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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상리 우화산 일원 유적군(羽化山一圓遺蹟群). 진안읍 군하리 산1-1 진안읍 남쪽 우화산 일대에는 우화정을 비롯하여, 우화산 비석군, 가학대, 영모대, 옥류천 등 역사성이 있는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이를 모두 포함하여 2016. 12. 28. 진안군문화유산 기념물 제 2호로 지정되었다. 암각서는 진안천으로 돌출되어 있는 암벽에 새겨져 있다. 각서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맨 처음 새겨진 각서는 편액처럼 장방형으로 구획된 틀에 초서로 새겨진 ‘가학(駕鶴)’이라는 암각서는 신선이 학을 타고 논다는 뜻이다. 그 다음 두 번째는 각서는 ‘영모대(永慕臺)’ 각서와 그 아래의 천안 전씨의 가계 내력을 새긴 각서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천안 전씨 시조인 환성군이 백제 개국공신이라나 내용과 후손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마지막 세 번째 각서는 석벽의 좌측 중단에 새겨져 있는데, 광서 16년(1889) 현감 김요협이 고을의 선비 전의호, 전재택과 함께 새긴 석실제명이다. 이를 풀어 보면(안내문의 해석) “무릇 선비는 석실에 이름을 새긴 것은 공과 덕이 있어서 이지만 오늘 날은 그렇지 않다. 내가 몇몇 사람과 더불어 여가를 타서 노닐다 읊나니 우리들의 짧은 인생이 한탄스럽고 자연의 무궁함이 부러워서 기록한 것이나 후일에 소옹(송나라)이나 양웅(한나라) 같은 사람의 기록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라는 내용이다. 한편 가학대 각서 아래쪽에는 12기의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본래 진안군청 앞에 있는 불망비와 선정비 등을 이건한 것이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대체로 19세기 초반부터 1950년대까지 다양하다.《참고문헌》진안군 비지정문화재 조사용역보고서(전라문화유산연구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