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씨康氏 : 본관은 신천. 죽산인 안봉학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수년 동안 병을 앓았는데 백약이 무효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며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3일을 연명하였으나 죽고 말았다. 시부모를 모시며 몸과 마음을 잘 받들었다. 유림에서 군과 도에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信川 竹山安鳳學妻 其夫 有疾累年 百藥無效 幾至殞絶 築壇禱天 裂指注血 回甦3日 而終 且事舅姑 專以養志 體爲已務 儒林薦揚于郡道

    강씨姜氏 : 본관은 진주. 수은 항의 후손 문흠의 딸로서, 미수 목의 후손 진사 허현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어 수년을 고생하는데 백방으로 조치하고 그 죽음에 이르러 재차 단지하여 7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어린 아들을 키워 가업을 일으키게 하였다. 유생들이 천장(薦狀)하고 관에서 제사(題辭)를 써준 것이 많이 쌓였다. /籍晉州 睡隱沆后 文欽女 眉叟穆后 進士許鉉妻 夫有宿수 彌年在褥 百方調治及至隕終再度斷指以延7日 撫育幼子 以至成立 儒狀官題 積成卷軸

    강씨姜氏 : 본관은 진주. 순흠의 딸로서 여산인 송영석의 처이다. 지아비가 몸져누워 수년을 고생하자 하늘과 물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그 죽음에 이르러 따라죽으려 하였으나 자식 둘이 아직 어린지라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종신토록 온전히 절개를 지키니 마을에서 상으로 쌀과 고기를 주었고 군과 도에서 가상하다는 제사(題辭)를 해주었다. /籍晉州 恂欽女 礪山宋榮碩妻 夫以宿疾 累年沈苦 祝天禱水 願以身代及其屬광 卽欲下從 二孤在襁 忍未遂意 終身全節 鄕里饋米肉 郡道有嘉尙之題

    강씨姜氏 : 본관은 진주. 재고의 딸로서, 낙촌 충원의 후손 통정대부 박기래의 처이다. 시어미가 병이 들어 양아를 원하여 지극 정성으로 하늘에 기도하자 눈 속에서 몇 포기를 얻었다. 거의 죽게되어서는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3일을 연명하였다. 마을에서는 칭송하였고 도와 군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晉州 在考女 駱村忠元后 通政朴琪來妻 姑有疾 願羊芽 至誠祝天 得數莖於雪中 幾至殞終 指血得甦3日 鄕里稱歎 道郡剡薦

    강씨姜氏 : 본관은 진주. 통계 회중의 후손 성흠의 딸로서, 봉성인 장인근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회생하게 하고 그 지아비에 앞서 죽었다. 사림에서 찬한 글이 있으며 이 일이 삼강록에 실려있다. /籍晉州 通溪淮仲后 成欽女 鳳城張寅根妻 夫病危重 百方求治 小無奏效 竟至隕絶 裂指注血 以得回甦 先其夫而卒 士林有贊 事載三綱錄

    고씨高氏 : 본관은 장택. 제룡의 딸로 청주인 한맹술의 처이다. 타고난 효성으로 나이 12세에 아비가 발에 종기가 나서 위극하니 스스로 종기를 빨아냈으며 출가해서는 시부모를 부모처럼 섬기고, 갑자기 상을 당하니 그 슬퍼함이 법도를 넘어설 정도였고,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모시니 유생들의 천장(薦狀)이 있었다. /籍長澤 濟龍女 淸州韓孟述妻 孝性根天 年甫十二 父以과종危重 親自연之及其出嫁 事舅姑如父母 奄喪所天哀毁逾制 克奉先祀 有儒狀

    고씨高氏 : 본관은 제주. 학주의 딸로서, 문렬 천익의 후손 참봉 언양인 김병두의 처이다. 천성이 정숙하고 지아비와 아들을 공경하며 섬겼으며 시부모를 예로써 봉양하였다. 지아비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소생하게 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감탄하였으며 사림에서 천장(薦狀)하였다. /籍濟州 學柱女 文烈千鎰后 參奉彦陽金炳斗妻 天性貞淑 敬事君子 禮奉舅姑 夫疾危重 裂指注血 竟以得甦 隣里感歎 士林剡薦

    곽씨郭氏 : 본관은 현풍. 규의 딸로서 광산인 김기락의 처이다. 효로써 시부모를 봉양하고 예로써 지아비를 공경하였다. 그 지아비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하게 해달라고 비니 수일을 연명하였으나 그 상을 당하매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고 3년상을 마쳤다. 면과 군에서 포상을 주었다. /籍玄風 奎女 光山金箕洛妻 孝養舅姑 禮敬君子 其夫영疾 祝天願代 回甦數日及喪哀毁逾節 禮終三喪 有面郡褒賞

    곽씨郭氏 : 본관은 현풍. 문호의 딸로서 함양인 박영수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연명하게 하였고 그 상을 당하여 슬피 울다 쓰러져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돌이켜 생각하니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는지라 그 뜻을 거두었다. 전처의 어린 아들을 키워 가업을 잇게하니 효와 절개를 함께 갖추었다. 누차 유림의 천장(薦狀)이 있었다. /籍玄風 文鎬女 咸陽朴榮秀妻 夫疾 裂指得甦 遭喪號泣 최折卽欲下從 顧念奉祀無人 不忍遂義 撫育前室幼孩 克保家聲 孝烈俱全 屢有儒狀

    구씨具氏 : 본관은 능성. 문정공 위의 후손 영국의 딸로서 평강인 채행묵의 처이다. 시부모에게 효도하며 지아비를 공경하였다. 그 지아비의 병이 깊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였으나 겨우 3일을 연명하고 죽었다. 이에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제사를 이을 사람이 없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뜻을 바꾸었다. 인근 마을에서 감탄하였다. /籍綾城 文貞偉后 永國女 平康蔡行黙妻 孝舅姑 敬君子 以守閨範 其夫病重 指血垂口 纔甦3日乃終 卽欲下從 承祀無人 保孩無處 未果遂意 隣里感歎

    구씨具氏 : 본관은 능성. 방촌 희의 후손 장수인 황정찬의 처이다. 시집온 뒤로는 효로써 시부모를 섬기고 예절로써 규방을 지켰다. 그 지아비가 병이 있어 3년을 앓다가 죽을 지경이 되자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 죽게 해달라고 빌고 넙적다리 살을 떼어 약으로 쓰니 이내 나았다. 군과 면의 유생들의 천장(薦狀)이 있다. /籍綾城 방村長水黃喜后 正燦妻 一自禮聘 孝於舅姑 禮守閨範 其夫一疾三載 危革幾絶 祝天代命 割股和藥 乃復天和 有郡面儒狀

    길씨吉氏 : 본관은 해평. 순의 딸로 합천인 이봉현의 처이다. 성품이 순일하여 시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지아비의 병이 위극함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회생하여 3일을 더 살다가 마침내 죽자 뒤따라 순절할까 했지만 시부모와 유복자를 생각하여 마음을 고쳐먹고 마침내 가업을 이루었다. /籍海平 淳女 陜川李鳳鉉妻 自幼性純一 自禮聘 事舅姑極孝 夫病危重 斫指注血 回甦3日及其終 欲同下從 但舅姑在堂 思子遺腹 忍痛回心 終成家業

    김씨金氏 : 본관은 . 탁영 일손의 후손 국충의 딸로서, 밀양인 손정황의 처이다. 시아비가 병들어 꿩탕을 원하자 매가 꿩을 떨어뜨려 그것을 바쳤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낫게 하였다. 군과 도에서 가상하다는 제사(題辭)를 하였다. /籍金海 濯纓馹孫后 國衷女 密陽孫正璜妻 舅疾願雉湯 有鷹搏墜以供 指血得甦 郡道有嘉尙之題

    김씨金氏 : 본관은 경주. 계림군 곤의 후손 사련의 딸로, 윤원 박중휘의 처이다. 시아비를 극진한 예로써 섬기고 지아비를 공경하였다. 시아비가 병들자 약시중을 들매 잠들지 않고 공양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마을에서 상을 주었다. /籍慶州 鷄林君균后 士連女 珍源朴重輝妻 事舅盡禮 敬夫中節 舅제侍湯不寐 所願必供 有面里褒賞

    김씨金氏 : 본관은 경주. 수은 충한의 후손 현기의 딸로서, 통덕랑 서주의 처이다. 지아비의 상을 당하여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비가 있으므로 그 뜻을 거두고 효를 다하겠다고 맹세하고 지성으로 봉양하며 효와 열이 겸전하니 고을에서 우러러 칭송하였으며 군과 도에서 가상하다는 제사(題辭)를 하였다. /籍慶州 樹隱沖漢后 賢淇女 通德郞徐洪妻 夫喪縱欲下從 老舅在堂 忍未遂 素惟以終孝 爲誓 奉養致誠 孝烈雙全 鄕黨欽誦 郡道有嘉尙之題

    김씨金氏 : 본관은 경주. 여현의 딸로서 월랑인 이학수의 처이다. 효로써 시부모를 섬기고 지아비와 아들을 공경하며 봉양하였다. 지아비의 병이 깊자 정성을 다해 치료하였으나 마침내 죽고 말자 따라죽기로 작정하고 음식을 먹지 않았으나, 늙은 시어미가 집안에 있으므로 뜻을 바꾸었다. 병든 시어미를 봉양함에 지아비의 생시보다 더 힘을 기울였으므로 향린에서 칭탄하였다. /籍慶州 汝賢女 月浪李學洙妻 孝事舅姑 敬奉君子 夫病甚重 탄誠扶救 竟乃殞終 矢死絶食以其老姑在堂 不忍下從 養奉病姑 愈勤於亡夫在時 鄕隣稱歎

    김씨金氏 : 본관은 경주. 창원인 구원진의 처이다. 지아지의 병이 3년을 지났으나 백약이 무효했다. 이에 넙적다리살을 떼어 약으로 쓰니 다행히 3년을 연명했으나 마침내 위독한 지경에 이르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3일을 연명하였다. 향리에서 거듭 상을 내렸다. /籍慶州 昌原具遠鎭妻 夫疾三載 百藥無效 割股和藥 幸延三年 後復罹病 將至危重 斫指注血以甦3日 鄕里累有賞饋

    김씨金氏 : 본관은 광산. 사계 장생의 후손 재현의 딸로서, 가선대부 덕수인 장응원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6년에 이르러 정성으로 하늘에 자신과 대신하기를 빌었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주고, 허벅지살을 베어 먹이자 잠시는 소생하였으나 드디어 운명하고 말자 몹시 슬퍼하는 중에도 예법대로 치상을 마치고 그 젯상앞에서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그 정열을 기려) 군과 도에서 여러번 천장(薦狀)하였고, 이 일은 삼강록에 실렸다. /籍光山 沙溪長生后 在鉉女 嘉善德水張應源妻 夫病六載 禱天願代 斷指割股 須臾得甦 竟至崩城 極哀盡禮及其철궤합然自盡 郡道累薦 事載三綱錄

