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정(羽化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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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읍 우화1길 4-16[군상리350-1], 우화산 북쪽, 진안천변 암벽위 버덩에 있는 정자. 본래 우화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편찬)』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 500년은 된 정자이다. 본디는 지금의 자리에서 서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등성이 너머 암벽아래에 위치하였는데, 언제인가 퇴락하여 없어졌으나 1921년 지역 인사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重創)하였고, 1963년 지역인사들이 다시 중수(重修)하였으며, 그 뒤 1998년 진안군에서 다시 중건(重建)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 건축이다. 구조는 낮은 기단위에 가공된 고복형 주초를 놓고 두리 기둥을 세운다음 창방과 결구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양식으로 기와지붕이다. 누정 주변에는 계자난간을 돌려 설치하고 있다. 공포는 익공양식이고 가구는 5량집으로 대들보 위에 대공을 대고 다시 종보를 댄 다음 그 위에 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2단의 대들보 사이에 충량을 대고 기둥 주두위에 걸치고 있다. 우화정이 위치한 우화산은 주위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전망이 뛰어나 이곳에 오르면 마이쌍봉 등 소위 월랑팔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경승지이다. 정자에는 지역인사들의 차운(次韻)을 담은 판액(板額)이 즐비하다. 이곳은 진안읍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진안읍민의 휴식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이 우화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연유는 예전에 이곳에서 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전설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우화정에는 다수의 판액(板額)이 걸려 있다. 다음은 1921년 중창하면서 진안읍의 전민탁(全玟鐸)이 쓴 기문인데 판액(板額)은 없어지고 글만 『진안지(1925)』에 전한다. 이 글로 1921년 정자의 중창(重創) 전말을 알 수 있다.

【羽化亭記】 夫物之廢而興 衰而盛 卽理之常也 羽化一亭 在縣之案南者 爲幾百年前云 而胡爲乎失葺 但遺礎者 未知幾經星霜 此亭參居月浪八景之一 其所勝槩 遙想一郡翹楚 而今我後進 只憑古老相傳 瞻望舊墟而已 於是乎同志諸人 有感古之懷 謀新築之論 隨力捐金 不違劃筭 可謂廢而興者此歟 前日竪亭之處 乃玉流泉上駕鶴臺下 其幽邃景狀 非爲不佳 欲營別團而置之 乃隔一巒 更卜于此 翬飛碧榭 胸衿豁然 亦豈非地人相遇哉 前臨石壁 涵流水百年之聲 後擁松墩 毓靑山千古之色 東開牛蹄之野 濛濛也細雨 南隱馬耳之峰 悠悠也白雲 簷頭明月 欄外淸風 非但吾人之暢叙 足爲才子之觴咏 美哉仙鄕之流華 不愧隣境也 是亭也 豈憂竹樓之易朽乎 後必有如我同志之嗣葺云 歲在辛酉夏四月下澣 全玟鐸謹識
【우화정기】 무릇 사물이 없어졌다 생기고, 쇠했다가 성한 것은 이치의 떳떳함이다. 우화정(羽化亭)이 고을의 안산 남쪽에 있었던 것은 몇 백 년 전의 일이라고 하나, 어쩌다가 중수(重修)하지 못했는지 모르나, 주초(柱礎)만 남게 된 것도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를 일이다. 이 정자는 월랑팔경(月浪八景)의 하나에 들어 있고, 그 좋은 경치는 한 고을에서 으뜸이었을 것이나, 지금 우리 후생들은 다만 어른들이 전하는 말만 듣고 빈터만 바라볼 따름이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옛날을 회상하는 마음이 있어 새로 짓자는 논의를 하고, 힘닿는 대로 돈을 내놓고 계획에 차질이 없었으니, 이른바 없어졌다가 도로 생긴다는 것이 이런 경우일 것이다. 전일 정자를 세웠던 곳은 옥류천(玉流泉) 위이고 가학대(駕鶴臺) 아래로 그윽한 경개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나, 달리 지어보려고 그 자리는 버리고 산등성이 하나를 격(隔)하여 이곳에 다시 터를 잡으니, 날아갈 듯한 푸른 정자는 가슴이 툭 트인다. 이 어찌 땅과 사람이 서로 때를 만남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석벽(石壁)에 임하여 유수(流水)의 백년성(百年聲)을 머금었고, 뒤로는 송돈(松墩)에 기대어 청산(靑山)의 천고색(千古色)을 띠었다. 동으로 우제(牛蹄)의 들 열렸는데, 컴컴한 것은 가랑비이다. 남으로 마이(馬耳)의 봉우리 가리웠는데 유유(悠悠)한 것은 백운(白雲)이다. 처마 끝 명월(明月)과 난간 밖 청풍(淸風)은 비단 우리만이 창서(暢敍)하는 것이 아니라, 족히 재자(才子)들의 상영(觴詠)도 됨직하니 아름답도다. 선향(仙鄕)의 유광(流光)은 이웃 고을에 부끄러움이 없다. 이 정자는 어찌 죽루(竹樓)*의 쉬이 썩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이 뒤로 필시 우리와 같은 동지자(同志者)가 있어 보수(補修)하게 될 것이다. 신유(辛酉, 1921) 하4월 하한(下澣) 전민탁(全玟鐸)이 삼가 기록하다.
*당[唐]나라 때 왕우칭[王禹偁]이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를 지었는데, 그 말미에 대나무로 기와처럼 집을 덮으면 10년이 가니 다시 또 덮어도 20년밖에 못 가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뒤를 이어 보수하면 쉬이 썩는 것을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는데, 그 뜻을 인용한 것이다.

