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정(晩趣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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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정만취정 중건기 편액만취정 제영 편액
백운면 운교리 산66-1에 위치한 정자. 쌍계정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200m지점 냇가 암벽 중간에 지어졌다. 건립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진양 하씨 오형제 호(灝), 선(璿), 립(氵昱,), 식(湜), 봉(㵯) 등이 조선 순조 때 정자 건너편에 있는 방화마을로 이사 온 뒤에 지었다고 하는데 상량에 의하면 1970년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한 익공 건물이다. 콘크리트로 기초를 한 기단 위에 다음은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용두 모양의 익공을 올렸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팔작지붕을 하였는데 상부는 구부러진 부재를 수직으로 엇갈아 놓은 후, 상부에 서까래를 올린 모임지붕의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은 원래 사모 지붕이거나 우진각 지붕이었던 것을 후대에 팔작지붕으로 개조한 결과로 본다. 바닥은 우물 마루를 깔았다. 정자에는 하천수(河千秀)가 찬한 만취정 중건기(晩趣亭重建記)와 진양 하씨의 오형제가 지은 제 만취정(題晩趣亭) 판액(板額)이 걸려있다.

【晩趣亭重建記】 二間小楼立於荒穢之地 而名流千秋者 由其文學人所作成故也 以若山水之美亭子之傑乃五君子 勞心工役 意匠爲一生盤桓之所者乎信矣 賢人所過山川精彩也 恭惟我 從先祖 獨樂堂諱灝 二樂堂諱濬 湛樂堂諱氵昱 友樂堂諱湜 和樂堂諱㵯 五昆季公 是文祖敬齋先生十二世孫而鳳村翁之肖子鍾山嶽亭毒之氣應神翁遺符之運 生而風彩秀發才諝卓越 兄孝而弟孝 冬氷得魚旱苗得雨 十指注血喪債得蓉 廬墓三年 村疫退神 有營邑繡衣吏禮之褒題 而無綽楔之典以陽不照盆爲識者之恨 兄學而弟 學博究經傳 淹貫百家 切磋琢磨 鞭策箴規 相期於進修克復 兄難弟難 以同氣而兼師友 早遊公車 不得於有司 則懷眞潛晦於山水處爰起一亭子 是古人橧巢之意 而顔以晩趣 卽托晩年幽趣者也 於是乎 藏修遊息頣餋精神磨礱道義益造高明着力 於古聖賢所樂之地實遯世無㦖之君子 世之論人者 重朝而輕野 以皮相而失實際也 且湛樂公之配 三宜堂 金海金氏 行篤內則允爲巾幗中師範 詩文贍敏 天機自動逈然 若鳳鳴鶴唳炫燿如錦貝珠玉 與唐夏侇氏 麗王氏 垺豈非間世之賢媛乎 噫 五賢霍然就晝休咎乗除亭不得獨存 只有遺墟之荒涼 東西冠帯之過於斯者 必式而起敬曰 山川草樹 芸芸職職之森羅萬像莫不被當日風韻而翼然 古亭便作雪瓜嗟惜而興懷不是尋常况乎 雲裔之深切於報本追逺之誠者乎 積營重建齊心合力 庀材蕫工因其舊制築而新之輪奐得宜侈儉適中可以爲名區 大觀徘徊瞻眺 一花一石 宛若平泉別庄 眼界昭曠 脑次爽豁如登周夫子 光風霽月之楼 慕賢之心油然而生 讀五賢之書 學五賢之行 軆念而實踐 以孝悌爲本忠信 爲用則 雖百世之逺而有親灸之感媺哉 僉宗之精誠 嘉謨可以光先而啓後 亦可以孤燭於昏衢五賢英靈 其將悅豫而洋洋在上矣 亭旣成讌飮而落之 後孫 相台 注容 責余記之 余以夏虫之語氷辭不得 謹書此以寓景仰之思 継之以詩曰, 昏衢乎燭是亭成 草若飛如精彩生 五祖弟兄留賸馥 千孫花樹盡衷誠 光風浮動至今在 霽月徘徊依舊明 一讀遺文一寓慕 愀然興感我心淸. 檀紀四千三百二年己酉重五. 宗後學 河千秀 謹記.
