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사(萊山祠)
운영자 23-12-26 18:25 72 hit
내산사 전경내산사내산사 도장각
진안군 마령면 계남길 30-7(계서리 344-1) 계남마을 뒤(남)쪽에 있는 수당 정종엽(鄭鍾燁)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 담장 안에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서있다.
제향일은 음력 3월 25일이다. 오른쪽에는 도장각(道藏閣)이 있다.

【배향위(配享位)】
정종엽(鄭鍾燁) :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수당(修堂), 자는 택신(宅新)이다. 진희(鎭喜)라는 이명(異名)도 있다. 1885년 3월 13일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봉촌에서 아버지 성모(聖謨)와 어머니 천안 전씨(天安全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매우 영특하고 어려서부터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함이 지극하였다. 공부에는 발군(拔群)의 진척으로 약관(弱冠)에 학문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간재 전우(艮齋田愚)에게 사사(師事)하여 성리(性理)의 근원을 들었고, 항일의사 곽종석(郭鍾錫)과 의병장 기우만(奇宇萬) 등 제현(諸賢)과 교유하여 더욱 지식을 넓혔다고 한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 걱정이 지극하였다.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들으면 탄식하고 통곡하기를 초야(草野)의 선비라 하여 덜하지 않았는데, 사직(社稷)이 무너지자 신하의 절의를 지켜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이병연(李炳淵, 고을의 선비)·전인권(全麟權, 고을의 선비) 등과 더불어 정재(靜齋) 이석용(李錫庸, 임실 출신의 의병장)과 해산(海山) 전기홍(全基弘, 임실 출신의 의병장)등이 의병을 일으키는 데 힘써 도왔다고 한다. 더불어 이석용의 종군기인 창의일기가 혹 일본 경찰에게 탈취될까봐 자청해서 자기 집에 깊이 보관하여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28세 때에는 이석용과 항일우국결사조직인 임자밀맹단(壬子密盟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석용이 일경에 붙잡히자 그는 일경을 피하여 수시로 개명하고 정처 없이 피해 다니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다. 이처럼 굳게 은사의 도리를 지키니 가는 곳마다 명망을 듣고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문안에 가득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마령면 계남리 선산 재각인 도장각(道藏閣)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2003년 8월 15일. 우국충정과 항일운동 업적이 인정되어 보훈처에서 건국포장을 수상하였다. 현재 내산사(萊山祠)에 향사(享祀)되어 있다.

【상향축문(尙饗祝文)】
修堂 鄭先生伏以 宏見精識 卓孝孤節 士林不忘 式薦芬苾
수당 정(종엽)선생은 삼가 고하건대 견식이 넓고 정밀하며, 효성과 절개가 높고 고고하여 사림들이 잊지 못하고 정성스레 향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