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귀면 세동리 산302에 소재하는 묘비. 이 비는 부귀면 세동리 웅치 부근 산 능선에 세워져 있다. 방형의 대석위에 약 80㎝의 석비가 세워져 있다. 귀부나 이수 등이 갖춰져 있지 않고 석비만 있는 형태이다. 비문은 무안 현감과 강원도 관찰사, 병조참판을 지낸 한익상이 찬했다. 글은 최학부의 아들인 최설로 추정되며, 서체는 창암 이삼만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에 의하면 휘는 학부, 자는 문백(文伯)이다. 초가집 둘레에 대나무를 심었더니 대가 빽빽하게 자라 숲을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죽림옹(竹林翁)이라 하였다. 병자(순조 16년, 1816년)년에 생을 마치니 향년 77세였다. 글을 찬한 한익상은 최학부의 아들인 최설보다 네 살 위로 전주 조경묘 별검 시절에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이다. 한익상이 무한현감을 지내던 때에 이곳에 들러 비문을 써줬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 중에 “…鎭安之二北笛川舊熊峙洞都主峰東麓最上節乾坐…”, 즉 “진안의 이북면 적천마을(현 부귀면 적천마을) 옛 웅치의 골짜기 제일 높은 봉우리 동쪽 기슭 건좌에 묘를 썼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 비문을 통해 이 일대가 임진왜란 당시 관군과 의병 천여 명이 왜군을 맞아 처절하게 항쟁했던 웅치전투의 현장임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비는 2016. 12. 28. 진안군문화유산 유형 제 4호로 지정되었다.《참고문헌》진안군 비지정문화재 조사용역보고서(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