【만취정중건기】 두 칸의 작은 누대가 황량한 곳에 서 있는데도 천년토록 명성을 유지한 것은 학문한 사람이 지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산수(山水)에 있는 이처럼 걸출한 정자(亭子)는 바로 5군자(五君子)가 마음을 다하고 기교를 다하여 평생 동안 반환(盤桓)할 곳으로 삼은 것이니, 참으로 현인(賢人)이 사는 곳은 산천(山川)에 정채(精彩)가 생기는구나. 삼가 생각해 보건대, 우리 종선조(從先祖)이신 독락당(獨樂堂) 휘(諱) 호(灝), 이락당(二樂堂) 휘 준(濬), 담락당(湛樂堂) 휘 립(氵昱,), 우락당(友樂堂) 휘 식(湜), 화락당(和樂堂) 휘 봉(㵯) 다섯 형제공은 문조(文祖) 경재 선생(敬齋先生)의 12세손이자 봉촌옹(鳳村翁)의 초자(肖子)이시다. 산악이 길러 주는 기운을 모으고 신령이 부적으로 남긴 운명에 부응하여 태어나면서 풍채가 빼어나고 재주가 탁월하셨다. 형이 효도하면 아우들도 효도하여, 겨울 얼음 속에서 물고기를 얻었고 가뭄에 곡식이 마르면 비를 얻었으며 열 손가락을 잘라 병든 어버이에게 피를 먹이고 시묘(侍墓)를 3년 동안 하였고 마을에 역병이 돌자 신령이 물리쳤다. 감영과 고을, 어사와 이조 예조에서 포제(褒題)하였으나 작설(綽楔)하는 은전은 없었으니 임금의 은혜가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한 것을 식자들이 한탄하였다. 형이 학문을 하면 아우들도 학문을 하여, 경전(經傳)을 널리 탐구하고 제자백가를 통섭(通涉)하였으며 절차탁마(切磋琢磨)하고 채찍질하여 경계하며 진덕(進德)하고 수신(修身)하여 극기복례(克己復禮)하기를 서로 기약하였다. 그리하여 난형난제(難兄難弟)가 되어 동기(同氣)로서 사우(師友)를 겸하였다. 일찍이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는 못하였다. 그러자 지조를 품고 산수(山水)에 숨어 살면서 정자 하나를 지었으니 이것은 검소하게 산 옛사람들을 본받으려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편액을 만취(晩趣)라고 했는데 바로 만년의 그윽한 풍취를 기탁(寄託)한 것이었다. 이에 자나깨나 학업에 전념하면서 정신을 함양하고 도의(道義)를 연마하여 더욱 고명한 경지로 나아가 옛 성현이 즐기던 경지에 힘을 쏟았으니 실로 은둔하여 세상이 알아 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는 군자이셨다. 세상에서 사람에 대해 논하는 자들은 조정에 나간 사람을 중시하고 초야에 묻힌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가지고 평하는 것이지 실제를 놓친 것이다. 또한 담락공의 배필인 삼의당(三宜堂)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여자로서의 법칙을 독실히 행하여 진실로 규문(閨門)의 사표(師表)가 되고 시문(詩文)에 능하고 천기(天機)가 저절로 발동하여 걸출하게 봉황이 울고 학이 우는 듯하며 찬란히 금패(錦貝)와 주옥(珠玉) 같았다. 당(唐)나라의 하후씨(夏候氏)나 고려의 왕씨(王氏)처럼 뛰어났으니 어찌 세상에 드문 어진 여자가 아니겠는가. 아, 다섯 현자가 쓸쓸히 돌아가시고 길흉화복이 스쳐가는 동안 정자도 홀로 남아 있지 못해서 옛 터만 황량하게 남아 있었지만 이곳을 지나는 동서(東西)의 관리들은 반드시 경의를 표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말하기를, “산천의 초목과 끝없이 무성한 삼라만상이 당시의 풍치를 잃은 것이 없는데 우뚝하던 옛 정자는 눈밭에 남긴 기러기 발자국처럼 사라졌구나.” 