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1914. 근대 진안 출신의 유학자. 후진 양성에 앞장선 유학자이다. 자는 내호, 호는 묵헌(默軒). 증조부는 송규오(宋圭五), 조부는 송헌철(宋獻喆), 부친은 돈녕부도정 송석로(宋錫老)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을 인정받아 묵헌처사라는 호를 받았다. 1905년 송병선이 망국의 설움을 안고 순절했을 때에 김종섭(金鍾燮), 이문흠(李文欽), 이기회(李起晦) 등과 ‘사광계(四狂契)’를 조직하고, 고금의 시사를 논하면서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1914년초 부인에게 4월에 사망할 것임을 예언하고, 그 말대로 4월에 의관을 정제한 자세로 별세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죽음을 ‘선화(仙化)’라 부르기도 하였다. 『독서수차기(讀書手箚記)』 여러 권을 저술하였다. 송희렴의 묘갈명은 전우(田愚)가 찬하고, 정종엽(鄭鍾燁)이 묘표를 지었다. 《참고문헌》 『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진안군사』(진안군사 편찬위원회, 1992), 「묵헌처사 송공희렴 묘갈명(默軒處士宋公希濂墓碣銘」