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광호高光浩 : 본관은 장흥이며 장흥군 복립의 후손이고 가선대부 봉주의 아들이다. 송연재 병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나이 아직 약관이 못되어서 날마다 예서를 익혔다. /貫長與 長興君福林后 嘉善奉柱子 受學于宋淵齋秉璿之門 年未弱冠 日講禮書

    고제혁高濟爀 : 호는 학은. 본관은 장흥이며 장흥군 복림의 후손이다. 경전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송금곡 래희의 문도들과 친분이 있었다. /號學隱 貫長興 長興君福林后 博涉經傳 從遊於宋錦谷來凞之門

    고택진高宅鎭 : 호는 연파. 본관은 제주이며 문영공 용현의 후손이다. 가선대부 의관을 지냈다. 주로 시문을 잘 지어 문명이 세상에 드러났다. 수신과 제가의 도가 있어 고을의 모범이 되었고 자선으로 아녀자와 선비들의 칭송을 받았다. /號蓮坡 貫濟州 文英用賢后 嘉善議官 翰墨爲業 文名著世 修齊有道 鄕黨模楷 慈善爲心 婦儒誦譽

    구규진具奎鎭 : 본관이 눙주이다. /綾州人

    김구현金龜鉉 : 호는 성재. 본관은 광산이며 공안공 겸광의 후손이다. 서하 태현의 동생으로서 문장과 학문에서 난형난제였다. 너그러움이 의표로도 드러났으며 명리로부터 멀었다. /號誠齋 貫光山 恭安謙光后 西荷泰鉉弟 文章學行 難兄難弟 雅亮儀表 名利自遠

    김구흠金九欽 : 호는 옥담. 본관은 낙안이며 양혜 윤길의 후손이다. 재능이 뛰어났으며 뜻은 호방하고 시는 웅대하여 활보하고 장추하는 듯 했고 높이 솟아 창공을 누비는 듯 했다. 후생을 깨우치고 도를 닦으면서 어린이를 가르쳤다. /號玉潭 貫樂安 襄惠贇吉后 稟才超邁 志豪詩雄 활步長趨 凌高厲空 以覺來今 修道啓蒙

    김기섭金箕燮/호는 매와. 본관은 광산이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성품이 온자 넉넉한 모양
    하며 학식과 행동이 넓고 넉넉하였다. 산림에 은거해서 수도하며 명리를 구하지 않았다. /號梅窩 貫光山 恭安謙光后 性質蘊藉 文行贍博 修道隱林 不求名利

    김기흠金琪欽 : 호는 농은. 본관은 낙안이며 양혜 윤길의 후손이다. 품성이 어질고 가훈을 잊지 않았으며 일에 임해서는 분명하여 배운 법칙대로 하였다. 자기를 낮추고 남을 기쁘게 하기에 힘썼다. /號聾隱 貫樂安 襄惠贇吉后 稟性純仁 庭訓不忘 臨事綜明 一如學則 持己辭卑 接人務悅

    김래용金來容 : 자는 가향. 호는 인재. 진사를 지냈다. 본관은 경주이며 명암공 인경의 후손이다. 기로사 정진의 문하에 들었으며, 간재 전우를 좇아 교유하였다. 학문과 행실이 겸전하였고 유고가 있다. /字可鄕 號인齋 進事 慶州人 明菴仁鏡后 執贄于奇蘆沙正鎭門 從遊艮齋田愚 文行全 有遺稿

    김복현金馥鉉 : 호는 송담. 참봉을 지냈다. 본관은 광산이며 감사 약채의 후손이고 면암 최익현을 스승으로 모셨다. 일찍이 문명을 날렸고 자못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나중에는 과거공부를 중단하고 경전연구에 몰두하였다. /號松潭 參奉 光山人 監司若采后 師崔勉菴益鉉 早有文名 頗多著述 晩謝公車 硏究經傳

    김상능金相能 : 자는 능일. 본관은 광산이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인하며 자질이 호방하였다. 효우를 가문에 전했으며 선행으로 혜택을 입은 사람이 많아 향리에서 칭송하였다. /字能一 貫光山 恭安謙光后 天性純仁 姿稟豪邁 孝友傳家 慈善及人 鄕里補頌

