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강(金海剛)
운영자 23-12-18 18:44 679 hit
1903~1987. 본명은 대준(大駿), ‘해강’은 필명이다. 1903년 4월 16일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1922년 전주신흥학교를 마치고, 1925년 전라북도 공립사범학교(지금의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한 뒤 진안초등학교, 전주사범학교, 전주고등학교 등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보내면서 시를 썼다. 진안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한 6년 동안(1925~1930) 시에 입문, 1925년 『조선문단』 11월호에 〈흙〉이 추천되었고, 1926년 동아일보 공모 한국 최초의 「신춘문예」에 〈새날의 기원〉이 당선되었다. 또 같은 해 『신문예』 7월호에 〈흰 모래 위를 걷는 처녀의 마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해강은 마이산의 신비로움에 심취하여 자신의 호를 ‘남봉(嵐峰)’이라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해강(海剛)이라는 아호가 더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진안에서의 생활은 한국문학사에 획기적인 금자탑을 세운 시기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즉 1920년대 「카프(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 전성기에 동반자 「프로」문학의 기수로 활동하면서 역사적인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때의 시는 조선일보를 통하여 집중 발표되었다. 〈도수장(屠獸場)〉, 〈지주망(蜘蛛網)〉, 〈조선의 거리〉, 〈아츰날의 찬미자〉, 〈도시의 겨울날〉, 〈빈처(貧妻)〉, 〈직공의 노래〉, 〈주린 자의 ‘설’노래〉, 〈용광로〉와 함께 『조선지광』에 발표된 〈가을의 향기〉, 〈5월의 태양〉 등은 모두 진안의 교직 생활 중 발표한 현실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하는 시들이다. 해강에게 진안에 관한 시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시를 “음풍영월이 아닌, 삶과 현실의 가장 엄숙한 긴장 체계”라고 믿고 사랑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