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지高尙志 : [진안현감] 선정을 되새긴다. /追思善政

    고여경高餘慶 : 고려때 벼슬이 삼중대부에 이르렀다. /官至三重大夫

    고천백高天伯 : 고려때 벼슬이 판서와 3재상에 이르렀다. /官至判三宰

    구장재具章宰 : 본관은 능주. 성담 환기의 문인이었다. : 綾州人 性潭宋煥箕門人

    김기金機 : 자는 미숙. 호는 유산처사. 본관은 사천. 병조판서 만서의 아들이며 점필재 김종직이 스승이다. 성종 때 부름을 받았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문도가 수백인에 이르렀다. /字微叔 號乳山處士 泗川人 兵判晩緖子 師佔畢齋金宗直 成宗朝 徵之不赴 有門徒數百人

    김기복金箕福 : 호는 회천. 본관은 광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효도와 학문을 겸전하였다. 주회옹의 무이고사를 앙모하여 금곡 송래희에게 글을 받아 돌에 새겨 구곡을 표시하였다. /號晦川 貫光山 恭安謙光后 孝兼道學 仰慕朱晦翁 武夷故事 受錦谷宋來凞書而刻于石 以表九曲

    김기열金箕烈 : 자는 성중. 호는 용호. 본관은 광산. 공안 겸광의 후손이다. 바탕이 뛰어났다. 일찍이 홍매산 직필에게 사사하였는데 금곡 송래희와도 어울리면서 시와 예의의 가르침을 받았다. /字性中 號龍湖 貫光山 恭安謙光后 姿禀類悟 早師洪梅山直弼 與錦谷宋來凞從遊 兼受詩禮之訓

    김성영金聖英 : 호는 소강. 본관은 낙안. 양혜 윤길의 후손이다. 품성과 문장이 탁이하며 품행이 정직했다. 학업에 진실하였고 효우로써 집안을 다스리니, 세상의 모범이 되었다. /號小崗 貫樂安 襄惠贇吉后 天姿卓異 言行正直 學業純眞 孝友齊家 爲世模範

    김원현金元鉉 : 자는 원향. 호는 성재. 본관은 광산으로써 광은군 경헌 진구의 5세손이며 기노사 정진의 문인이다. 재덕이 출중하고 정성과 겸손으로 실행하였다. /字元享 號誠齋 光山人 光恩君景憲鎭龜五世孫 奇蘆沙正鎭門人 才德出類 誠敬爲行

    김응섭金應燮 : 호는 국헌. 본관은 낙안. 송성담 환기의 문인이다. 재질과 행동이 탁이했으며 그 공부함에 싫증냄이 없었다. 배우고 실천함에 참되었고 효행과 우애도 돈독하여 고을의 공경받는 바 되었다. /號菊軒 貫樂安 竹崗贇吉后 宋性潭煥箕門人 卓異才行 其進無斁 學踐實地 兼敦孝友 一鄕所欽

    류경창柳景昌 : 석경의 아들이다. 관직이 신창현감에 이르렀다. /碩卿子也 官至新昌縣監

    류석경柳碩卿 : 自誠의 아들이다. 관직이 장성현감에 이르렀다. /自誠子也 官長城縣監

    류원지柳元之 : [진안현감] 효로써 백성을 대하며 청덕으로 많은 백성을 감화시켜 고을백성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以孝臨民 民多感化 淸德爲政 民無能名

    류자성柳自誠 : 관직이 은진현감에 이르렀다. /官至恩津縣監

    박서朴瑞 : 자는 성응. 호는 만곡. 본관은 밀양. 김후재 제한의 문인이다. 동유례휘, 상례상변, 홍범행의 고금성현총론 등 삼십여권의 저술이 있다. /字聖應 號晩谷 密陽人 金厚齋齊榦門人 有東儒禮彙 喪禮常變 洪範行義 古今聖賢總論等 三十餘卷