    김상두金相斗 : 본관이 김해이다. /金海人

    김상수金尙秀 : 본관이 서흥이다. /瑞興人

    김성의金聲義 : 자는 진여. 호는 송은. 본관은 경주이며 제숙 곤의 후손이다. 일찍이 재능과 지혜가 있어 12세에 7서를 연송하였다. 글을 많이 지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字振汝 號松隱 慶州人 齊肅균后 早有才慧 十二歲連誦七書 多述詞章 以鳴于世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삼의당이라 한다. 진양인 하립의 처로서 언문을 깨친후 소학을 통하였으며 백가의 시서를 모두 스승없이 스스로 깨쳐 문장을 이루었다. 유고가 있다. /籍金海 三宜堂 晉陽河립妻 以諺讀解 小學推通 詩書百家語 皆不師自得以成文章 有遺稿

    김양섭金陽燮 : 호는 저헌. 본관은 낙안이며 양혜 윤길의 후손이다. 덕성이 순일하고 인을 행하며 의를 지켰다. 영달을 구하지 않고 종내 안빈낙도하니 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號樗軒 貫樂安 襄惠贇吉后 德性純一 行仁修義 不求聞達 永矢考槃 爲人欽仰

    김영석金永錫 : 호는 이산. 본관은 낙안이며 양혜공 윤길의 후손이다. 성품이 소박하고 단아하였으며 바르고 지조가 있었다. 부모에게 효도하며 가족에 돈독하였으며 인을 행하고 의를 닦았다. 경전과 술법을 환히 익혔으며 필법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號梨山 貫樂安 襄惠贇吉后 素性雅重有正有操 孝親敦族 行仁修義 講明經術 以筆法著世

    김영수金榮秀 : 자는 정삼. 본관은 사천. 금부도사 유무의 후손이며 석절의 아들이다. 8세에 소학을 읽었으며 13세에 7서를 연송하였다. 당세에 문명이 현저하였다. /字政三 泗川人 禁府都事有武后 錫節子 八歲讀小學 十三歲連誦七書 以文名現于世

    김재만金載萬 : 본관이 광산이다. /光山人

    김재열金在烈 : 호는 탄와. 본관은 광산이며 공안공 겸광의 후손이다. 박예창 성양의 문인으로서 경전을 탐구하고 성리를 궁구하여 실천에 힘을 썼으며 겸손하며 도를 익히니 세상이 탄복하였다. /號坦窩 貫光山 恭安謙光后 朴芸窓性陽門人 구經窮理 實踐力行 居敬講道 爲世悅服

    김재영金在穎 : 본관은 낙안이며 양혜 윤길의 후손이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고 집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겸손하였다. 언행이 착실하고 글이 빛나니 세상에서 중히 여겼다. /貫樂安 襄惠贇吉后 天姿英邁 入孝出悌 言行조조 文華彬彬 爲世推重

    김재진金在振 : 호는 송파. 본관은 광산이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안빈수도하였으며 친족에게 도탑고 이웃을 긍휼히 여겼다. 문장과 행동을 겸비하여 덕망이 드러났다. /號松坡 貫光山 恭安謙光后 安分修道 敦族恤隣 文行兼備 德望素著

    김재천金在川 : 호는 송헌. 본관은 광산이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품행이 정직하고 학식이 풍부하고 효우가 순실하여 당시에 저명하였다. /號松軒 貫光山 恭安謙光后 品行正直 學識贍富 孝友純實 著聞當時

    김재호金在浩 : 호는 석파. 본관은 광산이며 긍구당 중정의 8세손이다. 송금곡 래희를 스승으로 모셨다. 언행이 정직하고 학식이 해박하여 사림의 모범이었으며 고을사람들의 사표가 되었다. /號石坡 貫光山 肯構堂重鼎八世孫 師事宋錦谷來熙 言行正直 學識該博 士林模節 鄕黨師表

    김재홍金在洪 : 호는 국오. 본관은 낙안이며 양혜공 윤길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인하며 언행이 정직하였다. 가훈을 이어 효우 돈독하고 화목하였다. 경전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여 고을에서 저명하였다. /號菊塢 貫樂安 襄惠贇吉后 天性純仁 言行正直 承襲庭訓 孝友敦睦 博涉經史 名著鄕黨