다음은 1963년 중수하면서 마령면의 정귀영(鄭貴泳)이 쓴 기문 판액이다.
【羽化亭重修記】 鎭安郡治之南數武許 崗巒突兀 絶壁奇異 樹木㭗蒼 百鳥咸集 甘露湧出石間而爲泉 淸溪不息長流而爲沼 瞻望一隅 馬耳雙峰 屹立中天于彼 古寺暮鐘 攩聲日聞不絶 此眞可謂神仙道師會遊消塵之勝區 而有亭翼然者 乃羽化亭也 文章才士 詩人墨客 詠於斯題於斯 揭之于板上 亭之可觀備在前者老儒之述矣 姑置之 而盖天下事 初創雖云難 守補亦難 如非後人之承述嗣葺 則若將難保者 理所固然 矧修理有年 土木傾頹 瓦覆滲漏 有志諸君子 慨然於斯 捐金鳩財 命匠不數月 而告工重新之 環顧宇內 慾浪滔滔 致禮義之不暇 而範俗世道 無論可想 花朝月夕 會友觴詠 炎天曝陽 棲息渴飮 不聞可知爲不忘僉君子之德矣 不佞以匪德不文 豈敢敍述也 僉尊之固請 重且大 不揆妄拙 擧其槩而爲之記 捐金與尸事之芳名 當次其後矣. 檀君紀元四二九六年 癸卯 窉月 日. 東萊 鄭貴泳 記.
【풀이】 진안(鎭安)의 군치(郡治) 남쪽 몇 발자욱되는 거리에 뫼뿌리가 우뚝 솟아 절벽이 기이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온갖 새가 다 모여들며 감로(甘露)가 돌사이에서 샘솟아 우물이 되고 맑은 물은 쉬지 않고 흘러 못이 되었는데 한쪽 모퉁이를 쳐다보면 마이(馬耳)의 두 봉우리가 중천(中天)에 드높이 솟아있고 절간의 저녁 종소리 끊임없이 들려오니 이는 참으로 이른바 신선(神仙)과 도사(道師)가 만나 노닐면서 진세(塵世)를 잊는 승구(勝區)라 할 만한데 날렵한 정자 하나가 있으니 바로 우화정(羽化亭)이다. 문장(文章), 재사(才士), 시인(詩人), 묵객(墨客)이 여기에서 읊조리고 여기에서 써서 판상(板上)에 걸어놓았으니 정자로서의 볼거리는 다 갖추어져 있다. 지난날 노유(老儒)들이 계술(繼述)한 것은 그만두고서라도 대체로 천하의 일은 비록 초창(初創)이 어렵다고 하지만 수보(守補)도 또한 어렵다. 후인(後人)의 끊임없는 보수(補修)가 없으면 보전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물며 수리한지 여러 해가 되어 목재(木材)는 기울어지고 기와는 비가 샘에 있어서랴. 뜻이 있는 제군자(諸君子)가 이를 개연히 여겨 돈을 내놓고 재목을 거두어 공장(工匠)을 불러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일을 마쳐 일신(一新) 하였다. 지금 세상을 두루 돌아보면 탐욕(貪慾)의 물결이 넘쳐흘러 예의(禮義)를 이룰 겨를도 없으니 세도(世道)에 모범이 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데 꽃피는 아침, 달이 뜨는 저녁에 벗을 모아 시를 읊고 더운 철 땡볕이 내려 쪼일 때에 이곳에서 쉬면서 목이 말라 우물을 마시면 듣지 않아도 제군자의 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덕도 없고 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술(敍述)할 수 있겠는가마는 여러 어른의 간청이 중한 바라서 망녕됨을 헤아리지 않고 그 줄거리를 들어 기(記)로 삼는 바이다. 돈을 내놓은 사람과 일을 맡아본 사람의 방명(芳名)은 응당 부차(副次)로 있을 것이다. 단군기원(檀君紀元) 4296(1963)년 계묘(癸卯) 3월(窉月) 일 동래(東萊) 정귀영(鄭貴泳) 기(記)

