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1936. 전라북도 정읍 출신의 독립 운동가.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 호는 구파(鷗波).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을 목격하고 고향에 돌아가 동지를 규합하여 일제와의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1933년 주중(駐中) 일본 대사가 상해 훙커우(虹口)의 일본식 요정에서 일본 정객·참모부원, 친일 중국 정객과 군인 백여 명을 초대하여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강훈(李康勳)·원심창(元心昌)과 함께 습격하려다가 잡혔다. 일본 나가사키 법원(長崎法院)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