    성경주 : 호는 성재. 본관은 창령. 문과로 군수를 지내다가 단종에게 충의를 바친 계종의 10대손으로서 효행하고 우애가 있었으며 몸가짐을 단정히 하였다. 시와 예를 집안에 전수하고, 고요히 거하며 수덕하니 세칭 진정군자라 하였다. /號誠齋 貫昌寧 文郡守魯陵忠義臣 繼宗十代孫 孝友整己 詩禮傳家 靜居修德 世稱眞正君子

    성석범成錫範 : 호는 강재. 본관은 창령. 문관 이조참의 지도의 11대손이다. 가훈을 잘 이어받아 효우하고 화목하며, 박학하여 경전에 통달하여 향리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8선생의 연원이라 했다. /號剛齋 貫昌寧 文吏議志道十一代孫 克承庭訓 孝友睦인 博通經學 鄕黨咸稱八先生淵源云

    성세원成世源 : 호는 졸우당. 본관은 창령. 문과 이조판서 창산군 구수의 11대손이다. 학문에 연원이 있고, 예경을 전문으로 공부하였다. 문하생의 공부가 나아지면 어느 한가지 학문을 전수하지 않음이 없으니 사람들이 존경하였다. /號拙愚堂 貫昌寧 文吏判昌山君龜壽十一代孫 學有淵源 工專經禮 門生稍進 無不受一藝 爲世推重

    성은명成殷命 : 호는 동계. 본관은 창령. 독곡 석린의 12대 손으로 일찍이 예제를 이루고 지선에 이르렀으며 학행이 뛰어나 세간에서는 처사라 불렀다. 군과 도에서도 숭배하여 여러번 사당을 짓도록 천장을 올렸다. /號銅溪 貫昌寧 獨谷石璘十二代孫 早事成制 安齋至善 學行著世 世稱處士 郡道仰之 累發建祠通狀

    성인묵成仁黙 : 호는 경재. 본관은 창령. 참찬 영번의 9대손으로서 학문에는 연원이 있으니 송성담 환기의 문하에서 배웠다. 효행은 시중선생의 연원에 부끄러움이 없어 세상에서는 효와 학문을 겸비하였다고 일컬었다. 세상에서 이르되 효와 학문을 겸비하였다 했다. /號敬齋 貫昌寧 參贊永蕃九代孫 學源有自 宋性潭煥箕門 孝行無愧於侍中先生之源 世稱孝學兼全

    송림宋琳 : 본관은 연안. 퇴휴재 판서 보산의 후손이며 적순부위 유경의 손자로서, 일재 이항의 문인이었다. 박학하고 예전을 즐겨 읽었으며 효우를 겸전하였다. 사적이 강헌록에 실려 있다. /參奉 延安人 退休齋判書寶山后 적順副尉裕景孫 一齋李恒門人 博學好禮 孝友兼全 事載網獻錄

    송희렴宋希濂 : 자는 급호. 호는 묵헌. 본관은 연안으로써 퇴휴재 판서 보산의 후손이며 도정 석로의 아들이다. 연재 송병선의 문인이다. 천성이 어질고 학문이 박학하고도 정확했다. /字及호 號黙軒 延安人 退休齋判書寶山后 都正錫魯子 淵齋宋秉璿門人 賦性寬 弘文質精粹

    신담申湛 : 본관은 고령. 문과로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高靈人 文科官至吏叅

    안봉택安鳳宅 : 호는 현암. 본관은 죽산. 회헌 유의 후손이다. 국량이 탁이하고 문사가 크고 넓었다. 효행과 우애를 가문에 전했으며 고요히 살며 덕을 닦으니 사림에서 칭송하였다. /號硯菴 貫竹山 晦軒裕后 器宇卓異 文詞宏博 孝友傳家 靜居修德 士林稱頌

    안지기安之箕 : 호는 경은. 본관은 죽산. 문성공 회헌 유의 후손이다. 덕을 닦고 의를 행하되 이름을 구하지 않았다. 산에 가서 나무하고 물에 가서 고기잡는 것으로 안빈낙도하였다. 시와 더불어 기문들이 있다. /號耕隱 貫竹山 文成晦軒裕后 修德行義 不求名聲 山樵水漁 消遣世味 有詩與記文

