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1905. 서울 출신.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 자는 문약(文若), 시호는 충정공(忠正公), 호는 계정(桂庭). 호조판서 민겸호(閔謙鎬)의 아들이다. 1877년 동몽교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정자(正字), 검열, 설서(設書), 수찬(修撰), 검상(檢詳), 사인(舍人) 등을 역임하다가 임오군란의 발발로 아버지 민겸호가 살해되자 사직하였다. 1884년 이조참의에 임명된 뒤 도승지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하자 국운이 기울어졌음을 깨닫고 죽음으로 항거하여 국민을 각성시킬 것을 결심하고 본가에서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동상은 안국동 로터리에서 와룡동 창덕궁 앞으로 옮겨졌다. 유고 중 대표적인 것으로 『해천추범(海天秋帆)』, 『사구속초(使歐續草)』, 『천일책(千一策)』 등이 있고, 그밖에 많은 소(疏), 차(箚) 등이 있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