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1913. 한말의 의병장. 경상남도 안의(함양군) 출신. 본명은 태현(泰鉉), 별명은 태서(泰瑞), ‘태수’는 의병장 시절의 이름이다. 일찍이 군문에 들어가 1907년 하사에 이르렀다. 1907년 대한제국군이 강제 해산된 후 ‘대한관동 창의장 이인영(李麟榮)’이 의병활동을 촉구하는 격문을 뿌리자 각도 대표들과 출진, 호남창의대장에 임명되어 13도 연합의병부대의 일진이 되었다. 그러나 이인영의 부친상으로 서울 진격계획이 취소되자 의병을 이끌고 무주로 복귀하여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1908년 무주·장수·용담·남원·청산·금산·영동·옥천·상주·청주·보은 등지로 이동하며 일본 군경에 타격을 주는 전투를 벌였다. 11월, 일본 경찰의 밀정과 격투 끝에 부상을 입고 붙잡혀 대구감옥에서 숨졌다. 일설에는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에서 사형 당하였다고도 한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의병활동과 진안. 《참고문헌》진안지역 근현대민족운동사 학술보고서(진안문화원, 200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