하며 개탄하며 감회에 젖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으니 하물며 보본추원(報本追遠)의 마음이 깊고 간절한 먼 후손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중건(重建)을 계획하고 마음과 힘을 합하여 재목을 모으고 공사를 감독하여 옛날의 구조를 따라 새로 지으니 찬란하게 알맞게 되고 화려함과 검소함이 적절하고 알맞게 되어 이름난 지역의 큰 볼거리가 되었다. 주위를 배회하며 바라보면 꽃 한 송이 돌 하나가 뚜렷이 평천별장(平泉別庄)과 같고, 시야가 밝게 트이고 가슴이 상쾌하여 주부자(周夫子, 주돈이[周敦頤])의 광풍제월루(光風霽月樓)에 오른 것 같아서 현인을 연모하는 마음이 뭉클하게 생긴다. 다섯 현자의 글을 읽고 다섯 현자의 행실을 배워서 체념(體念)하고 실천하며, 효제(孝悌)를 근본으로 삼고 충신(忠信)을 행동으로 삼는다면 비록 백대(百代)가 지나더라도 직접 가르침을 받은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게 될 것이다. 여러 종친의 정성과 아름다운 계획이 선조를 빛내고 후손을 계도할 것이니 이 또한 어두운 거리의 외로운 촛불이 될 것이고, 다섯 현인의 영롱한 영혼이 장차 기뻐하며 그 위에서 양양(洋洋)할 것이다. 정자가 완성되자 잔치하고 낙성하고서 후손인 상태(相台)와 주용(注容)이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하였다. 내가 여름날의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하는 격이라며 사양하였으나 끝까지 부탁하므로 삼가 이렇게 써서 경앙(景仰)하는 마음을 표하고 이어서 시를 지어 붙인다. 어두운 거리에 이 정자 완성되니, / 풀잎이 나부끼듯 정채가 나도다. / 다섯 할아버지 형제 향기를 남기시고, / 나무에 핀 꼬처럼 많은 후손이 효성을 다했도다. / 맑은 바람은 지금도 불어오고, / 깨끗한 달빛 하늘에서 옛날처럼 밝도다. / 남기신 글 읽을 때마다 사모하는 마음 일어서, / 정색하며 감흥하며 내 마음 맑아지네. 단기 4302(1969)년 기유(己酉) 단오절 종후학(宗後學) 하천수(河千秀) 근기(謹記)

【題晩趣亭】 茅屋成來小小邱 棄其煩雜取其幽 / 每尋四皓靑山麓 時訪三閭綠水洲 / 局上爭途消夏趣 花間共醉伴春遊 / 兄酬弟勸湛和翕 惟恨雙丸日夜流
【풀이】 모옥(정자) 작고 작은 언덕에 지었으니, / 번잡함을 버리고 그윽함을 취했네. / 매번 푸른 산기슭에서 사호(四皓)*를 찾고, / 때마다 푸른 물가에서 삼려(三閭)*를 방문하네. / 바둑을 두며 여름의 흥취 삭이고, / 꽃 속에서 함께 취하며 봄놀이 함께하네. / 형제 서로 술을 권하며 화합하여 즐기는데. / 다만 총알처럼 빠른 세월이 한스럽다네.
독락당(獨樂堂) 하호(河灝, 장남)
*중국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산시성(陝西省)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숨은 네 사람.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기리계(綺里季)를 이른다. 호(皓)란 본래 희다는 뜻으로, 이들이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흰 노인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후세에 나이도 많고 덕도 높은 은사(隱士)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삼려대부(三閭大夫)로 있다가 조정에서 쫓겨난 초(楚)나라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그의 〈어부사(漁父辭)〉에 “세상은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혼자 깨었는지라, 그래서 조정에서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는 말이 나온다.