    김씨金氏 : 본관은 광산. 전주인 최만재의 처이다. /籍光山 全州崔萬才妻

    김씨金氏 : 본관은 광산. 죽산인 안동렬의 처이다. 천성이 정숙했으며 규방의 예법을 지켰다. 20세에 홀로 되어 죽기를 맹세했으나 위로 늙은 시어미가 있고 또, 슬하의 자식을 키워야 하므로 뜻을 바꾸었다. 시어미를 정성껏 봉양하며 조석으로 게을리 하지 않으니 인근 마을에서 우러러 감탄하였다. /籍光山 竹山安東烈妻 性賦貞淑 禮守閨範 20而寡 誓欲합然 上有老姑 因未遂意 且撫膝下之育 탄誠奉養 昕夕不懈 隣里欽歎

    김씨金氏 : 본관은 광산. 첨성군 겸광의 후손 양의의 딸로서, 선전 오위도총부 부사과 천안인 전재원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을 얻자 하늘에 자신과 대신하기를 빌었고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넣어주자 3일간을 더 살았다. 상을 당하매 법도에 따라 치상하였다. 군과 도에서는 이 일을 선양하였고, 오륜록에 실렸다. /籍光山 尖城君謙光后 瀁義女 宣傳五衛都摠府副司果 天安 全載遠妻 夫病 祝天願代 斷指注血甦3日命 遭憂居喪遵禮 郡道闡揚 事載五倫錄

    김씨金氏 : 본관은 금성. 노태의 딸로 밀양인 박치기의 처이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지아비가 병을 얻어 만약이 듣지 않자 자신을 대신 데려가라고 산에 빌고 성진에 빌자 하늘로부터 선약이 내려와 먹이지 3일을 더 살다가 마침내 죽자 곧바로 순절하려다가 시아비는 늙고 자식은 어린지라 자식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스스로 자결하였다. /籍金城 老泰女 密陽朴致基妻 孝養舅姑 夫영疾 萬藥無效 山禱星願 以身代 天降美藥 僅甦3日 竟至崩城 卽欲下從 舅老子幼 待其子壯 始乃自裁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백촌 문기의 후손 완경의 딸로서, 양절 확의 후손 청주인 한희동의 처이다. 시아비가 병들자 약시중을 들며 옆에서 떠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다 해주었다. 낫게 해달라고 산과 강에 치성을 드리니 병이 쾌유되었다. 마을에서 거듭 상을 내렸다. /籍金海 白村文起后 完敬女 襄節確后 淸州韓希童妻 舅病 侍湯不離 所願之物 致誠必求 祈山禱水 病乃快瘳 累有面里賞饋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삼현의 후손으로 목사 숙남의 후손 전의인 이진만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수년에 이르러 백방으로 조치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슬퍼하지 않고 임종을 지켰다가 갑자기 따라 죽었으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절개이다. 향리에서 경탄하였고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金海 三賢后 牧使叔男后 全義李鎭萬妻 夫病彌月 百方調治 竟無奏效 乃至殞絶 送終無憾 溘然下從 是固罕世之烈 鄕里驚歎 郡道剡薦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석윤의 딸로서 영의정 상철의 후손 강릉인 김무윤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그 상을 당하매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비가 병으로 누워있고 어린 자식을 가르치고 양육할 사람이 없는지라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마침내 교육하여 가업을 이루니 고을에서 모두 그 정열을 칭송하였다. /籍金海 錫允女 領相尙喆后 江陵金茂潤妻 夫病 願以身代及其殞終 卽欲下從 老舅病臥 幼叔孩敎無人撫養 不忍就義 敎育成立 鄕黨咸稱其烈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추계인 추시문의 처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가서 시부모를 효로써 섬기되 입이 즐겁고 몸이 편하게 하며 반드시 지성으로 하였다. 지아비가 4년 동안 병에 들었는데 백약이 무효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자 넙적다리살을 떼어 피를 먹여 3일을 연명하게 하였으나 그 상을 당하매 지극히 슬퍼하며 예를 다하니 모두가 효부열녀라고 칭송하였다. 향리에서 천장(薦狀)하였다. /籍金海 秋溪秋時文妻 年幼適人 孝事舅姑 悅口便體之方 至誠必具 夫疾四載 百藥無效 幾至殞絶 割股注血回甦3日 哀毁盡禮 咸稱孝烈 鄕里薦狀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탁영 일손의 후손 병진의 딸로서, 온령군 정의 후손 통정대부 이창화의 처이다. 시아비를 효로써 섬겼다. 지아비가 엄동에 병이 나자 밤에 산에서 기도하며 하늘에 지성으로 빌었다. 이에 감응하여 병이 낳았다. 향리에서 천장(薦狀)이 있었다. 이 일은 강헌록에 실려있으며 포장이 있었다. /籍金海 濯纓馹孫后 炳眞女 溫寧君程后 通政 李昌華妻 事舅姑以孝 夫有疾隆冬 祈山中夜祝天至誠 所感病乃快療 鄕里剡薦 事載綱獻錄 有褒狀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탁영 일손의 후손 영록의 딸로서, 낙촌 충원의 후손 밀양인 박노희의 처이다. 시부모를 효로써 섬겼다. 시어미가 병들어 겨울에 부추를 원하자 눈을 뚫고 구하여 드렸고 또 꿩을 원하니 홀연 꿩 한 마리가 뒷뜰에 떨어져 국을 끓여 드리니 병이 나았다. 군과 도에서 가상하다는 제사(題辭)가 있었다. /籍金海 濯纓馹孫后 英錄女 駱村忠元后 密陽朴魯喜妻 孝事舅姑 姑疾 冬願구菜 穿雪求供又願生雉 忽有一雉飛墜後園 羹進得蘇 郡道有嘉尙之題

    김씨金氏 : 본관은 김해. 탁영 일손의 후손으로서 봉성인 장석선의 처이다. 효로써 시부모를 섬겼다. 지아비가 병들어 고치기 어렵자 변을 맛보고 하늘에 기도하여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죽음에 이르러서 두세번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다음 날 회생하여 천수를 마쳤다. 사람들이 열부라고 칭송하였다. /籍金海 濯纓馹孫后 鳳城張錫仙妻 孝事舅姑 夫病難醫 嘗糞祝天 願以身代 幾至殞絶 裂指再三注血 回甦翌日 奄終天年 世稱烈婦

    김씨金氏 : 본관은 낙안. 상흠의 딸로서 몽촌 타의 8세손 나주인 임능상의 처이다. /籍樂安 商欽女 夢村羅州林瑞八世孫 能相妻

    김씨金氏 : 본관은 낙안. 재형의 딸로서 의성인 정한풍의 처이다. 천성이 절개가 있었다. 일찍이 지아비의 상을 당해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시부모가 의탁할 곳이 없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가정을 화목하게 하였으며 조금이라도 규방의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유림에서 포상하라는 천장(薦狀)을 하였다. /籍樂安 在馨女 義城丁漢豊妻 天性貞烈 早哭所天 卽欲下從 而以舅姑無托 未克遂義 親睦家庭 一守閨範 有儒林薦褒

    김씨金氏 : 본관은 낙안. 택흠의 딸로서 장수인 황재우의 처이다. 그 지아비의 병이 깊자 산과 물에 기도하기를 주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아비가 죽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시어미와 뱃속에 아들이 있는지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효를 더하여 시어미를 모셨다. 향리에서 누차 상을 주었다. /籍樂安 宅欽女 長水黃在佑妻 其夫沈疾 祈山禱水 晝宵不懈 及 其殞終 卽欲下從 顧念 偏姑在堂 遺血在腹 不忍就義 事姑尤孝 鄕里累有授賞

    김씨金氏 : 본관은 부안. 용택의 딸로서 탁영 일손의 후손 김해인 김제원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수년에 이르자 품을 팔아 병수발을 하였고 그 죽음에 이르러 단지하여 피를 먹임으로써 3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어린 아들이 강보에 있어 따라 죽지 못하고 잘 키우고 잘 가르치니 향리에서 그 착함을 칭송하고 거듭 상을 주었다. /籍扶安 用澤女 濯纓馹孫后 金海金濟元妻 夫疾累年 賃傭以救 幾至殞絶 斷指注血以延3日 幼孩在襁 不忍下從 撫養成立 敎誨義方 鄕里稱善 累有賞饋

    김씨金氏 : 본관은 사천. 장흥인 고헌주의 처이다. 천성이 순수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집와 시모가 고질병에 들자 대소변을 받아내고 또 변을 맛보아 병증을 알아내어 조처하였다. 유생들이 여러번 군과 도에 천장(薦狀)하였다. /籍泗川 長興高獻柱妻 天性純孝 自于歸 其姑 沈痼累年 大小便 躬自受除 又嘗糞驗症 儒狀累薦郡道

    김씨金氏 : 본관은 선산. 사계 장생의 후손 영실의 딸로서, 한림학사 수림의 후손 전주인 이성윤의 처이다. 시아비가 병들자 울면서 하늘에 기도했고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다. 늙은 시어미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고 자리를 살핌을 전날의 배로 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모두 칭송하였고 상을 내렸다. /籍先山 沙溪長生后 永實女 翰林壽林后 全州李成允妻 舅病 號泣祝天 丁憂哀毁逾節 老姑在堂 甘旨定省 尤倍前日 隣里咸稱 有賞饋

    김씨金氏 : 본관은 순천. 제봉 경명의 후손 장흥인 고금주의 처이다. 효와 절개가 겸전하였다. /籍順天 霽峯敬命后 長興高金柱妻 孝烈兼全

    김씨金氏 : 본관은 언양. 명필의 딸로서 의성인 정수용의 처이다. 성품이 소박하고 정숙하였으며 스스로 규방의 모범을 지켰다. 그 지아비가 죽자 예로써 시부모를 위안하며 염을 마치고 성복한 뒤 홀연히 따라 죽으니 그 열행이 출중하였다. 유림에서 도에 천장(薦狀)을 올린 것이 높이 쌓였다. /籍彦陽 命弼女 義城丁琇鎔妻 性素貞靜 自守閨範及其夫歿恬 慰舅姑禮 결殯殮至于成服 奄忽下從 出類烈行 儒林道狀堆成卷軸

    김씨金氏 : 본관은 영산. 시엽의 딸이며 청주인 한수린의 며느리로서 석규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위극하매 손가락을 배어 피를 먹여 회생하게 하였으며 시어미를 극진한 효로 섬기고 능히 가문을 잇도록 하였으니 일문에 쌍열이 천고에 드문바라 도에서 천장(薦狀)을 올려 조정에서 듣고 고종 을유년에 정려를 내렸다. /籍永山 時燁女 淸州韓壽麟子婦 錫圭妻 夫病危劇 斫指注血 快得回甦 事姑至孝 能繼家規 一門雙烈 千古攸罕 道幷薦啓 達于天聽 高廟乙酉 命旌

    김씨金氏 : 본관은 청주. 영재의 딸로서, 문민공 일손의 후손 김해인 김응량의 처이다. 시부모를 잘 봉양하였으며 집안의 일에 어긋남이 없었다. 지아비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임으로써 3일을 연명하게 하였고 장사하고 제사하는 것을 모두 예의에 따랐다. 법도로써 아들을 가르쳐 일가를 이루게 하였다. 향린에서 모두 그 절개를 칭송하였다. /籍淸州 永在女 文愍馹孫后 金海金應良妻 奉事舅姑 無違宮事 夫病危篤 裂指注口 得甦3日 初終葬祭 一遵禮制 敎子以方 致家有節 鄕隣咸稱其烈

    난향私婢蘭香 : 임진왜란때 왜적이 간사한 계략으로 꼬이려 했으나 입을 열지않고 할복하여 죽었다. 정려를 내렸다. /壬辰之亂 賊欲奸罵不絶口 割腹而死 命旌其門