    김정의金正義 : 본관이 경주이다. /慶州人

    김종덕金宗德 : 자는 명서. 본관은 의성이며 참판 로의 후손이고 도곡 한경의 10세손이다. 덕이 높아 중히 여겨졌고 문예는 멀리까지 소문이 났으며 후진교육에 힘쓰므로 고을에서 칭송하였다. /字明瑞 貫義城 參判路后 道谷漢卿十世孫 德高望重 文藝聞遠 以興學爲務 鄕里稱頌

    김종섭金鍾燮 : 자는 이숙. 호는 난곡. 본관은 경주이며 참판 효남의 후손이다. 공겸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예창 박성양과 간재 전우의 문중에 어울렸다. 문명이 세상에 떨쳤으며 유고가 있다. /字理淑 號蘭谷 慶州人 參判孝男后 恭謙好學 遊於芸窓朴性陽 艮齋田愚門 文名著世 有遺稿

    김태현金泰鉉 : 호는 서하. 본관은 광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경학과 문장으로써 김태사 상현과 소인산 휘만에게 중히 여겨졌다. 유고 11권이 있다. /號西荷 貫光山 恭安謙光后 以經學文章 爲金太史尙鉉 蘇仁山輝晩 所推重 有遺稿11卷

    김택두金澤斗 : 자는 윤엽. 호는 둔화. 본관은 김해이며 탁영공 일손의 후손이다. 재능이 비범하였으며 성행은 순후하였다. 시문을 잘했으며 후진을 가르치는 소임으로 알아 고을에 이름을 드러났다. /字允曄 號遯華 金海人 濯纓馹孫后 才慧過人 性行純厚 善於詩文 以敎育後生爲己任 著名鄕隣

    김혁장金赫璋 : 자는 봉주. 호는 세양. 진사를 지냈고 본관은 금산으로서 이조참의 입택 감지의 10세손이다. 재기가 탁월하여 일찍이 문장을 이루었다. /字奉周 號世養 進士 錦山人 吏議笠澤鑑之十世孫 才器卓越 早成文章

    박경상林絅相 : 호는 농교. 본관은 나주이며 몽촌 타의 8세손이다. 천성이 총명하고 국량이 바르고 명석하였다. 경전을 탐구하여 익혀 당세에 저명하였다. /號農嶠 貫羅州 夢村瑞八世孫 天分類慧 器宇雅亮 講究經傳 著聞當世

    박선수朴璇壽 : 호는 금강. 본관은 반남이며 문강공 치천 소의 10세손이다. 성리학을 토론하고 경전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였다. 유고 2권이 있다. /號錦江 貫潘南 文康治川紹十世孫 討論性理 博涉經史 有遺稿2券

    박영호朴永鎬 : 호는 이남당. 본관은 밀양이며 충정공 심문의 후손이다. 전병순에게도 배우고 임천에게도 배웠다. 문명이 세상에 떨쳤고, 많은 저술이 있다. /號이南堂 密陽人 忠貞審問后 私熟於田秉淳 讀書林泉 文名著世 多有著述

    박일태朴一泰 : 본관는 상주이며 정숙공 안신의 후손이고 필노의 아들이다. 성품이 순후하고 효로써 부모를 섬기며 우애로써 동생을 보살폈으며 궁한 친구 가난한 친족들의 어려움에 나서지 않은적이 없어 고을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貫尙州 貞肅安臣后 弼魯子 賦性淳厚 事親以孝 愛弟以友 且於窮交貧族 莫不周急 鄕黨欽仰

    박제숙朴齊肅 : 호는 취하. 본관은 반남이며 평도 은의 후손이다. 벼슬은 참봉을 지냈다. 어사 박정양이 쓴 추천장이 있는데 ‘집안에서 깊히 학문을 하였는데 세상이 탄복하여 모신다.’라고 했다. /號醉霞 貫潘南 平度은后 官參奉 御史朴定陽薦狀 有曰 家庭邃學 世推深服

    박필로朴弼魯 : 본관은 상주이며 정숙공 안신의 후손이다. 문장이 웅건하고 사부에 뛰어났다. 총죽시에 이르기를 수양에 사람떠난지 지금 몇해이련가, 직절은 분명히 여기에서 다시 보도다. /貫尙州 貞肅安臣后 文章雄健 最於詞賦 叢竹詩 首陽人去年今幾 直節分明此復看