다음은 1963년 중수하면서 진안읍의 김종관(金鍾寬)이 쓴 기문으로 중수내역을 국한문 병용으로 기재한 글이다.
【鎭安羽化亭重修記】 月浪城南 數武許에 一見 仙娥가 邑을 향하여 춤을 추는 듯한 자세를 올리고 있는 산을 일러 羽化山이라 한다. 이 山 分野內에 있는 羽化橋의 風致와 玉流泉의 淡味와 忠魂塔의 偉容과 駕鶴坮의 神祕와 羽化江의 返景 등 許多 風光은 곧 登臨客을 陶醉케 하며 本郡 遊覽地로서 이름이 높은 저 馬耳雙峯과 雲半兩岩으로 더불어 優劣을 다투는 터이다. 이와 같은 勝地에 어찌 亭榭가 없을소냐 槪使 羽化山을 仙娥 舞體로 본다면 右舞袖에 該當한 位置에 서 翼然中天에 드높이 나타나고 있는 건물이 곧 羽化亭이다. 眼界가 廣闊하여 所謂 月浪八景이 一目之下에 展開되어 있고 地帶가 迢遞하여 浮埃가 끊어지고 淸風만이 徐來하는지라 와서 앉으면 胸襟이 灑落하여 곧 神仙에 오른듯하다. 春風秋月境을 찾아 詩人墨客이 接踵하고 있는 이 羽化亭의 存在야말로 郡寶로서 자랑함에 遜色이 없을 것이다. 烏號라! 건물의 修不修는 管理 如何에 따라 左右됨은 再言을 要치 않는바 從來 우화정의 管理가 너무나 疎忽하였으므로 그로 因하여 建物이 日頹月落 將次 顚覆의 危險前夜에 있었다. 이를 憂慮한 地方同志가 相謀下에 우화정 修理期成會를 組織하고 積極 推進한 結果 郡에서 修理費 三萬원의 下達을 받고 會員으로부터 應分의 誠金을 收合하여 計劃대로 付屬建物까지 完全修理의 業績을 거두었다. 玆에 今般 우화정을 修理하게된 顚末과 此 修理工事에 積極 協力하신 會員諸氏의 名單을 登梓하여서 길이 紀念코자 하노라. 檀紀四二九六(1963)年 癸卯 仲秋 下澣 金海 金鍾寬 記

다음은 우화정 안에 걸려 있는 한시 판액(板額)들이다.
[謹次]
崖懸巖疊水聲長 羽化亭高此片岡 臺影沈江兼鶴靜 樹陰如海帶鶯凉
百登不厭眞佳境 一寓難辭亦故鄕 仙跡渺茫無處問 只留瑤草向人香
丁酉初夏中澣 寓人 秋圃 金鍾管
삼가 차운하다
첩첩한 바위 절벽 물소리 유장한데,
이 언덕에 우화정이 높다랗게 섰도다.
정자의 그림자는 물속에서 학과 함께 고요하고,
수풀의 그늘은 바다처럼 꾀꼬리와 함께 서늘하다.
백 번을 올라도 염증이 나지 않아 참으로 가경(佳境)인데,
한 번 보고는 말하기 어려우니 역시 고향으로 삼을 만하다.
신선의 자취는 묘연(渺然)하여 어디 있는지 물을 길 없고,
다만 기화요초(琪花瑤草)만 남아 사람에게 향기를 보내네.
정유 초하 중한 우인(寓人) 추포(秋圃) 김종관(金鍾管)