    문씨文氏 : 본관은 남평. 경주인 이성석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의 상을 당했으나 효성와 절개가 있었다. /籍南平 慶州李性錫妻 早喪所天 而孝而烈

    박씨朴氏 : 본관은 밀양. 밀성군 빈의 후손으로서 경주인 이유량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이 들어 치료가 어렵자 허벅지살을 베어 약으로 올리니 7일간 연명하였다. 드디어 지아비가 죽자 슬퍼함이 법도를 넘어 거의 혼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어 성명을 끊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어미가 집안에 계심을 돌이켜 생각하고 참아 죽지 못하였다. 향리에서는 칭송하고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密陽 密城君斌后 慶州李裕良妻 夫疾難醫 割股進之 得甦7日 竟至崩城 哀毁踰節 幾至滅性 顧念老姑在堂 不忍遂義 鄕隣稱美 郡道剡薦

    박씨朴氏 : 본관은 밀양. 기상의 딸로서 하양인 허영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이 들어 수년이 지났지만 백약이 무효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연명하였다. 마침내 지아비가 죽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어미가 정성으로 말려 이루지 못하였다. 시어미를 맛있는 음식으로 극진히 봉양하니 군과 면의 천장(薦狀)이 있었고 경학원의 찬이 있었다. /籍密陽 基相女 河陽許泳妻 其夫 영疾積年 百藥無效 斫指注血 甦延危命 竟至崩城 卽欲下從 誠切偏姑而未果 克供甘旨 有郡面狀及經學院撰

    박씨朴氏 : 본관은 밀양. 동래인 정광필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위독하자 산에서 백일제를 지내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후에 다시 병사했다. 이에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고 3년 후에는 직접 가서 파묘하여 백골을 머리위에 이고 와서 고향땅에 장사지내니 마을에서 감탄하고 군도에서는 포상하였다. /籍密陽 東萊鄭光弼妻 其夫病危 百日祭山而復常 乃後病死於客地 哀毁逾節 三年後 躬往破墓 頭戴白骨而遝葬故土 隣里感歎 郡道褒賞

    박씨朴氏 : 본관은 밀양. 충정 심문의 후손 형석의 딸로서, 장사랑 강릉인 유병호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두 세번을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5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겨우 3년상이 지나자 조용히 따라 죽으니 오륜행실중간소에 의하여 표창되었다. 묘소의 남쪽 산기슭에 비각을 세웠다. /籍密陽 忠貞審問后 瀅錫女 將仕郞江陵劉秉鎬妻 夫疾 裂指再三延命5日 纔過3祥 從容就義 依五倫行實重刊所褒狀 立碑建閣于墓所南麓下

    박씨朴氏 : 본관은 밀양. 치순의 딸로서, 증호조참의 장수인 황승언의 아들 휘일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홍역을 앓아 위급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반나절 만에 소생하였다. 열흘이 지나 다시 병이 깊어지니 다시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하루를 연명하게 하였다. 그 행동이 탁이하여 군과 도에 천장(薦狀)이 있었다. /籍密陽 致淳女 贈戶參長水黃昇彦子 輝一妻 其夫 危於時疹 幾至殞命 斫指注血 半日而甦 經旬宿수 又重 再斫其指 回延一日 卓乎其行 有郡道狀

    박씨朴氏 : 본관은 함양. 보치 성지의 후손 조양인 임석례의 처이다. 지아비가 고질에 시달리자 하늘에 기도하여 자기가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4일을 연명하게 하였고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슬픔을 품고 겨우 살아 그 상을 당하매 극진히 슬퍼하며 예의를 다하였다. 사림의 천장(薦狀)이 있다. /籍咸陽 潽治誠之后 兆陽林錫禮妻 夫罹痼疾 祝天願代及其危重裂指注血 得甦四日 卽欲下從 顧念 老姑無依 含哀僅保及其遭喪哀毁盡禮 士林剡薦

    백씨白氏 : 본관은 수원. 문경 인걸의 후손 맹여의 딸로서, 제정 효창의 후손 현감 평산인 영표자 신언붕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의 상을 당해 슬퍼함이 예법에 다하였고, 어린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며 집안을 이끌어 감에 늘 법도가 있어 향린에서 모두가 칭탄하였다. /籍水原 文敬仁傑后 孟汝女 齊靖孝昌后 縣監永均子 平山申彦鵬妻 早喪所天 哀毁盡禮 敎養幼孤 必以義方 整齊家道 常有壺範 鄕隣咸稱

    백씨白氏 : 본관은 수원. 휴암 인걸의 후손 경주인 이만겸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울며 하늘에 기도하고 산에 빌며 치성을 드렸다. 그 죽음에 이르러 먼저 오른쪽 넙적다리를 베고 다시 왼쪽 넙적다리를 베어 차례로 피를 먹이니 소생하여 천수를 누렸다. 면리에서 모두 칭송하였다. /籍水原 休菴仁傑后 慶州李萬兼妻 夫疾 號泣祝天 致誠禱山 幾至隕絶 先割右股 再규左股連次注血 永保天年 面里咸稱

    사월良女士月 : 20세에 과부가 되자 부모는 적당한 다른 곳에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도로 시집에 돌아와 단발을 하고 절의를 오롯히 하니 읍인이 감사에 알려 감사가 베를 상으로 내렸다. /年二十爲寡 父母欲使適他女 返還舅家斷髮全信 邑人呈于監司受賞布

    서씨徐氏 : 본관은 달성. 사가정 문충공 거정의 후손 성균진사 황보의 딸로서, 광산인 김종원의 손부이다. 지아비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하늘에 기도하여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단지하여 피를 먹이니 7일을 연명하고 죽었다. 장사지내고 제사하는 것을 모두 예의법도에 따라하였다. 향리에서 모두 감탄하였다. /籍達城 四佳亭文忠居正后 成均進士篁甫女 成均進士光山金宗元孫婦 夫病危重 祝天願代 斷指注血 以延7日而終 喪葬祥朞 一遵禮制 鄕里咸稱

    설씨薛氏 : 본관은 순창. 상공 충의 후손 백원의 딸로서, 경주인 김광희의 처이다. 지아비 나이 20세에 고질이 있어 넙적다리살을 떼어 피를 먹이니 며칠을 연명하였으나 결국 운명하여 장례를 치루고 제기를 치우던 밤 띠를 목에 걸고 자결하니 사나운 바람이 크게 일고 운무가 사방을 가렸다가 염을 하니 이에 걷혔다.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고 거듭 상을 주었다. /籍淳昌 相公沖后 白源女 慶州金光凞妻 年甫20 夫有痼疾 割股注血 數日得甦 撤궤之夜 以帶結項 烈風大作 雲霧四障 殯后乃捲 郡道剡薦 累有賞饋

    성씨成氏 : 본관은 창령. 독곡 석린의 후손 가선대부 자흥인 고봉주의 처이다. 시부모가 병이 나자 입에 맞는 음식을 드리고 몸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정성을 다했다. 또 지아비가 병들자 넙적다리살을 떼어 국을 끓여 회복하게 하였다. 군과 도에서 포제가 거듭 있었고 성적도에 실려있다. /籍昌寧 獨谷石璘后 嘉善長興高奉柱妻 舅姑有患 適口便身 靡不庸極 且其夫沈疾 割股和羹 臻復遐年 鄕里感歎 累有郡道褒題 載聖蹟圖

    성씨成氏 : 본관은 창령. 독곡 석린의 후손 기진인 송원용의 처이다. 시부모를 지극한 효로써 섬겼다. 지아비가 8년 동안 병을 앓는 동안 새벽과 밤으로 산에서 기도하니 호랑이가 지켜주었다. 지아비가 죽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어린 자식이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림에서 천장(薦狀)하였다. /籍昌寧 獨谷石璘后 忌津宋元用妻 事舅姑盡孝 夫病8年 晨夜祝山 有虎護傍 及 終切 欲下終以 乳兒在襁 不忍就義 有儒狀

    성씨成氏 : 본관은 창령. 이각의 딸로 청주인 한수린의 처이다. 출가한 이후 지아비를 공경하기를 마치 손님 접대하듯 하였다. 지아비가 병석에 들어 여러 해가 되니 정성을 다하여 구환하고 변을 맛보아 약을 올리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소생케 하여 마침내 천수를 다하도록 하였다. 효행이 뛰어나 조정에 천장(薦狀)하니 고종 을묘년에 정려를 내렸다. /籍昌寧 爾恪女 淸州韓壽麟妻 于歸以後 敬夫如賓 夫病累年 탄誠竭力 嘗糞斫指注血得甦 竟以天命終 卓異實行 薦達于朝 高廟乙酉 命旌

    소씨蘇氏 : 본관은 진주. 오위장 진수의 딸로서 의성인 정치상의 아들 병구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주야로 하늘에 기도하고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였으나 상을 당하매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고 예로써 상을 마쳤다. 시부모를 효로써 봉양하며 공경하며 지아비의 제사를 지냈으니 효와 절개가 겸전하였다. 사림에서 천장(薦狀)하여 군수가 포상하였다. /籍晉州 五衛將鎭壽女 義城丁治相子 炳九妻 夫病 晝夜禱天 裂指注血及喪哀毁逾節 送終以禮 孝奉舅姑 敬先祀 孝烈雙全 士林推薦 郡守褒賞

    손씨孫氏 : 본관은 밀양. 제학 비진의 후손 통사랑 우식의 딸로서, 탐진인 최우현의 처이다. 출가하기 전에 지아비가 갑자기 죽으니 슬퍼하며 극진히 치상을 하였다. 혹자가 다시 출가하기를 권하면 도리를 들어 말하기를 하늘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고 여자에게는 지아비가 둘 있을 수 없다하며 맹세코 순절할 뜻을 굽히지 않는지라 향리에서 칭탄하였다. /籍密陽 提學比長后 通仕郞祐植女 耽津崔禹鉉妻 未及于歸 其夫奄逝 哀毁盡禮 人或勸喩 毁節則擧義却之曰 天無二日 女無二夫 矢死不更 鄕里稱歎

    손씨孫氏 : 본관은 밀양. 참봉 석두의 딸로서 안찬성의 처이다. 혼인한 지 일년이 지나지 않아 그 지아비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고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손가락을 베어 3일을 연명하다가 끝내 죽자 따라 죽기로 맹세하니 이에 시부모가 울면서 만류하니 부득이 돌이켜서 시부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모두 칭찬하였다. /籍密陽 參奉錫斗女 安昌晟妻 成婚未朞 其夫영疾 祝天願代 斫指注血 回甦3日而終 誓以下從 舅姑泣喩 不得已自反 孝養舅姑 隣里咸稱

    손씨孫氏 : 본관은 밀양. 태상의 딸로서 하동인 정광만의 처이다. 어려서 행동에 근본이 있었고 시집가서는 시부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지아비의 집이 병에 걸려 모두 몰살하고 지아비 또한 죽으니 관을 어루만지며 여러번 혼절하였으나 유복자가 있어서 참고 몸을 추스리니 다행히 아들이 태어났고 이로써 조상의 제사를 잇게 하였으니, 그 절개의 의젓함이 겨울의 소나무 같았다. /籍密陽 泰尙女 河東鄭廣萬妻 幼有行源及嫁孝養舅姑 夫家偶영門疾 閤眷全沒 夫亦隨沒 撫柩累絶 忍護遺腹 幸而生男 以續香火 凜其貞節 歲寒後松