    서달회徐達曾 : 자는 백함. 호는 송헌. 진사를 지냈고 본관은 이천으로서 절효 릉의 후손이다. 6세에 자치통감을 외웠으며 문장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字伯涵 號松軒 進士 利川人 節孝稜后 六歲誦資治通鑑 以文章鳴世

    서병기徐丙璣 : 호는 지초. 본관은 달성이며 충정공 영의 후손이다. 자질이 명석했으며 가훈을 이어 덕과 효우를 겸전하였다. 인을 행하고 의를 닦았으며 문사가 크고 넓었다. /號芝樵 貫達城 忠靖穎后 天姿明慧 克承庭訓 德兼孝友 行仁修義 文詞宏博

    서진승徐鎭升 : 자는 윤명. 호는 학고. 진사를 지냈고 본관은 이천으로서 절효 릉의 후손이며 달조의 조카이다. 16세에 문장을 이루었다. /字允命 號鶴皐 進士 利川人 節孝稜后 達曺姪 十六成文章

    서진익徐鎭益 : 자는 윤수. 호는 담곡. 본관은 이천으로서 절효 릉의 후손이며, 증호조참의 술회의 아들이다. 수직으로 통정대부가 내려졌다. 글재주 뛰어나 사람들에게 중히 여겨졌다. /字允受 號澹谷 利川人 節孝稜后 壽職通政 贈戶參述曾子 才華文詞 推重於人

    성낙기成樂基 : 호는 두봉. 본관은 창령이며 군자감 자헌대부 정의 7대손이다. 일찍이 송금곡 래희를 스승으로 모셨다. 효우가 돈독하였다. 경학으로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하니 사람들에게 흠앙하는 바였다. /號斗峰 貫昌寧 軍資監正自獻七代孫 早師宋錦谷來凞 敦孝友明 經學立綱正俗 人所欽仰

    성재규成載奎 : 호는 춘헌. 본관은 창령이며 장락원정 동곡 복흥의 8대손이다. 진사를 지냈다. 품성이 온아하며 가훈을 이어 몸을 단정히 지켰다. 다문박식하여 세상이 중히 여겼다. /號春軒 貫昌寧 進士 掌樂院正銅谷復與八代孫 天稟溫雅 克承庭訓 持身矜莊 多聞博識 爲世推重

    손병식孫炳植 : 자는 찬문. 호는 만초. 본관은 밀양이며 승문득교 도봉 홍속의 후손이고 정황의 아들이다. 재능이 비범하였고 박학다문하여 고을에 이름을 날렸다. /字贊文 號晩樵 密陽人 承文得敎道峯弘續后 正潢子 才器過人 博學多聞 鳴于鄕黨

    송석하宋錫夏 : 자는 원서. 호는 호광. 본관은 연안이며 판서 보산의 후손이다. 재능이 뛰어나고 덕행을 온전히 갖추었다. 경전과 역사에 두루 통달하니 세상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字元瑞 號湖狂 延安人 判書寶山后 才華發越 德行純備 博通經史 爲世推重

    송일량宋一樑 : 호는 성촌. 본관은 은진이며 참판 황재 덕송의 후손이다. 금곡 송래희의 문인으로서 지조가 바르고 박학하였다. 고을 인근에서 우러러보았다. /號星村 貫恩津 參判黃齋德宗后 宋錦谷來凞門人 雅操博學 鄕隣景仰

    안겸옥安謙沃 : 호는 사문. 본관은 순흥. 글이 아름답고 재능이 탁월하였다. 효우로써 본을 삼으니 당세에 우러름을 받았다. /號思文 貫順興 文華翹楚 才藝卓越 孝友爲本 爲時景仰

    오찬주吳贊周 : 본관은 함양. 이조판서 팽숙의 7대손이며 참봉 형의 현손이다. 재능과 덕이 뛰어나 18세에 시부를 잘하여 향시에 합격하였고 경전에 두루 통하였다. /咸陽人 吏判彭淑七代孫 參奉珩玄孫 才德出華 十八善於詩賦中鄕試 博通經傳

