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막리 산성
운영자 23-12-19 20:20 309 hit
⇒ 천반산 성터(天盤山城址). 천반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200m에 있는 산성 터. 넓은 터가 있고 우물이 있어 농성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특히 북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따로 성벽이 필요치 않아 성벽은 서쪽과 남쪽으로만 축조되어 있는데, 현재 서쪽 일부와 남쪽 일부가 무너진 채 남아 있다. 가막교를 건너 100여 미터 지점에서 북쪽으로 약 700m 가면 먹재골 입구에 이르고 먹재골에서 산 정상부를 따라 다시 700m 오르면 산성에 도달한다. 1989년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가 발행한 『진안지방 문화재 지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서북쪽의 성문지(城門址)와 성벽 흔적만 확인된 것으로 ‘下加幕 城址’로 보고되었다. 2006년 전주대학교 박물관이 발행한 『진안군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천반산성’으로 명명되어 있는데 성 내부의 평탄면을 확인하였다. 원래 성의 둘레는 약 2,000m이며 대부분은 무너져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내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고 상당량의 옛 기와편도 수습된다. 이 산성의 축조 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으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성의 남서 및 북서쪽 가막리 일원에는 금강의 상류인 천천(←)이 여러 번 굽이쳐 북으로 흐르며, 산성의 북동쪽으로는 구량천이 남동에서 서북으로 흘러 가막리 북쪽에서 천천과 합수하여 금강 본류를 이룬다. 이 지점에 강 속의 섬처럼 죽도가 형성되어 있다. 이처럼 산성은 굽이치는 금강 줄기를 훤히 관망할 수 있는 지점에 있다. 진안고원의 동쪽에 치우쳐 있으며, 금강변 동안(東岸)에 자리하고 있다. 수로를 따라 형성된 전북 동부내륙 교통로 중 금산-진안-장수를 잇는 남-북교통로를 감시하기에 좋은 입지를 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조선 후기 정여립(鄭汝立)이 역적으로 몰렸을 때 이 성을 근거지로 관군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하나, 당시 전말로 보아 믿기 어렵다.《참고문헌》鎭安郡史(진안군, 1992), 鎭安地方文化財地表調査報告書(전북대학교전라문화연구소, 1989), 鎭安郡文化遺蹟分布地圖(진안군·전주대학교박물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