    송씨宋氏 : 본관은 여산. 지청의 딸로서 천안인 전창호의 처이다. 17세에 혼인하여 시부모를 효로써 섬기고 지아비의 뜻을 잘 받들었으며 지아비가 병이 나자 하늘과 강에 기도를 하였으나 장차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먼저 왼손가락을 베고 다시 오른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이로써 3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고을과 도에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礪山 持淸女 天安全昌鎬妻 17成人 孝事舅姑 承順夫志及夫病 祝天禱水 將至無奈 先斫左指 再斫右指 以延3日 鄕道剡薦

    송씨宋氏 : 본관은 연안. 도정 석로의 딸로서 문평 문식의 후손 천안인 전협규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어 위독하자 좌우의 손가락을 돌로 찧어 피를 먹였지만 구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죽으려 했지만 사람들에 의해 구해져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늙은 시아비가 집안에 살아있어 슬픔을 참고 견디었다. 이 일이 오륜록에 실려있다. /籍延安 道正錫魯女 文平文軾后 天安全協奎妻 夫病危劇 石搗左右指注血 竟至不救 卽欲下從 爲人所救 因未就義 以老舅在堂 含哀忍痛 事載五倫錄

    송씨宋氏 : 본관은 연안. 판서 보산의 후손 규의 5녀로서, 함양인 박기철의 처이다. 혼례식을 올리자마자 지아비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문을 듣고, 다음날 몸종을 데리고 직접 가서 손가락의 피를 먹여 며칠간 더 살게 하였으나 상을 당하니 3년상을 예법을 좇아 지내니 도와 군에 천장(薦狀)하였다. /籍延安 判書寶山后 奎5女 咸陽朴基喆妻 재成근禮 夫因病而歸翌日 乃聞隱報 率婢親往 幾至殞絶 指血注口得數日命 丁憂哀毁三年盡禮 道郡剡薦

    송씨宋氏 : 본관은 연안. 판서 보산의 후손 석하의 딸로서, 통정대부 성철의 아들 함양인 오병한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를 여의고 전보다 배로 시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고을에서 칭탄하였다. /籍延安 判書寶山后 錫夏女 通政成哲子 咸陽吳秉漢妻 早喪所天 孝事舅姑 倍於前日 鄕里稱歎

    송씨宋氏 : 본관은 은진. 김시화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를 여의고 단지 어린 아들과 눈먼 시아버지만 있는지라 밤낮으로 길쌈을 하고 절구질하여 어려운 살림에도 변변치 않은 음식이나마 거르는 일은 없이 하였고, 조석으로 밥상을 올리며 수저와 그릇을 챙겨주며 변소출입에도 부액하여 모시고 다니는 일을 10년을 하루같이 하여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籍恩津 金時和妻 早喪其夫 只有稚子 獨奉鰥居 眼盲之媤父 晝夜織용 菽水之艱辦無闕 朝夕進饍 引匙接器 至於便所 扶腋前導 如是十年 一鄕咸稱

    송씨宋氏 : 본관은 은진. 영의정 거익의 후손 갑인의 딸로서, 함창인 김한종의 처이다. 정숙한 덕을 길렀으며 시집와서는 시어미를 효로써 섬기고 지아비를 공경하였다. 지아비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연명하게 하였으며 지아비가 죽은 후에는 시어미를 봉양하고 어린 자식을 키워 가업을 잇게 하였다. 시어미의 상을 다하여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으며 삼년을 한결같이 하였다. /籍恩津 領相居翼后 甲仁女咸昌金漢宗妻 生育淑德 及 嫁孝事姑 敬承夫 天病危篤 嚼指延命 夫歿後 奉姑養幼 克保家聲 姑歿哀毁逾制 三霜如一

    신씨申氏 : 본관은 고령. 귀래정 말주의 후손 영용의 딸로서, 문양 병조판서 성지의 후손 남원인 양종기의 처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섬기고 지아비와 아들을 공경하며 받들었다. 지아비가 병들자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그 죽음에 이르러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3일을 연명하였다. 이 일이 오륜록에 실려있다. /籍高靈 歸來亭末舟后 永用女 文襄兵判誠之后 南原梁鍾基妻 事舅姑至孝 敬奉君子 夫疾 築壇禱天 願以身代及屬纊斫指注血 以甦3日 事載五倫錄

    신씨辛氏 : 본관은 영산. 영의정 연손의 후손이다. 경주인 이규상의 처로서 열행으로써 숙부인에 올랐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지아비를 공경으로 섬겼다. 지아비가 병을 얻어 가망이 없자 손가락을 찢어 피를 먹여 수일간 소생시켰으나 마침내 운명하니 슬퍼함이 예법에 맞았다. 고종 임진년에 조정에서 듣고 정려를 내렸다. /籍靈山 領議政延孫后 慶州李圭祥妻 以烈行 淑夫人 孝養舅姑 敬事君子 夫疾 將至不救 裂指注血 得數日甦 殞終哀毁盡禮 高宗壬辰 聞朝命旌

    신씨辛氏 : 본관은 영산. 재서의 딸로서 파평인 윤상권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어 의술이 무효하자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임으로써 3일을 명하게 하였다. 앞 못보는 시어미와 집안 또한 가난하였으나 낮으로 품을 팔고 밤으로 길쌈하여 효로써 봉양하기를 지극 정성으로 하였다. 면의 향약소에서 6차례의 포상이 있었다. /籍靈山 在瑞女 坡平尹相權妻 夫病周年 刀圭無效 祝天願代 斫指注血 回延3日 偏姑眼盲 家計又儉 晝傭夜織 탄誠孝奉 自面約所 有6次褒賞
  • 안씨安氏 : 본관은 죽산. 문간공 상경의 후손 청주인 한원태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어 백약이 무효한데, 의원이 뱀고기가 좋다하니 눈을 치우고 하늘에 비니 뱀이 방으로 들어왔다. 다시 병이 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마침내 죽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자식 둘이 아직 어린지라,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籍竹山 文簡尙敬后 淸州韓元泰妻 夫疾 百藥無效 醫云 蛇脯爲利 掃雪祝天 有蛇入房 至于再斯 裂指注血 亦非一焉及 終卽欲下從 二孤在襁 不忍遂意

    안씨安氏 : 본관은 죽산. 문성 유의 후손 봉거의 딸로서 낙안인 김기흠의 처이다. 그 부친이 병들자 변을 맛보고 모친과 함께 하늘에 기도했다. 성혼의 예를 치루지 않았을 때, 그 지아비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달려왔으나 갑자기 죽음에 이르자 손가락을 깨물어 7일을 연명하게 하였고 상을 당하매 예법에 좇았으며 오히려 양자를 들여 집안을 잇게 하였다. /籍竹山 文性裕后鳳擧女 樂安金기欽妻 父病嘗糞 與母禱天 成婚未及于禮 聞其夫病 革而直走 奄忽합然 嚼指注血 回命7日及喪遵禮 養猶子繼后

    안씨安氏 : 본관은 죽산. 영헌의 딸로서 의성인 정돈상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가 죽어 여묘 3년을 하였는데 옷을 갈아입지 않고 머리를 빗지 않았다. 효로써 시부모를 섬기고 집안이 화목하니 효와 절개가 겸전하였다. 경향의 통문과 열읍 유림의 천장(薦狀)이 권축을 이루었다. 이 일이 삼강록에 실려있다. /籍竹山 永獻女 義城丁敦相妻 早哭所天 居廬三年 不澣不櫛 孝事舅姑 義睦宗族 孝烈雙全 京鄕通文 列邑儒狀 積成卷軸 事載三綱錄

    안씨安氏 : 본관은 죽산. 종렬의 딸로서 청주인 한경수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지아비가 죽자 피눈물을 흘리고 3년 동안 매일 눈비를 무릅쓰고 외빈에 나가 지아비를 불르다가 마침내 한증이 들어 세상을 뜨니 뛰어난 그 행실 세상에서 그 짝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籍竹山 宗烈女 淸州韓京洙妻 其夫病危 設壇祝天 願以身代及其終命 泣血 三年每省外殯 晝宵呼天 雨雪蒲身 竟以寒症終焉 卓乎其行 世寡其주

    양씨梁氏 : 본관은 남원. 대제학 견의 후손 제민의 딸로서, 온령군 정의 후손 전주인 이경필의 처이다. 지아비가 고질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기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고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수일을 연명하였다. 그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으며 어린 아들을 키워 능히 가업을 잇게 하였다. 향리에서 상을 내렸다. /籍南原 大提學堅后 濟民女 溫寧君程后 全州李敬弼妻 夫有痼疾 幾至殞絶 願以身代 裂指注血 以延數日 哀毁逾制 撫養幼孤 能繼家聲 鄕黨有賞饋

    양씨梁氏 : 본관은 남원. 용성군 주운의 후손 경렬의 딸로서, 경주인 박현식의 처이다. 부친이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자기가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아비가 죽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앞을 못보는 늙은 시아비가 의탁할 곳이 없으므로 마음을 바꾸어 몸과 마음을 잘 받들기를 11년이나 하였고 상을 당하매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서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南原 龍城君 朱雲后 慶烈女 慶州朴賢植妻 夫病 祝天願代 殞終 卽欲下從 老舅眼盲 奉養無托 不忍自裁 俱養志體者 十有一年及喪哀毁逾制 郡道剡薦

    염씨廉氏 : 본관은 파주. 천안인 전재성의 처이다. 극진한 효로써 시어미를 섬겼으며 순응하며 지아비를 모셨다. 지아비가 병이 나매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소생하였고, 시어미가 병이 나서 백약이 무효하자 넙적다리살을 떼어 국을 끓여 드렸더니 즉시 치료되었다. 향리에서 칭탄하였으며 이 일이 삼강록에 실려있다. /籍坡州 天安全載星妻 事姑極孝 敬天至順 夫病 斫指注血 得回甦 姑病 百藥無效 割股和于羹 奉進卽瘳 鄕里稱歎 事載三綱錄

    오씨吳氏 : 본관은 함양. 부원군 광휘의 후손 내응의 딸로서, 규암 계종의 후손 천안인 전영우의 처이다. 출가한지 얼마 안되어 지아비가 병에 걸려 약을 먹으니 곁에서 간호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3일을 연명하였고, 상을 당하매 3년동안 지극히 슬퍼하며 예를 다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정열을 칭송하였다. /籍咸陽 府院君光輝后 乃應女 葵菴繼宗后 天女全永佑妻 出嫁未幾 夫疾藥餌 調護晷刻不懈 斫指注血 以延3日居 喪三載哀毁盡禮 鄕黨咸稱其烈

    오씨吳氏 : 본관은 함양. 이조판서 팽숙의 후손 상동의 딸로서, 계곡 복흥의 후손 순천인 김종하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환이 90일에 이르니 하늘에 대신 죽기를 기도하였으나 마침내 지아비가 죽음에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뒤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어미가 집에 있고 어린 아들이 앞에 있는지라 그 뜻을 거두고 치상과 제사를 예법에 넘치도록 행하니 향리에서 칭탄하였다. /籍咸陽 吏判彭淑后 相東女 溪谷復興后 順天金鍾河妻 夫病九旬 禱天願代 竟遭崩城 絶殼誓從 老姑在堂 幼子在前 不忍遂義 喪祭逾禮 鄕里稱歎

