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육씨 정려(沃川陸氏旌閭)
운영자 23-12-26 18:19 282 hit
옥천 육씨 정려옥천 육씨 정려 기문 편액
안천면 백삼로 33(백화리 중배실) 어귀 화산서원 앞 도로변에 있는 정려. 1865년에 건립되어 하배실 앞 동산에 있었는데, 농로가 나면서 훼손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육씨 부인은 임진왜란 중에 남편 황대성이 의병을 이끌고 싸우러 나간 뒤에 시비(侍婢) 천분(千分)과 같이 난을 피하여 상배실 앞 구례말 남쪽 산 불공터에 움막을 짓고 숨었으나 왜병에게 붙들려 욕을 당하게 되자 둘이 함께 자결하였다. 이 일이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를 명하였다고 한다. 여각은 정면 측면 각 1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이며, 그 안의 현판에는 ‘烈婦 通政大夫黃大成妻沃川陸氏之閭(烈婦 통정대부황대성처옥천육씨지려)’라 써있다. 기문은 열부육씨정려중수기(烈婦陸氏旌閭重修記)라는 제목으로 <별책부록-1(기문·묘갈문·비문)>에 표제항목으로 실려 있다.《참고문헌》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鎭安郡史(진안군,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