    유수柳燾 : 호는 유산. 본관은 문화. 정숙공 정현의 후손이다. 10세에 능히 사부를 지음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일찍이 홍매산 직필을 스승으로 섬겼다. 생원을 지냈고 벼슬이 동돈령에 이르렀다. /號柳山 貫文化 貞肅廷顯后 十歲能屬文以詞賦鳴世 旣而師事洪梅山直弼 生員官至同敦寧

    유재곤劉載坤 : 호는 백봉. 본관은 강릉이며 문희공 창의 후손이다.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학업을 닦았으며 재능이 출중하였다. 밭 갈고 독서함을 업으로 삼았으며 때를 알아 안빈낙도하였다. /號栢峰 貫江陵 文僖敞后 入孝出業 才藝出類 耕讀爲業 知機安分

    윤택순尹宅淳/자는 공숙. 호는 석하. 본관은 파평이며 좌참찬 월담의 후손이고 통정대부 중현의 아들이다. 재능이 뛰어났고 일찍이 문명을 얻어 사와 문장을 지었다. /字公淑 號石下 坡平人 左參贊月潭后 通政重鉉子 才慧超 早得文名 述詞章

    이계훈李系勳 : 본관은 합천이며 강양군 약의 후손이다. 매봉 한영식의 문인으로서 경전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였다. 글씨는 안진경체를 잘썼다. /貫陜川 江陽君若后 梅峰韓永湜門人 博涉經史 筆法摹顔眞卿體

    이병항李秉恒 : 호는 정은. 본관은 광주이며 의정 광목군 광배의 후손이다. 경전에 힘쓰고 문장을 쌓았다. 안빈낙도하였으며 후생을 가르치는 것에 힘썼다. /號靜隱 貫廣州 議政廣陸君光培后 구經績文 安貧樂道 以敎育後生爲務

    이승섭李承爕 : 본관이 전주이다. /全州人

    이영승李永昇 : 호는 매사. 본관은 합천이며 강양군 약의 후손이다. 8세에 능히 글을 지었다. 사와 부로 이름이 드러났다. /號梅史 貫陜川 江陽君若后 八歲能屬文 以詞賦著名于世

    이종면李鍾冕 : 호는 월재. 본관은 경주이며 영의정 연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늙어서까지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문장을 가지고 놀 정도였다. 자못 많은 저술을 하였다. /號月齋 慶州人 領相延孫后 自少至老 窮搜經傳 以娛文章 頗多著述

    임각진林珏鎭 : 호는 우당. 본관은 나주이며 몽촌 타의 6대손이다. 자질이 온아하며 가훈을 이어받아 경전과 예서를 잘 강하며 겸하여 효우가 모두 돈독하였다. 인을 행하고 덕을 닦음이 뭇사람들이 미치기 힘든 바였다. /號藕塘 貫羅州 夢村瑞六世孫 姿稟溫雅 克承庭訓 講明經禮兼敦孝友 行仁修德 人所難及

    임승수林升洙 : 호는 창교. 본관은 나주. 이조참의 몽촌 타의 7세손이다. 필법에 정통하였다. 족형 이조판서 긍수가 찬하여 말하기를, ‘연기와 구름이 날아오르고 풍우가 세차게 쏟아지는 듯 하다’ 라고 했다. /號蒼嶠 貫羅州 吏議夢村瑞七世孫 筆法有精 族兄吏判肯洙贊曰 烟雲飛騰 風雨驚落

    임양수林陽洙 : 자는 덕보. 호는 하남. 본관은 나주이며 부윤 귀래 향붕의 9세손이다. 학문에 힘써 글을 읽어 시와 부, 표와 책에 능했다. 이름을 당세에 떨쳤다. /字德甫 號可南 羅州人 府尹歸來亭鵬九世孫 力學勤讀 詩賦表策 鳴于當世

    임영수林榮洙 : 호는 우초. 본관은 나주이며 이조참의 몽촌 타의 7세손이다. 집안의 가르침을 이어 성리학의 정수에 이르렀다. 안빈수도하였으며 효우를 두루 행하였다. 필법으로써 세상에 저명하였다. /號雨蕉 貫羅州 吏議夢村瑞七世孫 克承庭訓 精詣性理 安貧修道 孝友博業 以筆法著世