    옥매玉梅 : 정병 고자평의 처이다. 임진란에 지아비는 스스로 싸우러 나가고 옥매는 부모와 더불어 피란길에서 왜적을 만나 절개를 지키다 죽임을 당하였다.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正兵高自平妻 壬辰之亂 自乎赴戰 玉梅與父母避亂路 遇賊而死 事聞旌閭

    우씨禹氏 : 본관은 단양. 김해인 김제덕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들어 백약이 무효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넙적다리살을 떼어 국을 끓여 약으로 바쳤다. 단을 쌓고 정성으로 기도하니 계충(桂虫)이 내려와서 이것을 먹게하니 평상시 같이 회복되었다. 군과 면의 유림에서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丹陽 金海金濟德妻 其夫영疾 刀圭無效 斫指割股 和羹進藥 設壇誠祝 桂虫自降 因而進食 甦復如常 郡面有儒狀

    유씨兪氏 : 교생 이문형의 처이다. 정유재란때 적이 범하려 하자 죽어도 따르지 못하겠다고 적을 꾸짓고 죽임을 당하였다. 정려를 내렸다. /校生李文衡妻也 丁酉之亂 賊欲强汚 誓死不從罵賊而死 命旌其門

    유씨庾氏 : 본관은 무송. 이조판서 순도의 후손 치포의 딸로서, 훈련대장 동흘의 후손 천안인 전홍근의 처이다. 시아비가 홀로 되었고 집안은 가난했으나 정성을 다해 봉양했다. 시아비가 병이 들어 수년을 가니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2일을 연명하였다. 지아비가 병이 들어 3삭을 가자 단지하여 피를 먹이니 천수를 누리게 되었다. 천장(薦狀)이 있다. /籍茂松 吏判順道后 致蒲女 訓將東屹后 天安全鴻根妻 舅鰥家貧 탄誠供旨 舅病數年 祝天願代 斫指注口遝甦2日 夫病三朔 斷指灌血 以保天年 有剡薦

    유씨柳氏 : 본관은 문화. 충경의 후손 인동의 딸로서, 통정대부 경석의 아들 천안인 전영응의 처이다. 효성으로 시어미를 오래 섬겼으며 지아비와 아들을 공경하며 봉양하였다. 시아비가 병들자 변을 맛보아 병증을 알아내고 하늘에 기도하매 고을 사람들이 흠앙하였다. /籍文化 忠景后 寅東女 通政鯨錫子 天安全永應妻 孝事舊姑 敬奉君子 舅病嘗糞禱天 鄕黨欽仰

    육씨陸氏 : 본관은 옥천. 명복의 딸로서 가선대부 수원인 백남선의 처이다. 성정이 정숙하였다. 16세에 성혼하여 효로써 그 시어미를 섬겼다. 27세에 지아비가 죽으니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유복자가 있어 뜻을 바꾸었다. 남은 자식을 보살펴 키워 지아비의 뒤를 잇게 하니 인근에서 칭송하였다. /籍沃川 明福女 嘉善水原白南善妻 性姿貞淑 年十六成婚 孝事其姑 二十七遭崩城 卽欲합然以遺血在腹 不忍遂意 撫育遺孤 以續夫後 隣里稱頌

    육씨沃川陸氏 : 통정대부 황대성의 처로 임진란에 왜적이 몸을 범하려 함에 적을 꾸짖고 굴하지 아니하여 참혹히 죽임을 당하였는데 사후 수개월이 지나도 주검의 얼굴색이 생시와 같았다한다.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通政黃大成妻 壬辰之亂 爲倭賊所逼 罵賊不屈以亂斫而死後數月 殮屍面色如生 事聞旌閭

    윤씨尹氏 : 본관은 파평. 우의정 양의의 후손으로 김해인 김영태의 처이다. 시아비가 병들자 의원이 황사가 좋다고 하니 황사를 잡아 하루에 세 번 드리되, 먼저 맛보고 후에 드려 병이 나았다. 후에 다시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먹여 완쾌하게 하였다. 마을에서 상을 주었다. /籍坡平 右議政襄毅后 金海金永台妻 善事舅姑 舅病醫云黃蛇爲好 卽取黃蛇 日三煎供 先嘗後獻 以瘳厥疾 後復危重 사指注血 以得甦完 鄕里有賞饋

    이덕.私婢李德 : 60세에 그 주인의 상에 3년간 상복을 입고 다시 대상전의 상에 3년간 상복을 입으니 지금도 그 충량함을 칭송한다 /年六十 爲其主服喪三年又服大上典喪三年 至今稱其忠良

    이씨李氏 : 본관은 경주. 규순의 딸로서 방촌 희의 후손 장수인 황영선의 처이다. /籍慶州 圭淳女 방村長水黃喜后 永善妻

    이씨李氏 : 본관은 경주. 김해인 김윤규의 처이다.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겨 잔치에 가면 자루에 어육을 넣어 가지고 오고, 냇가에 가면 자라 등을 잡아와 늘 잘 드시게 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유생들이 연이어 첩을 올리니 군과 도에서도 선양하라 제사(題辭)하였다. /籍慶州 金海金允奎妻 早喪其夫 孝事舅姑 赴人宴 必대魚肉 臨溪水 必扈黿鱉 四時甘旨 連進不乏 儒狀連帖 有郡道褒揚之題

    이씨李氏 : 본관은 경주. 백사 항복의 후손 영홍의 딸로서, 황강 계휘의 후손 광산인 김철희의 처이다. 시부모를 효로써 섬겼다. 지아비가 병이 깊고 백약이 무효하여 죽을 지경이 되자 따라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어미가 집안에 계심을 생각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힘을 다하여 봉양하니 세칭 효열부라 하였다. /籍慶州 白沙恒福后 永弘女 黃岡繼輝后 光山金喆凞妻 孝事舅姑 夫疾危重 百藥無效 竟乃殞絶 卽欲下從顧念 老姑在堂 不忍遂意 竭力養志 世稱孝烈婦

    이씨李氏 : 본관은 공주. 송은의 후손 병흠의 딸로서, 효령대군 보의 후손 전주인 이화재의 처이다. 19세에 지아비의 상을 당해 단지하여 피를 먹이니 잠깐 소생하였다가 죽고 말아 출빈한 날 저녁에 옷고름으로 목을 매어 구하려 하였지만 겨우 대상을 마치고 뒤딸아 세상을 떠났다. 거듭하여 가상하다는 제사(題辭)가 있었다. /籍公州 松隱后 秉欽女 孝寧大君補后 全州李華宰妻 年甫19 遭夫喪 斷指注血暫以得甦 出殯夕蒙衿自頸 扶救回甦 苟忍終祥 因以從逝 累蒙嘉尙之題

    이씨李氏 : 본관은 공주. 호성의 딸로서 천안인 전낙기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이 있어 백방으로 조치해보았으나 끝내 차도를 보이지 않고 마침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3일을 연명하게 하고 따라 죽으려 하였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시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유복자가 있어 겨우 살아 극진한 예로써 장사지냈다. 군에서 상을 주었다. /籍公州 浩性女 天安全洛基妻 其夫有病 百方調治 終無差效 至於殞絶 斷指注血 以延3日 卽欲下從 顧念 尊舅在堂 遺血在腹 僅保殘縷 喪葬盡禮 有郡賞

    이씨李氏 : 본관은 광주. 동고 준경의 후손 기홍의 딸로서, 송은 명성의 후손 공주인 이상흠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이 나자 지극 정성으로 약을 짓고 하늘과 산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마침내 죽자 따라 죽으려 했으나, 유복자가 있어 따르지 못하고 슬퍼하며 극진한 예로 장사지내니 향리에서 칭송하였다. /籍廣州 東고俊慶后 基弘女 松隱明誠后 公州李象欽妻 夫有疾 至誠朮藥 祝天祈山 願以身代 竟至城崩 遺血在復 不忍下從 哀毁盡禮 鄕里稱頌

    이씨李氏 : 본관은 광주. 학래의 딸로서 수원인 백영종의 처이다. 영종의 형인 필종의 처 열녀 전씨와는 동서간이다. 지아비의 병이 위독하자 두 번이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7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사림에서 천장(薦狀)하니 도에서 제사(題辭)하기를 ‘일가에 쌍열이니 고금에 드문 일이니 포상할 날이 있을 것이다’ 하였으나 세상에서는 포상을 받지 못한 것을 억울하게 여기고 있다. /籍廣州 鶴來女 水原白英琮妻 英琮兄珌琮妻 烈婦全氏之축리也 夫病危重 兩度斫指7日聯甦 士薦道題 一家雙烈 今古罕有 褒當有日 世以未蒙齎울

    이씨李氏 : 본관은 금산. 치운의 딸로서 죽산인 안영용의 처이다. /籍金山 置運女 竹山安永用妻

    이씨李氏 : 본관은 벽윤. 판서 상길의 후손 도사 승백의 딸로서, 연안인 송상홍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을 얻자 갖은 정성을 다해 구환하였으나 종내 운명하자 그날 저녁 제상 앞에서 목을 매어 자진하려 했으나 구한바 되어 지아비를 따라 죽지 못하였다. 이후 홀로된 시어미를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고 자식을 잘 기르며 근검하여 재산을 불리웠다.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碧玧 判書尙吉后 都事承白女 延安宋相弘妻 夫病 裂指注血 崩城之夕 結項被挽 철궤之晨墮階 扶救竟未下從 孝養偏姑 撫育遺孤 勤儉治産 郡道剡薦

    이씨李氏 : 본관은 상주. 좌의정 원발의 후손으로 효자이며 통정대부를 지낸 연안인 이영구의 처이다. 시모가 병을 얻자 약을 올림에 힘이 다할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장례에는 예를 갖췄다. 지아비가 병을 얻자 하늘에 자신과 대신하기를 빌었고 상을 당함에 피를 토하는 울음소리는 애를 끊는 듯 했다. 효열겸전하여 상이 내려졌고 오륜록에 올랐다. 효열각은 지곡 옛터에 있다. /籍尙州 左議政元發后 孝子通政延安李永九妻 姑有疾 侍湯靡懈 送從遵禮 夫영疾 祝天願代及喪泣血哀號 孝烈兼全 褒載五倫錄 孝婦碑閣 在紙谷舊庄

    이씨李氏 : 본관은 성산. 광산인 김상태의 처이다. 그윽하고 정숙하였으며 지아비를 공경하고 시부모에게 효도하였고 동서간에 우애가 있었다. 18세에 자식이 없이 홀로 되었으나, 소나무와 대나무의 절개와 빙옥의 지조가 종신토록 변치 않았다. /籍星山 光山金相泰妻 幽閒貞靜 敬奉君子 孝於舅姑 友於축리 18而寡乃無血屬 松竹其節 氷玉之操 終身不투

    이씨李氏 : 본관은 연안. 양언의 딸로서, 규암 계종의 후손 천안인 전규현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하늘과 산에 기도하였으나 끝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하루를 연명하였으나 죽고 말았다. 지극히 슬퍼하며 예를 좇아 장사지내고 조카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였고 가사를 일으켜 세우게 하였다. 오륜록에 실려있다. /籍延安 良彦女 葵菴繼宗后 天安全圭鉉妻 夫疾祈山禱天 竟至無奈 斫指注血 甦一日 命而逝 哀毁遵禮 嗣養從侄 以奉先祀 成立其家事 載五倫錄

