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金泰元)
운영자 23-12-18 18:44 649 hit
1870~1908. [김준(金準), 죽봉(竹峰), 김참봉] 대한이산묘에 배향된 개항기 의병장. 자는 태원(太元). 의병장 김율(金律)이 동생이다.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잠시 동학에 투신했다가 귀향, 고향 고을 아전들의 탐학을 관찰사에게 호소하여 바로잡아 주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1906년 동생 김율과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고창·영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의 선봉장이 되어 나주·함평·담양·창평·영광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기삼연이 체포되어 죽자 김태원은 김율과 함께 전라남도 일대를 순회하면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세력이 한창일 때에는 휘하 의병이 200명이 넘었다. 1908년 2월에 장성군 서이면 전투에서 크게 패한 후 점차 그 세력이 쇠퇴하였고 다른 전투에서 김율이 잡혔다. 김태원은 그 뒤에도 계속 항전하였으나 4월 25일 함평군 오산면 박산동[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대한이산묘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전북의병사』 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90),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 10 (국가보훈처, 1993), 『진안의 금석문』 (진안문화원, 2001), 홍영기 「한말 호남창의회맹소에 대한 일 고찰」 (『한국근현대사연구』, 2002), 정영태 「이산묘의 건립과 변천에 대한 연구」 (전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8), 한국민족문화 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