    양하룡梁夏龍 : 호는 만휴당. 본관은 남원. 문학에 조예가 많고 지조가 고상하였다. 양송재 진, 덕형 최양, 무재 소선과 더불어 세간에서는 죽계사현이라 불렀다. /號晩休堂 南原人 文學贍富 志操高尙 與梁松齋陳 德泂崔養 黙齋素善 世稱竹溪四賢

    오정한吳廷漢 : 자는 국헌. 호는 금헌. 본관은 함양으로써 이조판서 팽숙의 후손이다. 실질을 숭상하고 학문을 좋아했으며 효우가 뛰어났다. 송금곡 내희에게 배웠으며 늘 경전을 공부하였는데 늙어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字國憲 號錦軒 咸陽人 吏判彭淑后 實厚好學 孝友卓異 師事宋錦谷來凞 潛究經傳 老不倦

    윤식尹寔 : [진안현감] 정사를 함에 두루 밝아 향리와 백성이 모두 편했다. /爲政循良 吏民俱便

    이거李거/본관은 전주. 고려때 문부사관(文府使官)이었다가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全州人高麗文府使官至平章事

    이공익李公益 : [진안현감] 은혜와 위엄을 갖추었다. /恩威竝行

    이교李校 : 본관은 진안. 고려 때 보문각 직제학이었다가 홍무(洪武) 때 귀양옴으로써 이 고을의 문적에 올랐다. /鎭安人 高麗 寶文閣直提學 洪武謫來仍籍

    이기회李起晦 : 자는 용담. 호는 불류재. 본관은 전주로써 금헌 대윤의 후손이다. 어려서 기노사 정진에게 배웠으며 뒤에는 송연재 병선에게 수학하였다. 학행으로 이름나고 쓴 글이 집안에 가득하다. /字用담 號不流齋 全州人 琴軒大胤后 早學奇蘆沙正鎭 終師宋淵齋秉璿 學行著世 文稿蒲家

    이달손李達孫 : 정통시인으로 안악훈도를 지냈다. /正統時人 安岳訓導

    이도복李道復 : 자는 양래. 호는 후산. 본관은 성주로써 흥안군 제의 후손이다. 송연재 병선, 최면암 익현을 스승으로 하고, 동사를 저슬하였고, 쓴 글은 수만에 이른다.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字陽來 號厚山 星州人 興安君濟后 師宋淵齋秉璿 崔勉菴益鉉 著東史 有文稿數萬言 徵參奉辭不就

    이상진李尙眞 : 본관은 전의. 호는 만암. 문과로 우의정에 이르렀다. /全義人 號晩菴 文科 官至右相

    이상진李尙眞 : 순치 을유 과거에 올라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順治乙酉登第 官至右議政

    이식李軾 : 본관은 전주. 판서 윤보의 아들이며 문과로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全州人 判書玧寶子 文科官至禮判

    이연붕李廷鵬 : 호는 오암. 본관은 전주. 평만 헌의 아들로서 도암 이재의 문인이었다. /號五巖 全州人 平萬櫶子 陶庵李縡門人

    이영준李英俊 : 달손의 아들이다. 홍치 신유년에 생원이 되었고 정덕 정묘년에 과거에 들어 관직이 군기사 부정에 이르렀다. /達孫子也 弘治辛酉生員 正德丁卯登第 官至軍器寺副正

    이우성李羽成 : [진안현감] 강직, 명료, 공정하여 향리와 백성들 모두 감히 속이지 못했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죽으니 관과 읍인이 모두 추모하였다. /剛明公正 吏民不敢欺 詒未幾卒于官邑人追思

    이유의李由義 : 벼슬이 제주목사에 이르렀다. /官至濟州牧使

    이유인李裕仁 : [진안현감] 재임한지 200년이 지났으나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年過二百至今追思

