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산(宋寶山)
운영자 23-12-18 18:44 650 hit
1432~1504. 조선 전기 진안의 문신. 자는 대인(大仁), 호는 퇴휴재(退休齋). 숙의공(肅毅公) 송경(宋卿)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 송광언(宋光彦)이고 아버지는 화녕부(和寧府) 소윤(少尹)을 역임한 송흥도(宋興道)이다. 유년 시절부터 경전과 제가서(諸家書)를 두루 읽었으며, 특히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어 세상에서는 ‘송춘추’라 불렀다고 한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과 교류하였다. 1448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이후로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고, 1490년에는 가선대부에 올라 도승지와 예조판서를 역임하기에 이르렀다. 세조 때 성삼문(成三問)과 박팽년(朴彭年)을 비롯한 많은 충신들이 화를 당하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호남의 장수현(長水縣)으로 내려가 청심정(淸心亭)을 짓고 한사로 자처하면서 학문 연구로 여생을 마쳤다. 한편 장수와 진안의 경계에 있는 천반산(天盤山)에는 두 개의 큰 굴이 있는데 “송보산과 그의 부인이 이 굴에 은거했다” 하여 현재까지 각각 ‘송판서 굴’과 ‘할미 굴’이라 불리고 있다. 1828년 진안과 장수 지역 유림의 발의로 구산서원(龜山書院)과 월강서원(月崗書院)에 배향되었다. 한편 1949년 구산서원 내에 박성양(朴性陽)이 찬한 예판퇴휴재선생송공보산신도비(禮判退休齋先生宋公寶山神道碑)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장수군지』(장수군지 편찬위원회, 1990), 『진안군사』(진안군사 편찬위원회,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