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사(五賢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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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사오현사 모현재오현사 상량문오현사 모현재 기
마령면 원강정2길 3[강정리 124-1]에 있는 사당. 임진왜란 때 거의한 전계종(全繼宗)과 신기(辛麒), 정대수(鄭大壽), 홍필(洪滭), 송대홍(宋大弘) 등 오현의 의거를 기리기 위해 1977년 창건하였다. 이들은 마을의 입향조이기도 하다. 사우(祠宇)는 본당과 동재, 숙직사, 창고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남향한 사당을 중심으로 동측에 모현재(慕賢齋), 서측에 관리사가 자리하여 전체적으로 ‘ㄷ’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모현재는 1984년에 건축되었다. 4칸 전퇴집으로 전퇴는 마루를 시설하였다. 내부는 모두 터서 방으로 활용한다. 남쪽 측면에도 쪽마루를 시설하여 편의를 도모하였다. 관리사는 본래 3칸 초가였으나 지금은 시멘트로 벽을 마감했고 지붕은 골함석을 올렸다. 주위에는 기와 얹은 토석 담장이 둘러져 있고 뒤쪽에는 조그만 텃밭이 있다. 매년 음력 3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한다.

【배향위(配享位)】
전계종(全繼宗, 1516[중종 11]~1592[선조 25]) : 자는 백윤(伯胤). 호는 규암(葵菴). 본관은 천안으로 문평공(文平公) 문식(文軾)의 후손이며, 자온(自溫)의 증손이다. 중종 31년에 문과하여 시강원(侍講院) 습독(習讀)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적의 위협을 받자 분연(憤然)히 크게 꾸짖고 시종 굴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의 해침을 당하였다. 인조조에 공조참의에 증직되고 사림(士林)이 서원(書院)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묘는 거사곡의 자좌원(子坐原)에 있으며, 민여로(閔汝老)가 찬하고, 신응삼(申應三)이 글씨를 쓴 묘갈명이 있다. 또 조중목(趙重穆)이 글을 짓고, 유진찬(兪鎭贊)이 전액(篆額)을 쓰고, 이선호(李璇鎬)가 글씨를 쓴 묘갈명 병서(墓碣銘幷序)가 있다.
정대수(鄭大壽,생몰연대 불명) : 본관은 동래. 호는 이은(駬隱). 습독관(習讀官)의 직함을 받았다. 강정리에 세거하며 5성동계를 맺었는데 전계종(全繼宗)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신기(辛麒), 홍필(洪滭), 송대홍(宋大弘) 등과 더불어 군량을 모집하고 운반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홍필(洪滭, 1551~1623) : 본관은 남양. 호는 운암(雲庵). 효성이 지극하여 천거를 받아 진사로 무안현감에 제수되었다. 강정리에 세거하며 5성동계를 맺었는데 전계종(全繼宗)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신기(辛麒), 정대수(鄭大壽), 송대홍(宋大弘) 등과 더불어 군량을 모집하고 운반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신기(辛麒, ?~1622) :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운계(雲溪). 효성이 지극하여 감찰(監察)의 직함이 내려졌다. 강정리에 세거하며 5성동계를 맺었는데 전계종(全繼宗)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정대수(鄭大壽), 홍필(洪滭), 송대홍(宋大弘) 등과 더불어 군량을 모집하고 운반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송대홍(宋大弘, 1558~1629) :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운포(雲圃). 효성이 지극하여 감찰(監察)의 직함이 내려졌다. 강정리에 세거하며 5성동계를 맺었는데 전계종(全繼宗)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신기(辛麒), 정대수(鄭大壽), 홍필(洪滭) 등과 더불어 군량을 모집하고 운반하며 뒷바라지를 하였다.

【향사 축문(享祀祝文)】
葵庵全先生 伏以 學博德崇 就義成仁 勤王敵愾 輝暎千春
규암 전(계종)선생은 삼가 고하건대 학문이 넓고 덕이 높아 의로써 인을 이루었으며 적개심으로 근왕하여 천추에 길이 빛났습니다.