    임원상林元相 : 호는 이락. 본관은 나주이며 백호 제의 9세손이다. 천품이 온아하며 효행과 우애가 남다르게 돈독하였다. 덕행을 근본으로 삼고 문장은 여사로 여겼다. /號二樂齋 貫羅州 白湖悌九世孫 天姿溫雅 孝友尤篤 德行爲本 文章餘事

    임처상林處相 : 호는 매우. 본관은 나주. 백호 제의 9세손이며 금곡 송래희의 문인이다. 예학을 잘 강하였으며 문장으로써 저명하였다. /號梅友 貫羅州 白湖悌九世孫 錦谷宋來凞門人 講明禮學 以文章著名

    임철한林澈漢 : 호는 병암. 본관은 나주. 백호 제의 8세손으로서 모와 호진의 아들이다. 시와 예의 가르침을 잇고 경전을 두루 섭렵했다. 문장과 글씨로 이름이 높았고 헌종 경자년에 식년시에 들어 진사를 지냈다. /號屛巖 貫羅州 白湖悌八世孫 慕窩濠鎭子 克承詩禮之訓 博涉經學 以文筆鳴世 憲宗庚子式進士

    전백규全伯奎 : 자는 문오. 호는 회사. 본관은 천안이며 문평공 도은 문식의 후손이고 대호군 극례의 12세손이다. 지혜와 덕행이 있어 세인으로부터 중히 여겨졌으며 다수의 문장을 저술하였다. /字文五 號晦沙 天安人 文乎都隱文軾后 大護軍克禮十二世孫 才慧德行 爲世推重 多述詞章

    전영직全永稷 : 자는 백신.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후손이며 문장 재규의 손자이다. 재능이 뛰어났고 가풍을 이어 과거공부에 통달하니 그 이름이 전도에 알려졌다. 유고가 있다. /字伯臣 天安人 葵庵繼宗后 文章載奎孫 才藝出衆 承襲家庭 透於功令之學 名聞一省 有遺稿

    전영학全永鶴 : 자는 찬명. 호는 청전. 본관은 천안이며 문평공 도은 문식의 후손이고 통정대부 용석의 아들이다. 천성이 빼어나게 영리하여 일찍이 문명을 얻었다. 시서에 두루 통달하여 문사에 주석을 달았다. /字贊明 號靑田 天安人 文平都隱文軾后 通政龍錫子 天姿穎悟 早得文名 博通詩書 吐詞成章

    전재규全載奎 : 자는 정서. 호는 만보재.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9대손이며 한풍의 종질이다. 7세에 고사를 외우고 15세에 문장을 이루었으며 유고 수십권이 있다. /字丁瑞 號晩保齋 天安人 葵庵繼宗九世孫 翰豊從侄 七歲誦古事 十五歲成文章 有遺稿數十卷

    전정규全定奎 : 자는 관국. 호는 동은. 문묘직을 지냈다. 본관은 천안이며 대호군 극례의 후손이다. 천품이 빼어나고 영리하였다. 들은 것은 반드시 기억하였으며 약관의 나이에 시서에 두루 통달하였다. /字觀國 號東隱 文廟直員 天安人 護軍克禮后 天姿穎悟 聞必捷記 年甫弱冠 博通詩書

    전태석全台錫 : 자는 응삼. 본관은 천안. 대호군 극례의 후손이며 재봉의 아들이다. 재예가 뛰어나 일찍이 문명을 날렸다. 경전을 섭렵하였다. /字應三 天安人 大護軍克禮后 載鳳子 才藝超過 早有文名 涉獵經傳

    전한풍全翰豊 : 자는 주언.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8세손이다. 자질이 영매하고 일찍이 문장을 당세에 이우었다. /字周彦 天安人 葵菴繼宗八世孫 才姿英邁 早成文章 遂當世

    정경상丁景相 : 호는 학사. 본관은 의성이며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겨우 7, 8세에 능히 문자를 알았다. 집안의 가르침을 실추하지 않았으며 학업에 힘써 성취하였다. 성품은 어질고 행위는 독실하여 중절이 아님이 없었다. /號鶴史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年纔七八 能解文字 不墮庭訓 工業成就 性仁行篤 無不中節