    이씨李氏 : 본관은 월랑. 쌍첨 인현의 후손으로서 족헌 현첨의 후손 인동인 장석진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수년을 가자 백방으로 조치하고 간호하며 산과 물에 기도하였다. 항상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기를 빌었고 그 상을 당하매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어린 아들이 있는지라 그 뜻을 바꾸었다. 3년 상을 예법에 좇아 하였다. 유림에서 거듭 천장(薦狀)하였다. /籍月浪 雙尖仁賢后 族軒顯尖后 仁同張錫軫妻 夫疾彌年 百方調護 禱水祈山 恒願身代 遭喪卽欲下從 幼子在前 不忍自裁 三祥遵禮 累有儒狀

    이씨李氏 : 본관은 전의. 만보의 딸로서 의성인 정재일의 처이다. 성정이 정숙하고 진실로 규수의 모범이었다. 시부모를 예로써 섬기고 지아비와 아들을 공경하며 거역하지 않았다. 지아비가 죽자 양치하지 않고 머리를 빗지 않으며 옷을 갈아입지 않고 삼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그 정렬이 탁이하여 사람들이 흠탄하였다. 이 일이 구삼강록에 있다. /籍全義 萬寶女 義城丁載一妻 率性貞淑 亶合閨範 事舅姑以禮 敬君子無違 夫歿 不盥櫛不澣衣 三霜如一日 卓乎貞烈 人所欽歎 事在舊三綱錄

    이씨李氏 : 본관은 전의. 준만의 딸로서 경주인 김낙용의 처이다. 29세에 불행히 지아비가 소생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칠순의 늙은 시아비가 있으니 마음을 바꾸어 섬겼으며 그 상을 당하매 지극한 예로서 장사지냈다. 마을에서 상을 주었다. /籍全義 俊萬女 慶州金洛龍妻 年29不幸 夫沒俱無子女郞 欲下從 7질老舅在堂 不忍遂意及其遭憂亦極盡禮制 面里有賞饋

    이씨李氏 : 본관은 전의. 진사 언철의 후손 규형의 딸로서 승문대교 홍속의 후손 밀양인 손희륜의 처이다. 갑자기 지아비의 상을 당하매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비와 강보에 쌓인 어린 아들이 있는지라 슬픔을 참고 상을 치룸에 예를 좇아 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우러러 감탄하여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全義 進士彦哲后 圭衡女 承文待敎弘續后 密陽孫凞崙妻 奄當夫喪 卽欲下從 老舅在堂 幼子在襁 忍痛茹哀 居喪遵禮 隣里欽歎 郡道剡薦

    이씨李氏 : 본관은 전의. 파평인 윤학봉의 처이다. 일찍이 그 지아비의 상을 당해 울음을 참고 예법에 따랐다. 집안이 가난하여 품팔고 구걸하여 정성으로 시아버지를 모였다. 시아버지가 설사병이 나 나물을 먹고 싶어 하니 눈을 치워 고사리를 캐왔다. 또 고기를 먹고 싶어하니 산에 들어가 노루를 잡았다. 이로써 위의 병이 다스려져서 쾌히 나았다. /籍全義 坡平尹學鳳妻 早喪其夫 不哀泣遵禮 家貧傭乞 誠養偏舅 舅영痢疾 典衣得藥 願食生菜 掃雪採蕨 又願肉味 入山獲獐 以調病胃 因得快蘇

    이씨李氏 : 본관은 전의. 희봉의 딸로서 문평 문식의 후손 천안인 전홍식의 처이다.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고 게으르지 않았다. 시어미가 병들자 좋다는 것은 다해보았고 하늘과 산에 기도하니 낮에는 밥먹을 시간이 없었고 밤에는 잠잘 시간이 없었다. 그 시어미 상을 당하여 지극한 예로써 장사지냈으며 3년동안 젯상에는 철에 맞는 제물이 빠질 경우가 없었다. 세상에서 효열부라고 일컬었다. /籍全義 凞鳳女 文乎文軾后 天安全洪植妻 事舅姑 탄誠靡懈 姑病百端售誠 祝天禱山 晝不暇食 夜不暇寐 遭內艱盡禮 奉筵三載 不撤時物 世稱孝烈

    이씨李氏 : 본관은 전주. 강릉인 유택원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뜻하지 않게 병이 들어 백약으로도 효과가 없자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목숨이 위독하자 허벅지를 떼어 약으로 드리니 이로 인해 완전히 소생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그 절개를 모두 칭찬하였고 군과 도에 유생들이 천장(薦狀)하였다. /籍全州 江陵劉澤源妻 其夫 偶영疾病 百藥難效 齋沐祝天 願以身代 至於危割股和藥 因爲蘇完 隣里 咸稱其烈 有郡道儒狀

    이씨李氏 : 본관은 전주.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서, 안양 종손의 후손 청주인 한준석의 처이다. 지아비의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예법을 넘어섰고 밤낮으로 품팔이를 해가며 병든 시아비를 정성으로 섬겼다. 약시중을 한결같이 하였으며 그 장사와 제사를 예로써 하였다. 아들 둘을 키워 가문의 대를 잇게 하였다. 면에서 상을 주었고 이 일이 삼강록에 실렸다. /籍全州 德興大院君后 安襄終孫后 淸州韓俊錫妻 夫喪哀毁逾節 晝傭夜賃 誠事病舅 侍湯如一及 喪葬祭以禮 撫育二孤 克保門戶 面有賞饋 事載三綱錄

    이씨李氏 : 본관은 전주. 백천인 조판길의 처이다. 어려서 정숙한 덕이 있었으며 시집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아비가 중풍이 들어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절구질하고 길쌈하여 정성껏 봉양하였다. 그 지아비의 상을 당해 장사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예법에 따라 하였다. 다행히 아들이 있어 가업을 잇게 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경탄하였다. /籍全州 白川趙判吉妻 早有淑德 嫁又夫영風疾 半身不遂 家貧 東舂西織 탄誠供奉及喪所天 奠祭遵禮 幸育一男 以保家聲 隣里敬歎

    이씨李氏 : 본관은 전주. 선원 원창대군의 후손 병호의 딸로서, 문평 문식의 후손 천안인 이강 전영승의 처이다. 시부모를 효로써 봉양하였다. 그 지아비가 병들자 하늘과 산에 기도하였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였고 상을 당하자 3년을 예법에 좇았다. 군과 도에서는 천장(薦狀)을 올렸고 포장이 있다. /籍全州 璿源完昌大君后 炳鎬女 文平文軾后 이江天安全永承妻 孝養舅姑 其夫遘疾 祈山禱天 指血化藥注口 丁憂三霜遵禮 郡道剡薦 有褒狀

    이씨李氏 : 본관은 전주. 진사 건호의 딸로서, 진사 도한의 아들 함양인 오상학의 처이다. 나이 20세에 갑자기 지아비가 세상을 떠나니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해산일이 임박하였고 사람들이 만류하니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들을 가르쳐 성가하게 하였다. /籍全州 進士建鎬女 進士道漢子 咸陽吳相鶴妻 年才20 奄遭崩城 卽欲下從 娩月在前 且被家人挽扶 竟未遂意 鞠育遺孤 以其成立

    이씨李氏 : 본관은 진안. 쌍첨 인현의 후손 방렬의 딸로 효자로 교관이 된 연안인 송성렴의 처이다. 시부가 병을 얻자 얼음을 깨어 물고기를 잡아 구환하고, 지아비의 병환에는 손가락을 찢어 피를 먹여 소생시키는 등 정성을 다하였으나 상을 당하자 음독을 하고 기절하였으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부지하고는 어린 자식을 잘 길러 대를 잇게 하였다. 효열이 겸전하였으므로 조정에서 듣고 정려를 내렸다. /籍鎭安 雙尖仁賢后 邦烈女 孝子敎官延安宋性濂妻 舅病 剖氷得鰭 夫病 裂指得甦及喪飮藥氣絶 爲人所救 撫養幼侄 以承先祀 孝烈兼全 聞朝命旌

    이씨李氏 : 본관은 진안. 쌍첨 인현의 후손 첨순의 딸로서, 규암 계종의 후손 천안인 전영찬의 처이다. 혼인의 예를 올리기 전에 갑자기 지아비가 죽으니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어미가 살아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을 키워 그 뒤를 잇게 하였다. 고을에서 거듭 상을 내렸고 도와 군에 천장(薦狀)이 올랐다. /籍鎭安 雙尖仁賢后 尖淳女 葵菴繼宗后 天安全永贊妻 未及于禮 奄遭崩城 卽欲下從尊 姑在堂 不忍就義 撫養從子 以嗣其后 累有鄕黨賞饋及道郡剡薦

    이씨李氏 : 본관은 하빈. 죽산인 안홍렬의 처이다. 어릴적부터 청품이 순수, 정숙하고 조용하였으며 출가하자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거친 음식이나마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시모가 병을 얻은지 오래되어 대소변을 하루에도 2, 3차씩 치우고, 숨을 거두려 함에 팔을 갈라 피를 먹였다. /籍河濱 竹山安洪烈妻 自幼性純貞靜及嫁 事舅姑以孝 菽水之供 靡不庸極 其姑영疾積年 大小便 日除二三次至 殞割臂注血

    임씨林氏 : 교생 김여겸의 처이다. 정유재란때 왜적을 만나 범하려 하자 적을 꾸짓고 죽임을 당하였다. 정려를 내렸다. /校生金汝謙妻也 丁酉之亂 遇賊誓不汚身 罵賊而死 事聞旌閭

    임씨林氏 : 본관은 나주. 흥상의 딸로서 하양인 허형의 처이다. 성정이 소박하고 정숙하였다. 시어미를 효로써 섬기고 지아비를 공경하였다. 지아비가 병으로 임종하자 따라죽으려다 가문을 잇게 하기위해 어린 아이를 길러서 종사를 잇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고 상을 치루고 제사를 모시는 것이 모두 예를 좇아서 하였다. 유림에서 군과 도에 천장(薦狀)하였으며 이 일이 삼강록에 실려있다. /籍羅州 興相女 河陽許炯妻 性素貞淑 孝事姑 敬承夫 夫病臨歿 卽欲합然 思其撫育乳兒以承宗事 送終奉奠皆遵禮 儒薦郡道 事載三綱錄

    임씨林氏 : 본관은 조양. 호는 옥은 사연의 손자이고 희백의 딸로서, 김해인 김창호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이 위독하니 하늘에 기도하여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죽음에 이르러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회생하였다. 인륜이 있는 바 신명이 감응한 것이다. 향리에서 모두 그 열을 칭송하였다. /籍兆陽 號玉隱 士然孫 凞伯女 濯纓后 金海金昌浩妻 其夫病重 祝天願代及其殞絶 裂指注血遂得回甦 人倫攸在 神明所感 鄕里咸稱其烈

    임씨林氏 : 본관은 나주. 병묵의 딸로서 상산인 박상훈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들자 서리 내리고 눈 쌓인 밤에도 매일 북극성을 보고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아비가 죽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비와 어린 자식이 있으므로 뜻을 바꾸었다. 효성과 자식을 부양함이 더욱 극진했다. /籍羅州 炳黙女 尙山朴相薰妻 其夫有疾 雖霜雪之夜 每祝北辰 願以身代 竟至崩城 將欲합然 以老舅在堂 孤孩在襁 不忍遂意 尤極孝養