駬隱鄭先生 伏以 在家篤孝 爲國貞忠 凜凜節操 抑抑淸風
이은 정(대수)선생은 삼가 고하건대 집에서는 효를 돈독히 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정충(貞忠)으로 늠름한 지조와 절개가 청풍처럼 주밀하였습니다.
雲庵洪先生 伏以 至孝事親 倡義報君 五賢聯壁 齋誠薦芬
운암 홍(필)선생은 삼가 고하건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럽고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여 의병을 일으켜 오현사에 배향되어 정성스러운 향례를 받습니다.
雲溪辛先生 伏以 傳檄列邑 志士影從 六三奚暇 憤氣撑空
운계 신(기)선생은 삼가 고하건대 여러 고을에 격문을 전하니 뜻있는 선비들이 그림자처럼 따라 六三(편자주, 不明)겨를 없이 분기탱천하였습니다.
雲圃宋先生 伏以 道學淵源 忠孝家門 崇德廣業 百世遺芬
운포 송(대홍)선생은 삼가 고하건대 도학에 연원을 두고 충효가문에서 높은 덕에 많은 사업으로 백세토록 향기로움을 남겼습니다.

【慕賢齋記】 傳曰, 樹垂世之功者, 享垂世之報. 又曰, 可謂師表則祀之, 惟此五賢祠, 習讀葵菴天安全公, 習讀駬隠東萊鄭公, 縣監雲菴南陽洪公, 監察雲溪靈山辛公, 雲圃處士延安宋公, 五先生妥侑之所, 寔畏壘之民, 尸祝庚桑椘之義也. 其五賢之報國忠節, 導俗禮貌, 精硏學術, 著在狀碣, 不須日下添燈, 而此齋卽守護齋蠲之堂, 賓主揖讓之處. 有東西階戺, 老少序次之筵. 有上下廳室, 於是焉行餕禮, 於斯講鹿藍之規, 於斯培養人材, 於斯一遵乎五賢之懿, 則淸芬嗜學如豢, 樂善如歇軆之於心, 行之於身, 以此人倫爲角翼, 禮義爲氊腥之世, 能薰化逺近, 改弦易轍, 則古人所謂陽光熾烈, 堅氷立消, 何患乎異教之鴟張簧鼓乎? 吾道之復明, 如不食之果, 將囬春於重隂之中, 月浪之爲磁針於鄕省, 大矣! 柳川宋友升煥翁, 以僉士林意, 屈杖数百長程, 屬以楣端之揭者, 是豈昏耗人微者所能承當者乎? 此無異書空而尋跡, 而况鄙於是祠, 敢以杜撰文句, 招穢佛之譏累矣. 居常一念, 愧如撻市, 固辭而固請, 終不得躱避, 遂抒經緯之厓略, 以賀諸斯文尊賢衛道之誠. 歲赤虎振 羽月之初三日, 晉陽河千秀謹記.
