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1877.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효자. 자는 경화(慶和), 호는 금소(琴巢). 조부는 김동식(金東植)이고 부친은 음죽 현감(陰竹縣監)을 역임한 김현택(金顯澤)이다. 아들 김종관(金鍾觀) 역시 효자로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증직되었으며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성수면 좌포리에서 태어났다. 가문은 대대로 효심이 뛰어났다. 조부 김동식은 효행으로 감사와 어사의 추천을 받았다. 아들 종관 역시 효행이 상소되어 정려와 증직이 내려졌다. 김학배는 타고난 자질이 돈후(敦厚)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1870년 실시된 식년시 생원과에 합격하였다. 1877년 부친의 임지인 음죽의 관아에서 병으로 작고하였다. 1886년 동몽교관(童蒙敎官)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증직되었다. 1904년 최익현이 정려기(旌閭記))를 찬하였으며, 성수면 좌포리에 정려각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