[謹次]
仙翁以去歲華長 此地空餘羽化岡 駕鶴坮前山月白 釼岩沼上水風凉
名亭幻出三淸界 物色由來太古鄕 遠近遊人常不絶 日團詩社酒樽香
東隱 金圭泰
삼가 차(次)하다.
신선이 가버린 지 세월이 오래인데,
이곳엔 공연스레 우화정만이 왔네.
가학대(駕鶴臺) 앞엔 달빛이 희고,
검암소(劒巖沼) 위엔 바람 서늘하다.
이름난 정자 삼청계(三淸界)*에 솟아있는데,
물색(物色)*은 자래로 태고향(太古鄕)*이었네.
원근의 유인(遊人)들 항상 떨어지지 않아,
날마다 시사(詩社)* 얼려 술기운 향긋하다.
동은(東隱) 김규태(金圭泰)
*삼청계(三淸界): 신선이 사는 하늘 나라. 즉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의 총칭임.
*물색(物色): 어떤 풍경과 모양의 종합적인 상징(象徵).
*태고향(太古鄕): 태고적의 순후한 고장
*시사(詩社): 시로써 모이는 동아리.

一谷淸川翠帶長 枕流巖石疊成岡 山花滿地春風暖 水氣通簾夏日凉
歲月重來明月也 神仙不返醉仙鄕 後人修葺多生色 聯揚新詩墨潤香
檀陰 金圭彦
한 굽이 맑은 시내 띠처럼 기다란데,
베고 누은 바윗돌 쌓여서 산을 이뤘네.
산화(山花)는 땅에 가득하여 봄바람 따스한데,
수기(水氣)는 주렴에 스며 여름에도 서늘하다.
세월은 명월야(明月夜) 다시 돌아왔건만,
신선은 취선향(醉仙鄕)에 돌아오지 않누나.
후인들 보수하여 화사한 맵시 많이 나는데,
새로운 시 나란히 걸어 먹 향기 그윽하다.
단은(檀隱) 김규언(金圭彦)

勝地名亭共特長 月浪佳境在斯岡 高臺隔水紅塵遠 老樹叅天白日凉
羽化仙翁去何處 風流士子訪吾鄕 逍遙擬到三山境 瑤草琪花分外香
陽圃 鄭京朝
승지(勝地) 명정(名亭)의 특장(特長) 겸했으니,
월랑(月浪)의 가경(佳景) 이 산에 있구려.
높은 누대 물에 막혀 홍진(紅塵)은 먼데,
늙은 수림 하늘을 가려 한낮에도 서늘하다.
우화(羽化)한 신선은 어데로 가버렸는지,
풍류(風流)의 선비맛이 이 고장 찾아드네.
삼산(三山)*의 지계(地界)에서 바람을 쏘이는 듯,
요초(瑤草)와 기화(琪花) 생각밖에 향기롭다.
양포(陽圃) 정경조(鄭京朝)
*삼산(三山): 삼신산(三神山) 즉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를 말함.

[謹次]
一榭亭亭鳴世長 鎭中秀氣鐘南岡 懸簷霽月終霄白 滿座光風盡日凉
眼際皆無非別界 人誰不道是仙鄕 忘俗憑欄如化羽 仃伶暫醉九煎香
蓮史 姜信永
삼가 차하다
한 정자 청정하여 세상에 울린지 오래이니,
진안의 수려한 기상 남강(南岡)에 모였네.
처마에 매달린 제월(霽月)은 밤새도록 밝고,
자리에 가득한 광풍(光風)은 종일토록 서늘하다.
눈 앞엔 모두가 별계(別界) 아님이 없나니,
사람이 뉘라서 선향(仙鄕) 아니리 이르는가.
세상 잊고 난간에 비기니 날개가 돋치는 듯,
나 홀로 잠시 구전향(九煎香)*에 취해 보네.
연사(蓮史) 강신영(姜信永)
*구전향(九煎香): 신선이 되는 약인 금단(金丹)은 수은(水銀)을 아홉 번 달여서 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용어임.

[謹次]
羽化亭下一溪長 山勢南來聳此岡 危欄半枕釼巖碧 畵棟高撑玉宇凉
絶壁籠雲超俗界 靈泉釀酒醉仙鄕 鍊道醒心幾多客 煎丹遺煙至今香
慕軒 李圭衡
삼가 차하다
우화정 아래 시냇물 하나 길게 흐르는데,
산세는 남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솟았네.
위태로운 난간은 반쯤 검암(劒巖)에 기대었고,
붉은 기둥 높다랗게 옥우(玉宇)* 받치고 있네.
절벽은 구름에 감싸여 속계(俗界)를 벗어났는데,
영천(靈泉)으로 술을 빚어 선향(仙鄕)에서 취하네.
도를 닦고 마음 깨친 나그네 얼마나 되는가,
단(丹)을 달여 전해진 약 지금도 향긋하다.
모헌(慕軒) 이규형(李圭衡)
*옥우(玉宇): 하늘을 말함