天慳地秘等閒邱 五弟兄同卜此幽 雲裏樵歌生碧峀 雨餘漁笛向芳洲
評花品石隨時興 覓句呼樽暇日遊 世上榮枯都夢外 濯纓濯足俯淸流
천지가 감추어 두어 등한히 여기던 언덕,
오형제 함께하여 이 그윽한 곳에 자리 잡았네.
구름 속 나무꾼 노랫소리 푸른 산에서 나오고,
비 온 뒤 어부의 피리소리 아름다운 물가를 향하네.
꽃과 경치를 품평하니 수시로 흥취가 솟고,
시구 찾고 술잔 부르며 여가를 보내네.
세상의 영고성쇠 모두 꿈밖이라,
갓끈 씻고 발 씻으며* 청류 굽어보네.
이락당(二樂堂) 하준(河濬, 둘째)
*갓끈과 발을 물에 담가 씻는다는 뜻으로, 세속(世俗)에 얽매이지 않고 초탈(超脫)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함.

峰回巖轉作閒邱 鬼護神藏最寂幽 太古溪山前赤壁 至今泉石後瀛洲
烟花勝日賖樽醉 詩賦良宵伴月遊 㤼界浮生何事業 只將晩趣寄淸流
봉우리 구비하고 바위 굴러 한가한 언덕 만들어,
귀신 보호하고 감추어 가장 적막하고 그윽한 곳.
태고의 시내와 산은 적벽의 앞이요,
지금의 산천의 경치는 영주(瀛州)* 다음이라오.
봄꽃 핀 아름다운 날 술동이 기울여 취하고,
시 지으며 좋은 밤 달과 짝하여 노니네.
속세의 덧없는 인생 무슨 일 하리오,
다만 만취를 청류에 붙인다네.
담락당(湛樂堂) 하립(河氵昱. 셋째)
*삼신산(三神山)의 하나. 봉래(蓬萊), 영주(瀛洲), 방장(方丈)으로 신선이 산다는 곳.

老石蒼松一小邱 隨兄隨弟卜居幽 隨雲採藥過長壁 伴月垂竿坐碧洲
嫩柳新畵時盛會 淸詩白酒日娛遊 三千八百前頭在 脁朒何關缺隙流
오래된 돌 푸른 소나무 작은 언덕에 한결 같은데,
형제들 서로 따르며 그윽한 곳에 살 곳을 정하였네.
구름 따라 긴 벼랑 지나 약초 캐고,
달 짝하여 푸른 물가에 앉아 낚싯대 드리우네.
버들잎 신록으로 새 그림 그릴 때에 성대히 모여,
맑은 시 짓고 백주(소주) 마시며 하루 즐겁게 보내네.
3천 8백개의 풍광 앞에 있는데,
세월은 빗장을 풀고 어느 틈으로 흘렀는가?
우락당(友樂堂) 하식(河湜, 넷째)

遁世心情擇此邱 白雲深處碧山幽 時同樵客巖間路 更逐漁翁雨後洲
酬酌香醪多興趣 敲椎佳句亦娛幽 前頭事業無窮在 那得挽回年矢流
둔세의 심정으로 이 언덕을 택하였는데,
흰 구름 깊은 곳 푸른 산 그윽한 곳이라네.
때론 나뭇꾼과 바위 사이 길을 같이하고,
또는 비온 뒤의 물가에서 늙은 어부를 따르네.
향기로운 막걸리 서로 권해 흥취 돋우며,
아름다운 시구 고심하며 그윽함을 즐긴다네.
앞으로의 사업 무궁하게 있는데,
화살처럼 흐르는 세월 어떻게 되돌릴까?
화락당(和樂堂) 하봉(河㵯, 막내)
순조 6년[1806] 병인 늦은봄 제하다(崇禎戊辰後四十九年丙寅暮春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