    임씨林氏 : 본관은 은진. 갈천당의 후손 거원의 딸로서, 죽산인 안창현의 처이다. 나면서부터 절개가 있고 조용한 성품이었다. 시부모에게 효도하며 지아비를 공경하였다. 시집 온 다음 해에 지아비가 병들자 조금도 게으름이 없이 약시중을 들었다. 그 죽음에 이르러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자 3일을 연명하였다. 유림들이 거듭 천장(薦狀)하였다. /籍恩津 葛川黨后 巨源女 竹山安昌現妻 賦性貞靜 孝舅姑 敬君子 于歸翌年 所天沈아 藥餌之供 少不弛解 至殞 斫指注血 回甦3日 累有儒狀

    임씨林氏 : 본관은 조양. 경진의 딸로서 파평인 윤중현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어 3년 동안 두세번 넙적다리살을 떼었으나 마침내 소용이 없어 홀연 운명하였다.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어린 자식이 셋이나 있으니 뜻을 바꾸어 지극히 슬퍼하며 예를 다해 장사지내고 아들을 법도로써 가르쳤다. 향리에서 감탄하였다. /籍兆陽 敬鎭女 坡平尹重鉉妻 夫病三載 割股再三 終無奏效 奄忽殞絶 卽欲下從 因其三孩 在襁 不忍自裁 哀毁盡禮 敎子有方 鄕里感歎

    임씨任氏 : 본관은 풍천. 김용서의 처이다. 천성이 정숙하며 성으로 행하고 절개가 있었다. 지아비가 불치의 병에 걸려 3삭이 되자 백방으로 조치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넙적다리와 손가락을 베어 먹이니 이에 회생하였다. 사림에서 거듭 천장(薦狀)하여 영읍에서 가상하다는 제사(題辭)를 해주었다. /籍豊川 金容西妻 天資貞淑 性行莊烈 夫得難醫之疾 彌于三朔 百方調治 頓無得效 連以割股斷指 病乃回甦 士林累呈 營邑有嘉尙之題

    전씨全氏 : 본관은 옥천. 문성공 유의 후손으로서 죽산인 안치열의 처이다. /籍沃川 文成裕后 竹山安致烈妻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후손 영기의 딸로서, 전주인 이용구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었는데 백방으로 약을 구했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며 자기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문득 죽을 지경이 되니 단지하여 피를 먹여 하루를 연명하게 하였다. 그 상을 당해 장사지냄을 예법에 좇아 하였다. 고을사람들이 칭송하였다. /籍天安 葵菴繼宗后 永基女 全州李龍逑妻 夫病 百方求藥 一無少效 祝壇禱天 願以身代 奄至屬纊 斷指注血延命1日 喪葬遵禮 鄕黨稱歎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후손 재춘의 딸로서, 정렬 송례의 후손 여산인 송연옥의 처이다. 그 지아비가 병들자 매일 밤마다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기를 빌었다. 그 임종에 이르러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수 시간을 연명하였다. 지극히 슬퍼하기를 늙을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인들이 그 정열을 칭송하였다. /籍天安 葵菴繼宗后 載春女 貞烈松禮后 礪山宋淵玉妻 其夫有疾 梅夜祝天願代及其殞絶 裂指注血 得數時甦 哀毁之節 到질不懈 世稱貞烈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후손 재홍의 딸로서, 연안인 송광렴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를 여의고 늙은 시아비를 잘 모셨다. 시아비의 몸과 마음을 극진히 봉양하니 향리에서 흠앙하였으며 천장(薦狀)이 많이 쌓였다. /籍天安葵菴繼宗后載弘女 延安宋光濂妻 早遭城崩 善事老舅 極養志體 鄕里欽仰 薦狀積軸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후손 직원 창현의 딸로서, 미계 의련의 후손 거창인 신창범의 처이다. 머리를 얹고 2년이 지나 갑자기 지아비가 죽었다. 음식을 끊고 따라 죽으니 장례원에서 ‘전씨의 탁월한 행동은 옛날의 열부에 부끄럽지 않다.’ 라고 제사(題辭)를 해주었다. /籍天安 葵菴繼宗后 直員暢鉉女 美溪義連后 居昌愼昌範妻 結髮二載 奄遭城崩 謝絶水穀 因以下從 掌禮院題 全氏卓行 不愧乎古之烈婦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규암 계종의 후손 홍석의 딸로서, 문충 경의 후손 제주인 고정재의 처이다. 절개가 곧고 온화하였으며 효로써 시부모를 섬겼고, 지아비와 아들을 예로써 봉양하였다. 지아비가 고질병에 걸리자 넙적다리살로 약을 써서 3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면리에서 상을 내렸다. /籍天安 葵菴繼宗后 洪錫女 文忠慶后 濟州高正才妻 貞莊溫和 事舅姑以孝 奉君子以禮 夫영疾 沈痼 규股和藥 得甦3日 面里饋賞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대호군 극례의 후손 사과 재원의 딸로서, 장흥부원군 천목의 후손 마성룡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들자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며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이니 수일을 연명하였고 그 상을 당하매 슬퍼하며 예의에 따라 장사지냈으며 조카를 키워 뒤를 잇게하고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이 일이 오륜록에 실려있다. /籍天安 大護軍克禮后 司果載遠女 長興府院君天牧后 馬成龍妻 夫病 築壇祈天 裂指注血 以延數日 遭憂一遵禮制 撫養侄兒 嗣后奉祀 事載五倫錄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대호군 극례의 후손 통덕랑 인표의 딸로서, 수원인 백필종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이 깊어 마침내 죽게되자 너무 슬퍼하여 반식경 동안 혼절하였다.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가 계셔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군과 도의 제사(題辭)에서 효열이 겸전하다했다. /籍天安 大護軍克禮后 通德郞仁杓女 水原白珌琮妻 夫病沈痼 竟至屬광 哀極痛迫 氣絶半餉 切欲下從 以舅姑在堂未就 郡報道題 孝烈兼全

    전씨全氏 : 본관은 천안. 대호군 극례의 후손으로서, 청성군의 후손 청주인 한국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이 들어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결국 죽고 말았다. 이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늙은 시어미와 강보에 쌓인 어린 아들이 있는지라 슬픔을 머금고 3년상을 치루었다. 시어미를 예로써 봉양하고 법도로써 아들을 가르쳤다. 면리에서 상을 주었다. /籍天安 大護軍克禮后 靑城君后 淸州韓國妻 夫病 百方治藥 竟乃殞節 卽欲下從 顧念 老姑在堂 幼子在襁 含哀三霜 養姑以禮 敎子以方 面里賞饋

    전씨全氏 : 정기의 처이다. 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공경으로 지아비를 섬겼다. 지아지가 죽자 거상 6년동안 사시에 반드시 계절에 맞는 옷을 묘 위에 덮고 제사를 드렸다. 그 뒤 문뜩 주변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빌려준 빚 문서를 불에 넣어 태우고 자손으로 하여금 받지 못하도록 하였다. /鄭琦妻也 善養舅姑 敬事其夫 夫沒居喪六年 四時必具 節衣覆於墓上祭畢 輒燒散財周窮借貸文券付火 令子孫勿推

    정씨鄭氏 : 본관은 경주. 달성인 서치순의 처이다. 지아비와 아들을 공경하며 섬겼다. 그 지아비의 병이 위중하여 백약이 무효하자 하늘과 산에 기도하며 자기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그 죽음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3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사림에서 감탄하여 군과 도에 천장(薦狀)을 올렸다. /籍慶州 達城徐致淳妻 孝養舅姑 敬事君子 其夫病篤 百藥無效 祈天禱山 願以身代 及 其殞絶裂指注血復甦3日 士林欽歎 有郡薦道報焉

    정씨鄭氏 : 본관은 경주. 승교의 딸로서 진주인 강진의 처이다. 그 시어미의 병이 깊어 백약이 무효한데 꿩을 원하자 꿩이 날아서 품안으로 들어왔으며 그 지아비가 요절하자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슬퍼할까 두려워하여 뜻을 바꾸었다. 유림의 천장(薦狀)이 있다. /籍慶州 昇交女 晉州姜鎭妻 其姑沈疾 百藥無效 願求生稚 稚飛入懷及其夫夭逝 卽欲下從 恐傷舅姑 不忍自裁 累有儒狀

    정씨鄭氏 : 본관은 경주. 통정대부 김령인 김성학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의 상을 당해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어린 자식 둘을 생각하여 뜻을 바꾸었다. 곡하고 울며 장사지내는 것이 예의 예법을 좇아서 하였다. 그 절개가 의젓하여 늙어서까지 변치 않고 도녿ㄱ하여 향리에서 감탄하였다. /籍慶州 通政金寧金成鶴妻 早哭所天 卽欲下從 思二幼在襁 未遂其意 哭泣葬祭 一遵禮制 凜乎其節 至老愈篤 鄕里感歎

    정씨鄭氏 : 본관은 동래. 규환의 딸로서 순흥인 안계대의 처이다. 지아비가 10년 동안 병을 앓았는데 하늘에 기도하여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지아비가 홀연 요절하니 슬피 울며 예법에 따르다가 아무도 없을 때 스스로 목매어 따라 죽으매 면에서 군수에게 보고하니 가상하다는 포제가 있었다. /籍東萊 奎煥女 順興安啓大妻 夫病10年 祝天代命 夫忽夭逝 哀泣遵禮 乘其喪側無人之際 自縊幷臥同殞 面報本官 有嘉尙褒題

    정씨鄭氏 : 본관은 동래. 문익공 첨필의 후손 득선의 딸로서, 강릉인 유홍영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의 상을 당해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시부모를 봉양할 사람이 없음이 걱정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집안이 지극히 가난하여 길쌈하고 절구질하고 품을 팔아 극진하게 효로써 봉양하니 향리에서 감탄하였다. /籍東萊 文翼尖弼后 得先女 江陵劉弘永妻 早喪所天 卽欲下從 以舅姑在堂 奉養無人 爲憂而未果 家素至貧 織용雇賃 極盡孝養 鄕里嗟歎

    정씨丁氏 : 본관은 의성. 한풍의 딸로서 나주인 임병수의 아들 계상의 처이다. /籍義城 漢豊女 羅州林幷洙子 繼相妻

    정씨丁氏 : 본관은 의성. 효자인 남원인 양종윤의 아들 명수의 처이다.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지아비를 공경하였으며 지아비가 운명하려 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3일을 더 살게 하였으니 세상에서는 효열부라 불렀다. 정려는 은천마을 앞에 있는데 거기에는 그 증조부와 시부가 같이 들어있다. /籍義城 孝子南原梁鍾潤子 命洙妻 孝事舅姑 敬奉君子及夫隕命斷指注血以延3日 世稱孝烈婦 旌閭在隱川村前 與其曾考及舅旌同무

    정씨程氏 : 본관은 하남. 낙주의 딸로서 김해인 김수경의 처이다. 시어미를 효로써 섬기고 지아비를 경으로써 받들었다. 그 지아비가 병들자 단을 쌓고 기도하며 약을 달이고 변을 맛보아 병증을 알아내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자 완전히 나아 천수를 누리고 세 아들을 두었다. 이 일이 호남삼강록에 실려있다. /籍河南 洛周女 金海金壽卿妻 事姑以孝 承夫以敬 其夫영疾 築壇禱天 煎藥嘗糞 斷指注血 竟得甦完 以終天年 有三子 事載湖南三綱錄