[次羽化亭韻]
羽化翁歸天日長 而今只有古亭岡 杜宇曉岑殘月白 寒蟬紅樹夕陽凉
幻身一旦期離俗 駕鶴千年不返鄕 聊識世間都是夢 惟存芳草帶春香
石亭 全鍾烈
우화정 운을 차하다
우화옹(羽化翁) 돌아가고 햇끝만 긴데,
지금은 다만 옛 정자만이 남아 있구려.
두견새 새벽 뫼뿌리에 잔월(殘月)은 희고,
매미 소리 붉은 숲엔 저녁 노을 서늘하다.
환신(幻身)한 그 날에 세속 떠나려고 작심했는지,
가학(駕鶴)한 천년동안 고향엔 돌아오지 않네.
양괘라 인간 세상 모두가 꿈인지라,
방초(芳草)만 봄의 향기 띠고 있구려.
석정(石庭) 전종렬(全鍾烈)

[又]
駕鶴一飛歲月長 只存重疊白雲岡 叅差城樹空中碧 灑落林泉石上凉
千家桃竹武夷谷 七里山川滁水鄕 如逢記似羲之筆 不使蘭亭獨擅香
石川 金鍾寬
우(又)
학 타고 떠난 뒤로 세월이 많이 흘러,
겹겹이 쌓인 백운강(白雲岡)만이 남았네.
들쭉 날쭉 성수(城樹)는 공중에 푸르르고,
깔끔한 임천(林泉)은 돌 위에 서늘하다.
얼천 집 도죽(桃竹)은 무이(武夷)*의 골짜기요,
칠리(七里)의 산천은 저수(滁水)*의 고을일세.
글 잘 지은 왕희지(王羲之)의 솜씨 만난다면,
난정(蘭亭)*이 그 이름 독차지하게 않았으련만.
석천(石川) 전종관(全鍾寬)
*무이(武夷): 중국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에 있는 산 이름. 그곳에 있는 골짜기 구곡(九曲)은 경치가 좋아 주희(朱熹)의 구곡가(九曲歌)가 있다.
*저수(滁水): 중국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물 이름. 송(宋)의 문장가 구양수(歐陽脩)가 이곳 지방관이 되어 취옹정(醉翁亭)을 짓고 기(記)를 지었음
*난정(蘭亭):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정자 이름. 동진(東晋) 때에 명사(名士) 42인이 이곳에 모여 주연(酒宴)을 베풀었는데 그 기(記)를 왕희지(王羲之)가 대를 있고 쓰고 하였음.

[次羽化亭]
羽亭日上放懷長 駕鶴千秋露此岡 一輪明月當樽白 萬斛淸風入座凉
玉削芙蓉挺馬耳 天圍地軸闢仙鄕 最好登臨無限景 每唫花鳥幾番香
春岡 全承國
우화정 운을 차하다.
해 돋는 우화정에서 길게 회포를 푸는데,
신선은 가버리고 천추토록 이 언덕만 남았네.
일륜(一輪)의 명월은 술동이 비추어 희고,
만곡(萬斛)*의 청풍 자리에 들어 서늘하다.
옥으로 각각은 연꽃인 듯 마이(馬耳)는 솟았고,
하늘은 땅의 테를 둘러 신선 고장 이루었네.
가장 좋은 건 등림에 끝없는 경치 있음이라,
매양 화조(花鳥) 읊조리며 몇 번이나 놀았던가.
춘포(春圃) 전승국(全承國)
*만곡(萬斛): 일만 섬(石). 아주 많음을 뜻함

[又]
百尺臺高一水長 擁城屹立畵中岡 森羅萬象乾坤大 蘊蓄千年木石凉
湖山表裏玲瓏界 吳楚東南壯麗鄕 詩友棋朋仍共樂 灑然巾屐襲天香
晴溪 薛洙奉
우(又)
대(臺)는 백척(尺)이나 높고 시냇물 길게 흐르는데,
성(城을) 끼고 우뚝 솟은 그림 속의 뫼뿌리일세.
만상(萬象)은 삼라(森羅)하여 건곤(乾坤)은 크고,
천년(千年)을 온축(蘊蓄)*하여 목석(木石)도 서늘하다.
호산(湖山)은 안팍으로 영롱(玲瓏)한 세계이고,
오초(吳楚)*는 동남으로 장려(壯麗)한 고장일세.
시우(詩友) 기붕(棋朋) 함께 모여 즐기니,
쇄연(灑然)한 건극(巾屐) 천향(天香)*에 젖네.
청계(晴溪) 설수봉(薛洙奉)
*온축(蘊蓄): 어떤 기운이나 학문 품위 따위가 오래 쌓이는 것
*오초(吳楚): 오(吳)나라와 초(楚)나라. 두보(杜甫)의 악양루(岳陽樓)시에 오초는 동남으로 펼쳐졌다[吳楚東南坼]는 시귀가 있는데 그 사의(辭意)를 취해서 쓴 것임
*천향(天香): 하늘 멀리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향기