    정기상丁箕相 : 호는 괴하. 본관은 의성이며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성품이 소박하고 어질며 효성이 있었다. 지성으로 부모를 섬기고 문중간에 화목하였으며 선조의 가르침을 지키고 경사에 밝아 사림의 경앙하였다. 경신년에 회혼을 맞았다. /號槐下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性素仁孝 事親至誠 和睦宗族 守成先訓 博學經史 士林景仰 庚申回근

    정사일鄭仕一 : 호는 백운거사. 본관은 경주. 대제학 노송정 지년의 후손이다. 일찍이 필명을 얻어 사람들의 이목을 놀라게 하였다. 과장에 출입하면 성가가 전도(全道)에 진동하였다. /號白雲居士 慶州人 大提學老松亭知年后 早得筆名 驚人耳目 出入科場 聲振一省

    정상호鄭尙鎬 : 호는 하은. 본관은 경주이며 충렬공 인조의 후손이다. 성품이 굳세고 마음 씀씀이는 실답게 바르며 효도와 우애에 돈독하였다. 경전과 역사의 정수를 깨쳤다. /號苛隱 貫慶州 忠烈仁祚后 受品剛毅 用心實雅 篤行孝友 治精經史

    정용섭丁鏞燮 : 호는 송교. 본관은 창원으로써 유헌공 황의 후손이고 곤현의 손자이며 호군 좌남의 아들이다. 매산 홍직필의 문인으로서 소인산 휘만을 따라 교유하였다. 유고가 있다. /號松嶠 貫昌原 遊軒황后坤玄孫 護軍左南子 梅山洪直弼門人 與蘇仁山輝晩從遊 有遺稿

    정익상丁翊相 : 호는 우당. 본관은 의성이며 이조판서 현의 후손이다. 천자가 단아했으며 오로지 학업에 정진하여 일찍이 이루었다. 문장이 빛남으로 당세의 사우들이 감복하여 우러러보았다. /號愚堂 貫義城 吏判炫后 天姿端雅 專精學業 早就成功 文藻彬彬 當世士友 咸服推重

    정익상丁翼相 : 호는 죽현.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며 한풍의 아들이다. 고체를 많이 썼는데 정치한 경지에 이르렀다. 필력이 마치 구름이 피어오르고 돌이 굴러내리는듯한 형세를 이룬다. /號竹賢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漢豊子 多倣古體 入于精微 有陣雲 墜石之勢

    정익상丁翼相 : 호는 죽현. 본관은 의성이며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품성이 순후하고 기질은 청아했다. 집안에서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을 궁구하였다. 효우를 돈독히 행하였으며 문장과 필법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號竹賢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稟性純厚 氣字淸雅 受學門庭 窮搜性理 敦行孝友 文藻筆法著于世

    정치상丁治相 : 호는 성운. 본관은 의성이며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타고난 자질이 고명하였으며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 일찍이 가업을 이어받아 삼가 힘쓰며 친족에게 돈독하고 화목하니 향린에서 흠모하였다. /號聲雲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天質高明 不求聞達 早襲家庭 勤愼先業 敦睦宗族 鄕隣欽慕

    정한권丁漢權 : 호는 송해. 본관은 의성이며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천성이 반듯하고 품성이 인순하였다. 성효로 조상을 받들고 시와 예를 가풍으로 전했다. 쓸쓸한 산림에서 날마다 학문만 공부하니 고을사람들이 칭찬하였다. /號宋海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天姿牢確 稟性仁純 誠孝奉先 詩禮傳家 晦跡山林 日進學業 鄕黨稱譽

    정현상丁賢相 : 호는 학전. 본관은 의성이며 좌찬성 금손의 후손이다. 천품이 호방하였으며 기개가 청고하였다. 성효에 극진하며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였다. 문중이 믿고 따랐으며 사림에서 흠모하였다. 무오년에 회혼을 맞았다. /號鶴田 貫義城 左贊成今孫后 天姿英豪 志槪靑高 克盡誠孝 專精學問 宗族賴仰 士林欽慕 戊午回근

    채경묵蔡敬黙 : 호는 의재. 본관은 평강. 나면서 뛰어난 자질이 있었다. 필력이 소를 돌리는 힘이 있어 경향간에 소문이 높았고 이름은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號義齋 平康人 天生英姿 筆力回牛 聲聞京鄕 名顯異代

