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면 반송리 353. 대광수련원 입구 백장로변에 있는 부자(父子)효행 석정. 2016. 12. 28. 진안군문화유산 유형 제 3호로 지정되었다. 비신(碑身)은 석곽(石廓) 안에 들어 있다. 좌측 비신 높이 87cm, 너비 32cm, 두께 12cm., 우측 비신 높이 88cm, 너비 30cm, 두께 12cm. 왼쪽 비표(碑表)는 孝子通訓大夫司憲府監察朴履豊之閭(효자통훈대부사헌부감찰박이풍지려), 오른쪽은 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朴尙休之閭(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박상휴지려)이다. 1886년 건립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광서(光緖 12, 1886)년 1월 28일 진안의 사노(私奴) 순득(順得)이 임금의 어가행차에 징을 두드리며 박리풍 부자의 효행 사실을 하소연함으로써 내려졌다”고 한다. 비문은 비표와 같은 이름으로 『진안지』에 실려 있는데 <별책부록-1(기문·묘갈문·비문)>에 표제항목으로 실려 있다.《참고문헌》鎭安의 文化財(진안문화원, 2015)
  • 동향면 능금리 하능마을 안에 있는 정려. 정려문은 ‘烈女 學生 朴致基妻 孺人盆城金氏之門’이다. 김씨는 노태(老泰)의 딸로 동향면 능금리 능길마을에 살던 박치기의 부인이다. 남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식욕을 잃고 있던 중 두릅나물 먹기를 원하자 한겨울인데도 온 산을 헤매며 나물을 구해서 남편의 식욕을 회복시켰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이 죽자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시부모가 늙고 자식이 어려 차마 죽지 못하다가 아들이 조금 자라자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1870년(고종 7)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본디 정려는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80년 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정려기는 열녀분성김씨정려기(烈女盆城金氏旌閭記)이다. 내용은 <별책부록-1(기문·묘갈문·비문)>에 표제항목으로 실려 있다.《참고문헌》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鎭安郡史(진안군, 1992), 鎭安의 文化財(진안문화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