【풀이】 전(傳)에 이르기를, “세상에 전해질 만한 공(功)을 세운 자는 후세에 전해지는 보답을 누린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사표(師表)라고 이를 만 하면 제사를 모신다.”고 하였으니, 생각건대 이 다섯 선현(先賢)의 사당(祠堂)은 습독(習讀)을 지낸 규암(葵菴) 천안(天安) 전공(全公), 습독을 지낸 이은(駬隱) 동래(東萊) 정공(鄭公), 현감(縣監)을 지낸 운암(雲菴) 남양(南陽) 홍공(洪公), 감찰(監察)을 지낸 운계(雲溪) 영산(靈山) 신공(辛公), 운포처사(雲圃處士) 연안(延安) 송공(宋公) 다섯 선생을 제향(祭享)하는 곳이니 참으로 외루(畏壘)의 백성들이 경상초(庚桑楚)를 시축(尸祝)하는 뜻*이다. 이 다섯 선현(先賢)이 나라에 보답한 충절(忠節)과 풍속의 예모(禮貌)를 선도하고 학술을 정밀하게 연구한 것들은 행장(行狀)과 묘갈(墓碣)에 드러나 있으니 굳이 태양 아래에 등불을 보탤 필요가 없으나, 이 재실(齋室)은 곧 묘(墓)를 수호(守護)하고 제수(祭需)를 장만하는 집으로, 빈객과 주인이 읍양(揖讓)하는 곳이다. 동쪽과 서쪽의 계단이 있어서 노인과 젊은이가 차례에 따라 잔치에 나아가고, 위와 아래의 청실(廳室)이 있어 이곳에서 향음례(鄕飮禮)를 거행하고 이곳에서 녹남(鹿藍)의 규약(規約)*을 강론하고, 이곳에서 인재를 배양(培養)하고, 이곳에서 한결같이 다섯 선현의 훌륭함을 따르니, 청분(淸芬)*이 학문을 즐기는 것이 마치 짐승이 꼴을 좋아하는 것과 같았고 선행(善行)을 즐기는 것이 마치 마음보다 몸이 헐(歇)하듯 하여 몸에서 실천하였다. 이런 까닭에 인륜(人倫)은 뿔과 날개가 되고 예의(禮義)는 담요의 비린 생선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능히 원근의 사람들을 훈화(薰化)하고 개현 역철(改弦易轍)*하였으니 옛사람이 이른바 양광(陽光)이 치열하면 단단한 얼음도 금세 녹아버린 셈이니, 어찌 이교(異敎)가 설치고 드날리는 것을 걱정하겠는가. 우리 도(道)가 다시 밝아지는 것은 마치 아직 먹지 않은 과일과 같아서 장차 짙게 낀 구름 속에서 회춘(回春)할 것이니 월랑(月浪)의 향성(鄕省 고향이나 시골을 말함)에서 나침반 역할을 한 것이 크다고 하겠다. 유천(柳川) 송우(宋友) 승환옹(升煥翁)이 여러 사림(士林)의 뜻을 받들어 수백 리나 되는 먼 길을 지팡이를 짚고 나에게 와서 재실의 문 위에 매다는 현판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어찌 늙어서 혼미하고 신분이 미천한 자가 감이 받들어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것은 허공에 글씨를 써놓고 그 자취를 찾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하물며 못난 내가 이 사당에 감히 문구(文句)를 두찬(杜撰)하여 부처를 더럽혔다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에 줄곧 생각해보니 저자에서 매를 맞는 것처럼 부끄러운 노릇이어서 고사(固辭)하였으나 굳이 요청하여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이에 경위(經緯)의 개략을 서술하여 여러 사문(斯文)들이 선현을 존숭하고 사도(斯道)를 보위(保衛)하는 정성을 경하(慶賀)하노라. 병인년(丙寅年, 1986) 월 초3일에 진양(晉陽) 하천수(河千秀)가 삼가 쓰다.
*외루(畏壘)의...뜻: 노자(老子)의 제자에 경상초(庚桑楚)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노자의 도를 일부분만 터득하였다. 북쪽의 외루(畏壘)라는 산에 가서 살면서 그 하인들 중에 분명하여 지혜로운 자는 쫓아 버리고 그 첩들 중에 의기양양하게 어진 자는 멀리하여, 순박한 사람하고만 같이 살고 부지런히 힘써 일하는 하인들만 부리고 살았는데, 이렇게 산 지 3년 만에 외루 지방에 큰 풍년이 들어서 축문(祝文)을 낭독하는 시축(尸祝)이 제사를 지내주었다.
*녹남(鹿藍)의 규약(規約): 백롱동 서원(白鹿洞書院)의 남전 향약(藍田鄕約)을 말함.
*청분(淸芬): 맑은 향기라는 말로, 훌륭한 인품을 의미한다. 위(魏)나라 순욱(荀彧)이 특이한 향(香)을 취하여 항상 옷에 훈증(薰蒸)시켜 입고 다녔으므로, 그가 한 번 다녀간 집에는 남은 향기가 3일 동안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개현 역철(改弦易轍): 전면적인 개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