[次羽化亭韻]
孤亭特立歲年長 月浪城过一小岡 門掛白雲常隱僻 窓臨流水饒淸凉
絶勝溪山開別界 煥然文物非凡鄕 邨俗亦知烟景好 隨時筆筆自題香
玉雲 宋瑢憲
우화정 운을 차하다
외딴 정자 우뚝 솟아 세월이 흘렀는데,
월랑성(月浪城)변의 작은 뫼뿌리일세.
문에는 백운(白雲)이 걸려 항상 그윽하고,
창은 유수(流水)에 다달아 서늘함 풍족하다.
절승(絶勝)의 계산(溪山)에 별천지 열렸는데,
빛나는 문물(文物)은 범향(凡鄕)이 아니로세.
나라 풍속 역시 연경(煙景)이 좋음을 알아,
때때로 이 붓 저 붓 멋대로 향기를 적네.
옥운(玉雲) 송용헌(宋瑢憲)

一上名亭興味長 郡城秀色盡南岡 千里溪山依旧碧 百年松檜帶新凉
畵棟鶴鳴明月夜 玉簫仙降彩雲鄕 幾多騷客登臨處 聯壁圖書漆墨香
春岡 房鎭洪
이름난 정자 성큼 오르니 흥미로움 많은데,
한 고을 뛰어난 경치 이 언덕에 다했구려.
천리의 산천은 옛 모습 그대로 푸르르고,
백년의 송백(松栢)은 서늘함 가져오네.
화동(畵棟)엔 달이 밝은데 학이 울고,
옥소(玉簫)로 신선 구름타고 내리네.
허구많은 시인들 등림(登臨)하던 곳엔,
벽을 둘러 시와 글 먹 향기에 젖었네.
춘강(春岡) 방진홍(房鎭洪)

[次]
駕鶴坮傳歷史長 羽亭生色擅奇岡 江風拂檻詩心快 山月當簷酒氣凉
自古湖南多勝地 鎭安名實太平鄕 湯來掬飮靈泉水 頓覺凡夫口腹香
守軒 吳在東
차하다
가학대(駕鶴臺)는 전해진 지 오래인데,
우화정의 생색은 이 뫼뿌리 독차지했네.
강풍이 난간 흔드니 시심(詩心) 울렁이고,
산월(山月)이 창살 마주하니 술기운 서늘하다.
자고로 호남에는 승지(勝地)가 많으나,
진안은 명실이 태평향(太平鄕)이었도다.
목이 말라 영천수(靈泉水) 움켜 마셨더니,
범부(凡夫)도 뱃속 향긋함 완연히 깨닫겠네.
수헌(守軒) 오재동(吳在東)

亭故築今一羽長 南湖形勝此東岡 白晝樹林情欲斷 黃餘石礎座還凉
日鶯歌非俗洞 霽天月色是仙鄕 名遊不晩前人後 後我千年亦有香
辛酉五月二十日 晩圃 文榮一
오랜 정자 지금 중건하니 깃 하나 자랐는데,
남호(南湖)의 형승(形勝)이 언덕에 있구려.
백주(白晝)의 정취(情趣)는 애간장을 끊는데,
석초(石礎)*에 황화(黃花) 있으니 자리 되려 서늘하다.
따스한 날 꾀꼬리 소리는 속계(俗界)가 아닌데,
개인 하늘 달빛은 이곳이 바로 선향(仙鄕)이구려.
이름난 놀이 전인(前人) 뒤 따르는 것 늦지 않나니,
이로부터 천년 뒤일지언정 남은 향기 있으리라.
신유(辛酉) 5월 20일
만포(晩圃) 문영일(文榮一)
*석초(石礎): 주춧돌을 말한 것은 분명하나 황(黃)은 단청(丹靑)을 말함인지 국화인지 알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