    이의징李義徵 : [진안현감] 향리들은 두려워 하고 백성은 평안했다. /吏畏民安

    이인현李仁賢 : 본관은 진안. 영준의 아들이다. 가정 임오년에 사마 양시에 들어 을유년 문과로 관직이 사성에 이르렀으나 늙었음을 고하고 귀향하였다. 호는 쌍첨당이며 영계서원에 향사되어 있다. /英俊子也 嘉靖壬午捷司馬兩試 乙酉擢文科官至司成 告老歸鄕 號雙尖堂 享靈溪書院

    이정신李正身 : [진안현감] 소탈하면서 백성들과 가까웠다. /平易近民

    이진보李珍寶 : 본관은 전주. 평장사 이거의 아들이며 문과로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全州人 平章事거子 文科官至禮判

    이파李葩 : 본관은 경주. 진사를 지냈고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다. /進士 慶州人 退溪李滉門人

    이팽수李彭穗 :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다. /官至縣監

    이항李杭 : [진안현감] 바른말만 듣는다. /以理最聞

    이헌李櫶 : 호는 평만. 본관은 전주. 수암 권상하의 문인이었다. /號平灣 全州人 遂菴權尙夏門人

    이현만李顯萬 : 자는 군담. 호는 송암. 본관은 전의. 충경공 정만의 8세손이며 송성담 환기의 문인이다. 청렴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어질고 효행이 독실하고 도를 듣기 좋아했다.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字君瞻 號松菴 全義人 忠景廷鸞八世孫 宋性潭煥箕門人 淸廉好學 仁孝篤行 道使聞 朝累徵不起

    임경진林慶鎭 : 자는 선여. 본관은 나주. 이조참의 몽촌 타의 6세손이다. 예절을 숭상하고 학문이 높았는데 작심하고 깊이 은거하였다. 효행과 우애, 학문과 행실로 고을사람들에게 이름이 높았다. /字善汝 貫羅州 吏議夢村瑞六世孫 尙節篤學 永矢考槃 孝友文行 著聞鄕黨

    임기원林起遠 : 호는 관운. 본관은 나주. 예조정랑 백호 제의 6세손이다. 가훈을 잘 이어받아 성리학과 문학에 정통하고, 조신을 잘하여 호남의 좌유라 했다. 집안에 유고가 보관되어 있다. /號管雲 貫羅州 禮曺正郞白湖悌六世孫 克承庭訓 精通性理文學 行儉 爲湖左儒 家有遺稿

    임두진林斗鎭 : 본관은 나주. 이조참의 몽촌 타의 6세손이다. 품성과 자품이 탁이하였고 집안에서 수업하였지만 학식이 고명하고 효우가 돈독하였다. 덕을 닦고 인을 행하니 세상의 추앙하는 바 되었다. /貫羅州 吏議夢村瑞六世孫 姿品卓異 受業門庭 學識高明 兼敦孝友 修德行仁 爲世所推

    임득하林得河 : 자는 성절. 본관은 나주. 백호제의 7세손이다. 집안에서 수학하였고 경전공부에 뜻을 두었으며, 효우는 항상 모자람을 걱정하고 문장은 여벌의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동정간에 듬직하여 고을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字聖節 貫羅州 白湖悌七世孫 受學門庭 立志經傳 孝友常患不足 文章惟屬餘事 動靜言黙 鄕黨咸稱

    임영林泳 : 호는 창계. 본관은 나주. 이조참의 몽촌 타의 손자이다. 죽음 조희일의 문인으로서 벼슬이 부제학 대사헌에 이르렀다. 문장과 도덕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나주 회강 및 함평 수산서원에 향사되었다. 문집 14권이 있다. /號滄溪 羅州人 吏議夢村瑞孫 竹陰趙希逸門人 官副提學大司憲 文章道德著世 享羅州會江及咸平水山書院 有文集14卷

