다. 아, 천지간에 대륜(大倫)과 대강(大綱)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전교(典敎) 한규태(韓圭台), 사장(祠長) 안환길(安桓吉)·김영현(金英鉉)·김만현(金萬鉉)·김동현(金東鉉), 총무(總務) 김승현(金勝鉉) 제씨(諸氏)의 성력(誠力)이 실로 지극히 크니, 어찌 흔연히 감격하지 않겠는가, 병이(秉彛)의 본성이 있는 자로서 누가 동감하고 흥기하는 정성이 없겠는가. 을묘년 가을 서원의 제향을 정갈히 배설하니 존령(尊靈)이 그 위에 임하는 듯하고 이전의 사당보다 곱절로 빛이 나기를 바란다. 또 이 서원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만약 이전의 사당을 잊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제대로 마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경계를 가지고 서로 권면할 수 있다면 천만 다행일 것이다. 연비어약(鳶飛魚躍, 솔개는 하늘 높이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은 자연스러운 도심(道心)이고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화창한 바람과 밝은 달)은 찬연한 현사(賢思)이니 서원을 세우는 데 바친 정성이 극진하도다. 삼가 바라건대 서원을 짓고 새로 제사를 올린 뒤에 거문고 타고 글 읽는 소리가 귀에 가득하여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따르는 선비가 무더기로 나오고, 의관(衣冠)이 제제(濟濟)하여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풍이 끊이지 않는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내가 이 고을에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유림으로서 글을 잘하지 못하나 선(善)에 힘쓰고 의(義)를 장려하는 마음이 절실하여 대략 사실을 기록하고 사림의 여러 군자(君子)들의 평가를 삼가 기다린다. 그리고 율시 한 수를 짓는다. 오두막 사당에서 제사를 올린 지 몇 년이던가. / 진설한 제수(祭需) 위에 존귀한 그림자가 강림한 듯하다. / 올해 서원에 이름을 달았다고 / 신령(神靈)이 임한 듯하여 향기로운 연기 속에 고하네. / 비 갠 뒤의 화창한 바람 오늘 와룡(臥龍)의 산골에서 불어오니 / 공자(孔子)의 학통(學統)이 이를 따라 다하였도다. / 비 갠 뒤의 밝은 달이 천년토록 주자천을 비추니 / 이천(伊川)의 후예가 이 자리에서 학문을 강마할 것을 알겠도다. 을묘(1975) 가을 구월 창녕인(昌寧人) 남려(南旅) 성재호(成在鎬) 근지(謹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