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뫼산성(城-山城)
운영자 23-12-19 20:20 277 hit
진안읍 군하리 253-8번지 일원 성뫼산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성뫼산성은 진안천과 마이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소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동쪽 성뫼산(353.2m) 정상에 있다. 성의 형태는 배[舟] 모양으로 둘레는 479.5m이며, 테뫼식 석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내부에는 너비 4m의 토루가 있으며, 남문과 북문이 있고 동벽 중앙에 동문지가 있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의하면 ‘석축을 하고 길이는 약 270간이며 우물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 내부에는 평탄한 건물 대지가 있었고, 다수의 백제 기와와 토기 편들이 채집되었다. 진안은 백제 때 난진아현(難珍阿縣)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성뫼산성은 그 치소지로 생각된다. 그러나 진안 체육공원이 조성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성뫼산성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산 정상부에 월랑공원과 진안군 문예체육회관이 건립되면서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성 내부에서는 백제 기와와 토기 편들이 산재해 있고, 백제 때 난진아현으로 비정되고 있어 그 현의 치소성으로 판단된다. 성뫼산성은 남쪽으로는 국도 26호선과 고속국도 20호선이 동-서로 지나며, 국도 30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지점에 있다. 청소년수련관 남서쪽의 산봉우리 월랑공원과 문예체육회관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 성뫼산성이 있던 곳이다.【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1989년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진안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성 내부에는 백제 시대 와편과 토기편이 산재해 있었으며 우물 터와 건물지 등이 추정된 바 있다. 한편 1960년대 전영래가 조사한 내용을 2003년 한서고대학연구소에서 『전북 고대 산성 조사 보고서』를 발행하였는데 조사 당시에도 건물지와 백제 시대 토기편 등이 산재해 있었다. 위 두 권의 보고서에서는 ‘성묘산 성지, 성묘산성’으로 보고되었으며, 2006년 전주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발행한 『문화유적 분포지도-진안군』에서는 ‘성뫼산성’으로 보고되었다.【현황】성뫼산성의 정상부는 월랑공원과 문예체육회관 등의 시설이 건립되어 성벽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우물지로 추정되는 지름 3m의 석축호가 확인되었으며, 성 안과 그 주변에는 백제 시대의 기와와 토기 편들이 산재해 있다. 『여지도서』에 주목할 만한 기록이 실려 있는데, ‘읍산창(邑山倉)’이 그것이다. 예전에 성이 무너진 후 건물만 지어 산창(山倉)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참고문헌》鎭安地方文化財地表調査報告書(전북대학교전라문화연구소,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