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1905.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순국지사.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동방일사(東方一士). 시호는 문충(文忠).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고 송면수(宋勉洙)의 첫째 아들이고 참의 송달수(宋達洙)와 송근수(宋近洙)의 종질이며 송병순(宋秉珣)의 형이다. 송병선은 대전 회덕(懷德)에서 태어났다. 백부 송달수에게서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다. 1882년에 공조참판,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충청북도 옥천에서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세상일을 잊고 지냈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고종을 알현하여 을사오적의 처단, 현량을 뽑아 쓸 것, 기강을 세울 것 등의 「십조봉사(十條封事)」를 올렸다. 이어서 을사늑약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려고 하였으나 경무사 윤철규에게 속아 납치되어 강제로 향리에 호송되었다. 이에 통분하여 그해 음력 12월 30일 세 차례 다량의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송병선은 황제와 국민과 학생들에게 드리는 유서를 남겼는데 “을사오적의 처형과 을사늑약의 파기 및 의로써 궐기하여 국권을 찾을 것” 등을 호소하였다. 저술로는 『무계만집(武溪謾輯)』, 『근사속록(近思續錄)』, 『패동연원록(浿東淵源錄)』, 『동감강목(東鑑綱目)』 등 53권이 있으며, 문집으로는 『연재집(淵齋集)』이 있다. 1914년 충청북도 영동군 문충사(文忠詞)에 배향되었는데 1970년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으로 이전되어 용동서원(龍洞書院)이라 불린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