    임유직林有稷 : 호는 회천. 본관은 나주. 이조참의 서의 현손이다. 문장과 덕행이 당세에 두드러졌다. 관찰의 훈령으로 산골 7군의 도훈장이 되어 위정척사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號晦川 貫羅州 吏議瑞玄孫 文章德行 顯于當世 自巡營依 關飾爲山郡七邑都訓長 衛正斥邪爲己任

    임항진林恒鎭 : 호는 농은. 본관은 나주. 백호 제의 7세손이다. 일찍이 송성담 환기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경학에 박통하여 사우들이 중히 여겼다. /號農隱 貫羅州 白湖悌七世孫 早詣于宋性潭煥箕之門 博通經學 爲士友推重

    임호진林濠鎭 : 호는 모와. 본관은 나주. 백호 제의 7세손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도를 즐기며 일에 임하여는 결단력이 있다. 후진을 가르치기 위해 흥학에 소임을 다하였다. 송금곡 래희가 서를 쓴 유고가 있다. /號慕窩 貫羅州 白湖悌七世孫 好學樂道 臨事勇斷 以養士興學爲己任 有遺稿宋錦谷來凞序

    임후원林後遠 : 호는 한남. 본관은 나주. 이조참의 몽촌 타의 5세손이다. 경학에 전념하고 효행과 우애가 돈독하였다. 굳세며 정직하였고, 일을 처리함에는 꼼꼼하였다. /號漢南 貫羅州 吏議夢村瑞五世孫 潛心經學 孝友純篤 剛毅正直 臨事詳密

    전계종全繼宗) : 호는 규암. 본관은 천안. 문평공 문식의 후손이며 호조판서 극례의 현손으로서 문과로 시강원습독 한성판윤을 지냈다. 문장과 학문으로 세상의 사표가 되었다. 영계서원에 향사되어 있다. /號蔡菴 文科侍講院習讀 漢城判尹 天安人 文平文軾后戶判克禮玄孫 文章道學 爲世師表 享靈溪書院

    전극례全克禮 : 본관은 천안. 문평공 도은 문식의 조손으로 문과로 대호군과 호조판서를 지냈다. /天安人 文平都隱文軾曺孫 文科大護軍戶判

    전동흘全東屹/본관은 천안. 무과로 통상에서 훈련대장에 이르렀다. /天安人 武科 統相官至訓將

    전두全斗 : 현감이었다. /縣監

    전상채全尙采 : 자는 사광. 호는 해월당.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7대손이며 송성담 환기의 문인이다. 온고지신하고 성리에 밝았다. 사적이 오륜록에 실려있다. /字士光 號梅月堂 天安人 葵菴繼宗七代孫 宋性潭煥箕門人 蘊古知新 玩好性理 事載五倫錄

    전세규田世圭 : 호는 연재. 본관은 담양이다. /號연齋 潭陽人

    전자온全自溫 : 문과에 들어 만호가 되었다. /文科萬戶

    정각丁珏 : 호는 교산. 본관은 의성. 참찬 영손의 후손이다. 일찍이 금곡 송래희를 스승으로 모셨다. 천성이 고명하고 학업에 확고히 정진하니 선생이 교산이라는 호를 내렸다. 효와 우애를 실행함이 세상에 두드러졌다. /號喬山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早師錦谷宋來凞 天質高明 學業精確 先生賜號喬山 孝友實行卓于世

    정남추丁南樞 : 호는 호좌.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성리학에 돈독하니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았다. 후학에는 성백원등이 있으며 사당을 세우자는 의론이 많았으나 이루지 못했다. 증직으로 승지를 받았으며 유고가 있다. /號湖左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篤意性理 多士聚學 後學成百源等 主論立祠而未完 贈承旨 有遺稿

    정몽량丁夢良 : 호는 삼엽당.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송낙천 명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천자가 단정하고 의젓하며 국량이 크고 활달하고, 학문은 안염과 견주고, 효성은 회민과 닮았다. /號三葉堂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受業於宋櫟泉明欽門 天姿端儼 器宇宏達 學希顔염 孝若會閔

