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사(忠孝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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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사충효사 인의문
백운면 원노길 17[노촌리 511], 노촌리 원노촌마을 북쪽 끝자락에 있는 사당. 문열공 김천일(文烈公 金千鎰), 무민공 황진(武愍公 黃進)의 충절과 미계 신의련(愼義連)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철종 7년 (1856)에 창건하였다. 그러나 고종 6년(1869)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고, 1947년 복설(復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담장 안에 사당이 있다. 사우는 전면 3칸 측면 1칸으로 너와 맞배지붕이다. 상의문(尙義門) 1동과 4칸 20평의 강당, 3칸 12평의 수직사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음력 2월 23일에 향사하고 있다.

【배향위(配享位)】
김천일(金千鎰, 1537~1593)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언양. 자 사중(士重). 호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시호 문열(文烈). 나주 출생. 이항(李恒)의 문인. 삼장사(三壯士)의 한 사람.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高敬命)·박광옥(朴光玉)·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선조가 피란간 평안도를 향해 가다가, 왜적과 싸우면서 수원성(水原城)을 거쳐 강화도로 들어갔다. 그 공으로 판결사(判決事)가 되고 창의사(倡義使)의 호를 받았다. 왜적에게 점령된 서울에 결사대를 잠입시켜 싸우고, 한강변의 여러 적진을 급습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다음해 정월 명나라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군대가 개성을 향해 남진(南進)할 때, 그들을 도와 도로(道路)·지세(地勢) 및 적정(敵情) 등을 알려 작전을 도왔다. 또 왜군이 남쪽으로 퇴각하자, 절도사 최경회 등과 함께 진주성(晋州城)을 사수(死守)하였다. 그 뒤 진주성을 지킬 때 백병전이 벌어져, 화살이 떨어지고 창검이 부러져 대나무 창으로 응전하였다. 마침내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象乾)과 남강(南江)에 투신자결하였다.
황진(黃進, 1550~1593)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 장수(長水). 자 명보(明甫). 호 아술당(蛾述堂). 시호 무민(武愍).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1591년 조선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내침(來侵)할 것을 예언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同福)현감으로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북상하여 용인(龍仁)에서 패전하고 이어 진안(鎭安)에서 왜적의 선봉장을 사살한 뒤 적군을 안덕원(安德院)에서 격퇴하고, 훈련원 판관(判官)이 되어 이치(梨峙)전투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공으로 익산(益山)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助防將)에 오르고, 절도사 선거이(宣居怡)를 따라 수원(水原)에서 싸웠다.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여 패퇴하는 적을 추격, 상주(尙州)에 이르는 동안 연승(連勝)을 거두고, 적의 대군이 진주성(晉州城)을 공략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절도사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성중에 들어가 9일 동안 혈전 끝에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진주 창렬사(彰烈祠), 남원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었다.
신의련(愼義連, 1546~1606) : 자는 의숙(宜叔), 호는 미계(美溪). 본관은 거창으로 양렬공(襄烈公) 이충(以衷)의 7대손이다. 임진왜란 때 병든 부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적이 부친을 죽이려 하자 자신의 몸으로 막아서서 대신 죽기를 빌었다. 이에 왜장이 효성에 감동하여 동구 밖에 방을 붙였는데, 효자가 사는 곳이라 하여 왜적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이곳으로 피난하여 살아남은 사람이 5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동네의 이름을 오만동(五萬洞)이라 부르고, 그 들판을 면화평(免禍坪)이라 하였으며, 산을 덕태산(德泰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수의부위(修義副尉)의 품계와 정려가 내렸으며, 명나라까지 알려졌다.

【충효사 상향문(忠孝祠 尙饗文)】
文烈公 金先生 學有淵源 忠爭日月
문열공 김(천일) 선생께서는 학문은 연원이 있으시고, 충성은 일월과 다툽니다.
武愍公 黃先生 凜凜忠義 永樹江山
무민공 황(진) 선생의 늠름한 충의는 길이 강산에 기리 전할 것입니다.
美溪公 愼先生 孝能感物 道有安貧
미계공 신(의련) 선생의 효성은 능히 만물을 감동시키고, 안빈낙도에 뜻을 두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