    조씨趙氏 : 본관은 백천. 참의 예근의 딸로서 창령인 성학묵의 처이다. 혼인한지 1년이 되지 않아 그 지아비가 병들어 백약이 무효했다.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니 3일을 연명했으나 그 상을 당하매 3년 동안 지극히 슬퍼하였으며 70에 이르기까지 어육을 먹지 않았다. 군과 면에서 거듭 포상하였다. /籍白川 參議禮根女 昌寧成學黙妻 成婚未朞 其夫영疾 百藥無效 斫指注血 回甦3日及喪哀毁三年 至于七十不食魚肉 累有郡面褒賞

    조씨趙氏 : 본관은 풍양. 삼성의 딸로서 탁영 일손의 후손 김용봉의 처이다. 나이 20세에 지아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유복자와 늙은 시부모가 있으므로 따라 죽지 못했다. 후에 시아비의 상을 당하여 지극히 슬퍼하며 예를 다하였고 그 담제에 죽으니 세인들이 효열이라고 칭송하였다. 영읍에서 거듭 가상하다는 제사(題辭)를 해주었다. /籍豊陽 三聖女 濯纓馹孫后 金龍奉妻 年甫20 奄遭夫喪 遺血在腹 老舅在堂 未得下從 后遭舅喪 哀毁盡禮 담宵致死 世稱孝烈 累有營邑嘉尙之題

    주씨朱氏 : 본관은 능주. 영오의 딸로 만육 양의 후손인 전주인 최석만의 처이다. 시어미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상을 당하여 크게 울며 가슴을 치니 혼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을에서 상을 내렸다. /籍綾州 永五女 晩六瀁后 全州崔錫萬妻 姑病祝天願代 丁憂號泣 벽踊幾至滅性 有面里賞饋

    최씨崔氏 : 본관은 경주. 동중추 영기의 딸로서 증호조참의 장수인 황승언의 아들 도일의 처이다. 정숙한 규수였으며 시부모를 잘 섬겼다. 그 지아비가 병들어 호흡이 끊어질 기미가 보이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3일을 연명하게 하였다. 군과 도에 거듭 천장(薦狀)이 있었다. /籍慶州 同中樞永琪女 贈戶參長水黃昇彦子 道一妻 貞肅閨門 善事舅姑 其夫沈아 幾絶呼吸 斫指注血延3日之壽 累有郡道狀

    최씨崔氏 : 본관은 삭령. 성문의 딸로 경주인 김기비의 처이다. 시부모의 몸과 마음을 잘 받들었다. 시아비가 고질을 앓자 성심껏 돌보았으며 옆에서 떠나지 않고 약시중을 들며 먼저 맛보고 후에 드리니 마을 사람들이 지극한 효성을 모두 칭찬하였다. 거듭하여 상이 주어졌다. /籍朔寧 聖文女 慶州金奇兆妻 善事舅姑 養志養體 克盡婦職 舅有痼疾 誠心洞屬 不離侍湯 先嘗後獻 面里咸稱至孝 累有施賞

    최씨崔氏 : 본관은 완산. 연지의 딸로서 의성인 정달용의 처이다. 성정이 소박하여 정렬이 있었다. 지아비가 병이 나자 넙적다리살을 떼고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였고, 정한수를 놓고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사림에서 천장(薦狀)하여 군과 도에서 포상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 일이 삼강록에 실려있다. /籍完山 演之女 義城丁達鎔妻 性素貞烈 夫病委席 割股裂指 汲水祝天 以身願代 士林薦狀 郡道褒賞 非止一再 事載三綱錄

    최씨崔氏 : 본관은 전주. 주산의 후손 신안인 주충원의 처이다. 지아비의 병이 깊어 지성으로 약을 구하였으나 죽음에 이르니 거듭 손가락을 베어 6일을 연명하게 하고 상을 당하매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강보에 쌓인 어린 아들이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예법에 따라 3년상을 치루었다. 향리에서 칭탄하였다. /籍全州 朱潛后 新安朱忠元妻 夫病甚篤 求藥致誠 幾至殞絶 再度斫指 命延6日及喪遂欲下從 幼子在襁 未得就義 三祥遵禮 鄕里稱歎

    탁씨卓氏 : 본관은 광산. 승문대교 홍속의 후손 밀양인 손희복의 처이다. 지아비의 상을 당해 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어미와 어린 아들 때문에 슬픔을 참고 뜻을 바꾸었다. 상을 치루며 예를 다하였고 매년 기일에는 정성을 다하였으며 밤이 지나도록 촛불을 밝혔다. 마을에서 칭탄하였으며 거듭 상을 주었다. /籍光山 承文待敎弘續后 密陽孫凞福妻 遭夫喪 矢死絶殼 因姑老子幼 含哀不忍 居喪盡禮 每忌日 탄誠竭力 明燭達夜 面里稱歎 累有賞饋

    하씨河氏 : 본관은 진주. 문효 연의 후손 통정대부 석기의 딸로서, 문양 성지의 후손 남원인 양인환의 처이다. 지아비가 병이 생기자 백방으로 조치하며 간호하기를 조석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끝내는 단지하여 피를 먹였다. 장사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예의법도에 따라 하고 어린 아들을 키워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사람들이 그 절개를 칭송하였다. /籍晉州 文孝演后 通政錫基女 文襄誠之后 南原梁仁煥妻 夫有疾 百方調護 夙夜靡懈及 終斷指注血 喪祭禪祀 一遵禮制 撫養幼孤 以奉先祀 世稱其烈

    한씨韓氏 : 본관은 금계. 충경공 정란의 후손으로 전의인 이백년의 처이다. 지아비가 죽자 따라죽으려 하였으나 늙은 시부모가 의지할 데 없으므로 옳은 일이 아니라 마음을 돌려 맛있는 음식으로 섬겼다. 시어미의 병이 위독하자 넙적다리살을 떼어 삶아 드리니 병이 치료 되었다. 유림의 천장(薦狀)이 가득 쌓여 가상하다는 제사(題辭)를 하였다. /籍錦溪 忠景廷鸞后 全義李伯年妻 夫喪 卽欲下從以其 老姑無依 不忍遂義 甘旨不匱 姑疾危重 割股煮進 病乃快療 儒狀積軸多有 嘉尙之題

    한씨韓氏 : 본관은 청주. 서원부원군 치인의 후손 충구의 딸로서 장흥인 고광호의 처이다. 시부모를 잘 모셨다. 그 지아비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죽음에 이르러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돌이켜 시부모를 생각하고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성을 다해 효행을 하니 유림에서 천장(薦狀)을 올린 것이 축을 이루었다. /籍淸州 西原府院君 致仁后 仲逑女 長興高光浩妻 善事舅姑 其夫病 禱天願代 竟至殞節 卽欲下從 回思 舅姑而不就 克탄孝誠 儒狀成軸

    한씨韓氏 : 본관은 청주. 영원의 딸로서 죽산인 안진준의 처이다. 일찍이 지아비가 죽자 자식도 없었으나 염하고 장사하고 제사지내는 것을 예의에 따라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나무하고 호미질을 하며 송백의 절개와 빙설의 지조를 종신토록 간직하였다. 그 행동이 탁월하니 사람들이 모두 흠앙하여 군과 도에 천장(薦狀)되었다. /籍淸州 永元女 竹山安鎭俊妻 早喪所天 且無膝育 殯殮葬祭 一遵禮制 家計貧구 樵山鋤野 松栢之節 氷雪之操 終身不투 卓乎其行 人皆欽仰 有薦郡道

    한씨韓氏 : 본관은 청주. 의근의 딸로서 나주인 임환상의 처이다. 시아비가 중풍으로 죽게 되자 손가락을 갈라 피를 먹여 평상시와 같이 소생하게 하였다. 다시 병이 나자 단을 쌓고 하늘에 기도하며 얼음을 두드려 고기를 잡아 천수를 다하게 하였다. 그 지아비가 늙어서 병이 위독하자 하늘에 기도하며 자신이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군과 면에서 거듭 천장(薦狀)하였다. /籍淸州 義根女 羅州林환相妻 舅영風症 至於屬광 裂指注血 得甦如常 宿수更肆 設壇祝天 叩氷得魚 竟終天年 其夫亦 以老病危重 禱天願代 郡面累薦

    허씨許氏 : 본관은 하양. 용의 딸로서 청주인 한원수의 처이다. 18세에 출가하였다. 지아비의 병이 깊어 약으로 치료하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지아비가 죽자 염하는 날 저녁에 새끼줄을 걸고 목을 매다니 집안에서 깜짝 놀라 구하였다. 상을 마친 다음날 물에 몸을 던졌으나 마을사람이 구하였다. 지아비와 함께 산지 겨우 18삭이었다. /籍河陽 湧女 淸州韓元洙妻 十八出嫁 夫病危重 調藥祝天 竟至崩城 殮殯之夕 架繩懸項 渾家驚救 終祥翌日 投水幾危 村人扶救 與夫同居 纔18朔

    홍씨洪氏 : 본관은 남양. 관섭의 딸로서 사천인 김환수의 처이다. 나이 20세에 갑자기 지아비의 상을 당했다. 늙은 시어미와 어린 아들이 있으므로 스스로 맹세하기를 ‘만약 집안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면 따라 죽겠다.’하고는 시어미의 몸과 마음을 잘 받들고 아들을 법도로 가르쳤다. 사림에서 거듭 천장(薦狀)하였고 두 아들 또한 효우로써 칭송받았다. /籍南陽 寬變女 泗川金煥洙妻 奄哭夫喪 年甫20 因老姑在堂 幼孤在襁 自誓曰 與其從穴 不若保門 養姑志體 敎子義方 士林累薦 二子亦以孝友見稱

    홍씨洪氏 : 본관은 남양. 숙부인이다. 강숙 노의 후손 기협의 딸로서, 규암 계종의 후손 통정대부 천안인 전영복의 처이다. 시부모를 모심에 효를 다하였고, 지아비의 병에 정성으로 하늘에 빌었으나 드디어 운명하자 순절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돌이켜 생각하니 시부모가 계시고 뱃속에는 유복자도 있는지라 참고 구차한 삶을 지탱하기로 하였다. 천장(薦狀)이 있었다. /淑夫人 籍南陽 康肅恕后 基浹女 葵菴繼宗后 通政 天安全永福妻 事舅姑至孝 夫病禱天 竟遭城崩 誓以不從 顧念 舅姑在堂 遺血在腹 含忍苟支 有褒狀

    홍씨洪氏 : 본관은 남양. 회헌 유의 후손 죽산 안경렬의 처이다. /籍南陽 晦軒裕后 竹山安璟烈妻

    황씨黃氏 : 본관은 장수. 도원의 딸로서 청주인 한태수의 처이다. 규문에 법도가 있어 어릴적부터 능히 어른을 섬기는 예법을 알았다. 시집을 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극진히 효례를 다하였다. 일찍이 지아비가 운명하려 할 때 허벅지살을 떼어내 국을 끓여먹여 향리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籍長水 道源女 淸州韓台洙妻 閨門有範 自孩提 能知事長之禮 及其개也 事舅姑 克盡孝禮 早喪所天時 割股和羹 鄕里稱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