    정몽상丁夢相 : 호는 초암.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가훈을 능히 이어받아 학문하는 곳에만 어울렸으며, 효제는 온몸으로 실천하고, 매사에 정성과 겸손으로 임하고, 그 말하는 바와 마음 씀씀이의 올바름과 신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쳤다. /號肖巖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克紹庭訓 從遊學門 孝悌爲己 事誠敬 爲心法所言 是正信義及人

    정윤하丁潤夏 : 호는 정재.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학문에 연원이 있고, 그른 말을 옮기지 않으며, 벗을 사귐에 신의가 있고, 가난해도 부귀를 좇지 않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은 사랑하였다. 유고가 있다. /號靜齋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學有淵源 不趨邪說 事親以孝 交友以義 安貧不華 律己愛人 有遺稿

    정재효丁載孝 : 호는 졸헌.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송성담 환기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학업이 정심하며 문장이 박람하여 동문들이 중히 여겼다. 선생문인록에 이름이 실려있다. /號拙軒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受業宋性潭煥箕之門 學業精深 文章博洽 同門推重 名載先生門人錄

    정찬성丁纘成 : 호는 성고재. 본관은 의성. 좌찬성 영손의 후손이다. 천생이 총명하여 생각이 깊었으며 문사와 문예가 두루 넓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하매 3년을 여묘하며 주례를 좇으니 사림들이 칭송하였다. /號聲瞽齋 貫義城 左贊成令孫后 生而穎悟 藻思深遠 詞藝宏博 居廬三載 一遵朱禮 士林稱頌

    정치鄭治 : [진안현감] 인으로써 선정을 하고 백성을 구휼했다. /仁而善賑

    최제학崔濟學 : 본관은 탐진으로써 면암 최익현의 문인이다. /耽津人 勉菴崔益鉉門人

    한두유韓斗愈 : [진안현감] 학문을 일으키고 폐단을 혁파하였으며 송사에 막힘이 없었다. /興學革弊 決訟如流

    한석중韓錫中 : 호는 회음. 본관은 청주이다. 양절 확의 후손이다. 천성이 돈후하고 인을 행하며 의를 실천하였다. 향리에 있는 삼천서원을 거듭 중수하고 향약을 만들었다. 선현을 숭모하고 풍속을 바루는 행실을 세상에서 흠앙하였다. /號梅陰 貫淸州 襄節確后 天性敦厚 行仁踐義 重繕三川院宇自鄕里 創設鄕約 慕賢正俗世所欽仰

    한성근韓性根 : 본관은 청주. 집안에서 수업하였다. 어진 이들을 따라 어울렸으며 경학에 밝았고,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貫淸州 受業家庭 從遊賢哲 明於經學 不倦於敎

    한수관韓壽寬 : 호는 양성재. 본관은 청주. 양절 확의 후손이다. 송금곡 래희의 문하에서 유학하니 선생이 손수 재호를 써주며 말하기를 학문의 뿌리가 남당 한선생에서 비롯됨이 확고하다 하였다. /號養性齋 貫淸州 襄節確后 從遊宋錦谷來凞之門 先生手書齋號而贊曰 學門淵源 確乎南塘韓先生

    한수구韓壽龜 : 본관은 청주. 양절 확의 후손이며 진사 수후의 아들이다. 송성담 환기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경전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였다. 인의로 실천하여 선생문인록에 이름이 실렸다. /貫淸州 襄節確后 進士水厚子 受業于宋性潭煥箕之門 博涉經史 行踐仁義 名載先生門人錄

    한수기韓壽기 : 본관은 청주. 연유의 5대손이다. 타고난 품성이 탁이하고 문장과 학행이 당세에 이름을 떨쳤다. 향리에서 중하게 모시니 문하생이 많이 모여들었다. /貫淸州 挻愈五代孫 天姿卓異 學行文章 著于當世 鄕里推重 門生輻湊