    한영수韓榮洙 : 호는 초성. 본관은 청주이며 양절 확의 후손이다. 천품이 탁월하며 일찍이 학업을 이루었다. 양친에게 효도하며 여러 동생들에게 돈독한 우애가 있었다. 예절바르게 향리에서 처신하니 사림들이 우러러보았다. /號楚醒 貫淸州 襄節確后 天姿卓越 早成學業 孝齋兩親 友篤諸弟 禮習鄕飮 士林欽仰

    한영식韓永湜 : 호는 매봉. 본관은 청주. 20세에 문장을 이루었다. 제주 송환기에게 수학하였으며 헌종 때 생원을 지냈다. 주상께서 어찬과 책과 비단을 내리고 또 오위장을 명하셨다. /號梅峰 貫淸州 二十成文章 受學於祭酒宋煥箕 憲宗朝生員 上賜御餐玉圈緋布 又命五衛將

    한영호韓永浩 : 본관은 청주. 양절 확의 후손이다. 70세에 형 영식의 시권을 썼는데 2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貫淸州 襄節確后 七十寫兄永湜試券 中二等 生員入格

    한철수韓澈洙 : 호는 용연. 본관은 청주이며 색암 정유의 7대손이다. 품성이 순후하며 언행이 신중하였다. 집안에서 학문을 익혔고 고을에서 중히 여겼다. /號龍淵 貫淸州 索菴挺愈七代孫 禀性純厚 言行愼重 學源家庭 望重鄕隣

    허강許鋼 : 호는 학포. 관은 하양이며 간숙공 주의 후손이다. 참봉을 지냈다. 성질은 단아했고 재능은 사람들을 능가했다. 국량이 탁이하여 칭찬하는 소리가 자못 컸다. /號學圃 貫河陽 簡肅周后 參奉 性質端雅 才藝過人 器宇卓異 聲譽頗重

    허엽許엽 : 호는 금파. 본관은 하양이며 간숙공 주의 후손이다. 경전을 돈독히 익히되 문사의 화려함을 도모하지 아니하였다. 지조가 바르고 담박하였으며 분수에 그칠 줄 알아 사림이 흠앙하였다. /號錦坡 貫河陽 簡肅周后 篤業經傳 不謀華藻 雅操恬澹 知止有定 士林欽仰

    허형許炯 : 호는 금호. 본관은 하양이며 자헌대부 간숙공 주의 후손이다. 송금곡 래희의 문인으로서 학문은 성리학을 깨쳤고, 공부는 실질을 숭상하고 실천하였다. 금소에 노닐면서 그곳에 ‘일범대’라는 글을 새겼다. /號錦湖 貫河陽 資憲簡肅周后 宋錦谷來凞門人 學得性理 工踐其實 逍遙錦沼 銘其處曰一帆臺

    황운룡黃雲龍 : 자는 용오. 호는 만취. 참봉을 지냈다. 본관은 장수이며 방촌 희의 후손이고 교관 요의 아들이다. 조숙재의 문하에 들어 시와 부, 논, 책에 능하고 그 정수를 얻지 아니함이 없었다. 유고로 많은 저술이 있다. /字龍五 號晩翠 參奉 長水人 방村喜后 敎官橈子 執贄于趙肅齋門 詩賦論策 無不得精 多著遺稿

    황태현黃泰顯 : 호는 학대. 본관은 장수. 천성이 인순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며 친족에게 도탑게 하였다. 배우고 실천하며 제가에 법도가 있으니 원근의 선비들이 방문하여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유고가 있다. /號鶴臺 貫長水 天性仁純 孝親敦族 學踐實地 齊家有方 遠近士友 莫不欽仰 有遺稿

    황헌모黃憲模 : 호는 난포. 본관은 장수이며 방촌공 희의 후손으로서 송금곡 래희의 문인이었다. 배우고 사귀는 것이 현저하여 유림의 중히 여김을 받았다. 효성이 탁월하여 사림에서 천장하였다. 유고가 있다. /號蘭圃 貫長水 방村喜后 宋錦谷來凞門人 學交顯著 斯文推重 孝誠卓越 士林褒薦 有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