    한정유韓挺愈 : 자는 수부. 호는 권암. 본관은 청주이다. 양절 확의 후손으로 학행이 고명했다. 동춘 송준길밑에서 종유하였는데 신해년 선생이 주회옹의 강함사를 손수 써서 주기까지 하였다. 字秀夫 號권庵 貫淸州 襄節確后 學行高明 與同春宋浚吉從遊 辛亥先生手書朱晦翁江檻詞 以與之

    한정호韓鼎鎬 : 호는 근와. 본관은 청주. 일찍이 송낙천 명흠에게 배웠다. 수종재 송달수가 찬하여 말하기를 곤륜산의 옥 같고, 세속을 떨친 학 같고, 한가로이 있으면 훈풍이 일고, 담론을 하면 논리가 추상같았다한다. /號槿窩 貫淸州 早師宋역泉明欽 守宗齋宋達洙 有撰曰 崑山之玉 出塵之鶴 閒居惠風 談論秋霜

    한태영韓泰榮 : 호는 남강. 본관은 청주. 양절 확의 후손이며 색암 연유의 7대 손이다. 금곡 송래희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배우고 행함이 참되었으며 그 이웃에 덕을 베풀어 사림들이 중히 여겼다. /號南崗 貫淸州 襄節確后 索菴挺愈七代孫 受業于宋錦谷來凞之門 學踐實地 德有其隣 斯文推重

    한필성韓弼聖 : 강희연간 과거에 올라 현감에 이르렀고 후학을 가르쳐 문재를 떨쳐 일으켰다. /康熙登第 官至縣監 勸進後學文才振起

    한필화韓必和 : 호는 백운헌. 본관은 청주.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었다. /號白雲軒 淸州人 尤菴宋時烈門人

    허근許墐 : 호는 졸부. 본관은 하양. 자헌대부 간숙공 주의 후손이다. 천성이 총명하며 기상이 크고 훌륭하였다. 효행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언행이 정직하였다. 안빈하며 학문을 좋아하여 세상의 추앙하는 바가 되었다. /號拙夫 貫河陽 資憲簡肅周后 生而穎悟 氣象魁偉 敦行孝友 言行正直 安貧好學 爲世所推

    허렴許濂/본관은 하양. 금곡 송래희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성리의 도를 깨우쳤으나, 농사짓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許濂/貫河陽 受業錦谷宋來凞門 學得性理 樂道견畝

    허이찬許以讚 : 호는 낙재. 본관은 하양. 자헌대부 간숙공 주의 후손이다. 안자리에 살며 성리학을 공부하며 안빈낙도하였다. 현령 홍석과 같이 삼천서원을 창건하였다. /號樂齋 貫河陽 資憲大夫簡肅周后 居顔子里 學究性理 安貧樂道 縣令洪錫同時 創建三川書院

    홍상징洪商徵 : 자는 여읍. 호는 적학재. 본관은 남양으로써 문정공 정언의 후손이다. 학행이 뛰어나 세간의 존경을 받았다. 유림에서 도로 천장과 또 72문인록에 기록이 있다. /字汝揖 號績學齋 南陽人 文正彦博后 學行卓異 爲世推重 有儒林道啓又有七十二門人錄 有文稿

    황우중黃遇中 : 호는 만휴당. 본관은 장수. 타고난 모습이 영매하고, 정성스레 효제하며, 학문이 깊고 행실이 도탑고, 바른 풍속과 기강을 세우고, 예서를 명쾌하니 익히니, 사림들이 지극히 존중하였다. /號晩休堂 貫長水 방村翼成喜后 天姿英邁 誠根孝悌 學邃行篤 正風立綱 講明禮說 士林推重

    황익문黃益文 : 호는 우석. 본관은 장수. 방촌 희의 10세손이다. 재주와 덕을 겸비하였으며 언행이 순정하고 효제하였으며 청렴, 검소하였으며 마음을 학문과 도학에만 집중하니 모든 사람이 공경하며 탄복하였다. /號愚石 貫長水 방村喜十世孫 才德兼備 言行純正孝悌 爲己任淸儉 爲心法好學樂道 人皆敬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